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겉 알베르 카뮈 전집 6
알베르 까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 카뮈가 20대 초반에 쓴 산문집이자 그의 모든 사상이 시작되는 <안과 겉>은 아주 예전에 표리
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었다. 카뮈하면 연상되는 것 중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접할 때마다 그가 말하던
 '부조리'가 자꾸만 떠오른다. 

 <반항적 인간>과 함께 스승 장 그르니에에게 헌정한 이 책은 짧다. 두껍지 않은 책의 절반인 뒷부분은
해설이 차지한다. 그러나 이 책은 카뮈의 책이 아니던가. 간식을 먹어가며 볼만한 성질의 책이 아닌 것
이다.


빛과 어둠, 프라하와 비첸체, 죽음과 태양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를 거듭하는 삶의 '안' 과 '겉'
ㅡ 이 두 가자의 뗄 수 없는 상관관계는 알베르 카뮈가 다루는 필생의 주제다. 그래서 작품 <안과 겉>
은 그의 모든 작품의 출발이요 원천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카뮈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
다. (옮긴이의 말)



 다시 만난 <안과 겉>으로까지 오게 된 경로는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장 그르니에의 책 가운데 한
권을 읽었고 그래서 이어지는 장 그르니에 탐독 그리고 카뮈까지 다시 읽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카
뮈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근원인 이 책으로 거슬러 오게 되었다. 그를 좋아한다면 이는 수고롭지 않은
자연스러운 선택일뿐이지만 말이다.

 책을 마주하며 간식이나 차를 마시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이 책을 꺼내 들고 ㅡ 아마도
다시 만나는 책이기에 부담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긴장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ㅡ 가벼운 보
드카 한 병(한 잔이 아니다)을 들었다. 이윽고 목에 감기는 알코올의 맛과 내 머리에 스며드는 카뮈의
글은 어느새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서문-27쪽, 삶에의 사랑-91쪽)

이따금, 인간이란 살아움직이는 불의라고 여겨지는 때가 있다. (서문 28쪽)


 고독한 노인의 모습 그리고 카뮈의 괴팍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등에서 그가 생각하는 세계의 충돌을
보며 죽음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모습은 더는 이상한 것이 아님을 돌이켜본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그러나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죽음. 하여간, 그렇기는 해도 역시 태양은 우
리의 뼈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아이러니 48쪽)



 <시지프 신화>가 카뮈를 거쳐 세상에 토해졌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느껴
지는 일관된 그의 생각은 어김없이 내가 활자를 쫓고 있는 건지 작가의 의식에 세뇌되고 있는 건지 종
종 불분명해진다. 모든 것은 단순하며 사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들(63쪽)이라는 말처럼 쓸데없
는 이야기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가련한 어머니와 아버지 ㅡ 6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조차 없는 ㅡ 이야기에서도 그가 말하는 것은 슬픔
과 절망이 아니라 그저 그때를 회상할 뿐이다. 가끔 회상과 지금을 살고 있음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무심은 어린 시절부터 의식에 고여든 자기보호는 아니었을까. 삶의 애착을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도 카뮈가 이 말을 듣더라도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겠지만.
(긍정과 부정의 사이)

 <이방인>, <행복한 죽음> 등도 역시 카뮈의 모태를 이루는 것임을 여지없이 느낀다. 카뮈는 이 작품을
서툴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가장 순수한 책일지도 모른다. 치밀한 짜임새를 갖추지 않았더라도 또 그의
생각을 꼼꼼히 드러내지 못했다 쳐도 여기에는 카뮈의 색이 섞여있음을 쉬이 감지할 수 있다. 어떠한
색을 덧입혀도 드러나는 고유의 색처럼. <안과 겉>이 카뮈의 첫작이나 마지막에 읽어도 참 흥미롭겠다
는 생각이 든다. 아직 읽지 않은 그의 독자라면 한 번쯤 고려해 보기 바란다. 영혼 속의 죽음을 지나 삶
에의 사랑으로 들어서서 그의 솔직담백한 말을 들어본다.


사랑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를 다 포용할 수만 있다면 껴안는 방법이 서투른들 어떠랴. (삶에의 사랑 92~93쪽)



 마지막은 제목과 같은 <안과 겉>이다. 이로써 이 짧은 책은 막을 내리고 해설이 이어진다. 조금 지루한
해설이지만 그래도 카뮈와 빛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는다. 사실 논문도 아니고 해설이 길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은 나도 이런 식으로 작가를 이해해보고 싶을 때가 있지만 경계하는
편이다. 어느 순간 이해하는 나를 발견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머리에 집어넣기
란 하나의 고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니까.

 아, 그렇더라도 내가 카뮈의 책들을 피상적으로 읽지만은 않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나는 나의 모든 몸짓을 통해서 세계에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모든 연민과 감사를 통해서 인간들에게 연
결되어 있다. 세계의 이 안과 저 겉 중에서 나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고 또 남이 선택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안과 겉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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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이순원 지음 / 세계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이순원의 자전적 이야기에 살을 입힌 성장기 소설. 19세라는 나이를 지나온지가 언제인지도
르겠다. 예전에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를 읽으며 성장기 소설의 일반적인 느낌을 떠나 ㅡ
그 일반적인 느낌도 좋다 ㅡ 성숙한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성찰적인 모습 그리고 함박웃음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지인에게 이순원의 이 책을 추천받았다.

 지나온 내 19세도 함께 돌아본다는 즐거움에 기쁘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다.
아니 이런! 그런데 내가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아닌가. 소녀가 아닌 소년의 세계를 보
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말이다. 처음에는 낯선 세계에 웃음이 마구 나왔다. 물론 성의
구별없이 모든 10대가 겪었을 과정과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성(姓)에 눈뜬 소년의 호기심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구나를 생각했다. 영화 <몽정기>를 떠올리면 된
다. 친구 누나를 남몰래 좋아하는 소년의 모습에서 사춘기 때 소녀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
랐다. 엄마의 관점에서 아들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책이 될 거란 생각이다. 이런 점이 책의 장점이지 싶
다. 간접체험을 통한 좋은 방법을 하나 터득해서 그것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소통의 폭이 책
으로 넓어진다는 사실.


「 너, 누나 좋아하니? 」
「 …… 많이요 」
「 감격스럽다. 내가 정수 그 말 가슴속에 간직할게. 정수도 오늘 내게 했던 말 영원히 잊지 말고.
우리는 거기까지야. 지금 정수가 한 말이 아름다운 건 정수가 지금 내게 한 말도 아름답지만, 그 말을
하는 정수의 나이가 아름답기 때문일 거야. 아마 스무 살만 지나가도 그 말이 스스로 아름답게 느껴지
지 않을지도 몰라. (생략) 」ㅡ 229쪽



 사춘기의 아릿한 기억을 되뇌어보니 신체적 변화의 적응과 온갖 호기심, 미지의 동경, 날카로운 비판,
맹렬하나 허물어질 거 같은 감성이 동시에 존재했던 시기였다. 소년도 성에 눈을 뜨고 그리고 자아를
찾아간다. 소년은 농사를 기업적으로 경영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리고 사춘기 특유의 행동으로 ㅡ 한
마디로 막무가내 ㅡ 밀고 나간다. 일단 친구와 사는 곳에서 벗어나 일탈을 시도한다. 또래의 뭉침이란
이때가 정점이 아닐가 싶다. 빼놓을 수 없는 일탈도 소년에게는 퇴폐적이거나 단순한 가출이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족과의 갈등.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소년의 아버지로 끝까지
믿어주는 점이었다.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런데도 가만히 타일러 보고 결국 묵묵히 기다려 준 아버지.
소년이 농사일을 하면서 학교는 다니지 않더라도 책은 읽으라며 약속을 다짐받는 아버지의 모습이 인
상적이다.

 소년은 나와 성적인 개념뿐 아니라 생각도 많이 달랐다. 이건 어쩌면 개인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 숨어있던 성장기 때의 한 소녀를 불러내 기억을 환기시킨다. 그 소녀가 좋아하던 시, 선생님,
별, 친구, 의미, 바람 또 증오 조차하던 어른, 어떤 부류의 인간상, 정치. 그때는 그것이 최고의 관심거
리였다. 꽤 진지하고 우울하며 명랑했던 사춘기 소녀. 이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노을이 흩어지던 중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앉아있다 구름 사이로 비춰드는 햇빛과 풍경에서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불새의 날갯짓과 소리를 듣던 시절이다. 그러는 사이, 이 많은 실타래를 꽁꽁 묶어
두고 있었으면서 자주 풀어보지 못했음을 알아버렸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찬란한 시절을, 그때
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추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리라. 나머지 행복했던 부분은 아
름다운 추억으로 분류해서 쌓아두어야지. 그리고 가끔 꺼내보고 싶다. 그런 추억 하나 없으면 얼마나
삶이 쓸쓸하겠는가.

 이순원의 <19세>는 날개 달린 듯 빠르게 읽어갈 수 있는 책이다. 26개의 각주가 있는데 작가는 본문의
이해를 돕는 주가 오히려 본문을 방해하며 박학다식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주 중독증 환
자를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각주는 모두 재미있고 또한 다소 긴 것도 있지만 편하다. 내가
읽은 어떤 책들은 각주 때문에 다시 책을 찾고 싶지 않은 일도 있었다. 아무튼, 이 책은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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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5-14 13:02   좋아요 0 | URL
"지금 정수가 한 말이 아름다운 건 정수가 지금 내게 한 말도 아름답지만, 그 말을
하는 정수의 나이가 아름답기 때문일 거야." 제 삶의 어느 언저리에도 저런 말이 있었겠죠.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알수 없지만요. 요즘 청소년의 일탈을 방송을 통하여 접하면서 이 소설처럼 그 시절의 감수성을 매만져줄수있는 소설이 더 많이 나와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은비뫼 2007-05-18 05:46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시절의 감수성을 매만져줄 수 있는 소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성장소설 참 좋아요. ^^ 읽으며 저도 계속 성장하는 느낌입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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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프랑스 작가의 책은 나와 코드가 잘 맞았기에 스스럼없이 대하게 되었다. 그들을
오롯하게 이해했던 지와는 별개로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에 자석처럼 이끌리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아 자꾸
만 떠오르는 이들의 이야기는 내가 풀어가기 쉽지 않은 퍼즐과도 닮아있다. 싱겁지 않은 그래서 이들의 존
재가치가 나를 자극한다.

로맹가리도 내가 좋아하는 몇 몇 프랑스 작가처럼 마음 밑바닥을 공명한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불친절함이 아닐까 싶다. 구태여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들려만 주는 제삼자의 관점은 때로 무심하면
서도 솔깃하게 한다. 마치 다큐멘터리는 문제를 들려주지 그것의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마음의 짐으로
우리에게 던져주듯 말이다.

술술 넘어가는 맛있는 죽(단편)은 아니지만 아주 따끈해서 친천히 씹어 넘겨야 하는 죽이 로맹가리 표
죽이다. 그래야만 맛있고 소화될 거 같은... 삼키고 나서야 '아'라고 만족할만한 맛을 제공한다.

책에 실린 그 단편의 시작은 제목과 동명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이다. 제목부터 끌렸다.
그의 글은 건조하고 냉소적이다. 글의 시작에서 TV 문학관의 첫 느낌 그리고 아픔이 느껴진다.
치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작가도 아프고 글의 등장인물도 아프고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또한 아프다. 나(저자)도, 그들도(등장인물) 이렇게 아픈데 당신(독자)도 아프지
않느냐고 묻는 거 같다. 시작부터 정신을 곤두서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루트>도 좋았고 <지중해에 대한 열정>은 주인공과 아내의 거리. 또 아내가 끝까지
지켜내려 몸부림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로맹가리는 어디까지 독자의 마음에 무거운 추를 더하고 있는
것일까. 왜 다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자꾸만 묻는 거 같다. 아주 조용히도 말이
다. 작가의 역량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면 별수 없다. 헤어나오기 어렵지만 끝까지 가봐야 한다.

<어떤 휴머니스트>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데 이 역설적인 아니 아이러니한 휴머니스트의 이야기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어허, 이 작가 갈수록 태산이군... 이어지는 <몰락>과 <가짜>는 현실에
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찝찝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실컷 양치질을 해놓고 물로
행구지 않는 것과 똑같은 당혹감이다.

<본능의 기쁨>도 좋은 단편이었다. 난쟁이 이그나츠 말러의 말을 옮겨본다.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인간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중략)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기형적인 존재들일 뿐이에요. (중략)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기형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적당한 말이 없네요. (124쪽)


우리가 기형이라고 말하는 난쟁이 이그나츠의 눈에 보인 인간의 모습이다.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기형
적이라는 말에 강하게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상함과 위대함>의 생선꼬리처럼 죽어간 모습 하며 <비둘기 시민>의 이 우의적 표현도 감탄했다.
이 미묘함! 집중하지 않으면 로맹가리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그런 점에서 끝까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기에 무엇보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나 <벽 -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반전과 오해도 빼놓을 수 없는 단편이
다. 벽을 사이에 두고 죽은 여자와 남자 이야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웅적 행위에 대해 말하자면>에서는 살다 보면 자신의 밥줄을 지켜
야 할 때가 있는 법(196쪽)
이란 말이 기억에 남았다. 흔히 말하지 않던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
고... 우스갯소리로 하지만 참 씁쓸한 말이 아니던가 말이다.

<지상의 주민들>을 읽으며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이 자꾸만 겹쳤다. 트럭
그리고 소녀. 영화를 보고 나서의 쓴 커피맛이 이 단편에서도 났다. 같은 맛을 지닌 커피를 만난 것이
다. 지상의 주민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딘가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여기에 있다.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도 괜찮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인간 내면 파헤치기도 로맹가리
의 특징 중 하나이다. 어디까지 파헤쳐 보여줄 것인가요, 로맹가리씨!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발 디디고
있는 땅 아래를 자꾸 파버리면 지구의 반쪽은 날아가 버릴 텐데요. 그 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죠?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돌연변이가 된 인간의 모습에 간호사
는 이렇게 외친다. "무슨 이런 세상이 다 있담!"(268쪽) 외형적으로는 미래에 이런 시대가 올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지금 인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마음의 돌연변이는 도대체 어
디서 치유할 수 있을까.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육체를 갖는다고 인간 본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
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인간 본연의 상태도 불순했던 것일까.

저자는 생각보다 여러 장르의 단편으로 다양함을 보인다. 다채로운 색을 가졌으나 역시 인간의 상처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늘 하나의 줄기를 이룬다. 절대 독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이 파수꾼은 분명히 우
리에게 소리없는 경계를 일깨우고 있다. 당신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당신의 마음은 지금도 돌연변이를
계속 하고 있으며 그대로 둔다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이다.

유태계 프랑스인 로맹가리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책으로 독자의 마음에서 권총을
겨누고 있다. 아찔하지 않은가! 누가 그의 총구를 피해갈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인간이지 않은가. 지
독히도 현실적인 인간 말이다. 나는 이 책에서 냉소적인 그의 일침을 기억하고자 한다. 정답을 손에 쥐
어주지 않은 채 독자의 몫으로 남긴 것은 그도 인간이었기 때문이리라.

아~ 역시 프랑스 작가들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건 운명인가? 운명론자가 되기는 싫지만
이들과 연결된 끈은 이다지도 끈끈하여 떼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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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z와 디카 망고의 100일 여행 스케치 - 건축인 백은정의 유럽현대건축기행
백은정 지음 / 이레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나와 동갑내기인 건축가 백은정씨가 2003년 3월부터 6월까지 100일에 걸친 현대건축 기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건축을 비롯한 여행 이야기는 맛있는 커피 한잔을 곁들여 읽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망고(디카로 저자가 이름 지음), 스케치북 3권, 연필 3자루를 들고 찍고, 그린 것이 담겨있다.
99박 100일을 유럽과 마지막으로 뉴욕을 돌고 온 여행에서 그녀의 건축은 더욱 견고하고 넓어졌으리라.

나만의 여행가이드북을 직접 만드는 모습에서 한 수 배웠다고 할까. 같은 해(2달이 겹친다) 나는 일본
에 다녀왔는데 여행가이드북을 사갔다. 만들 생각도 못했는데 다음 여행은 꼭 실행해봐야겠다. 틈틈이
일기장에다 그날 일정과 그림을 그리며 역시 디카로 담기는 했지만 여행가이드북을 직접 만들면 훨씬
의미있을 거 같다.

동갑이라는 점 말고도 통하는 점이 꽤 있었는데 건축, 그림,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드바르 , 건축가 가우
디 등이다. 스페인에서 시작해 뉴욕까지 둘러본 그녀의 여행에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 소풍가듯 가벼
운 마음으로 말이다.

대략적인 사진위주와 짤막한 글 위주라 바로 읽을 수 있어서 여행 블로그를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그만큼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따르기보다 자기만의 여행 가이드북을 만들거나
그저 이 책을 즐기면 딱 좋다.

기대하지 않았던 식물원 사진도 있었는데 역시 외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자연친화적임을 새삼 느꼈
다. 예로 건축 시 나무가 있다면 뽑지 않고 그 자리를 들여서 건축물의 공간을 줄이거나 그 부분만 창을
내어 단 한그루의 나무를 배려한다. 생소한 건축가들의 작품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으며 독일건축도 눈
여겨 볼만했다. 역시 건축에서 빛을 이용하는 점은 늘 놀랍다. 스위스 바젤의 바이엘러재단 미술관에서
자코메티의 조각상이 보였는데 그도 반갑고 덴마크 훔레벡의 루이지아나 미술관도 가고 싶었다.

이처럼 재미있는 내용과 맛있는 커피 사진을 보니 시나브로 커피를 마시며 책장을 넘기는 나를 발견했
다. 유럽건축에 대한 많은 내용을 상세히 담고 있는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 개인의 여행기록이며 ㅡ 물론 건축기행이긴 하다 ㅡ 자유롭게 가볍게 즐기라는 의도로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뒷장의 정보 1에는 여행 다녀온 곳의 정보와 사진이 간략하게, 정보 2에는 건축가 소개가 역시 간략하
게, 정보 3에는 조경, 정보 4에는 음식, 정보 5에는 이벤트(축제, 행사)가 적혀있다. 간단한 가이드북의
역할도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인상깊은 점은 역시 주제가 있는 여행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저자의 태도이다.
좋은 건축가로 계속 성장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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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죽음 알베르 카뮈 전집 5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5년 9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카뮈의 소설보다 산문, 철학/문학 에세이를 좋아한다. 이것은 산문 등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의 소설은 만날 때마다 그 무게가 내 삶의 버거움으로 변해 나를 짓누르곤 한다.
그래서 무거움에 끌리어 천천히 질-질-질 끌려간다. <시지프 신화>처럼 까뮈와 만나는 시간은 오래도
록 밀착되어 결국 그 속에 잠겨 기쁘게 ㅡ 이 기쁨은 장 그르니에의 가슴 벅찬 기쁨과는 확실히 다르
다 ㅡ 미끄러져 잠기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알베르 카뮈식 의식이 아닐까! 결코 만만하거나 가볍지
않은 몽롱한 느낌 말이다. 아마도 그의 글을 접하면 자꾸만 반추해 보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적인 죽음(1부)과 의식적인 죽음(2부)으로 나뉜 이 책은 읽는 내내 작가의 다른 책이 끊임없이 떠
오른다. <안과 겉>, < 시지프 신화>, <이방인> 등이 그렇다.

1부에서 메르소는 자그리스를 살인한다. 그리고 2부에서 메르소는 자그리스를 떠올리며 죽음을 맞이
한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다소 지루한 전반부도 있지만 자르리스와 메르소의 말을
빌려 작가가 전하는 글이 흥미롭다.


알다시피 사람은 육체적 욕구와 정신적 욕구 사이의 균형에 의하여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오. 메르소,
당신은 자신을 판단하고 있는 중이오. 지독하게 밀이지요. 당신은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소. 야만인처
럼 살고 있소. (75쪽, 자그리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돈을 버느라고 삶을 허비해요. 돈으로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말예요.
(82쪽, 자그리스)


예술에 있어서는 적절한 지점에서 정지할 줄 알아야 하고, 조각작품을 창조할 때는 더 이상 손질을 해
서는 안 되는 순간이 늘 찾아오는 것이며, 또 이런 경우에 있어서는 통찰력이 주는 가장 섬세한 역량보
다는 무심(無心)의 의지가 항상 예술가에게는 더 많은 도움이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행복 속에서 삶을
완성하려면 최소한의 무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 무심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노력으로 획득
해야 한다. (170쪽)


...죽음을 겁낸다는 것은 바로 삶을 겁낸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죽는 것에 대한 공포는 인간 속에 살
아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정당화해주는 것이었다. (200쪽)



죽음을 의식적으로 맞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가. 죽음도 시간이 필요하다.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삶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 않고 싶다. 그러면 미소를 지으며 마감
할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핵심이다. 의식적인 죽음... 비루한 내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삶
의 신비. 그 신비가 한 꺼풀씩 풀릴 때마다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의식한다는 것은 하나
의 축복이며 저주이다. 그러나 모두 부르짖지 않는가. 아프고 깨지더라도 안 하는것보단 행복하다고.
그래서 나도 날마다 더디지만 한 발짝씩 걷고 있다.

* 아, 이 책은 작가의 미발표 작품을 펴낸것으로 상세한 설명이 지루할만큼이나 책에 자세하게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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