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겉 알베르 카뮈 전집 6
알베르 까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 카뮈가 20대 초반에 쓴 산문집이자 그의 모든 사상이 시작되는 <안과 겉>은 아주 예전에 표리
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었다. 카뮈하면 연상되는 것 중 나는 이 책의 제목을 접할 때마다 그가 말하던
 '부조리'가 자꾸만 떠오른다. 

 <반항적 인간>과 함께 스승 장 그르니에에게 헌정한 이 책은 짧다. 두껍지 않은 책의 절반인 뒷부분은
해설이 차지한다. 그러나 이 책은 카뮈의 책이 아니던가. 간식을 먹어가며 볼만한 성질의 책이 아닌 것
이다.


빛과 어둠, 프라하와 비첸체, 죽음과 태양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를 거듭하는 삶의 '안' 과 '겉'
ㅡ 이 두 가자의 뗄 수 없는 상관관계는 알베르 카뮈가 다루는 필생의 주제다. 그래서 작품 <안과 겉>
은 그의 모든 작품의 출발이요 원천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카뮈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
다. (옮긴이의 말)



 다시 만난 <안과 겉>으로까지 오게 된 경로는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장 그르니에의 책 가운데 한
권을 읽었고 그래서 이어지는 장 그르니에 탐독 그리고 카뮈까지 다시 읽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카
뮈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근원인 이 책으로 거슬러 오게 되었다. 그를 좋아한다면 이는 수고롭지 않은
자연스러운 선택일뿐이지만 말이다.

 책을 마주하며 간식이나 차를 마시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이 책을 꺼내 들고 ㅡ 아마도
다시 만나는 책이기에 부담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긴장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ㅡ 가벼운 보
드카 한 병(한 잔이 아니다)을 들었다. 이윽고 목에 감기는 알코올의 맛과 내 머리에 스며드는 카뮈의
글은 어느새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서문-27쪽, 삶에의 사랑-91쪽)

이따금, 인간이란 살아움직이는 불의라고 여겨지는 때가 있다. (서문 28쪽)


 고독한 노인의 모습 그리고 카뮈의 괴팍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등에서 그가 생각하는 세계의 충돌을
보며 죽음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모습은 더는 이상한 것이 아님을 돌이켜본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그러나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죽음. 하여간, 그렇기는 해도 역시 태양은 우
리의 뼈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아이러니 48쪽)



 <시지프 신화>가 카뮈를 거쳐 세상에 토해졌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느껴
지는 일관된 그의 생각은 어김없이 내가 활자를 쫓고 있는 건지 작가의 의식에 세뇌되고 있는 건지 종
종 불분명해진다. 모든 것은 단순하며 사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들(63쪽)이라는 말처럼 쓸데없
는 이야기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가련한 어머니와 아버지 ㅡ 6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조차 없는 ㅡ 이야기에서도 그가 말하는 것은 슬픔
과 절망이 아니라 그저 그때를 회상할 뿐이다. 가끔 회상과 지금을 살고 있음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무심은 어린 시절부터 의식에 고여든 자기보호는 아니었을까. 삶의 애착을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도 카뮈가 이 말을 듣더라도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겠지만.
(긍정과 부정의 사이)

 <이방인>, <행복한 죽음> 등도 역시 카뮈의 모태를 이루는 것임을 여지없이 느낀다. 카뮈는 이 작품을
서툴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가장 순수한 책일지도 모른다. 치밀한 짜임새를 갖추지 않았더라도 또 그의
생각을 꼼꼼히 드러내지 못했다 쳐도 여기에는 카뮈의 색이 섞여있음을 쉬이 감지할 수 있다. 어떠한
색을 덧입혀도 드러나는 고유의 색처럼. <안과 겉>이 카뮈의 첫작이나 마지막에 읽어도 참 흥미롭겠다
는 생각이 든다. 아직 읽지 않은 그의 독자라면 한 번쯤 고려해 보기 바란다. 영혼 속의 죽음을 지나 삶
에의 사랑으로 들어서서 그의 솔직담백한 말을 들어본다.


사랑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를 다 포용할 수만 있다면 껴안는 방법이 서투른들 어떠랴. (삶에의 사랑 92~93쪽)



 마지막은 제목과 같은 <안과 겉>이다. 이로써 이 짧은 책은 막을 내리고 해설이 이어진다. 조금 지루한
해설이지만 그래도 카뮈와 빛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는다. 사실 논문도 아니고 해설이 길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은 나도 이런 식으로 작가를 이해해보고 싶을 때가 있지만 경계하는
편이다. 어느 순간 이해하는 나를 발견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머리에 집어넣기
란 하나의 고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니까.

 아, 그렇더라도 내가 카뮈의 책들을 피상적으로 읽지만은 않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나는 나의 모든 몸짓을 통해서 세계에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모든 연민과 감사를 통해서 인간들에게 연
결되어 있다. 세계의 이 안과 저 겉 중에서 나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싶지도 않고 또 남이 선택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안과 겉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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