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이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탈리아 작가 안드레아 데 카를로가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와 함께 영화작업도 했다는 이야기에 다소 호기심이 일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주옥같은 영화들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이 책도 그런 느낌을 줄 거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길>, <유로파> 등 몇 개의 영화만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여서 그런지도 몰랐다. 그러나 작가와 감독은 역시 각자의 스타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동안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  

  밀라노의 제법 성공한 네 명의 친구들은 십여 년 전에 이야기했던 것을 실현하기 위해 또는 쉴 공간을 얻고자 의기투합한다. 도시의 네 남녀는 언제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부동산 중개인의 안내를 받아 다섯 명은 밀라노에서 세 시간여의 거리인 윈드 시프트로 떠난다. 그러나 예기치않은 상황이 발생한다. 윈드 시프트는 이들이 꿈꾸던 우아한 전원주택 대신 원시적인 집과 사람만이 존재했다. 이들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윈드 시프트 부족 간의 갈등까지 더해져 불안함까지 겪어야했다. 이제 이들은 이곳에서 하루속히 벗어나기만을 고대하게 된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 자체도 그렇지만 네 명의 친구들뿐 아니라 윈드 시프트에 사는 여러 명까지 더해진 그들의 행동방식이었다. 각기 다른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다가섰지만 다른 이는 또 불쾌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도시생활에 익숙한 네 명과 원시생활로 돌아간 듯한 이들의 충돌과 차이가 눈에 들어왔지만 결국은 도시인 네 명 친구들 간에도 균열은 극대화된다. 어쩌면 이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서로에게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자 서로 폭로하고 비난하며 신뢰가 깨지기도 한다. 과연 이들이 도시에만 있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관계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에는 아니다.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만, 이곳 윈드 시프트에서 더 극명해졌을 뿐이었다. 어디서나 상황이 뒤바뀌면 평정심을 잃게 된다. 그것이 나쁜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되돌아 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작가는 이들의 이후 행로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대신 독자에게 생각해보도록 했다. 루이자와 라우로가 나누던 대화나 아르투로와 미치로가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제법 진지하게 묻는 사람을 마주하면 확신에 찬 대답을 들려줄 이가 몇 명이나 될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는 거 같고 남에게 단점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고고하게 살아왔지만, 그것이 행복했었는지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나.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처음에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선 곳이 결국은 찾고 있던 곳이었지만 그들 각자의 파라다이스는 다르다는 기준 때문에 누구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지만 반대로 벗어나고 싶은 곳이 되기도 했다. 물론 다시 현실의 삶으로 돌아가서도 그들은 가끔 윈드 시프트를 떠올리며 살 것이다. 그리하여 변화된 삶을 사는 이도 생길 것이다.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게 있는가 하면 잔잔한 호수처럼 이어지는 영화도 있다. 그리고 따분한 거 같지만 그 속에 메시지를 넣어두고 보고 나서 여운이 남게 하는 영화도 있다.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은 아마도 마지막에 속할 거 같다. 자신이 만든 삶에 만족한다고 생각하지만 뒤집어 보면 자신이 만든 삶이라는 시나리오 속에서 그 역할을 지켜내고자 고군분투하는 경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들춰내는 일은 혼란을 수반하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아니라면 그만둬야 하니까. 인생의 흐름이 있다면 그 흐름을 바꿀 바람도 있는 게 분명하다. 윈드 시프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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