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에 아픈 사람 민음의 시 120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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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순식간에 불타는 장작이 되고
네 몸은 흰 연기로 흩어지리라

나도 아무것도 아니었지
일회용 건전지 버려지듯 쉽게 버려지고
마음만 지상에 남아 돌멩이로 구르리라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도 괜찮아
옷에서 떨어지는 단추라도 괜찮고
아파트 풀밭에 피어난 도라지라도 괜찮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의 힘을 알아
그 얇은 한지의 아름다움을
그 가는 거미줄의 힘을
그 가벼운 눈물의 무거움을

아무것도 아닌 것의 의미를 찾아가면
아무것도 아닌 슬픔이 더 깊은 의미를 만들고
더 깊게 지상에 뿌리를 박으리라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낄 때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리라


「아무것도 아니었지」전문, 본시집 34쪽.





 개구쟁이 소년 같은 표정의 당신이 표지 안쪽에서 나를 쳐다본다. 시인은 어떤 시를 들려줄 건가요?
당신의 시는 요 몇 년 새 현실에서 보낸 삶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문학이나 시적이라고 불리기 보다
자연스레 삶의 일부로 녹아든 모습이었다. 그래서 편안하나 또한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느낌.

 툭 하고 터놓는 듯하더니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는 것. 그러나 그 점이 당신의 매력이 될 수 있을 거라
고 강하게 확신한 나는 당신에게 툴툴거렸지요.
분명히 그러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원했기에 약간 목이 말랐답니다. 그래서 물을 벌컥거렸죠. 당신의 다른 시집을 읽으면 상
황은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을 쉬이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한 당신답게 시집에는 흑백의 사진들도 실려있더군요. 간간이 보이는 사진
들 또한 특별함보다 평범하여 돌출되지 않았죠. 좋아요. 시보다 사진이 튀면 그건 아니잖아요.
이 시집
에서 내 마음을 끈 것이 무언지 아세요? 싱글 맘 부분에 속한 시들…. 내가 아는 그 누군가가 자꾸만 겹
쳐서 그녀에게 시 한 편을 메일로 들려주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답니다.
임신한 축복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 싱글 맘으로의 삶을 토로할 때 이 시는 내가 읽는 시가 아니라 당신과 그녀만의 시가 되었
거든요.

 '너로 인해 나이 먹는 게 두렵지 않아… 몸 가득 충전된 에너지를 느껴… 믿을 수 없는 내일을 믿으
며.'
(달콤한 육체 中, 46쪽), '너를 보면 섬이 된단다/너라는 근사한 바다를 헤엄치는 섬.'
(싱글 맘-
엄마는 너를 업고 자전거 탄단다 中, 52쪽)
등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은 싱글 맘이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는 행복이죠. 그러나 '어미 품속에서 너는 웃지만/까만 네 눈 속에서 나는 울고….'
(싱글 맘-
술 마시고 간다 中, 49쪽)
, '아가야, 엄마는 술이 필요하구나 생존의 회전목마를 돌리느라… 아름다운
밤거리에 몸을 맡기니/사방 천지 술이 내게로 흘러온다.'
(싱글 맘-술이 쏟아지는 샤워기처럼 中,
50~51쪽)
등을 통해 싱글 맘인 당신의 고단한 삶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새아빠 만들
어줄게.'
(싱글 맘-스텝 패밀리를 생각한 아침 中, 56쪽)에서는 현실을 직시하는 담담한 모습도 보여
지더군요. 제가 아는 그녀도 그렇답니다. 시인과 그녀를 교차편집하는 제 머리와 가슴은 왠지 모를 뜨
거움이 북받쳤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당신은 고단해 보이네요.
시는 시인의 마음을 투영하는 창인데 내게 비치는 당신의 모습
에는 왜 치열한 삶의 흔적이 강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텍스트의 더딘 조합인지 아니면 무딘 내 마음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고뇌의 흔적을 애써 찾고 있었나 싶습니다. 그래야 한다
고 그것이 마음을 공명하는 시가 아니겠느냐는 제 머리에서 나온 생각 때문이죠.


 전문을 옮겨적은 시에서 단추라는 단어가 보였을 때 천양희 시인의 시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시집을 덮
으며 보니 마침 천양희 시인의 추천글이 보이더군요. 무언의 진동이 미세하게 느껴졌죠. 그녀의 말처럼
당신의 시에
'여성의 슬픈 등에 꽃을 피운 이 시집.'이란 말에 조금은 공감합니다.「부엌」이란 시
가 떠오르더군요. 그러나 '희망의 폭동.'이라는 말은 인정할 수 없더군요.
그래서 거듭 말하지만 조
금 더 세게 나가시지 그러셨어요. 더 세게- 더 치열하게-

 그렇지만, 이 시집 나쁘진 않았어요. 조금 더 고뇌하신걸 글로 토하시길 빌어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
하니까요. 멋도 모르고 속도 모르는 충고 아닌 충고는 다만 아쉬움에서 하는 말이었으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걸 아셨으면 합니다.
시인과 내게 소중한 그녀의 삶이 더 풍요롭고 밝아지길 기원하면서
이제 그만 끼적임을 멈출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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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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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그림이 스산하다 했더니「네 그루의 나무」라는 에곤 실레의 작품이었다. 풍요롭기보다 헐벗은 가
을을 닮은 실레를 떠올리며 처음 만나는 작가 한강의 분위기를 괜스레 넘겨짚어 본다. 조금 우울할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금욕적이려나라는 생각. 그러나 일부는 맞았고 또한 일부는 틀렸다는 사실을 책장
을 덮기도 전에 알게 되었다.


세 개의 작품이 연결된 연작소설의 시작은 <채식주의자>.
영혜는 꿈 때문에 육식을 끊고 채식을 시작한다. 그 꿈이란 육식, 피로 범벅된 섬뜩하면서도 다소 그로
테스크한 느낌마저 준다. 남편은 그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단지 그녀가 평범해서 선택한 남
자였으며 튀지 않고 조용히 잘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자신이 고기를
못먹는 사소한 문제부터 부부생활을 할 수 없는 문제까지 식욕과 성욕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그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아마도, 그녀의 변화였으리라. 평범했던 그녀가 먼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그를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이들의 외적인 부부라는 관계는 채식주의자로 불리게 된 아
내의 변화만으로 단절된다. 어쩌면 이들은 소통을 멈추고 함께 살아만 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내
영혜의 꿈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상처가 덧나며 곪아 터져버린 것이다. 육식을 거부하는
방식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가족까지도 억지로 입에 고기를 구겨 넣으려 하자 그녀는 자해
한다.

<채식주의자>는 영혜를 부르는 사람들이 규정한 틀에 박힌 이름이며, 그녀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식물
화 되어가는 중일 뿐이다. 이 작품은 온통 영혜의 육식거부와 꿈을 기묘하게 보여준다. 다듬어지지 않
은 야수성이 드러나고 미완의 느낌인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잊고 있던 마음의 생채기를 건드리는데
성공한다. 흡입력 있는 작품이다.



이어지는 <몽고반점>은 2005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
영혜 언니의 남편인 형부를 조명한다. 그는 비디오아티스트로 일정한 수입도 없으며 뚜렷한 작업도 없
이 방황한다. 늘 소망해 온 작업을 이루고자 그에 맞다고 생각한 모델을 찾았지만 필연인지 바로 영혜
였다. 영혜가 동물성향을 버리고 식물성향을 지니게 되면서 그가 생각한 모델 일도 훌륭히 소화한다.
그러나 그는 예술적 욕망뿐 아니라 동물적 욕망까지 집착한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야수성이 드
러났다면 본작에서는 형부의 야수성까지 겹쳐진다. 즉, 마음의 꾳인 욕망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녀가
식물로써의 꽃을 품을 때 그는 욕망의 꽃을 피우고 꺾는다. 이들의 결말은 언니 인혜의 정신병원 연락
이라는 갇힌 공간으로의 이동을 예고하며 끝난다.

언제던가 아주 오래전 사람의 몸에서 피어나 번지는 무늬들의 향연을 이미지로 상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는 이 작품이 충격적이거나 놀랍지 않았다. 조금은 역겹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잠시
였을 뿐이다. 형부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그의 작
업은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야수성만이 제거되었더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붓으로 그린 꽃이
아니라 마음에서 피어난 꽃을 알아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야수성은
원초적인 동물성으로 표현되며, <몽고반점>에서 형부의 야수성은 그야말로 짐승적인 동물성으로 구분
된다. 그래서 영혜는 폭력적인 동물성을 버리고 식물이 되고 싶은걸까.



재미있게도 언니네 부부 역시도 영혜부부만큼이나 소통이 멈춘 사람들이라는 것. 특히 인내심의 한계
가 없을 것만 같은 언니 인혜의 모습이 서글프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인혜의 시선을 통해 본다.


이 연작소설의 끝인 <나무 불꽃>.
마음에 비밀스런 공간이 없는 이가 있을까. 언니 인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이 소설에서 가장 가련
했던 인물이 바로 인혜였음을 짐작하게 된다. 영혜는 식물화되고 싶어한다. 나무가 될 거라 믿는 것이
다. 그녀는 자신을 막는 것들과 충돌하고 밖으로 피를 토한다. 그러나 인혜는 다르다. 그녀는 안으로 피
를 토하고 있었다. 죽어가는 영혜와 그럼에도 살아가는 인혜의 대조 속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가족 중 유일하게나마 영혜를 이해한 인혜는 자신의 비겁함에 고개 숙였지만 글을 읽는 나는 내
비겁함을 애써 외면한다. 작가의 글과 연결된 내 의식이 자꾸만 따끔거렸다.


관계에 대해 돌아본다. 관계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책의 인물들을 보자면, 그들이 얼마나 불성실하게 관계를 맺는지 알 수 있다. 가족의 시작인
부부. 이들은 상대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나쁠 것 없다는 식의 이유(특히 남편들)로 부부가 되
었고 역시 그녀들도 차이는 없지만 다른 점은 가족에게 충실했다는 사실이다. 영혜는 남편의 요구에 부
응하여 평범하게 지냈으며, 인혜는 가사를 돌보며 남편 대신 사회생활을 하며 묵묵히 살아온 것이다.
딱히 소통조차 시도하지 않았던 이들은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틈새만으로도 파국을 맞는다. 또한, 이들
자매의 가정 역시도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말미암아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온전한 관계가 정립되지 않은 채 매일 부대낀다는 건 불평등하며 또한 심리적인 억압이 클 것이다.
그것이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정신적 교류가 없다는 것은 이렇게도 큰 문제
이다. 한 귀로 흘러 듣는 뉴스 한 토막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각각이 가진 내가 모르는 사연들도 자
꾸만 떠올라 결국에는 처제, 형부의 육체적 관계보다 놀라운 사실이란 바로 이런 것들임을 깨닫는다.
잡고 잡아먹히는 동물성이 아닌 흐름의 소통에 몸을 내맡기는 식물성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극단적
인 것일까…. 그래,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대략 보이는 이미지만으로 그렇다고 혼자 생각하기로 했다.



이들의 상처는 물론 자신이 낸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타인에 의한 상처가 시발점이
된다. 그러니 결국 그들과의 제대로 된 관계만이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한 번 어
긋나면 복구가 어렵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얼마만이라도 보듬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종종 잊는 것인
지. 이 책은 이런 이야기를 가슴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가끔 상황을 이어붙인 느낌이나 누군가의
관점을 묘사할 때 그다지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은 빈 곳이 되어 약간의 갈증으로 남는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
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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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5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비뫼 2008-02-15 23: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작은 기쁨 2008-02-23 16: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자라온 남편...
언제나 로봇처럼 움직여주는 사람....
심리적 억압으로 마음의 소통이 어릴적부터 부자간엔 멈춰버린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면서, 이 책을 읽으므로서 다시 한번 떠올려지네요
쓸쓸한 모습들...

2008-02-28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명랑'의 코드로 읽은 한국 사회 스케치
우석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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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쏙 들어오는 제목, 지인들의 글을 통해 명랑 좌파 우석훈의 글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읽어야지하
면서도 뒤로 밀리는 책이 한 두 권이 아니라 이 책 또한 순위가 밀렸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읽게 된 것
을 진심으로 감사했다. 본래 사회, 정치, 경제에 큰 관심을 쏟지 않는 터라 신문도 안 보고 산지가 몇 년
이다. 그러니 저자의 글을 만날 기회를 계속 빗겨간 것이다. 자칭 C급 경제학자라는 우석훈을 알게
된 것은 내게 큰 소득이었을 만큼 즐거운 발견이었다.


부끄러워 책 내기를 거절하던 그가 칼럼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묘하게도 노무현 시대와 맞물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제대로 포착했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바로 지금 읽어야 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
다.
아무리 정치 등에 관심 없고 재미없다고 느껴도 시대의 코드를 보는데 칼럼만한 글이 없기 때문이
다. 곧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테고 저자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그가 쏟아낼 무수한 글은 앞으로
책이 아니더라도 블로그(http://fryingpan.tistory.com/ 저자의 블로그) 등을 통해서도 마주할 수 있다.
게다가 그의 또 다른 이슈가 된 책 <88만원 세대>는 어떤가. 곧 만날 생각을 하니 신이 난다.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무관심했던 내가 사는 시대의 이야기를 잠시 경청해 볼까?

노무현 시대의 하늘을 날다로 시작하는 이야기에서 저자의 좌파에 대한 이야기부터 줄줄 나온다. 경제
학자로 전문용어도 가끔 나와 뜻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한 수준은 아니다.
특히나 그가 언급한 진정성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그에 대해 고려한 적이 있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더구나 한글사랑의 이오덕님의 이야기를 던지며 저자의 뜻을 감지하도록 한 것은 충분한 설명일만큼
자꾸만 시대에 무관심하던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더 많은 20대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내기를 바란다. 그건 좌파든 우파든 상관하지 않는다. 돈독에
찌든 일부를 제외한다면 언제나 다음 세대의 질문은 신선하고, 이런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게 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대와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런 게 '협력 진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62쪽, 2장.)


A4 한 장짜리 글을 쓰면서 '인터넷 논객'이라는 호칭을 반든 것이 행복하신가? A4 100장 이상의 글
을 쓰는 것을 우리는 책이라고 부른다. 치고 빠지는 단타 전문으로 20대를 활용하는 지금의 세태는
잘못되었다. 더 진지하고 더 길게 생각을 한 바퀴를 돌리는 훈련을 받고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도
록 30대와 40대가 도와야 한다. (164쪽, 2장.)


시대이야기는 따로 발췌하지 않았고 위의 글을 읽으며 단지, 글을 많이 쓰고 책을 내라는 격려로만 느
끼기에는 그 울림이 컸다. 단타 전문이라는 말에 뜨끔했다. 말만 짧게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짧게 끝
나는 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또한, 젊은이들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할 때 그 시대는 망한 시대
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누군가는 이런 쪽에 쏟아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나와
상관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야말로 나를 불편하게 한다. 내 비겁함에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화두로 시작하는 저자의 글은 명랑하고 경쾌하다. 삶이라는 코미디를 여과
없이 눈앞에 디미는 통에 나자빠질 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현실적이지만 과장하지 않았고 솔직
하고 당당하면서 감정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몽상가 기질은 있지만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노무현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 시대를 돌아보고, 다음 시대의 이야기. 환경에 관해서까지 두루 섭렵하
는 우석훈을 마주하며 퍽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발견해서 기쁘기 그지없다. 그를 보며 얼마 전 읽은 <책
의 제국 책의 언어>의 조우석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거침없는 말하기의 진수를 보여준
다는 사실이다. 조우석, 우석훈 이름도 비슷한 이들이 만나면 어떨까라는 뜬금없는 상상을 해본
다. 어쩌면 이미 만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서로의 이름을 알거나 혹은 아니거나.

한미 FTA, 각종 선거에서의 공약, 생태파괴와 환경, 서울의 주택문제, 이라크 파병, 도서관 이야기 등
어느 하나 지루하지 않았다. 앞으로 차근히 그의 글과 만나야겠다. 적어도 그렇게만 한다면 시대를 빗
겨가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단, 조심하시라. 그도 사람이니 전적으로 신봉하지 말지어다!


덧, 혼자 읽기에 정말로 아까운 책이다. 이 시대가 가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강력추천한다.
유난 좀 그만 떨라고? 어쩌랴. 딱 마음에 드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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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만 알고 있는 세금절약 테크닉
도광록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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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등 절약과 효율적인 자산관리를 위한 책이 많다. 그중 세금에 관한 책은 처음 만난다.
제목처럼 부자들만 알고 있는 세금절약 테크닉이란 무엇일까. 궁금함이 앞선다. 그러나 제목의 부자들
만 알고 있다는 사실은 뒤집어 보면 그랬기에 그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돈이 세금을 부르기도 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누구나 세금은 반가운
대상이 아니므로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그런 적이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없는 돈을 구하기 보다 가진 것을 유지하고 세금을 줄이기만 해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나 같은 초보가 세금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고작 해야 영수증에 적혀있는 내용과 사업할 때 따
라 붙는 것들이 다이다. 책의 내용을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가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지만 책을 펴들자
한낮 기우였을 뿐임을 알았다. 쉬운 말과 간결한 편집 게다가 Key Point까지 정리해 두어 편하고 재미
있게 읽었다. 기출 문제집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그만큼 읽기 편했다.

우리가 세금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간접세와 직접세로 나뉘어 있는데 주로 접하는 세금
이 간접세이기 때문이었다. 하루일과를 돌아보는 예로 설명한 저자의 말처럼 기호 식품인 담배서부터
식당, 술집에 가서 돈을 지급하는 과정 속에 간접세가 포함되어 있다. 주세, 담배소비세, 교통세, 부가
가치세 등의 이름으로 말이다. 물론 소득의 구별 없이 모두 똑같이 직접세를 낸다는 것은 단점이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당한 일이므로.


선진국일수록 소득재분배 효과가 높은 직접세의 비중이 높고
후진국일수록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간접세의
비중이 높다. (60쪽)



이렇듯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세금이다 보니 알수록 재미있었다. 또한, 월급쟁이가 봉이 되지 않
으려면(저자식 표현) 소비자는 신용카드와 현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과 그 이유를 읽으며 적절하게 신
용카드를 이용하며 현금이용 시 현금영수증을 필요 없다 말하지 말고 꼭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런데 그것도 습관인지라 고치려면 조금 걸릴 거 같다.

또 결혼해서도 세금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재산은 부부공동 명의나 부인, 가족 명으로 분산해야 절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로 소개된 여러 이야기에서 한 번만 전문가인 세무사나 공인회계사와 상의했더
라면 지급하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내는 일이 많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정말로 몰랐기 때문에 나중에
고생하는 일이 없으려면 지금부터 하나씩 배워야 할 내용이다. 그리고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혼테크 이
야기도 재미있었다.

절세(tax saving)와 탈세(tax evasion)의 차이를 구별해야겠다. 절세란 세법의 범위에서 합법적으로 세
금을 줄이는 것이고 탈세는 고의로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불법(234쪽, 발췌인용)
이니만큼 절세
를 실현하려면 우선 아는 게 힘이 된다. 모 프로그램에서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여러 방법을 쓰며 고액
체납금을 갖고 있는 이들을 추적하는 모습을 보며 한마디씩 하고는 했는데 이제는 그 말보다 세법을 알
았다면 저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먼저 날 거 같다. 탈세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절세를 알
았기 때문이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양심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며 적절하게 설명하는 저자의 글은 쉽고 간략했다. 사전처럼 옆에 두고 필요할 때 참고하여 계
획을 세우기 좋을 것이다. 물론 정말 중요한 문제는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도 기억해야겠다. 소 잃고 외
양간 고친다는 말처럼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세금절약 테크닉은 필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우리나
라의 세금도 선진국처럼 소득재분배가 고루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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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5 - 배신자들 밀리언셀러 클럽 77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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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기보다 소설가라는 명함이 정말로 잘 어울리는 이야기꾼 스티븐 킹. 그의 장편 <스탠드>의 5편
은 6편인 대단원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와도 같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5편에서 최종편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슈퍼 바이러스로 초토화된 인간세
계.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 집단을 이루고…. 여기까지는 평범한 이야기 같다. 그러나 그 안에 심어
둔 선과 악의 이분법적 방식은 환상적인 느낌을 선사했다. 그렇다고 SF나 공포 소설로 빠지지는 않았
고 생생해서 마치 탁월한 심리소설처럼 느껴진다. 계시를 받고 그래서 각기 양쪽으로 모여 무리를 이루
는 모습은 이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적 대립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5편을 읽고 나서는 다음 편을 예측할
수 없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 집필하는데 가장 오랜 시일이 걸린 작품인 본작은 하마터면 독자와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500 쪽을 쓰고 슬럼프가 찾아온 작가는 급기야 글쓰기를 팽개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고 한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그는 슬럼프를 이겨내고 <스탠드>를 완성한다. 그랬으니 이렇게 읽고 있
겠지만 독자에게는 실로 맹렬하게 읽어 갈 소설책 한 권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생각만
으로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나고 있지 않은가!

네이딘과 헤럴드의 이분법적 선과 악의 모습을 보았다. 우선 헤럴드부터. 처음 모습에서부터 변화하기
시작한 모습과 완벽하게 가린 가면의 모습까지 그가 보여준 다양한 모습에서 어떤 것이 진정한 모습일
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지독히도 외로웠고 그래서 집착했고 결국은
증오하는 모습. 그러나 그는 어렸다. 파도처럼 높낮이가 닥치는 내면은 그조차도 통제할 수 없었다. 그
래서 때로는 고민하고 울기도 한다. 결국, 그의 좋은 머리는 다크맨의 꼭두각시가 되어 사용된다. 스튜
와 프래니가 없는 세상에서 헤럴드는 더 행복할까. 과연 그럴지에 대한 의문. 다음은 네이딘. 그녀의 등
장부터 묘하다고 생각했는데 4편에서 네이딘의 역할이 드러났다. 5편에서 역시 고민하고 래리에게 도
움을 청했지만 결국 다크맨의 계획처럼 된 그녀. 암울함과 매력을 가졌지만 헤럴드와 지내며 조금도 행
복하지 않은 모습. 정말로 둘은 미쳐버릴 것인가. 기묘한 커플의 조화였다. 또한, 내면의 선과 악 또한
그러했다.

프랜과 래리가 헤럴드의 음모를 알아낸 순간의 극적 긴장감에 책장이 빠르게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은.
아뿔싸!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의 죽음. 그리고 애버게일의 마지막 계시. 이 책의 후반부가 어떻게나 빨
리 지나갔는지 모른다. 정말로 폭발물이 터진 거 같다. 이제 서로 얽어매고 있던 줄이 끊어졌으니 이들
의 다음 행로가 궁금하다. 대단원인 6편만이 남은 시점에서 섣불리 예측할 수 없었다. 맨손으로 다크맨
에게 향하는 이들의 고단한 발걸음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덧, 번역부분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었다. 원문은 어떤지 모르지만 단어선택이 적절하지 않
았다. 욕이거나 외설스러워서가 아니라 적어도 그 인물이 그런 단어를 입에서 내뱉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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