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 Sunshine... 굳이 Secret Sunshine이라고 쓴 것은 정말로 나는 빛이 그리웠던 까닭입니다. 어느날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되어지던 날부터 나는 너무도 힘에 겨웠습니다. 쓰러질것처럼 아팠지만 쓰러져서는 안된다고 버텨냈습니다. 하지만 내가 버텨내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당신은 아실겝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아니 말할 수 없었던 그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던 날중에서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지요. 내게로 오라고, 내게로 와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다면 내가 다 안아주리라고..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비록 당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당신이라면 나의 아픔을, 나의 힘겨움을 알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나의 잘못된 판단이 원인이 되어 하나남은 아이마져 잃어버렸을 때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었던 그 아픔을 당신이라면, 정말로 당신이라면 어루만져 줄 수 있을거라고 믿어보기로 했던 겁니다. 그렇게해서 내가 평안을 찾았느냐구요?  아니요. 내가 돌아보건데 나보다는 당신에게 입을 빌려주었던 사람들에게 더 많은 평안이 찾아온 듯 합니다. 그들속에, 그들의 평안속에 나도 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열심히 목이 터져라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가슴을 쥐어 짜내며 당신께 매달려 보았습니다. 그렇게해서라도 나는 내 속에 뭉쳐있던 그 무엇을 깨뜨려보고 싶었던 겁니다. 아이를 유괴하고 아이를 죽이고 그마져도 모자라 나까지도 이렇게 죽여버린 그 사람이 너무도 미웠지만 당신이 가르쳐준 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을 용서해주리라 마음먹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찾아갔는데... 그사람이 그러데요? 당신이 벌써 나를 용서했다고. 그래서 자신은 평안을 찾았노라고.. 그 순간 내 가슴이 무너져내리던 소리를 당신은 들으셨겠지요? 그 순간 내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간신히 버텨내던 그 힘마져 당신에게 빼앗겨버린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최소한 썩은 동아줄만이라도 내게 내려주었다면 나는 이토록 다시없을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감히 내가 어떻게 당신께 도전장을 던지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끌어안아주신다는 당신께 말입니다. 당신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건 아닙니다. 단지 내가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작은 이유마져 당신이 빼앗아갔다고만 말하려는 것 뿐입니다. 당신을 향해 손가락질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 참담함을 비켜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내게는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지요. 어디한번 해 보자구요. 내게 필요했던 건 단지 한 줌의 빛이었을 뿐이라고....

 

사랑이야기라고? 아니 이것은 절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종교이야기일까? 아니 종교이야기도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무엇이 이토록 가슴 저미는 서글픔을 안고 내게 다가오는 것일까?  여자의, 그 작은 여자의 절망속에 살며시 스며들어 시린 가슴 호호 녹일 수 있는 그런 한 줌의 빛이 너무도 절실했다. 세상속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만 말려들어가는 달팽이같은 그녀의 일상.. 그 일상속에 한줄기 빛이 스며들어와 흙을 비추고, 마침내는 무언가를 싹틔우리라고 예고하듯 보여지던 그 마지막 장면속에서조차 그녀는 허허로운 눈빛을 버리지 못했었다. 차마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스크린을 바라보며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고,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껴보기도 했고, 철없는 안타까움에 주먹을 꼭 쥐기도 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를 외쳐대던 여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내게로 전해져왔던 그 무엇을 거부하고 싶지가 않았었다. 설정들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집었다 엎었다하는 그 설정들속에서 묘하게 분위기를 잡아가는 여배우의 그 능청스러움이 정말 놀라웠다. 때로는 가볍게 혹은 무겁게, 때로는 간단하게 혹은 복잡하게, 때로는 행복하게 혹은 불행하게... 삶이라는 건 수시로 바꿔써야만 하는 가면같은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순간순간 상황에 맞춰 나를 속일 수 있는 그런 가면을 몇개쯤은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거라고.. 진실 혹은 거짓.. 하지만 그 진실도 거짓도 모두 내 안에 있는 것을 어찌할까? 내 안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여러개의 시선을 생각한다. 어느 시선과 마주보아야 하는지 그 선택권은 오로지 나에게만 있을 뿐.. 그녀에게 비밀스럽게 찾아들었던 그 빛을 그녀가 느낄 수만 있다면...

한가지 묻고 싶었다. 내가 나를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사람이 사람을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관계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모든 이념은 궁극적으로는 한통속이다. 그런데 그 이념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과정만이 사람마다 다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통속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싶어하는 우리네의 아집에 대하여 잠시 생각한다. 이 영화속에서 녹여냈던 개신교의 풍속도가 참 재미있다. 그 끊임없는 열정들이 참 대단하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이나 열광하게 하는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랑이야기도 있었다. 그처럼 아파하는 한 여자의 가슴속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바람처럼 곁에 머물던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무시한다면 영화속의 그 남자가 너무 슬퍼하겠다. 알아달라고 부탁하지도 않고, 내가 있지 않느냐고 소리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곁에 머물러 자신의 존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그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튀지 않았기에 더 애절했던 것 같다.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여자의 아픔과 어울려 묘한 대비를 이루던 그 사랑이야기를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이 영화,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않아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멋졌다! 비밀스럽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들어왔던 그 한줄기 빛의 여운이 참 길다. Secret Sunshine.../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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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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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따분하고도 지루한, 그야말로 희망이라는 건 아예 찾아볼 수 없을것만 같은 마을 엔도라의 식품점 점원 길버트 그레이프.  답답하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는 길버트에게도 꿈은 있었다. 단지 그 꿈을 향해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뿐. 어느날 눈앞에 나타난 베키라는 소녀로 인하여 그가 다가가는 꿈의 세계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채 살아가는 길버트의 가족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슴이 먼저 답답해져왔다. 책장을 찢어서라도 그들을 그곳으로부터 탈출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겨우 탈출했다고 생각했었던 길버트의 작은누나 제니스와 형 래리조차도 완벽한 탈출을 꿈꾸며 살아간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 탈출만이 최선책이 아님을 알게 되어버렸다.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리고 이 책을 손에 잡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던 순간 나는 오래전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났다. 아이큐가 75라던 포레스트가 단 하나의 소질이었던 달리기로 인하여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선사해주었던 영화. 어쩌면 이 책을 쓴 사람 역시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청년을 통하여 우리에게 희망이란 메세지를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떠나고 싶다는 느낌만을 전해주는 가족들 곁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지옥같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의 깊은 아픔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것들을 알아채기까지는 좀 오래 걸린듯 하다. 이런 류의 글을 읽다보면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까닭이다. 내 속을 훤히 드러내는 것만 같아서 알 수 없는 두려움마져 느끼게 된다.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게 현실일까?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게 나의 시간들일까? 떠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조건적인 일탈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은 아닐것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이제는 더이상 어쩌지 못할 정도로 살이 찐 길버트의 엄마. 엄마가 움직일때마다 마루가 휘어진다는 그 설정이 내게는 너무나도 잔인하게 다가왔다. 모두를 버리고 망연히 목을 메어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던 것일까? 오래 살지는 못할거라던 지적장애아인 막내 어니가 열여덟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싶을 뿐이라고 외쳐대던 그녀는 마음속에서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남편을 향해 쉴새없이 원망을 퍼붓고 있었지. 자신으로부터의 빚장을 내려버려 아무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린 그 엄마가 곁에 남은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안스럽게도 보였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엄청 화가 났을 것이다. 이 집구석이 너무 너무 싫다고 외쳐대던 동생 엘렌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너만 그런건 아니라고 말하던 길버트의 그 가슴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제는 떠나야겠다고 옷가지를 정리하던 동생에게 말없이 아버지의 사진을 건네주던 누나 에이미는 가슴속에 무엇을 품고 살아냈던 것일까?

베키.. 그녀는 정말 길버트의 말처럼 천사였을까? 아니 내게는 이 책을 쓰고 있는 저자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를 알아챈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의 관심과 배려가 함께하지 않고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계속 웃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아무도 네가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언젠지 기억하지 못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222쪽)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길버트 뿐일까마는  베키의 말을 통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조금씩의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길버트처럼 한걸음씩 빛을 향해 다가가고 싶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 빛으로 인도해주고 싶어하는 그 순간에... 울지 못하는 사람만큼 힘겨운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의문점을 찍어본다. 그 울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무너져내릴까봐 차마 울지도 못한 채 바위같은 응어리를, 자신을 향한 원망을 안고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지독하고 잔인한 일임이 분명한데도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그 무거움이라니.

"너는 우울해 보였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너는 감정을 드러낼 때가 멋있거든."
"너는 스스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해. 너 자신을 좋아하질 않아. 심지어 너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아."
"너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도망치려고 애쓰는데, 나한테서는 얼마나 빨리 도망치겠니." (359쪽) 


이십대의 어느날을 기억해낸다.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물었었지. 지금 원하는게 있느냐고. 지금 가장 갖고 싶은게 무엇이냐고. 그때 나는 아마도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사람이요! 내 대답에 그 사람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럼 나를 가지면 되겠네? 그렇게 해줄수 있나요? 다시 물었더니 그 사람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텐데요..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의 눈을 통해서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나요? 내가 되물었을 때 그 사람의 웃음이 사라지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베키같은 그런 사람을 우리는 누구나 꿈꾸고 원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늘 그게 그거같은, 그날이 그날같은 밋밋한 삶속에서 자극과 동시에 도움이 되어주는 그런 손길이 있다면...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우리는 아니 나는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내가 좋은 것만 느끼며 살아가려하는 까닭인지도 모를 일이다.

"너는 자신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감정. 길버트, 사람이라면 그게 있어야 해"
"넌 오래전에 감정을 느끼는 걸 그만뒀어.........."

"그래, 그건.... 왜냐하면 그건 음, 내가 살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야. 모르겠어?"
"나도 느껴!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322쪽)

 살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라던 길버트의 외침소리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귀에 들려오는 것 같다. 살려고 기를 쓰기에 우리가 잃어버린 아니 포기해버린 것들이 얼만큼이나 될까? 자신마져 속이며 살아가야하는 세상이 너무 처절할 뿐이다. 아무도 그렇게 살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이곳을 떠나 자유로워지는 꿈, 아니면 자기만 그대로 남아 있고 가족들은 전부 다른 사람들로 바뀐 그런 꿈.. 그런 꿈만이 길버트의 꿈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같이 자라고 같이 공부했던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친구의 성공을 보면서 일찍 떠나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버트는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그를 스쳐가던 모든 시간들이 그를 조롱하며 제멋대로 흘러가버렸지만 그에게는 마음속에서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토록 묵묵히 참아냈을 것이다. 베키는 단지 그 참아냄에 대하여 도를 넘으면 안되는거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 거대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 자신의 침대로 올라가 잠이 든 엄마는 끝내 세상속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길버트는 원망하지 않았다. 잘났든 못났든 그 사람의 삶을 향하여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엄마의 그 오랜 아픔을 타인들로부터 지켜주고 싶어했던 길버트의 그 속내를 짚어본다. 마지막에 타올랐던 그 불길은 엄마의 아픔을 보호해줌과 동시에 남겨져야 할 그들 여섯남매의 희망 또한 보호해주리라. 다시 시작될 그들의 삶에 대하여 화이팅을 외쳐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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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루이스 레안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너를 정말 사랑했을까>... 차라리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었다. 그토록 열망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곁에 두고서도 느끼지 못하는 그 순간이 너무 안타까웠던 탓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내 <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라고 다시 고쳐 묻는다.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지는 것일테니까.  그녀는 정말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이미 지나간 것들로부터 탈피를 끝마친 채 새로운 모습만을 안아든 두사람. 과연 그들에게 새로운 사랑의 기회가 다시 찾아와 못 다 이루었던 지난날의 사랑을 다시 채워갈 수 있을까?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사랑을 독자에게 맡겨버리고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몬세... 아무것도 부족함없이 지내던 그녀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은 열아홉살 철없던 그녀에게 있어 너무도 아름다웠고 황홀했다. 과감한 일탈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소중하게 안고 다니던 책들을 쓰레기통속으로 던져버릴 수 있게 만들었던 그 첫사랑의 설레임은 끝내 너무도 아픈 기억이 되어 그녀에게서 떠나갔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가버린 어느날 느닷없이 빛바랜 사진 한장으로 되돌아온다. 그 사진 한장으로 인하여 남편과의 이혼을 앞둔, 열아홉의 딸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힘겨운 자신의 현실을 잊은 채 옛사랑을 다시 갈망하게 되는 그녀... 그가 살아있다! 죽었다고, 이미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했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있음을 전해주었던 사진 한장이 그녀의 돌이킬 수 없는 여행의 시작을 예고한다.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그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사하라를 배경으로 했던 소설들이 책장을 넘기듯이 하나둘씩 내 기억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의 한토막들이 넘겨지는 책장위에 오버랩 되어왔다. 어린시절 함께 사랑했으나 소년은 전쟁터로 떠나버리고 그 소년을 기다리던 소녀가 숙녀로 변해가는 과정속에서도, 끝내 첫사랑을 놓치지 않은 채 그 사랑이 머물렀던 흔적들을 찾아다니며 수소문하던 여정을 그렸던 어떤 영화를 생각한다. 어딘가에 그가 살아있다는 자신의  알 수 없는 그 느낌하나만을 믿은 채 시작되어졌지만, 끝내는 첫사랑을 찾아내어 기억을 잃어버린 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 사랑에게 다가가던 그녀의 여린 치맛자락이 바람이 흔들리고 있었지... 우리의 주인공 몬세 역시 열아홉살의 첫사랑 산티아고를 찾아 사하라로 떠나지만 예기치 못했던 상황들이 그녀를 生과 死의 갈림길에 놓이게 했었다. 너무나 많은 세월이 지나가버려 서로를 곁에 두고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두사람의 그 애절함은 이미 마음과 육체가 불구가 되었어도 끝내 놓칠 수 없었던 몬세에 대한 산티아고의 사랑을 속깊이 그려주고 있었던 마지막 장면에서 더욱 절절하기만 하다.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을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휘파람소리라니! 마치도 영화를 보고 있는듯한 그 장면이 오래도록 내 상상을 자극했다.

사하라가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였던가? 그 전쟁을 고스란히 떠안은채 살아가야 했던 서민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참혹하기만 하다.  그 참상이 그들의 종교적인 이념과 맞물려 내게는 너무도 비참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스페인 최후의 식민지 서사하라를 둘러싸고 사하라인들과 스페인, 모로코, 모리타니아가 영토 분쟁을 벌였고, 스페인과 모리타니아가 그곳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물러났지만, 모로코와 폴리사리오 인민해방전선 간의 영토 분쟁은 삼십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니 그들의 삶이 어쩌면 저리도 아프게 느껴지던지...

너무나도 사랑했던 몬세를 만나 보지도 못한채 지원병이 되어 그 전쟁속으로 뛰어들었던 산티아고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까? 수도없이 전화를 했지만 단 한번도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수도없이 편지를 썼지만 단 한번도 답장을 받아볼 수 없었던 산티아고의 절박함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세상 모든것이 그녀였으나 세상 모든것이 고통으로 산화되었을 그 순간들.. 아주 사소한 오해로 인하여 순간의 감정을 이겨내지 못했던 그 이별이 그들에게 남긴 것은 너무도 커다란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쟁속에서 산티아고에게 다시 찾아 온 또하나의 사랑은 그에게는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낯설었지만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꼈던 사하라인들의 그 우직함에 마음이 움직여, 그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쌓아가며 서서히 사하라인이 되어가던 산티아고.. 전쟁의 혼란을 틈타 병영을 이탈했던 그가 사하라인들의 생활속에 동화되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끝내는 그들의 탈출을 돕던 중 폭격에 맞아 팔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이렇다하게 특별한 것이 없었던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게 해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으며 동시에 영화를 한편 보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녀가 정말 그를 다시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색바랜 사진같이 오래되어버린 그들의 사랑이지만 다시 시작되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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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일탈이었을까? 아니 단순히 일탈이라고하기엔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잠시 떠났을뿐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가슴속 우물이 너무 깊기만 하다. 무엇이 그녀를 저토록 무모한 도피행을 감행하게 했을까?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까지 깊은 서글픔에 빠지게 했을까? 아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살아가야 하는 여자에게는 살아가면서, 세월의 무게를 더해가면서 왜 나자신에 대한 감정이 삭혀져야만 할까?  이 책속에서 듣는 말들이 곧바로 내게 가시가 되어 박혀버린다.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엄마가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나 있어?", "엄마는 맨날 집에서 일만 하니까..."  그랬지,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고 맨날 집에서 일만 했지.. 하지만 누구를 위해서였을까? 커가는 아이들이 가슴속에서 하나둘씩 떠나려 발버둥칠때마다 상처를 감싸쥐고 우는 건 엄마였는데... 엄마에게 감히 따지지 마라,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느냐고.

늙은 개 포포가 그만 옆집아이의 목을 물어 죽게 만들고, 어찌되었든간에 그 죽음을 불러왔던 원인을 외면해버린 채 그것이 느닷없는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모든 이들의 시선이 원망스럽게 다가설 때, 단순히 늙은 개 포포를 좀 더 살리기 위해서 그녀가 야밤에 도주를 결행했던 건 아니었으리라.. 그 늙은 개 포포에게는 9년이라는 기한을 다 채우고도 기약되어진 시간이 단 1,2년에 불과했었다. 모든 원망을 뒤로하고 안락사를 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편의 통장과 인감을 훔쳐 도피하던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이 세상이 그렇게 그녀를 내버려둘 것 같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운이 좋았던 것일까? 트럭기사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끝내는 예정되어지지 않았던 장소까지 도피하게 되고 어느새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되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렇게라도 둥지를 틀게되는 그녀의 도피행을 보면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안타깝지만 그녀의 말처럼 그녀와 포포에게는 앞으로의 일은 없을테니까...

남편을 위해 시간을 버렸고,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모두 써버렸던 그녀에게 남은거라곤 '주부'라는 이름의 껍데기뿐이다. "혼자 사는 게 살벌할 때도 있지만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고독한 건 더 살벌해요" 사정이 있어 다른 곳에 살 수 없는 인간만이 정착하는 곳, 영혼의 영역.. 하지만 모두가 그곳을 전원주택이라고 부르는 곳에 그녀가 떠밀리듯이 들어왔을 때 이웃집 남자 쓰쓰미는 그렇게 말했었다. 자신이 세를 내고 빌렸던 그곳에서 그야말로 아들집에는 있을 자리가 없었던, 그랬기에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가 살았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굳이 그녀가 그곳을 떠나지 않고 눌러 살았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그녀에게도 자살한 할머니처럼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어느날 문득 그녀를 찾아왔던 것은 평온...이라는 거였다. 자신만의 영역에서 아무것에도 쫓기지 않고 자신과 맞닥뜨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다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하여 다시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에 대하여..

익숙해져 있던 것들을 모두 버렸다. 남편도 아이들도... 나에겐 가족이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던 그녀, 타에코의 가슴속에서 서서히 자라나던 평온함이 뿌리를 내릴 즈음, 급격하게 노화가 시작되는 포포.. 그녀의 마지막 거처가 너무도 안스러웠다. 마지막 거처에 와서 둥지를 틀기 전까지는 그녀와 포포는 별개의 의미였지만 그 둥지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하나가 되어갔다. 늙고 병든 포포처럼 죽어가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래, 세상인심이 그렇지 뭐.. 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테니...  함께 있다는 그 느낌하나만으로도, 체온과 눈길만으로도 소리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그녀 타에코와 포포.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배신하지만 개는 배신하지 않아요... 쓰러진 그녀를 병원으로 이송해놓고 쓰쓰미가 불러모았던 그녀의 가족들은 과연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수술을 받고 이미 1,2년밖에는 살 수 없는 아내였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그렇게까지 되도록 내버려둔 남편에 대하여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쓰쓰미의 예감처럼 어쩌면 그남자는 그녀를 떠나보낸 후의 자신의 삶을 설계중이었을것이다. 참 씁쓸했다. 그녀를 향한 애잔함이 더 깊어지고 말았다.

묵은지처럼 시어빠진 후에야 꺼내어 보게되는 여자의 시간들, 아니 주부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의 시간들... 그 시간들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느냐고 되물어올 수도 있겠지만 누가 그렇게 살라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주부라는 울타리일테니 어찌하랴... 작금의 현실을 바라볼 때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울타리가 견고하게 보이는 것을...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남편과 주부는 뗄래야 뗄수 없다. 아이와 주부 역시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설혹 꿈을  키우기 위해서, 아니면 그저 주부로써 지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자신만의 삶을 살수 있는 맞벌이를 한다고해도 그 주부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고무줄처럼 늘여진 그 울타리안에서 모든 일이 진행되어지는 것일테니 말이다. 묵은지처럼 시어빠진 시간이라해도 맛있게 나눠 먹을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주부는 갖고 싶었을게다. 그녀, 타에코의 가슴속 깊디 깊은 우물에서 끌어올려진 그 시간들이 너무도 서글프다.

이 작품속에서 만나는 타에코의 도피행은 단순히 그녀 하나만의 문제는 아닌듯 보여진다. 주부라면 정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니 어쩌면 타에코처럼 살아가고 있는 주부들도 많을 것이고, 타에코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주부들도 많을 것 같다. 소통의 부재가 오직 한곳뿐일까? 함께 있으되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함께 있으되 서로의 마음을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소통의 부재... 문득 일전에 읽었던 책의 한귀절이 떠오른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사랑이라던...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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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 다가왔던 느낌 하나가 오래도록 곁에 머문다. 영화의 마지막 텍스트들이 올라가고 있는데도 그 느낌이 여전히 곁에 남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절한 수애의 목소리를 따라 나도 같이 흥얼거리고 있음을 알아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후유~~ 한숨!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왜 흥행패를 쥐지 못했을까? 너무 무겁다. 이 영화가 끌어안고 있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 함께 가기에는 좀 버겁지 않았을까 하는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도 평범한 소재속에 숨겨둔 것들이 참... 많다. 숨은그림 찾기를 하듯이 그렇게 하나씩 내게로 다가왔던 그 느낌들을 왠지 놓치고 싶지 않았다. 6.25... 훌쩍 사십년을 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어머니 아버지가 겪었던 전쟁의 힘겨움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속에서 볼 수 있는 월남전의 참상을 잘 안다는 말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에 푹 젖어버린 까닭은 수애라는 배우가 연기해냈던 한 여자의 기약없는 여정이 너무도 서글펐던 까닭이다. 3대독자인 남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따로 있었고 자손을 이어야 할 아니 자손을 이어주어야 할 의무는 그녀에게 있었다.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군에 간 아들에게 며느리를 보내는 우리의 할머니야 그런 세상을 살아왔던 까닭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끝내는 시어머니 대신 월남으로 떠나야 했던 그녀의 선택은 정말로 처절했다.  한번 시집갔으면 죽어도 그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던 친정아버지의 굳센 등을 바라보고 되돌아섰던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귀같은 무언가가 자리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도대체 나는 어떤 존재인가! 
 
월남전의 이야기야 수도없이 그려진 까닭에 뭐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성을 자아낼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하게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때문이다. 전쟁앞에서 과연 우리 인간의 실체는 무엇인가! 전쟁속에서 찢겨진 채 사라져갔던 또 하나의 우리들.. 그 모습을, 그토록 아픈 모습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차라리 속 시원하게 외쳐주었으면 싶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그렇게 숨겨놓은 그 느낌들이 너무도 깊어서 아니 너무도 아파서 찾아내고 싶지가 않았다. 무엇이 그녀를 그 전쟁속으로 밀어넣었는가 묻고 싶었다. 왜 그녀를 그 전쟁의 늪속으로 밀어넣고는 살 수 있다면 어디 한번 살아보라고 조롱하듯이 바라보고 있는가 말이다. 그녀는 과연 살아돌아올까?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무사귀환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조차도 없다. 아주 철저하게 버려진 한 여자 순이... 순진한 시골여자 순이가 밴드 싱어 써니로 변해가는 과정만을 보여줄 뿐이다. 써니가 되어가면서 앙다물어야 했던 그녀의 입술만을 은근슬쩍 비춰주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또하나의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 언제고 기회만 되면 튀어나올 준비를 하는 내 속의 나와 마주칠 날이 언제인지도 모른 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왠지 서글프게 다가왔던 이 영화.. 순이라는 여자를 통해서 영화가 말하고 싶어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해 생각한다. 변화속에서 변화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변화를 수용했음에도 속도를 맞추지 못해 질질 끌려가는 한 세대에 대해 생각한다. 참... 아프다, 참... 잘 만들었다. 그런데도 사람들 가슴속에 흔적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야 한다는게 왠지 안타깝다.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세월이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우리곁에 맴도는 전쟁이야기... 산다는 건, 어쩌면 전쟁인지도 모를 일이다. 처절하도록 가슴 아픈 외로움을 지닌 채... /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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