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 - 운영전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
조현설 지음, 김은정 그림 / 나라말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시대를 불문하고 지금까지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꼽으라면 단연 <로미오와 줄리엣>을 들수 있을 것이다. 유독 사랑 중 에서도 이들의 사랑이 문학적인 비평을 넘어선 애정이 담긴 관심과 함께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것은 아마 이루어 지지 못한 비극적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 끝이 아닌 영원불변의 사랑으로 남기고 싶은 독자들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일것이다.

원전이 <운영전>인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방울> 또한 궁년인 운영과 김진사의 비극적 사랑을 담고 있으면서 우리의 고전중 손꼽힐만한 문학성을 가지고 있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셰익스피어처럼  원전 자체에 명백한 작가의 이름은 될수 없는 것은 아타까운 일이다.

<운영전>깊이 읽기에 나와 있듯이 사대부로 추정되는 작가가 남녀간의 사랑이 '헛되이' 지어내고 '소일거리'로 읽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게 생각했던 시대적 이유로 운영전과 같이 작자 미상으로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구전이 꽤 많은 모양이다.

작품의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날, 안평대군에게 인사차 온 김진사는 수성궁에서 열명의 궁녀중 운영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운영또한 김진사 곁에서 먹을 갈던 중 초서를 휘갈겨 쓰던 김진사의 붓끝에서 튀어온 먹물 한방울이 손가락에 떨어지자, 오히려 씻지 않고 정표인양 바라보는 마음이 벌써 김진사를 향해있다.

서양의 많은 고전이 무도회장과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남녀간의 만남이 이루어 진다면,  남녀의 공식적인 만남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던 우리의 고전에서는 그 만남 자체가 극적이 요소가 될것이다.

소박하고 단정하기까지한 김진사와 운영의 만남은  주인의 집에서 먹을 갈던 궁녀와 사대부의 젊은 진사로써의 만남 이지만, 서로 곁눈질 두세번 만으로 마음이 통하는 것을 보면 인연이라는것은 순간의 스침만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는것같다.  그도 그럴것이 김진사는 열살때 부터 시를 잘 짓고 글을 잘 써서 이름이 났고 열네살이라는 나이에 과거에 합격할 만큼 총명한 젊은이이고 운영은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으며 수성궁에 있는 열명의 궁녀 가운데서도 가장 시를 잘 짓고 외모 또한 출중했으니 이러한 선남 선년의 만남이라면 그 만남이 금기에 묶여 있으면 있을수록 서로에 대한 호감은 배가되는 모양이다.

윤리적 규범에 묶여 운영을 향한 마음을 숨길수 밖에 없었던 안평대군의 사랑또한 안타깝고 시대적 제약에 얽매여 비극으로 끝맺은 두 주인공의 사랑은 애절하기 까지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춘향전>이나 <콩쥐팥쥐전>과 같은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행복한 결말보다는 더 설득력을 가지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조현설이라는 현시대 작가에 의해 재 탄생된 고전이지만, 고즈넉하게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두 남녀의 사랑과 시대적 배경을 잘 담고 있는 수묵화의 삽화가 고전을 더욱 고전답게 한다.

비록 내용의 치밀함이나 박진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던 고전을 이렇게 쉬운말로 바꾸어 누구나 읽을수 있고 서양의 고전과는 차별화되는 우리의 정서속에 녹아있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  향기 그윽한 국화차 한잔을 마신것 같다.

아직도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작가 미상의 고전들이  하루 속히 대중화가 되고 더 나아가 세계속의 한국문학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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