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사랑한다 - 최병성의 생명 편지
최병성 지음 / 좋은생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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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연에서 위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마의 품이나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만 있어도 느껴지는 안도감과 포근함처럼 자연은 언제나 조건 없이 인간을 안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의 우리는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숲으로 들어가야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은 자연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스팔트 위로 빠끔히 나온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에서부터 출근하는 길에 만나는 가로수의 잎사귀에서 또 친구와 만나는 커피숍의 작은 화분에도 말이다.  

 저자 최병성은 환경운동가 겸 생태교육가이다. 책에는 연고 없는 강원도 영월의 숲에 사는 그의 일상이 계절별로 나뉘어있다. 직접 찍은 사진은 애정을 담아 보낸 눈길까지 들어 있어서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신기하다. 저자의 말처럼 그들과 눈높이를 맞춰 낮은 바닥으로 시선을 돌려야만 만날 수 있는 그들의 세계를 느끼며 생명의 소중함을 돌아본다. 사진과 글의 조합이 지니는 편안함과 가벼움을 좋아하지만 더러는 그렇게만 끝나는 경우가 있어서 아쉽다. 그러나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꾸밈없다. 진지하면서도 소박하고, 가벼우면서도 제법 무게감이 있어서 손에 닿는 곳에 놓아두고 싶다. 책띠지에 나온 어여쁜 새의 이름은 흰눈썹황금새로 정말이지 근사하다.
 

 책이 예쁘다는 사실만으로 <알면 사랑한다>를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저자의 글이다. 아기자기한 사진도 훌륭하지만, 그의 솔직하고 성찰 있는 글을 통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통해 배울 게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정하게 된다. 여치를 제대로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 여치나 사마귀 등을 가깝게 느낀 적조차 없다. 여치의 얼굴이 이렇게나 귀여운 줄 몰랐다. '거봐요. 이렇게 들여다보니 정감 가지 않는 생명은 없죠?.' 이렇게 저자가 내게 속삭이는 듯하다.  


식물의 씨앗은 뿌리는 시기가 따로 있지만,  

생각의 씨앗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너무 빠른 때도 없고, 이미 늦은 법도 없습니다.

씨앗을 심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34쪽. 봄.)
 

 자연에서 벌어지는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안다면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일일이 경험하지 않아도 저자를 통해 얻을 수 있으니 마음마저 평온해진다. 깨달음의 글에 이십여 년간 꽃 사진을 찍은 저자의 사진까지 덧붙여 독자의 눈과 마음을 풍요롭게 한 책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덕만 보고 이용하며 결국 파괴하는 탐욕의 습성이 문제다. 다람쥐가 의도하지 않게 도토리를 땅에 묻어 수많은 나무가 숲을 덮듯 우리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모이면 이와 같은 푸르름이 커지고 지켜질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엿본 거 같아 읽는 동안 행복했다. 

 


* 사진 옆에 글자가 지나치게 작아서 개정판 때는 커졌으면 좋겠다. 
 나이 든 분께는 선물하기 미안할 정도로 글자가 작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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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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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글을 읽을 때는 주로 눈으로 페이지를 쫓지만 가끔은 소리 내 읽어보게 된다. 리듬감 있는 시를 만날 때 혹은 기억하고 싶은 말을 발견할 때 그리고 말 자체만으로도 예뻐서 반드시 소리 내 보고 싶게 하는 단어를 만날 때가 그렇다.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은 읽기 전부터 익히 들었던 제목임에도 책을 마주하니 자꾸만 사박사박이라는 단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읽어본 이 책의 느낌은 제목처럼 정말이지 예쁜 책이어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사박사박이라는 단어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온갖 말들이 머리에서 떠다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린 날의 순수했던 행복의 시간을 기억하게 해준 것이었다. 사박사박- 기억하기로 하자. 사박사박- 이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엄마와 둘이 사는 열 살의 사키. 모녀가 나누는 이야기가 정겹다. 작가인 엄마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방식을 보며 이건 작가라서가 아니라 세상 모든 엄마가 아이에게 설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 면에서 엄마들은 다 동화작가이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여 흡수하는 아이들 또한 사랑스럽다. 순수하다는 건 재지 않다는 의미와 통한다. 아이의 세계에서는 틀에 맞춰진 방식으로 재단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우물에 빠진 전갈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엄마의 질문에 사키는 이렇게 말한다. "아뿔싸." (63쪽.) 살포시 웃게 되는 아이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그리고 책의 제목은 외할아버지가 부른 곡을 엄마가 가사를 바꿔 부른 것이다.  


달의ㅡ사막을

사박ㅡ사박ㅡ

고등어ㅡ조림이

지나ㅡ가네요ㅡ 

(82쪽.)

 원래의 가사는 '멀리멀리 낙타를 탄 나그네들이 지나갑니다.'로 아래 두 줄이 다르다. 이 곡을 듣고 사키가 엄마에게 고등어가 종종거리며 가는 모습이 귀엽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엄마와 사키 둘 다 귀엽기 그지없다. 책에는 수없이 많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로 깨우치게 된다. 어린 시절의 해맑던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는가 하면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나도 아이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즐거움까지 생각나 행복해졌다. 분명히 이들도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만 사는 사키는 언제나 씩씩하다. 오나리 유코의 삽화가 독자의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점으로만 찍힌 눈,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가볍지만 경쾌한 그림이 글과 잘 어울렸다. 글과 그림이 모두 담백해서 실로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연방 떠나지 않았다. 오래전 <창가의 토토>를 만났을 때처럼.  

 그러나 뜻밖에도 작가가 여자일 거라 생각했는데(ㅡ거의 확신에 가까운!) 남자였다. 그것도 미스터리 소설가로 유명한 사람이라니 놀라웠다. 그만큼 감정이입이 될 만큼 글을 잘 썼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능력을 지닌 작가임이 틀림없다. 그렇지않고서야 어찌 이리도 아기자기하게 어여쁜 수를 놓겠는가. 그만큼 관찰을 했을 거 같다. 사실 어른과 아이가 마음으로 주고받는 말이라면 엄마건 아빠건 상관없이 이런 책이 탄생할 것이다.  

 6월이니 여름이다. 이제 무더위가 몰려올 테고 그런 날 한들한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읽기에도 좋을 거 같고, 비가 오는 날이면 뽀송뽀송한 이불 위에 엎드려 빗소리를 들으며 읽어도 즐거울 책이다. 연필을 들고 공책에 사박사박 소리를 내며 글을 끼적여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준다는데 한 표 던진다. 온종일 웃지 않았다면 사키를 떠올리며 한 번쯤 살포시 웃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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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이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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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작가 안드레아 데 카를로가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와 함께 영화작업도 했다는 이야기에 다소 호기심이 일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주옥같은 영화들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이 책도 그런 느낌을 줄 거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길>, <유로파> 등 몇 개의 영화만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여서 그런지도 몰랐다. 그러나 작가와 감독은 역시 각자의 스타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동안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  

  밀라노의 제법 성공한 네 명의 친구들은 십여 년 전에 이야기했던 것을 실현하기 위해 또는 쉴 공간을 얻고자 의기투합한다. 도시의 네 남녀는 언제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의 안내를 받아 다섯 명은 밀라노에서 세 시간여의 거리인 윈드 시프트로 떠난다. 그러나 예기치않은 상황이 발생한다. 윈드 시프트는 이들이 꿈꾸던 우아한 전원주택 대신 원시적인 집과 사람만이 존재했다. 이들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윈드 시프트 부족 간의 갈등까지 더해져 불안함까지 겪어야했다. 이제 이들은 이곳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만을 고대하게 된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 자체도 그렇지만 네 명의 친구들뿐 아니라 윈드 시프트에 사는 여러 명까지 더해진 그들의 행동방식이었다. 각기 다른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다가섰지만 다른 이는 또 불쾌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도시생활에 익숙한 네 명과 원시생활로 돌아간 듯한 이들의 충돌과 차이가 눈에 들어왔지만 결국은 도시인 네 명 친구들 간에도 균열은 극대화된다. 어쩌면 이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서로에게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자 서로 폭로하고 비난하며 신뢰가 깨지기도 한다. 과연 이들이 도시에만 있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관계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에는 아니다.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만, 이곳 윈드 시프트에서 더 극명해졌을 뿐이었다. 어디서나 상황이 뒤바뀌면 평정심을 잃게 된다. 그것이 나쁜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되돌아 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작가는 이들의 이후 행로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대신 독자에게 생각해보도록 했다. 루이자와 라우로가 나누던 대화나 아르투로와 미치로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제법 진지하게 묻는 사람을 마주하면 확신에 찬 대답을 들려줄 이가 몇 명이나 될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거 같고 남에게 단점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고고하게 살아왔지만, 그것이 행복했었는지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처음에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선 곳이 결국은 찾고 있던 곳이었지만 그들 각자의 파라다이스는 다르다는 기준 때문에 누구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지만 반대로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기도 했다. 물론 다시 현실의 삶으로 돌아가서도 그들은 가끔 윈드 시프트를 떠올리며 살 것이다. 그리하여 변화된 삶을 사는 이도 생길 것이다.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게 있는가 하면 잔잔한 호수처럼 이어지는 영화도 있다. 그리고 따분한 거 같지만 그 속에 메시지를 넣어두고 보고 나서 여운이 남게 하는 영화도 있다.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은 아마도 마지막에 속할 거 같다. 자신이 만든 삶에 만족한다고 생각하지만 뒤집어 보면 자신이 만든 삶이라는 시나리오 속에서 그 역할을 지켜내고자 고군분투하는 경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들춰내는 일은 혼란을 수반하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아니라면 그만둬야 하니까. 인생의 흐름이 있다면 그 흐름을 바꿀 바람도 있는 게 분명하다. 윈드 시프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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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1 - 사랑과 권력을 가슴에 품은 최초의 여왕
한소진 지음 / 해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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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부터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소설인 팩션이 인기다. 그동안 수면 아래서 잠자고 있던 내용을 끌어내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는데 선덕여왕도 그렇다. 내일부터 한 방송에서는 동명의 제목으로 드라마가 시작된다고 요즘 예고편이 간간이 보인다. 물론 관심이 있어서 대략의 내용을 찾아보았는데 책과 드라마는 조금 다르다. 곧 드라마로도 만나게 되면 한소진 작가의 이 책과 비교해봐도 재미있을 거 같다.  

 선덕여왕 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라는 사실만 알지 여왕의 사생활이나 업적은 사실 잘 몰랐다. 첨성대를 만든 선덕여왕의 동기나 성품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첫째가 아닌 둘째에 여자이기까지 한 덕만공주가 왕이 때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는 과정은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금세 읽은 책이다. 그러나 굳이 두 권으로 나누지 않아도 되었을 거 같다. 

 신라시대도 역시 계급의 시대였다. 골품제도로 성골만이 왕위를 이어가는데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천명공주와 덕만공주뿐이었다. 성골은 양쪽 부모가 전부 성골이어야만 하는 순수세력으로 이를 유지하려는 방편으로 근친혼은 흔한 일이었다. 선덕여왕 역시도 후사가 없어 첫 번째로 얻은 성골 용춘공 이외에 다른 성골 남편을 들이나 결국 아이는 없었다. 대외적으로 진골 세력의 위협, 당나라의 업신여김을 비롯하여 사적으로는 남편과의 사랑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었던 고단한 삶이었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깊은 왕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는 미실을 들 수 있다. 이미 미실에 관련된 책도 출판되었을 만큼 그녀는 특징 있는 인물이었다. 팜므파탈적인 미실은 총명했으나 권력에 사로잡혀 있었다. 3대 왕을 거친 만큼이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여인이며 자신을 거부한 진지왕은 4년 만에 폐위시키기도 했다. 그럴 수도 밖에 없었던 것이 미실은 아이를 많이 낳았으나 후궁의 몸이었기에 왕위계승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홀로 강인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권력에 눈뜬 미실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개의치 않았지만, 과연 그녀는 행복했을까. 미실때문에 힘든 궁중의 여인이 많았으니 그중 한 명이 선덕여왕의 어머니인 마야였다. 그녀도 수많은 날을 자신을 보지 않고 미실 만을 보는 왕 때문에 힘겨워했었다. 이런 어머니의 사정을 알게 된 선덕여왕(공주일 때의 이름은 덕만이었다.)과 미실의 사이가 좋을 리는 없었으나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대결구도는 크게 형성되지 않았지만 미실과 선덕여왕이 추구하는 목적이 달랐기에 동시대를 산 그들 각자의 삶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결코, 권위적이지 않았으며 현명했던 덕만공주는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며 지적 호기심도 많았다. 그런 그녀가 여왕이 되어 동양 최초로 천문대를 만들기까지, 또한 계급에 상관없이 인재를 등용하며, 기후관측 등을 예측하여 백성의 피해를 줄이는 모습 등은 세심하면서도 상대뿐 아니라 백성을 배려하는 마음이 컸기에 가능했다. 전쟁에서 이겨 영토를 넓히거나 하는 등의 모습은 없지만, 선덕여왕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역사인물에 대해 찾아 읽어야겠다. 물론 소설이라는 사실은 기억해야겠지만 일반 역사서와 함께 펼쳐보며 새로운 가능성이나 느낌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책읽기가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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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
잭 린치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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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게 유명하다 보면 유명도 때문에 친근하게 느껴져 막상 접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과 그의 작품도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영국을 뛰어넘어 이미 세계 곳곳에서 찬사를 받는 그의 이름 뒤에는 풀리지 않은 의문 또한 넘쳐난다.  

 작가 셰익스피어의 개인적인 사생활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에 대한 해석과 관계는 아직도 연구 중이며 해마다 관련 책들이 꾸준히 나올 정도이다. 예전에 <셰익스피어는 없다>라는 책을 읽으며 셰익스피어가 베이컨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접했으며 항간의 떠도는 다른 의견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말, 또 에드워드 드 비어 백작이라는 말까지 다양한 견해도 접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아직도 가려지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는 셰익스피어가 셰익스피어가 아니라는 제목부터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책에서 말하는 것은 셰익스피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역설적인 의미로 작가 셰익스피어와 시대가 만들어 지금까지 추앙받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부제가 문화영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베일에 가린 인물이기에 수많은 소문과 추측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셰익스피어. 책의 시작은 유명도와 비교하면 지극히 조촐한 작가의 장례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살아생전의 그를 알 수 없기에 죽은 후 만들어진 그에 대한 과정을 조목조목 들려준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화 되었는지 역사적 시공간을 따라가 보자. 

 우선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극작가들의 공동집필이 흔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지금까지도 누가 집필에 참여했는지 밝히려 애쓴다. 즉, 지금 우리가 읽는 작품은 순수하게 셰익스피어 혼자만이 쓴 것이 아님을 제시한다. 다음으로, 셰익스피어가 혼자 썼건 아니건 간에 이후 그의 작품은 작가(ㅡ혹은 집필가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변화되고 각색되며 이용된다.  

  유명하지 않았던 셰익스피어의 화려한 부활을 1장과 2장에서 다루는 방식은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이다. 어떤 의견을 두서없이 내거나 주장하는 게 아니라 독자들에게 사전지식을 챙겨서 알려준다. 영국과 연극이란 조합이 서로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셰익스피어 시대의 서막을 듣게 된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영국 문학사에서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을 짧게나마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들 수 있다. 수필가 찰스 램부터 그의 누이 메리 램, 제인 오스틴이 좋아한 <베네치아의 상인>의 샤일록을 연기한 배우, 시인 바이런이 <리처드 3세>를 연기한 배우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는 사실. 이뿐 아니라 독일 괴테의 열광, 프랑스 빅토르 위고는 "셰익스피어가 곧 연극이다."(152쪽.)라는 말로 찬사를 할 정도였다. 이렇듯 순식간에 책의 처음 부분이 지나갔다. 

 본격적으로 3장부터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돕는다. 영문학을 공부하거나 셰익스피어의 마니아라면 점점 흥미로워진다. 자세한 내용은 넘어가지만(ㅡ직접 읽어보는 게 훨씬 유익하므로.) 하나 확실하게 부러웠던 사실이 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국인의 진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비평가뿐 아니라 남녀를 막론하고 셰익스피어를 연구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이러니 실로 완벽한 위대한 작가로 지금까지 사랑받을만하다.  

 우리 작가들 중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작가는 몇 명이나 될 것이며 지속적인 관심으로 한국의 대표작가를 말하라면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이름은 누구일까. 어쩌면 중구난방으로 이름이 거론될지도 모른다. 너무도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만한 문학의 대가를 우리가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번역의 어려움이나 기타 여건도 따라갈 수 없는 이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국민을 보면서 다시 느꼈지만 역시나 관심과 사랑이었다. 끊임없이 회자되며 거론된다는 것은 수많은 의심과 비판도 동반하지만 이 역시 관심 밖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만을 이야기하는가. 그렇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단점인 희극과 비극을 섞어 쓰는 방식이나 제대로 배워서 알고 쓰지 않았다는 것, 욕설과 외설 등 다양한 단점도 말한다. 그래서 작품을 다듬고자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갔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게나 손이 많이 가는 작가임에도 분명히 빈 수레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의 특징으로 간주하는 것 중 언어유희를 들 수 있다. 나 또한 그의 언어적 감각과 광대놀음 등에 사로잡혔다.  

 <리어왕>이 많은 작가에 의해 광범위하게 개정된 작품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모르고 읽었을 때와 비교해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직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읽어볼 작품이 많은데 읽었던 작품을 다시 찾아 읽으며 느끼는 감동이 질리지 않게 좋다. 그리고 글을 읽다 가끔은 문맥과 맞지 않다거나 어색한 곳을 만났던 경험이 기억나는데 이유를 다시금 확실하게 알았다. 뜬금없다고 생각한 장면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건 이유가 있단다, 이유가 있단다 내 영혼아."라고 오셀로에서 말했듯이!  

 셰익스피어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시대적 배경과 상황이 그를 변화시켰다.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어서 영국을 넘어 전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가가 되었으며 그를 만든 수많은 사람이 함께 있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순수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을 텐가. 아마도 그럴 수는 없을 것이로 판단된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한 연구결과와 또한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의 유혹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말로 쉽게 쓴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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