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전쟁 -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 우리역사 진실 찾기 2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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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전쟁 하면 6·25전쟁(한국전쟁)이 떠오른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조일전쟁까지 두 개의 전쟁을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조일전쟁이란 우리가 교과서에서부터 임진왜란으로 배운 전쟁을 뜻한다. 조선시대에 일어났고 7년이란 긴 시간의 전쟁으로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동양전쟁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할 정도이며 동아시아 국제전이 바로 '조일전쟁'이란 말을 의미한다.   

 조선, 일본, 명까지 가세했던 대규모 전쟁이 임진년의 왜구의 침략으로만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견해를 펴내며 당시의 조선과 주변 나라 등에 대해 하나씩 풀어두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 원인과 시대적 배경으로 당시 일본의 상황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배하게 된 역사적 사실까지 올라간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자면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다.대학 졸업 후 남미로 이민 갔다가 현재는 미국에서 역사클럽 활동을 하고 있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란 정도이다. 책은 두 번째로 내며 이전에 낸 책 <백성 편에서 쓴 고조왕조실록, 왕을 참하라>에서도 파격적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호기심과 새로운 시각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솔직히 조금 놀랐다. 

 다름 아니라 저자의 글투때문이었다. 물론 글의 내용도 내가 알아 온 내용과 다르지만, 그것은 놀라움이기보다 다양한 시선의 접근에 가까웠기에 흥미로웠다. 저자의 글에서 당시 왕이던 선조의 앞에는 자주 '등신 같은 선조'란 말이 따라붙었으며 이 밖에도 상양아치니, 무식한 네티즌들이니, 왕을 애라고 표현하는 등 직접적인 개인적 감정을 드러낸 다소 과격한 느낌의 단어들이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물론 글은 개인을 반영하니 글투가 모두 소설 같은 문학작품처럼 아름다울 필요까지는 없지만 예는 지켜주며 객관적인 느낌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는 게 예의 혹은 미덕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말하는 미덕이란 무조건 미화시키고 덮자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주장을 펼칠 때 감정이 아닌 객관성에 따라야 하며 그러려면 자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굳이 개인적 글투를 유지하려거나 표하려면 이런 방식이 꼭 아니어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개성적인 글투는 좋지만 실로 안타까웠던 이유는 친구와 만나 소주 한잔하며 정치욕을 하듯 꺼리낌 없는 여과되지 않은 반응은 독자인 내게 단점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럼에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책의 발단이 된 원인이 확실하며 그에 대한 설명이 조목조목 진행되기 때문인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려준다. 받아들이는 건 독자의 몫이겠지만 정말 괜찮은 소재(아이템)였다. 예를 들자면 행주대첩은 실은 행주에 돌을 날아 이긴 게 아니라 조선군의 최신화기가 동원되었었다는 점 등이었다. 드라마에서 왜구의 조총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지던 조선군의 모습이 다가 아니었던 것이다. 전쟁 초기에는 물론 조총의 등장에 놀라워했으나 이듬해부터 자체적으로 왜구의 조총보다 성능 좋은 최신 총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작은 사실들부터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자료조사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 더 말하면 이순신 장군의 해군 상승 신화의 전설(8장)에 대한 객관적 내용도 좋았다. 어떠한 역사든 승자의 기록이며 존경심과 여러 가지가 더해져 신화적 성격을 띠어 후세로 전해지는 게 그런 과정에서 걸러지고 재창조되는 것에 대해 떠올리게 했다. 의병의 활약 부분을 통한 부분도 인상깊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진 수많은 이름 모를 이들... 이 책으로 그중에 기억하게 된 이들도 있었다.  

 가장 많이 왜곡된 역사 부분이 조선사라고 한다. 그만큼 벗겨 내야 할 부분이 많아 재조명을 꾸준히 해아하겠다. 저자의 탄식처럼 우리나라의 역사교육 문제도 더는 버려둬서는 안되겠다. 이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문장을 조금씩 다듬어서 개정판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실로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만큼 역사를 재조명해서 역사책이 활발하게 나오는 일은 기쁘나 대중에게 외면받지 않으려면 일단은 독자에게 불편함보다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 눈에 더 들어오길 바란다. 사실 그런 부분을 빼고 보자면 제법 괜찮은 내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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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문학 -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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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들여다보는 인문학은 어떨지 자못 기대되는 책이었다. 솔직히 김영민이라는 저자를 잘 모른다. 그러나 책의 머리말을 접하는 순간부터 기억하고 싶어서 자꾸 저자의 이름과 사진을 들춰보았다. 잊어버리지 않으려 안달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어울림은 무늬로 남고, 어긋남 또한 흔적으로 남는다는 건 결국 어떠한 것이든 선택의 여지없이(자의, 타의 마찬가지.) 삶을 이루는 결이 된다는 데서 나온 말일 것이다. 쉽게 풀어쓰지 않는 글의 저자지만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니었다. 한겨레 신문에 실렸던 글을 모아 책으로 낸듯한데 바라건대 앞으로도 글 좀 아니 책 좀 많이 내주면 좋겠다.

 한국영화 27편을 차례대로 보고, 들으며 보고자 했으나 미처 놓쳐버린 영화를 만날 때면 저자의 글은 더욱 영화를 보고 싶게끔 했다. 시작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었는데 영화를 직접 보지 못했고 시나리오만 읽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읽었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얼핏 방송에서 소개할 때 본 몇 분의 영상을 기초로 나머지는 상상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영화를 보지도 않았는데 시나리오만으로도 본듯한 환상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저자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미 90년대에도 <철학으로 영화보기, 영화로 철학하기>(1994)란 책을 내었던 저력이 있었다.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듯 이 책은 영화로 인문학적 가치와 생산성 등을 진지하게 돌아본다. 

 영화를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이 많다. 과거 한국영화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말이 많았던 시대에도 주옥같은 작품은 존재했고 이제 한국영화의 미래를 의심하는 자는 없을 만큼 진보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깰 틀이 남아있으므로 기대가치도 크다 하겠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영화를 그저 즐기는 오락으로만 취급하거나 속물적 혹은 상업적 가치만을 매기기도 한다. 이런 세태는 즉, 세속에 속한 영화이기에 제외될 수 없는 운명인듯하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언급하는 세속의 의미를 돌아보면 이해가 간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감독.) 편의 마지막에 했던 말 '체제가 그 체제를 바꾼 메시아를 재체제화 하는 그 경겁스러운 순발력! 세속이 꼭 그런 것입니다.'(225쪽.) 그리고 개념어집에 쓴 첫 문장 '세속世俗이란, 체계 속에 얽히고 마모되어 돌이킬 수 없이 어리석게 퇴락해가는 관계들의 총칭이다.'(331쪽.)처럼 곳곳에서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쉰다. 그런데도 글 자체가 차분하고 깔끔하게 정리된다. 그래서 무언가 몰두해서 건져내려는 순간 이미 다음 영화로 어김없이 넘어간다. 조금 더 길게 이야기해도 충분히 환영받을만한 글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보고서 가족과 괴물뿐 아니라 이 시대와 사회의 괴물에 대해 생각하며 역시 봉준호 감독이란 생각을 하던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또 좋아하는 감독인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비롯해 잊고 있던 영화가 내 안에서 살아났다. 감독들의 최신 근황과 신작 이야기도 짤막하게 나와있어서 좋았고 주옥같은 오래된 명작도 되돌아 보게 되어 행복했다. 우리 영화 속의 일등공신인 수많은 감독을 만나며 그간 소홀히 했던 영화의 매력을 새삼 재발견한다.  

 영화를 통해 반영된 모습의 사람과 사상, 시대를 본다는 건 인문학적으로 실로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었다. 그래서 정말이지 잘 읽었다고 생각한 책이다. 심리학, 철학으로 접근한 책은 이미 만난 거 같고 이렇듯 인문학을 전면에 내세운 김영민식 토크(그의 글맛은 말과 비슷하게 느껴진다.)에 넌지시 빠져보라고 지인들께 권하고 싶었다. 영화 이야기만 늘어놓은 거 같지만 사실 인문학에 대해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사람의 무늬를 읽으려는 인문학의 가치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무늬라는 게 천차만별이 아니겠는가. 전반적인 흐름을 따지고 들자면 대략의 결이 나오겠지만, 아무튼 심오하고 흥미로운 분야라는 건 분명하다. 책을 읽다 보니 시, 소설에서 어느 순간부터 인문학으로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지속적으로 접해야만 살아갈 힘이 날 거 같은 장르라 하겠다. 학문의 즐거움을 떠나 소박하게 말하자면 공부의 신명을 이어주는 힘이 된다. 어찌 말하고 보니 소박한 게 아니라 부풀려진 듯하지만 그만큼 인문학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게 좋다는 의미로 받아주면 좋겠다. 많은 독자와 만났으면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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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담 빠담, 파리
양나연 지음 / 시아출판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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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어떠한 이유에서건 일탈을 꿈꿀 때가 있다. 그것이 재충전을 위한 시간일 수도 있고, 도피일 수도 있지만 꿈으로만 끝나기도 하며 혹은 아니기도 하다. 한순간의 모험이나 일탈이 때로는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을 한번은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환경이다. 여건도 그렇고 쉽게 박차고 나가기가 어렵다.  

 모험을 좋아해서 나도 뜬금없는 선택을 하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나름의 경험이 다 고스란히 몸과 마음에 결을 만들었기에 나를 이루는 무엇인가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여행에 있어서는 조금 주저하는 편이다. 그래서 대학생 때 계획했던 유럽 배낭여행은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지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뒤늦게 파리여행을 다녀왔는데 이 책은 저자의 파리 가이드 도전기라 그때의 기억을 새삼 떠오르게 해서 즐거웠다.  

 개그작가를 하던 저자는 모처럼 만의 휴가로 생애 처음 외국여행을 가는데 그곳이 파리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이드를 맡은 분과의 인연으로 막연하게 하고 싶다고 가슴 뛰게 한 가이드란 직업을 하기까지의 내용이 담겼다. 그렇다, 정말 막연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자는 프랑스어는 물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프랑스는 물론 유럽의 역사나 예술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하고 싶다는 열정 하나와 파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다였다. 나이도 30살이 넘었고 무언가 다른 분야로 이직하기에는 소위 말하는 늦지 않았나라는 우려를 들을만했다.  

 가이드 회사 사장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는 거 같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고 발로 뛰어다니는 적극성을 보였다. 일 년의 파리 가이드 생활을 따라가며 유명한 미술 작품과 화가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파리 여행 팁도 있어서 좋았다. 예를 들면 루브르 박물관 입장권은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종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같은 것이다. 오전에 갔다가 오후에 시간이 나면 다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루브르 박물관은 넓어서 길을 잃기 쉽상이며 전부를 둘러보려면 일주일도 더 걸린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예전에 파리 갔을 때 미술관을 제대로 못 가서 아쉬웠는데 책을 읽으며 다음에는 꼭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시종일관 옆집 언니처럼 글이 친근하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여행서에서 어떤 것이 좋다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이 책은 파리여행을 위해 읽기보다는 파리를 사랑한 한 사람의 열정이 담긴 책으로 보는 게 맞을 거 같다. 좀 더 차별화해서 가이드하면서 발견한 알려지지 않은 곳이나 에피소드를 더 많이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언급한 곳은 대부분 알려진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모험을 좋아했던 나는 책을 덮으며 지금의 나를 돌아보았다. 그 가슴 벅찬 떨림을 오래도록 잊고 안락하게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떠나고 싶다는 갈망과 현실의 무게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지금의 내가 낯설다. 결혼해도 변하지 않고 싶은 부분들은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마음은 이미 떠났는데 몸은 이곳 울타리에 있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자꾸 찾는 거 같다. 손으로 하는 일들에 관심이 생기고 혼자서 뚝딱뚝딱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아직도 정리가 되지 않은 파리 여행 사진을 짧은 가을이 지기 전에는 끝내야겠다. 

 타인의 도전기에서 접점을 느끼는 순간은 대리만족의 탈출구적 희열만은 아니다. 기억 속 어딘가에 묻혀 있던 시간을 다시 돌려보고 그때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여러 번 재생할 수 있다는 여유가 생긴 거 같아 나름 만족스럽다. 제목의 빠담 빠담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라고 한다. 빠담 빠담, 파리! 두근두근,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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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존 - 집중력을 위한 뇌의 재발견
루시 조 팰러디노 지음, 조윤경 옮김 / 멘토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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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집중력을 위한 뇌의 재발견, 포커스 존이란 제목을 들을 때부터 뇌 그리고 포커스 존의 유지법에 대한 내용인지라 기대했다. 보통 실용서적 중 자기계발서에는 하나같이 좋은 내용을 제시하지만, 문제는 실제 행동함으로 내것으로 습득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한 권을 내것으로 꾹꾹 눌러 소화시킬 때까지 반복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책과 자신의 궁합이 맞는다면 말이다. 

 <포커스 존>의 저자 루시 조 팰러디노는 미국 최고의 주의력 전문가라 한다. 그녀를 찾는 수많은 상담자의 사례에서 느껴지듯 요즘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라 쉽고 편하게 다가왔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의 삶은 늘 바쁘다. 나도 하루가 늘 빨리 지나서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서평 하나를 쓰려고 해도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갖가지 정보가 반짝거리지만 애써 무시하고 바로 로그인을 한다. 만약 하나라도 새창을 늘이면 시간은 그만큼 사라진다. 시간을 보낼 만큼 의미 있는 기사가 아니라면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다만, 기사 제목에 낚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로그인 후에도 메일, 쪽지, 카페 등을 지나서야 블로그로 오고 여기서도 이거저거 확인을 하면 시간이 또 흐른다. 그래서 늘 머릿속으로 우선순위를 매 순간 정한다. 일단, 서평부터 쓰자. 이런 식으로.  

인터넷에 그토록 많은 정보가 있다는 것은 일종의 기회다.
그러나 그 중 99퍼센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건 재망이다.  

(318쪽. 리처드 사울 워먼.) 

 포커스 존이란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정도(Degree)로 어떤 구역에 속하느냐의 문제(38쪽.)이다. 뒤집힌 U자로 표현한 저자의 말처럼 중간의 안정된 영역이 포커스 존으로 이곳에서 우리는 최적의 가능성을 유지한다. 그러니 포커스 존에 머무는 방법을 훈련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완-각성의 상태이면 최적의 상태가 아니어도 주의력이 집중될 테고 동기부여나 목표 혹은 기분이 좋은 상태를 오래도록 갖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터넷에 접속하는 일 하나에도 주의력은 자꾸 흩어지니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리고 새롭게 안 사실이 하나 있다. 고도집중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에든 쉽게 고도집중을 하는 내게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고도집중이란 흥분이며 이는 긴장완화의 상태와는 구별해야 한다. 책에서도 든 예지만 게임을 할 때 즐겁게 하고 끝냈다면 누가 게임을 중단하게 해도 그만이지만, 반대로 과격해지거나 짜증이 난다면 이는 고도집중 상태로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할 수 있다. (58-9쪽의 내용 참고.)  

 또한, 멀티태스킹도 효율적인 방법이라 자주 하지만 지나친 멀티태스킹은 효율은커녕 어떤 것에도 진정한 집중을 하지 못하기에 각성된 멀티태스킹이 중요하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파워브레이크(휴식)의 적절한 활용 등을 통해 심리적으로 수없이 연습해야 한다. 운동선수들의 정신컨트롤 연습처럼 우리도 꾸준하게 의식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더욱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살피는 관찰자아를 깨울 때 비로소 액자 안의 그림만이 아닌 전체풍경을 볼 수 있다. 책에 나온 여러 가지 열쇠 꾸러미를 통해 내면의 나에 대해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물론 이미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 발견의 즐거움을 느꼈다. 하나는 나도 이미 사용하는 심리적 방법을 만났을 때고 나머지 하나는 모르던 것을 새롭게 알았을 때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서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 무얼 하지 않고 있나?" 예전에는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지?'라고 자문했는데 이제는 전자의 질문도 해보려 한다. 두 질문 모두 자기인식이지만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면 좋을 거 같다. 언제나 하나의 측면만 본다는 건 기울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 책 전에 읽은 신경 심리학자의 책 <사일런트 랜드>를 읽은 직후라 그런지 뇌와 자아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포커스 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자신을 바로 알아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바쁜 삶 때문에 메마르지 않도록 조심하라. (소크라테스의 경고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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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랜드 - 신경심리학자 폴 브록스의 임상 기록
폴 브록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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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심리학자 폴 브록스의 임상 기록인 <사일런트 랜드>를 만난 건 행운이다. 뇌에 관심은 많지만 신경 심리학에 관한 책은 처음 읽는 터라 유명한 올리버 색스의 책조차도 읽지 않았다. 우선 마음을 끈 것은 책표지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단연 눈에 들어왔는데 읽고 나자 뇌와 자아, 자유의지 등이 통합적으로 엮인듯한 환상을 유지하도록 돕는 느낌이다. 

 뇌의 어딘가가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우연한 사고가 아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서 알려주는 희귀한 병명과 증상은 환자에게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투명하게 보인다고 생각하거나, 기억의 연결이 끊어져서 과거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기도 하고 난투극을 눈앞에서 보고도 웃으면서 드라마의 별거 아닌 대화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책에는 여러 환자의 경험을 만나볼 수 있는데 환자일인칭 시점으로 적어서 더욱 생생하다. 저자 폴 브록스는 전문가지만 단언하거나 이성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도 흥미롭다. 환자의 관점으로 느끼고 생각해서 이 환자들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마음이나 의식 어딘가에도 불안한 무엇인가의 요소를 지니고 있을 테고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거나 누르고 있을 뿐이니까 말이다. 이런 점이 <사일런트 랜드>를 독특하게 했으며 환상적인 책으로 탈바꿈했다. 저자의 솔직함에서 인간미가 느껴져서 따뜻했다. 암울하고 기괴한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한 시간이었다.  

온전한 자아라는 것은 없다.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볼때 인간은 누구나 분할되어 있는 불연속적 존재이다. 우리의 자아의식을 뒷받침하는 심리과정ㅡ느낌, 생각, 기억 등ㅡ은 두뇌의 여러 영역에 흩어져 있다. 특별한 집결점 또한 없다. 영혼의 조종실도 없고 영혼의 선장도 없다. 그런 것들은 허구의 작품에서나 통합된다. 그래서 인간은 스토리를 말하는 기계이다. 자아는 곧 스토리이다.

(73쪽. 태양의 칼에서.)

 
마음은 과정과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구체적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사물들 사이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허공 속에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아름다운 생각으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95쪽. 뇌 속에는 영혼이 있는가에서.)

 
 환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어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은 뇌와 자아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아란 무엇인지에 대해 더불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신경 심리학의 매력에 빠지기 충분한 책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저자 스티븐슨의 꿈이야기도 흥미롭다. 혼자 생각하던 여러 주제에 대해 저자와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들 만큼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고 상상력을 보태 이들의 세계에 발을 담아보는 좋은 경험이었다. 

 뇌손상은 신체의 다른 외상이나 내상과 다르게 사람 자체를 다르게 만들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더라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다만 뇌세포가 파괴된 것만이 아니라 마음 어딘가가 깨지거나 부서진 거로 생각하고 이해하고자 한다면 조금은 편하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음이나 자아가 뇌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연결된 것은 확실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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