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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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구기행』의 곽재구 시인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인도시인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에서 540일을 보내며 글을 쓰고 그림과 사진을 담았으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향기롭게 느껴진 것은 저자가 시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이해하는 시인의 마음 하나 그리고 사람과 인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보태진 이 산문집은 참 예쁜 책이다.  

 시작인 종이배를 파는 소녀 이야기부터 아,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기다려온 것만 같은 따뜻한 내용이었다. 어쩌면 저자의 시선이 천진난만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은 시인이 아니었으면 뭘하고 살았을까 싶은 감성을 지닌 이였다. 그것도 아주 포근하고 기분 좋은 감성이다. 이를테면 인도의 챔파꽃이나 조전건다 꽃향기 이야기 등을 들으면 절로 오감이 깨어난다.  

 오래전 달맞이꽃의 향기에 제대로 취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는 그 어떤 달맞이꽃에서도 그때의 달콤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것은 내가 변해서인지 환경이 변해서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아무튼, 기억 저편에 숨어 있던 향기와 색 등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이것은 순전히 독자의 오감을 뒤흔드는 저자의 필력과 감성 덕분이다. 달빛의 냄새가 난다는 조전건다 꽃향기라는 문장과 마주하니 행복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래서 시인은 지상의 천사라고 불리는 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특히 인도에서 만난 이들과의 인연을 지그시 풀어두는데 어쩐지 현실적이지 않은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곳이 인도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자가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집안일을 하는 마시들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만약 우리나라에서였다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두 명의 마시를 통해 그가 고민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보니 참 재미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상대의 처지에서 바라보며 의심하지 않고 그런 의심마저도 나를 탓하며 동정심과 따스한 마음이 앞설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델리 역으로 가는 내내 정류장 가는 길을 모두 제각각으로 대답하던 인도인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신기한 것은 모두 제각각인 그들의 답변 속에 혹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때 문득 찾아온 것입니다. 삶이란 원래 이런 거야. 이렇게저렇게 다 헤맨 뒤에야 지혜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거라구, 라고 말하는 인도인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제각각 다른 길을 일러주던 인도인들의 모습이 전혀 밉거나 당혹스럽지 않았습니다.

 

ㅡ345쪽, 다른 길로 가는 법에서 일부 발췌.

 위에 인용한 글만 읽어도 저자의 마음가짐이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런 푸근한 마음을 가진 이를 좀체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늘 이렇게 마음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게 더 지배적인 이유일 것이다. 자포자기나 어쩔 수 없어서 가진 자기 위안의 말이 아닌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몽상가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저자의 이런 면이 아주 마음에 든다. (당신, 정말 마음에 들어!) 

 가을의 문턱에서 마주한 오감을 깨우는 책이었다. 바람이 서걱거리고 나뭇잎이 물결치고 누군가의 목소리…. 이 모든 것들로 이루어지고 지나는 나의 1초를 놓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이 모여 우리의 삶이 된다. 그러니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으랴.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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