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 어울림의 무늬, 혹은 어긋남의 흔적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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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 들여다보는 인문학은 어떨지 자못 기대되는 책이었다. 솔직히 김영민이라는 저자를 잘 모른다. 그러나 책의 머리말을 접하는 순간부터 기억하고 싶어서 자꾸 저자의 이름과 사진을 들춰보았다. 잊어버리지 않으려 안달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어울림은 무늬로 남고, 어긋남 또한 흔적으로 남는다는 건 결국 어떠한 것이든 선택의 여지없이(자의, 타의 마찬가지.) 삶을 이루는 결이 된다는 데서 나온 말일 것이다. 쉽게 풀어쓰지 않는 글의 저자지만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니었다. 한겨레 신문에 실렸던 글을 모아 책으로 낸듯한데 바라건대 앞으로도 글 좀 아니 책 좀 많이 내주면 좋겠다.

 한국영화 27편을 차례대로 보고, 들으며 보고자 했으나 미처 놓쳐버린 영화를 만날 때면 저자의 글은 더욱 영화를 보고 싶게끔 했다. 시작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었는데 영화를 직접 보지 못했고 시나리오만 읽었다. 영화를 보지 않고 읽었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얼핏 방송에서 소개할 때 본 몇 분의 영상을 기초로 나머지는 상상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영화를 보지도 않았는데 시나리오만으로도 본듯한 환상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저자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미 90년대에도 <철학으로 영화보기, 영화로 철학하기>(1994)란 책을 내었던 저력이 있었다.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밝혔듯 이 책은 영화로 인문학적 가치와 생산성 등을 진지하게 돌아본다. 

 영화를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람이 많다. 과거 한국영화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말이 많았던 시대에도 주옥같은 작품은 존재했고 이제 한국영화의 미래를 의심하는 자는 없을 만큼 진보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깰 틀이 남아있으므로 기대가치도 크다 하겠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영화를 그저 즐기는 오락으로만 취급하거나 속물적 혹은 상업적 가치만을 매기기도 한다. 이런 세태는 즉, 세속에 속한 영화이기에 제외될 수 없는 운명인듯하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언급하는 세속의 의미를 돌아보면 이해가 간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감독.) 편의 마지막에 했던 말 '체제가 그 체제를 바꾼 메시아를 재체제화 하는 그 경겁스러운 순발력! 세속이 꼭 그런 것입니다.'(225쪽.) 그리고 개념어집에 쓴 첫 문장 '세속世俗이란, 체계 속에 얽히고 마모되어 돌이킬 수 없이 어리석게 퇴락해가는 관계들의 총칭이다.'(331쪽.)처럼 곳곳에서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쉰다. 그런데도 글 자체가 차분하고 깔끔하게 정리된다. 그래서 무언가 몰두해서 건져내려는 순간 이미 다음 영화로 어김없이 넘어간다. 조금 더 길게 이야기해도 충분히 환영받을만한 글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보고서 가족과 괴물뿐 아니라 이 시대와 사회의 괴물에 대해 생각하며 역시 봉준호 감독이란 생각을 하던 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 또 좋아하는 감독인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비롯해 잊고 있던 영화가 내 안에서 살아났다. 감독들의 최신 근황과 신작 이야기도 짤막하게 나와있어서 좋았고 주옥같은 오래된 명작도 되돌아 보게 되어 행복했다. 우리 영화 속의 일등공신인 수많은 감독을 만나며 그간 소홀히 했던 영화의 매력을 새삼 재발견한다.  

 영화를 통해 반영된 모습의 사람과 사상, 시대를 본다는 건 인문학적으로 실로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었다. 그래서 정말이지 잘 읽었다고 생각한 책이다. 심리학, 철학으로 접근한 책은 이미 만난 거 같고 이렇듯 인문학을 전면에 내세운 김영민식 토크(그의 글맛은 말과 비슷하게 느껴진다.)에 넌지시 빠져보라고 지인들께 권하고 싶었다. 영화 이야기만 늘어놓은 거 같지만 사실 인문학에 대해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사람의 무늬를 읽으려는 인문학의 가치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무늬라는 게 천차만별이 아니겠는가. 전반적인 흐름을 따지고 들자면 대략의 결이 나오겠지만, 아무튼 심오하고 흥미로운 분야라는 건 분명하다. 책을 읽다 보니 시, 소설에서 어느 순간부터 인문학으로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지속적으로 접해야만 살아갈 힘이 날 거 같은 장르라 하겠다. 학문의 즐거움을 떠나 소박하게 말하자면 공부의 신명을 이어주는 힘이 된다. 어찌 말하고 보니 소박한 게 아니라 부풀려진 듯하지만 그만큼 인문학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게 좋다는 의미로 받아주면 좋겠다. 많은 독자와 만났으면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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