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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잔네 파울젠 지음, 김숙희 옮김, 이은주 감수 / 풀빛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 약초 캐는 마녀가 되고 싶었다는 수잔네 파울젠.
그녀는 알고 보니 GEO(지이오) 등에 글을 기고하는 전업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GEO를 한참 읽던 예전 생각이 났다. 설혹 그렇다 해도 그녀의 이름을 보았는지의 기억까지는 없지만
왠지 그녀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감성적일 거 같았던 이 책은 실제로 아주 객관적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일단 이 책의 장점으로 내용도 좋지만 깔끔하고 세련된 편집도 한몫을 한다. 이미지 우선이 아닌 텍스
트 위주의 편집 그리고 식물을 흑백으로 실었지만 그 생명력은 거침없이 살아숨쉰다. 최소의 공간에 배
열한 식물 이미지는 가끔은 책이 접히는 중간 부분에 있어서 자꾸만 양쪽 손에 책장을 잡고 당기게도
했다. 너도밤나무와 밤나무의 잎이 이렇게 예쁜지 미처 몰랐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괴테의 말처럼
식물의 잎 하나하나가 내게 새로움을 부여했다.
또 하나의 장점은 관련내용이 있는 사이트를 주석으로 단 점이다. 더 알고자 하는 이를 위한 정보를 동
시에 제공하고 있다. 물론 한글이 아니라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폭넓은 정보를 함께 이용할
수 있어서 정보의 가치가 크다.
식물은 다른 생물을 잡아먹지 않는다. (12쪽)
그렇다. 식물과 동물의 수많은 차이점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이 말에 약간의 의혹이 생긴다. 왜냐하면
바로 식충식물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식충식물을 몰라도 우리는 파리지옥을 알고 있다. 식충식물
이란 곤충을 먹는 식물이다. 그렇다면, 식물은 다른 생물을 잡아먹지 않는것이 대부분이나 모두가 그렇
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나는 저자의 말에 태클을 거는 것이 아니며 다만, 식충식물을 좋아하기에 한마
디 해보았다. 사실 식충식물이 먹는 양을 동물이 먹어치우는 양에 감히 비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보통 식물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정적인 이미지가 대부분일 것이다. 한 장소에 계속 머
물러 있으며 그들은 성장하고 변화하지만 미세하고 느리기 때문에 동물과 차이가 크다. 그러나 식물의
삶도 알고 보면 대단한 투쟁이 필요하다. 사람처럼 아옹다옹하고 경쟁하며 유혹하고 살아남기 위해 노
력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식물도 살아있기에 역시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이 책은 식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원리, 역사, 이용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
지 포괄적으로 전한다. 만약 식물의 에피소드를 더 듣고 싶다면 같은 해에 정신세계사에서 출판된 <장
미의 부름>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이 책과 <장미의 부름>은 겹치는 내용이 많지만 저자의 방식은 완전
히 다르다. 식물의 감정반응을 실험한 벡스터 이야기 등은 겹치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 <장미의 부름>
은 정신세계사의 책이라 그런지 과학서라기보다 신비함 즉, 감성에 다가서는 책이다. 그에 비해 이 책
은 감성과 과학 사이에 적절한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시적인 책(전자)과 식물적인 책(이 책)이라 불러야겠다.
식물의 경쟁, 유혹 등은 식물 다큐를 보아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이 책은 꼼꼼하고 객관적
으로 말한다. 동시에 어렵거나 지나치게 전문적이지 않고 중간 정도의 레벨을 지켜가고 있다고 보인다.
우리의 식물학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후추, 감자가 만들어
낸 역사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또 독성을 내뿜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게 모든 것에는 이유
가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우리가 즐기는 원두커피. 그 커피의 카페인이 원래 유충을 죽
게 하거나 딱정벌레를 불임으로 만드는 물질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개의치 않지만 말이다.
인간은 번영할지 모르나 우리의 지구는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 (162쪽)
결국, 인간의 번영이 지구의 가난을 가져오며 그래서 인간의 번영도 존속되지 못할 것이다. 유전자 변
형과 식물디자인에 대한 편리성과 충고도 동시에 잊지 않는 저자의 말을 통해 반성했다. 식물의 미래가
곧 인간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존하는 관계이기에 어느 한쪽만 살아갈 수는 없다. 식물이 뿜
어내는 산소로 숨을 쉬고 살아가는 우리가 어찌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식물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한번쯤 고민해볼 일이다. 내게도 '녹색 엄지손가락'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