예전에 나왔다가 절판된 <블랙 다알리아>를 보고 써둔 독후감입니다. 앞으로 나올 황금가지의 <블랙 다알리아>의 큰 성공을 기원하며 어떤 책인지 혹시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올립니다. ^^;

 

제임스 엘로이는 어렸을 때인 50년대 LA에 살았는데, 열살 때, 이혼한 어머니가 벌겨벗겨진 채 잔인하게 살해 당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 사건 이후 충격을 받아 경찰서를 내 집처럼, 마약을 상용하며 방황하다 80년대 들어 소설을 쓰며 긴 방황을 청산합니다. 바로 그가 너무나 잘 아는 분야인 50년대 LA의 범죄에 대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노벨상을 20개쯤은 안겨주고 싶은 대가입니다.

 

블랙 다알리아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머니, 스물 아홉 해가 지난 지금에야 이 피 묻은 고별사를 바칩니다."

 

 

 

 

읽기 전까지 제임스 엘로이에 대해서 잘은 몰랐다. 다만 영화로 나온 <LA 컨피덴셜>의 저자로만 알고 있었다. 우연히 <블랙 다알리아>를 입수하고 읽게 됐는데, 읽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심지어 오늘 극장에서 <에비에이터>를 보았는데, 영화 시작 전 광고하는 시간에 어두움을 무릅쓰고 읽을 정도로 몰입감이 강한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다루고 있는 사건이 대단히 엽기적이다. 차마 여기 옮겨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다. 소설에서 본 가장 잔인한 살해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잔인하게 난자당한 '블랙 다알리아'라고 불리는 창녀의 죽음을 각각 'FIRE'와 'ICE'라고 불리는 두 전직 권투선수 출신의 경찰이 수사한다. 리 반장과 버키 형사는 권투 선수 출신으로 화끈하게 한번 붙은 다음 친해진다. 파트너가 된 두 사람은 리와 동거를 하고 있는 케이라는 여자와 함께 행복한 한 때를 보낸다. '블랙 다알리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1940년대 LA의 도덕적 타락과 병폐를 상징하는 '블랙 다알리아'사건으로 인해 리와 버키의 암울한 과거의 망령도 부활하고 만다. 정의로운 경찰인 리에게는 감추어야만 했던 비밀이 있었고, 경찰이 되기 전 버키 역시 밀고로 친구를 배신한 아픈 전력이 있다. 혼탁한 사회 속에서 결국 리, 버키, 케이의 조화롭던, 동화로까지 상징되던 세계는 무너지고 만다. 한 사람은 죽고, 남은 두 사람은 이별을 겪으므로...소설에서 그려지는 이별 장면은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모든 걸 잃은 버키는 편집증적으로 '블랙 다알리아' 사건에 몰두하게 되고 마침내 진상이 떠오르게 된다...

 

현대 경찰 소설, 느와르 소설의 걸작이다. 1930-40년대 유행했던 펄프 느와르의 요소(도시의 갱, 타락한 경찰, 혼란스런 사회상, 불법 권투 도박, 살해된 창녀 등)를 가지고 이토록 현대적으로, 창의적으로 변용해낸 작가의 실력이 놀랍다. 낡은 사진같이 빛바랜 40년대의 LA가 배경이지만 이 작품이 내뿜는 빛만큼은 전혀 낡지 않았다...

 

엽기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당대의 도덕적 타락상, 전후의 혼탁한 시대상을 정교하게 묘사해내는 작품이다. 놀라울 정도로 잘 쓰여진 작품이며 작품 말미까지 긴장감과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올해 브라이언 드 팔마에 의해 영화화된다고 하는데, 소설에서 나오는 살해 방법을 쓴다면 절대 등급을 받지 못할 것이다. 분명 순화시킬텐데 작품이 그 맛을 유지할지 걱정된다.

 

어느 작품보다도 재미있고, 어느 작품보다도 문학성이 뛰어난 현대 범죄 소설의 명편으로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별점: ★★★★★

 

 





 

 

 

 

 

 

 

 

올해 나올 <블랙 다알리아> 영화 포스터입니다. 영화는 조쉬 하트넷, 스칼렛 요한슨, 힐러리 스웽크 등이 나올 겁니다. 올해 영화를 한 편만 볼 수 있다면 이걸 보겠습니다. 사진은 살해된 창녀를 묘사한 것 같은데 입술이 길게 찢어져 있군요. 왜 그럴까요? 보시면 아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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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2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3,4권까지 나오기를 바라는데 영 가망이 없나봅니다 ㅠ.ㅠ

jedai2000 2006-01-27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블랙 다알리아>가 잘 되면, 내지 말라고 해도 내겠죠. 저나 만두님 입장에서는 시리즈를 다 보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잘 될지 어떨지 모르는 위험 부담을 안고 시리즈 전권을 계약할 수도 없는 문제니 참 답답합니다. 그저 <블랙 다알리아>가 잘 되거나, 출판사 측에서 이 작가는 조금 손해봐도 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내주길 기대합니다.

저는 적어도 출판사라면 문화 사업이고, 돈 좀 잃어도 할 만한 작가는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임스 엘로이같은 작가라면 깨져도 적어도 독자들에게 욕을 먹지는 않을 겁니다. 허접한 작가들 책 내서 망하면 독자들한테 욕 먹고 돈은 돈대로 날리는 건데, 제임스 엘로이 같은 작가라면 만약 실리를 못 얻는다 해도, 좋은 작품 냈다는 명분이 있는데 왜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여튼 저희야 그냥 기다려 보는 수 밖에요. 이럴 땐 제가 정말 출판사를 하고 싶다니까요..^^;;

한솔로 2006-01-2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이 쓰신 글에서 소식을 듣고 한숨을 연신 쉬고 있자 옆에 있던 팀장이 왜 그러냐고. 내가 출판사 들어와서 가장 내고 싶었던 타이틀이 딴 데서 나와 그런다고 하자, 무슨 책이냐 묻더군요. 이러저러한 소설이다라고 했더니. "나는 세상에서 시디랑 만화책, 추리소설 사는 사람이 젤 이해가 안 되요. 그리고 **씨가 내고 싶다고 회사에서 내준대요?"-_-;;;

nemuko 2006-01-2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나 미리 내용 알고 싶지 않아서 페이퍼는 후르륵 흘려 보냅니다만, 재밌단 말씀이시죠?^^ 으윽. 그나저나 제 위에 계신 한솔로님네 팀장님 넘 미워요. 흥...

물만두 2006-01-27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 팀장님 나빠요~ 흥~

상복의랑데뷰 2006-01-27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 4권이 아니라, 2권과 4권입니다. ^^ LA 컨피덴셜은 3번째 소설입니다. 계약이 된 모 출판사에서 다 낼리는 없고, 아쉽지만 재발간 되었다는데 의의를 두어야 할 듯 합니다. 다루는 시대가 과거라서 오래된 작품이인 것 같은데, 블랙 다알리아가 87년 LA 컨피덴셜이 90년에 나왔으니 정말 모던 클래식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네요.

물만두 2006-01-27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죄송~

jedai2000 2006-01-27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이해 안되는 사람이 "온통 다운만 받아서 음악 들으면서 이런저런 음악지식 자랑하며 깝치는 사람, 만화책은 전부 빌려보면서 한국 만화가는 수준이 떨어진다고 깝치는 사람, 좋은 추리소설 한 번 읽지도 않아본 사람이 추리소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입니다. 한솔로님 팀장님이 그런 분이실 것 같네요..^^;;

<블랙 다알리아>가 잘 되서, 다른 시리즈가 다 나왔으면 하는 거는 모든 분들의 바람 같네요..꼭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한솔로 2006-01-2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다 제 팀장 욕하는 분위가 됐을까요ㅎㅎ 제가 에피소드를 전한 곳이나 풍토 자체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네요. 제 잘못입니다ㅎㅎ

panda78 2006-02-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랙 다알리아, 헌책방에 구하려고 해도 안 보이던데, 기쁩니다. ^^

jedai2000 2006-02-0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나올지는 몰라요. 그런데 홈페이지 가 보니까 옛날 번역을 그대로 쓰는 쪽으로 생각하고 계시더라구요. 이종인 씨라는 분이 하셨는데 번역 좋습니다. 만약 옛날 번역 그대로 사용한다면 출간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네요. 잘 진행된다면 5월 안으로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오면 꼭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