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따분하고도 지루한, 그야말로 희망이라는 건 아예 찾아볼 수 없을것만 같은 마을 엔도라의 식품점 점원 길버트 그레이프.  답답하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는 길버트에게도 꿈은 있었다. 단지 그 꿈을 향해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뿐. 어느날 눈앞에 나타난 베키라는 소녀로 인하여 그가 다가가는 꿈의 세계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채 살아가는 길버트의 가족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슴이 먼저 답답해져왔다. 책장을 찢어서라도 그들을 그곳으로부터 탈출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겨우 탈출했다고 생각했었던 길버트의 작은누나 제니스와 형 래리조차도 완벽한 탈출을 꿈꾸며 살아간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 탈출만이 최선책이 아님을 알게 되어버렸다.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리고 이 책을 손에 잡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던 순간 나는 오래전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났다. 아이큐가 75라던 포레스트가 단 하나의 소질이었던 달리기로 인하여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선사해주었던 영화. 어쩌면 이 책을 쓴 사람 역시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청년을 통하여 우리에게 희망이란 메세지를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떠나고 싶다는 느낌만을 전해주는 가족들 곁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지옥같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의 깊은 아픔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것들을 알아채기까지는 좀 오래 걸린듯 하다. 이런 류의 글을 읽다보면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까닭이다. 내 속을 훤히 드러내는 것만 같아서 알 수 없는 두려움마져 느끼게 된다.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게 현실일까?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게 나의 시간들일까? 떠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조건적인 일탈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은 아닐것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이제는 더이상 어쩌지 못할 정도로 살이 찐 길버트의 엄마. 엄마가 움직일때마다 마루가 휘어진다는 그 설정이 내게는 너무나도 잔인하게 다가왔다. 모두를 버리고 망연히 목을 메어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던 것일까? 오래 살지는 못할거라던 지적장애아인 막내 어니가 열여덟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싶을 뿐이라고 외쳐대던 그녀는 마음속에서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남편을 향해 쉴새없이 원망을 퍼붓고 있었지. 자신으로부터의 빚장을 내려버려 아무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린 그 엄마가 곁에 남은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안스럽게도 보였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엄청 화가 났을 것이다. 이 집구석이 너무 너무 싫다고 외쳐대던 동생 엘렌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너만 그런건 아니라고 말하던 길버트의 그 가슴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제는 떠나야겠다고 옷가지를 정리하던 동생에게 말없이 아버지의 사진을 건네주던 누나 에이미는 가슴속에 무엇을 품고 살아냈던 것일까?

베키.. 그녀는 정말 길버트의 말처럼 천사였을까? 아니 내게는 이 책을 쓰고 있는 저자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를 알아챈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의 관심과 배려가 함께하지 않고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계속 웃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아무도 네가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언젠지 기억하지 못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222쪽)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길버트 뿐일까마는  베키의 말을 통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조금씩의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길버트처럼 한걸음씩 빛을 향해 다가가고 싶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 빛으로 인도해주고 싶어하는 그 순간에... 울지 못하는 사람만큼 힘겨운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의문점을 찍어본다. 그 울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무너져내릴까봐 차마 울지도 못한 채 바위같은 응어리를, 자신을 향한 원망을 안고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지독하고 잔인한 일임이 분명한데도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그 무거움이라니.

"너는 우울해 보였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너는 감정을 드러낼 때가 멋있거든."
"너는 스스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해. 너 자신을 좋아하질 않아. 심지어 너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아."
"너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도망치려고 애쓰는데, 나한테서는 얼마나 빨리 도망치겠니." (359쪽) 


이십대의 어느날을 기억해낸다.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물었었지. 지금 원하는게 있느냐고. 지금 가장 갖고 싶은게 무엇이냐고. 그때 나는 아마도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사람이요! 내 대답에 그 사람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럼 나를 가지면 되겠네? 그렇게 해줄수 있나요? 다시 물었더니 그 사람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텐데요..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의 눈을 통해서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나요? 내가 되물었을 때 그 사람의 웃음이 사라지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베키같은 그런 사람을 우리는 누구나 꿈꾸고 원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늘 그게 그거같은, 그날이 그날같은 밋밋한 삶속에서 자극과 동시에 도움이 되어주는 그런 손길이 있다면...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우리는 아니 나는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내가 좋은 것만 느끼며 살아가려하는 까닭인지도 모를 일이다.

"너는 자신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감정. 길버트, 사람이라면 그게 있어야 해"
"넌 오래전에 감정을 느끼는 걸 그만뒀어.........."

"그래, 그건.... 왜냐하면 그건 음, 내가 살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야. 모르겠어?"
"나도 느껴!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322쪽)

 살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라던 길버트의 외침소리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귀에 들려오는 것 같다. 살려고 기를 쓰기에 우리가 잃어버린 아니 포기해버린 것들이 얼만큼이나 될까? 자신마져 속이며 살아가야하는 세상이 너무 처절할 뿐이다. 아무도 그렇게 살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이곳을 떠나 자유로워지는 꿈, 아니면 자기만 그대로 남아 있고 가족들은 전부 다른 사람들로 바뀐 그런 꿈.. 그런 꿈만이 길버트의 꿈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같이 자라고 같이 공부했던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친구의 성공을 보면서 일찍 떠나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버트는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그를 스쳐가던 모든 시간들이 그를 조롱하며 제멋대로 흘러가버렸지만 그에게는 마음속에서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토록 묵묵히 참아냈을 것이다. 베키는 단지 그 참아냄에 대하여 도를 넘으면 안되는거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 거대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 자신의 침대로 올라가 잠이 든 엄마는 끝내 세상속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길버트는 원망하지 않았다. 잘났든 못났든 그 사람의 삶을 향하여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엄마의 그 오랜 아픔을 타인들로부터 지켜주고 싶어했던 길버트의 그 속내를 짚어본다. 마지막에 타올랐던 그 불길은 엄마의 아픔을 보호해줌과 동시에 남겨져야 할 그들 여섯남매의 희망 또한 보호해주리라. 다시 시작될 그들의 삶에 대하여 화이팅을 외쳐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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