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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프랑스 작가의 책은 나와 코드가 잘 맞았기에 스스럼없이 대하게 되었다. 그들을
오롯하게 이해했던 지와는 별개로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에 자석처럼 이끌리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아 자꾸
만 떠오르는 이들의 이야기는 내가 풀어가기 쉽지 않은 퍼즐과도 닮아있다. 싱겁지 않은 그래서 이들의 존
재가치가 나를 자극한다.
로맹가리도 내가 좋아하는 몇 몇 프랑스 작가처럼 마음 밑바닥을 공명한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불친절함이 아닐까 싶다. 구태여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들려만 주는 제삼자의 관점은 때로 무심하면
서도 솔깃하게 한다. 마치 다큐멘터리는 문제를 들려주지 그것의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마음의 짐으로
우리에게 던져주듯 말이다.
술술 넘어가는 맛있는 죽(단편)은 아니지만 아주 따끈해서 친천히 씹어 넘겨야 하는 죽이 로맹가리 표
죽이다. 그래야만 맛있고 소화될 거 같은... 삼키고 나서야 '아'라고 만족할만한 맛을 제공한다.
책에 실린 그 단편의 시작은 제목과 동명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이다. 제목부터 끌렸다.
그의 글은 건조하고 냉소적이다. 글의 시작에서 TV 문학관의 첫 느낌 그리고 아픔이 느껴진다.
치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작가도 아프고 글의 등장인물도 아프고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또한 아프다. 나(저자)도, 그들도(등장인물) 이렇게 아픈데 당신(독자)도 아프지
않느냐고 묻는 거 같다. 시작부터 정신을 곤두서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루트>도 좋았고 <지중해에 대한 열정>은 주인공과 아내의 거리. 또 아내가 끝까지
지켜내려 몸부림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로맹가리는 어디까지 독자의 마음에 무거운 추를 더하고 있는
것일까. 왜 다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자꾸만 묻는 거 같다. 아주 조용히도 말이
다. 작가의 역량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면 별수 없다. 헤어나오기 어렵지만 끝까지 가봐야 한다.
<어떤 휴머니스트>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데 이 역설적인 아니 아이러니한 휴머니스트의 이야기를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어허, 이 작가 갈수록 태산이군... 이어지는 <몰락>과 <가짜>는 현실에
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찝찝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실컷 양치질을 해놓고 물로
행구지 않는 것과 똑같은 당혹감이다.
<본능의 기쁨>도 좋은 단편이었다. 난쟁이 이그나츠 말러의 말을 옮겨본다.
내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면, 인간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중략)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기형적인 존재들일 뿐이에요. (중략)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기형적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적당한 말이 없네요. (124쪽)
우리가 기형이라고 말하는 난쟁이 이그나츠의 눈에 보인 인간의 모습이다. 도덕적으로 지적으로 기형
적이라는 말에 강하게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상함과 위대함>의 생선꼬리처럼 죽어간 모습 하며 <비둘기 시민>의 이 우의적 표현도 감탄했다.
이 미묘함! 집중하지 않으면 로맹가리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그런 점에서 끝까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기에 무엇보다 다행이라 생각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나 <벽 -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반전과 오해도 빼놓을 수 없는 단편이
다. 벽을 사이에 두고 죽은 여자와 남자 이야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킬리만자로에서는 모든
게 순조롭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웅적 행위에 대해 말하자면>에서는 살다 보면 자신의 밥줄을 지켜
야 할 때가 있는 법(196쪽)이란 말이 기억에 남았다. 흔히 말하지 않던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
고... 우스갯소리로 하지만 참 씁쓸한 말이 아니던가 말이다.
<지상의 주민들>을 읽으며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 <안개 속의 풍경>이 자꾸만 겹쳤다. 트럭
그리고 소녀. 영화를 보고 나서의 쓴 커피맛이 이 단편에서도 났다. 같은 맛을 지닌 커피를 만난 것이
다. 지상의 주민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딘가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여기에 있다.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도 괜찮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인간 내면 파헤치기도 로맹가리
의 특징 중 하나이다. 어디까지 파헤쳐 보여줄 것인가요, 로맹가리씨!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발 디디고
있는 땅 아래를 자꾸 파버리면 지구의 반쪽은 날아가 버릴 텐데요. 그 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죠?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돌연변이가 된 인간의 모습에 간호사
는 이렇게 외친다. "무슨 이런 세상이 다 있담!"(268쪽) 외형적으로는 미래에 이런 시대가 올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지금 인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마음의 돌연변이는 도대체 어
디서 치유할 수 있을까.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육체를 갖는다고 인간 본연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
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인간 본연의 상태도 불순했던 것일까.
저자는 생각보다 여러 장르의 단편으로 다양함을 보인다. 다채로운 색을 가졌으나 역시 인간의 상처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늘 하나의 줄기를 이룬다. 절대 독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이 파수꾼은 분명히 우
리에게 소리없는 경계를 일깨우고 있다. 당신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당신의 마음은 지금도 돌연변이를
계속 하고 있으며 그대로 둔다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이다.
유태계 프랑스인 로맹가리는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책으로 독자의 마음에서 권총을
겨누고 있다. 아찔하지 않은가! 누가 그의 총구를 피해갈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인간이지 않은가. 지
독히도 현실적인 인간 말이다. 나는 이 책에서 냉소적인 그의 일침을 기억하고자 한다. 정답을 손에 쥐
어주지 않은 채 독자의 몫으로 남긴 것은 그도 인간이었기 때문이리라.
아~ 역시 프랑스 작가들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건 운명인가? 운명론자가 되기는 싫지만
이들과 연결된 끈은 이다지도 끈끈하여 떼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즐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