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번째 와인 가이드북
조병인 지음 / 북오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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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보다는 차(茶)를 좋아한다. 언제부터인가 술을 거의 먹지 않게 된 거 같다. 그래도 가끔 생각날 때가 있어서 일 년에 몇 번 먹는 정도이다. 와인은 술을 즐기지 않는 옆지기가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 술이라 가끔 마셨다. 출산 후 아이를 키우며 술과는 더욱 멀어졌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함께 와인의 세계를 탐닉하고 싶다. 

 와인에는 흔히 말하듯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이 있고 그 중간에 로제 와인이 있다. 요즘 같아서는 화이트 와인이 자꾸 생각나지만, 책을 읽으며 전혀 몰랐던 아이스 와인이 먹고 싶어졌다. 아이스 와인이란 포도가 얼어 있는 새벽에 수잡업으로 따서 해동되기 전에 흡착과 발효를 거친 와인으로 손도 많이 가고 일반 와인보다 시간도 오래 걸려서 양은 적고 비싸게 판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와인이 먹고 싶어서 입맛을 다셨음을 고백한다. 애주가도 아니지만 그만큼 술을 먹을 일이 없어서인 거 같다. 가장 최근 와인을 마신 게 아마도 두 달 정도 된 거 같다. 그것도 와인 애호가인 지인 때문이었다. 고기 먹는 자리에 와인뿐 아니라 잔과 디캔터(와인을 따서 마시기 전에 다른 용기에 옮겼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서 마실 때 사용하는 유리용기.)까지 들고와서 디캔팅을 해서 따라주었다. 그 생각이 나면서 오늘도 와인과 함께일 지인이 떠올라 피식 웃게 된다.  

 책은 초보자는 물론 와인을 마시는(와이노wino) 이들에게도 쉬우면서도 다양한 내용을 전한다.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풍부하게 들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물론 몰라도 될 거 같은 내용도 있었지만 알아두면 이해를 돕는 내용 또한 많았다.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많이 알게 되었다. 다른 와인 책과 다른 점은 우리 생활 속 심지어 전통부터 내려온 이야기까지 짧게나마 다루고 있었다. 이렇게 폭넓게 다루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게 장점이다.

 더구나 다나(DANA) 신화를 읽으며 놀라웠다. 국내 기업이 와인의 본고장에 진출하여 명품 와인을 생산해내며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에게 만점으로 인정받았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전통주가 이어져 왔던 것처럼 장인정신이 존재할 때만 가능한 이야기라 더욱 자랑스러웠다. 

 척박한 땅에서 더 잘 자란다는 포도나무의 강인한 생명력 그리고 사람의 손길과 자연환경 등이 합쳐져 빚어낸 순수한 술 와인. 포도열매 이외에는 물 한 방울 들어가진 않는 발효주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술은 술이니 과음하지 말아야겠다. 하루 한 잔(혹은 두 잔.)의 와인을 권하는 저자의 말처럼 와인의 매력을 충분히 음미하며 즐기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다. 

 와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에는 부족하지만, 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와인의 세계에 빠질 수 있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일취천일(一醉千日)이라는 말처럼 한 번 취해서 1,000일을 기분 좋게 취해서 누워 있을만한 나만의 술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다. 솔직히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아직은 와인보다는 차 한 잔이나 달빛에 취하는 일이 더 황홀하지만 언젠가는 술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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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생물 콘서트 - 사진으로 보는 생태다큐멘터리
한영식 지음 / 동아시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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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땅을 들여다보거나 하는 일이 많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검은 개미가 수도 없이 나와서 열을 지어 가는 모습을 보며 오후를 보내기도 하고 구멍에다 아예 입을 가까이 대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러다 점차 커가면서는 곤충이나 동물보다는 식물에 관심이 커졌다. 사실 이유 없이 곤충은 질색하게 되었다고 해야겠다. 거미를 보면 죽이고 싶지는 않아서 밖으로 방출하고는 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식물은 가끔 눈여겨보았어도 동물 그것도 우리 땅에 사는 토종 동식물에 대해 함께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이 땅에 사는 토종 동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그래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특히 나와 친하지 않은 절지동물의 감각능력과 행동 양식이 인류에게 가치가 크다는 내용을 읽으며 인류가 이들에게 빚지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이미 알려진 건축물에 이용하는 벌집 구조, 개미의 집단행동은 로봇에, 거미줄을 첨단소재로 등 활용하면서 징그럽다고만 생각하지 않았던가. 지구에서 함께 그것도 멀지 않은 우리 땅에 사는 공생관계의 동식물을 이해하고 배려해야겠다.  

 또한, 인간이 필요에 의해 배려 없이 동식물을 이용하기만 할 때 어떻게 되돌아오는지 생각하게 된다. 저자의 일침처럼 TV 프로그램에서는 산나물을 먹으면 몸에 좋다는 이야기만 나올 뿐이지 어떻게 채취하고, 왜 보호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이런 보물들을 잘 지켜야 하는데 의식부족이 크다 하겠다.

 그리고 귀화식물이 되어 생태계를 위협하는 수많은 외래종의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동물도 마찬가지로 애완동물이나 혹은 경제, 산업적인 여러 이유로 왔다가 버려져 결국 우리의 고유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 된다는 사살은 이제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문제는 뚜렷한 해결책 없이 방치되어 지금도 그 피해로 토종동식물이 사라져서 안타깝다.

 환경문제와도 절대 무관하지 않은 문제이기에 무엇보다 시급한 해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지구 온난화 속도가 다른 국가에 비해 1.5배나 빠른 이유가 유흥을 위한 대규모 시설 조성이 큰 몫을 한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골프장은 아름다운 제주도에까지 마구 늘어난다. 

 분명히 해결책이 있을 텐데도 고민하지 않거나 뒤에 올 사태를 미리 고려하지 않은 채 현재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 더는 없어져야 한다. 지금도 복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앞으로도 이렇듯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스스로 복구하는 능력이 있는 자연이더라도 인간의 욕심으로 마구 헤집어진 지금 상태는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누구도 원치 않던 결과가 올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희망적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작은 하나의 행동이 전체로 퍼질 때 이뤄내는 결과물처럼 모두의 의식이 동식물 특히 토종 동식물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더욱 요구되는 시기라 하겠다. 몇 해전 읽은『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가 문득 떠오른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려면 인간중심의 파괴적 행위를 멈추고 무엇보다 심사숙고하며 앞을 내다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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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 : 난세를 이기는 지혜를 말하다 - 완역결정판
열자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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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논어가 현실과 맞닿아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것은 유교를 한때 숭상했던 시대의 흐름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리 여겨질지도 모른다. 실패한 사상가라는 이름이 아닌 지금도 많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도가하면 떠오르는 노자와 장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도에 대한 의견 또한 삶의 깊은 철학에 대입하며 현대인에게 그저 먼 이야기가 아닌 깨달음을 준다. 이렇듯 학문은 생활 속에서 녹아들때야 인정을 받는다 하겠다. 

 그렇다면 도가 삼서 중 한권이라는 『열자』에 대해서 또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노자, 장자에 비하면 덜 알려졌고 개인적으로도 처름 읽게 되었다. 알고보니 도가 사상을 대표하는 책이지만 노자나 장자에 비해 잡다하며 열자라는 사상가 또한 실제 인물인지의 여부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떠돈다. 일단 이 책의 특징은 그래서인지 다른 책에 비해 읽기가 수월하다. 우화 형식이라 쉽기 때문인데 그래서 깊은 철학적 사상의 맥이 따로 유지되는 느낌은 없다. 아니 적다고 해야겠다. 

 같은 출판사에서 이미 나온『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독자가 다가서기 편하게 편집되어 있다. 책을 읽기에 앞서 기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후 본문, 해설, 원문 등을 비교할 수 있다. 어쩌면 도가 사상의 삼서 중 첫 번째로 읽기에 무난한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고 텅 빈 경지를 그린다는 게 실로 얼마나 어려운지 책을 읽으면서도 잡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지만 끝끝내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도(道)일지 모른다.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이란 사실 지독히도 현실화 되기 어려운 것들이 아니겠는가.  

 춘추전국시대처럼 혼란한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수많은 사상가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공자나 양주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는데 누구의 사상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치열한 삶의 고민 끝에 그들이 선택하고 지킨 신념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어느 사상가의 말이나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물론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들은 궤변론자이거나 잡설가가 아님이 명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시 중요한 것은 독자가 취하기 나름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고전의 힘이니까. '오직 묵묵히 사람의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모든 일을 해가는 사람만이 도를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묵묵히 사람의 본성대로 일을 해간다는 것은 완전히 자기의 삶을 자연에 융합시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217쪽, 제 4편 공자는 진정한 성인이었는가? 에서 14. 도를 터득하는 법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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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의 노래(들) - 닉 혼비 에세이
닉 혼비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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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작가 닉 혼비는 축구광, 음악광으로 유명하다. 사실 작가의 책은 <픽션>이라는 단편집에서 잠시 만난 게 다였고 영화로 만들어진 그의 유명작품도 하나도 보지 못했다. <어바웃 어 보이>,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는 제목을 많이 접했지만, 선뜻 당기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픽션>에서 축구에 열광하는 작은 나라 이야기를 읽을 때부터 알아봤다. 축구광이라는 것을. 대략 말하자면 축구인원이 충분히 모여도 고작 한 팀을 이룰 수 있기에 경기를 하자면 다른 나라에 신청해야 하니 결국 국제 친선경기가 되는 식이다. 이번에는『닉 혼비의 노래(들)』을 통해 음악광적 면모를 마주한다. 

 누군가의 노래(들)을 보며 내 안의 노래(들)이 불쑥 나오고는 했다. 거창하게 음악과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어도 노래가 우리에게 주는 위안과 카타르시스 등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의 유모나 글투는 나와 코드가 그리 맞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공감되었다. 

 영국인이 아니어도 사랑받는 영국의 음악 뮤지션이 많다. 이제는 전설인 비틀스 또한 그러하다. 물론 비틀스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조금 나온다. Rain이란 곡에 대해서였다. 내가 닉 혼비였다면(당연히 그럴 리 없지만!) 비틀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그리고 킹 크림슨 등 좋아하는 그들의 곡을 죄다 끄집어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그랬다면 상당히 지루해졌을 거 같지만.  

 또한, 그가 로드 스튜어트에 대해 열광하면서 제스토 툴이나 마이크 올드필드를 하찮게(?) 지나칠 때는 아쉬웠다. 어쩔 수 없다. 취향의 차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가 핑크 플로이드까지 싸잡아(?) 인위적이고 남는 게 없다고 말할 때는 영국까지 날아가 그들의 좋은 곡을 들려주고 싶었다.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 더는 갈 데가 없는 음악이 아니라 공간을 유영하는 음악이라고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음악이란 참으로 개인의 차가 크다. (그래요, 당신의 취향을 인정합니다. 닉 혼비 작가.) 

 그럼에도 음악에 열광하는 자체에 충분히 공감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또 밥 딜런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사람들이 음유시인이라 말하는 그가 사실 내 가슴까지 적시지는 않았으니까. 읽으며 재미도 있었다. 확실히 저자만의 개성이 느껴졌다. 그는 특정 장르나 뮤지션이 아니라 노래 자체를 좋아한다. 그것도 가사가 있는 노래만. 물론 연주곡도 소개되어 있기는 하다. 
 


 때로, 아주 가끔, 우리 자신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노래와 책과 영화와 그림을 만날 때가 있다. 반드시 말이나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 연결고리는 그보다 훨씬 덜 직접적이며 더 복잡하다.

 

(19쪽, 'Thunder Road', 브루스 스프링스틴 편에서 부분발췌.)
 모르는 노래가 더 많았다는 게 흠이지만 읽다가 찾아서 듣고 싶어지는 노래(들)이 생겼다. 그리고 영화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도 기회가 된다면 보고 싶어졌다. 나는 아직도 닉 혼비를 잘 알지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기억하고 싶어졌다. 그가 음악광이라서가 아니라 노래가 그의 삶을 어떻게 차지해왔는지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 대니와 함께인 이야기도 좋았다. 앞으로 더 많은 노래(들)과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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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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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구기행』의 곽재구 시인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인도시인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에서 540일을 보내며 글을 쓰고 그림과 사진을 담았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향기롭게 느껴진 것은 저자가 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이해하는 시인의 마음 하나 그리고 사람과 인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보태진 이 산문집은 참 예쁜 책이다.  

 시작인 종이배를 파는 소녀 이야기부터 아,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기다려온 것만 같은 따뜻한 내용이었다. 어쩌면 저자의 시선이 천진난만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은 시인이 아니었으면 뭘하고 살았을까 싶은 감성을 지닌 이였다. 그것도 아주 포근하고 기분 좋은 감성이다. 이를테면 인도의 챔파꽃이나 조전건다 꽃향기 이야기 등을 들으면 절로 오감이 깨어난다.  

 오래전 달맞이꽃의 향기에 제대로 취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는 그 어떤 달맞이꽃에서도 그때의 달콤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것은 내가 변해서인지 환경이 변해서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아무튼,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향기와 색 등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이것은 순전히 독자의 오감을 뒤흔드는 저자의 필력과 감성 덕분이다. 달빛의 냄새가 난다는 조전건다 꽃향기라는 문장과 마주하니 행복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래서 시인은 지상의 천사라고 불리는 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특히 인도에서 만난 이들과의 인연을 지그시 풀어두는데 어쩐지 현실적이지 않은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곳이 인도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자가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집안일을 하는 마시들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만약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두 명의 마시를 통해 그가 고민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보니 참 재미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상대의 처지에서 바라보며 의심하지 않고 그런 의심마저도 나를 탓하며 동정심과 따스한 마음이 앞설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델리 역으로 가는 내내 정류장 가는 길을 모두 제각각으로 대답하던 인도인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모두 제각각인 그들의 답변 속에 혹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때 문득 찾아온 것입니다. 삶이란 원래 이런 거야. 이렇게저렇게 다 헤맨 뒤에야 지혜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거라구, 라고 말하는 인도인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제각각 다른 길을 일러주던 인도인들의 모습이 전혀 밉거나 당혹스럽지 않았습니다.

 

ㅡ345쪽, 다른 길로 가는 법에서 일부 발췌.

 위에 인용한 글만 읽어도 저자의 마음가짐이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런 푸근한 마음을 가진 이를 좀체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늘 이렇게 마음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게 더 지배적인 이유일 것이다. 자포자기나 어쩔 수 없어서 가진 자기 위안의 말이 아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몽상가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저자의 이런 면이 아주 마음에 든다. (당신, 정말 마음에 들어!) 

 가을의 문턱에서 마주한 오감을 깨우는 책이었다. 바람이 서걱거리고 나뭇잎이 물결치고 누군가의 목소리…. 이 모든 것들로 이루어지고 지나는 나의 1초를 놓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이 모여 우리의 삶이 된다. 그러니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으랴.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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