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까? 다가왔던 느낌 하나가 오래도록 곁에 머문다. 영화의 마지막 텍스트들이 올라가고 있는데도 그 느낌이 여전히 곁에 남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절한 수애의 목소리를 따라 나도 같이 흥얼거리고 있음을 알아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후유~~ 한숨!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왜 흥행패를 쥐지 못했을까? 너무 무겁다. 이 영화가 끌어안고 있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 함께 가기에는 좀 버겁지 않았을까 하는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도 평범한 소재속에 숨겨둔 것들이 참... 많다. 숨은그림 찾기를 하듯이 그렇게 하나씩 내게로 다가왔던 그 느낌들을 왠지 놓치고 싶지 않았다. 6.25... 훌쩍 사십년을 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어머니 아버지가 겪었던 전쟁의 힘겨움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속에서 볼 수 있는 월남전의 참상을 잘 안다는 말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에 푹 젖어버린 까닭은 수애라는 배우가 연기해냈던 한 여자의 기약없는 여정이 너무도 서글펐던 까닭이다. 3대독자인 남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따로 있었고 자손을 이어야 할 아니 자손을 이어주어야 할 의무는 그녀에게 있었다.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군에 간 아들에게 며느리를 보내는 우리의 할머니야 그런 세상을 살아왔던 까닭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끝내는 시어머니 대신 월남으로 떠나야 했던 그녀의 선택은 정말로 처절했다.  한번 시집갔으면 죽어도 그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던 친정아버지의 굳센 등을 바라보고 되돌아섰던 그녀의 마음속에는 아귀같은 무언가가 자리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도대체 나는 어떤 존재인가! 
 
월남전의 이야기야 수도없이 그려진 까닭에 뭐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성을 자아낼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하게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때문이다. 전쟁앞에서 과연 우리 인간의 실체는 무엇인가! 전쟁속에서 찢겨진 채 사라져갔던 또 하나의 우리들.. 그 모습을, 그토록 아픈 모습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차라리 속 시원하게 외쳐주었으면 싶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그렇게 숨겨놓은 그 느낌들이 너무도 깊어서 아니 너무도 아파서 찾아내고 싶지가 않았다. 무엇이 그녀를 그 전쟁속으로 밀어넣었는가 묻고 싶었다. 왜 그녀를 그 전쟁의 늪속으로 밀어넣고는 살 수 있다면 어디 한번 살아보라고 조롱하듯이 바라보고 있는가 말이다. 그녀는 과연 살아돌아올까? 하지만 영화는 그녀의 무사귀환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조차도 없다. 아주 철저하게 버려진 한 여자 순이... 순진한 시골여자 순이가 밴드 싱어 써니로 변해가는 과정만을 보여줄 뿐이다. 써니가 되어가면서 앙다물어야 했던 그녀의 입술만을 은근슬쩍 비춰주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또하나의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 언제고 기회만 되면 튀어나올 준비를 하는 내 속의 나와 마주칠 날이 언제인지도 모른 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왠지 서글프게 다가왔던 이 영화.. 순이라는 여자를 통해서 영화가 말하고 싶어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해 생각한다. 변화속에서 변화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변화를 수용했음에도 속도를 맞추지 못해 질질 끌려가는 한 세대에 대해 생각한다. 참... 아프다, 참... 잘 만들었다. 그런데도 사람들 가슴속에 흔적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야 한다는게 왠지 안타깝다.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린 세월이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우리곁에 맴도는 전쟁이야기... 산다는 건, 어쩌면 전쟁인지도 모를 일이다. 처절하도록 가슴 아픈 외로움을 지닌 채... /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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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림이라는 남자..

응큼스러운 저 남자의 눈길을 좀 보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런 눈빛을 할 수 있는건지...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정직한 눈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디 남자뿐일까? 말은 하지 않아도 남자가 여자를,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쳐다보며 흘끔거린다는 게 아마도 연애의 시작이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이 영화에서는 우리 주변을 그토록 흔하게 떠도는 사랑이란 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좋아하니까 함께 있고 싶고, 좋아하니까 만지고 싶고, 좋아하니까 같이 자고 싶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으니 어찌된 일일까?  아주 천연덕스럽게 젖었나요? 를 물으며 나는 지금 일어설수가 없으니 잠시만 더 앉아 있다 갑시다,라는  남자의 그 뻔한 작업멘트를 날린다. 여자는 뭔가로 한방 맞은듯한 황당한 표정을 하면서도 마약하셨어요? 한다. 그런데 그 말도 뻔한 작업멘트의 일종으로 들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저 남자, 6년동안이나 사귄 애인이 있단다. 직업도 선생인데다 생긴것도 잘 생겼으니 나름 여자들 앞에 선다는 거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철철 넘쳐났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여자에게 요즘말로 필이 꽂힌 이유는 무엇일까? 지겹도록 사랑했던 애인보다는 참신(?)하게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었을까? 애들말마따나 맨날 밥만 먹냐? 뭐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지만 이 영화속에서는 그런 감정위에 또다른 진실을 오버랩 시키고 있다.


끝도 없이 훔쳐보는 저 남자의 시선속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여자를 쳐다보고 있는지.. 하지만 무언가 맘과 뜻대로 잘 되지는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창밖만 내다보는 저 여자의 마음속에는 전혀 느낌조차도 없다는 것일까? 굳이 싫은 표정이 없는 걸로 봐서는왕내숭처럼 보여지는데?  그런데 저 여자, 과거가 있단다. 모든 것을 걸고 사랑했기에 같이 자기도 했던 남자에게서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단다. 그래서 남자를 믿지 못하겠단다. 그래서 마음에 빚장을 걸어버렸단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묻고 싶다. 사랑은 오로지 하나뿐일까? 사랑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만 우리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는 게 내 지론이다. 사랑은 앞에 서는 사람에 따라 그 모습과 향기가 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잽싸게 옷을 갈아입게 마련이라는 거다.

 홍이라는 여자..

그렇다면 이 여자.. 내숭의 여왕같은 표정으로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또 궁금해진다. 괜찮은 남자같은데 다시 시작해봐? 에이, 남자라는 게 다 똑같지 뭐.. 어쩌면 이렇게 마음속으로 재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싫지않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미친척 차버리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가끔 한번씩 만나는 순간마다 그 남자의 진실이 보여지게 된다면 여자는 십중팔구는 마음을 열게 되어 있다. 일종의 보상심리처럼.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도 함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그 차갑던 과거를 따스하게 안아주고자 하는 남자의 진실앞에서 여자는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이다. 잘 될까?



결론은 없다. 잘 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잘못된 것도 없다. 언제나 항상 현재진행형인 사회적인 편견앞에서 우리는 결코 무릎 꿇어서는 안된다고 이 영화는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여자라고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걸 주저하지 말라고 말한다. 여자의 'NO'속에는 'YES'가 함께 들어 있다고 착각하는 남자들의 그 어리숙한 선입견에 과감하게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여자로서의 자아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내식대로만 받아들여 해석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따스함보다는 내면의 아픔까지도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며 그것이 또한 진정한 사랑은 아니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 같다. 연애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아주 짧고 굵게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만 연애를 시작할 수도 있고, 자신의 일상 모두를 아끼고 위해주는 그 누군가와의 만남을 꿈꾸며 시작되는 연애도 있을 것이다. 마음이 배제된 만남에 대한 경고장같은 영화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뻔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되는 연애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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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1
츠츠미 미카 지음, 고정아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미국... 세계를 쥐고 흔든다는 나라.. 어찌보면 모든 것의 시작일것처럼도 느껴지는 나라.. 웬만한 개도국이라면 그들의 길을 따라 걸어가지 않을까 싶은 그런... 그런 나라에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요즘의 중국을 떠올려보게 된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굴욕에 대하여, 그리고 그와 똑같은 상황을 겪어냈을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하여.. 그랬던 우리도 지금은 값비싼 임금앞에 무너져 많은 것들을 빼앗기고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보고 듣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듯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대한민국으로 찾아오는 타국인들의 삶을 매스컴을 통해 바라볼 때마다 지구촌이라는 단어앞에 무안해지곤 했었던 기억도 있다. 무엇이 우리들에게 이처럼 가혹한 현실을 만들라하는가!

책을 읽으면서도 가슴 한쪽에서 스멀거리는 분노를 어쩌지 못한 채 애를 태워야 했다. 힘없는 나라 약소국의 서러움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저들의 이해득실앞에 무너져가는 우리의 아이들이 떠올랐던 까닭이다. 비만아 대책... 결국 저들의 이윤만을 따지는 시장원리에 멍들던 기업들이 희생양을 찾아 저소득층이나 개도국으로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은 그리 놀랄일도 아니겠지만 그런 것들을 너무도 무책임하게 저항감없이 받아들이는 입장에 대해서는 개탄해마지 않을수가 없다는 말이다.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란 나라, 아니 이윤을 추구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들이 가혹하리만치 냉정하기만 하다. 평균 개인소득이 하위에 속하는 저소득층의 자녀들에게 실시되는 무료.할인 급식제도의 잘못된 점들에 대하여 정부가 책임지기를 꺼려한 채 외면해버렸다는 사실조차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건 정말 슬픈일이 아닐수가 없다.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주제를 나름대로 대략 기억해보자면 서글프게도 우리의 현실과 맞닥뜨려지는 점들이 참으로 많다.  푸드편을 보자면 이렇다. 빈곤이 만들어낸 비만이라거나  왜 빈곤층의 아이들에게 비만아들이 더 많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남의 이야기만도 아닌것 같다.  패스트푸드제품에 찌들어가는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아프리만치 따끔한 질책처럼도 느껴지니 말이다.  그토록 잘산다는 선진국의 대표급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조차 기아에 허덕이는 국민들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은 모순일까? 아니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는 저들의 모습일 뿐일게다.

얼마전 미국을 강타했던 뉴올리언스의 재난을 기억한다. 그 이재민들이 지금은 고향땅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버려졌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세계에서 제일 비싼 의료비로 인하여 중류층이 몰락해가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병원이 하나의 주식회사처럼 운영되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앞에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균형적인 식사와 운동, 수면으로 충분히 지켜낼 수 있는 건강마져도 의료비가 너무 비싼 나머지 건강보조제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씁쓸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국가가 도와주지 않으니 아프면 병원가서 치료할 엄두조차내지 못한다는 그들.. 그 건강보조식품의 폐해가 날로 늘어만가고 있다는 데 우리는 어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건강보조식품을 대하는 우리의 강박관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가시스템이나 사회적인 구조가 그들과 똑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지는 결과가 비슷한 걸 보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저들을 닮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까닭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바로 교육에 대한 문제였다. 전쟁마져도 민영화되어가는 저들의 속셈을 보면서 왠지 소름이 돋기도 했다. 학자금 대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저들의 젊은이들이 이제 더이상은 오갈데가 없어 부당 징병 정책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여 졸업장을 받았다한들 제대로 된 일자리하나 구하기가 너무도 힘겹다는 저들의 젊은이들.. 하지만 그것은 저들만의 문제는 아닐것이다.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조차도 어쩌면 그 절차를 밟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탈출하고자 혹은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군인이 되어야만 했던 젊은이들이 결국은 병자가 되고 낙오자가 되고 노숙자가 되어 처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그 밑바닥에는 저들을 보살피고 이끌어주어야 할 국가의 어긋난 시스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말앞에서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라고해서 저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싶었던 때문이다.  민영화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우리의 국가적 시스템도 모른척 할 수 없었던 때문이다. 카드빚에 허덕이는 우리의 젊은이들만을 탓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민영화된 전쟁’.. 세계 여러나라의 근로 빈곤층들이 지탱해나가고 있다는 전쟁의 현실.. 저 밑바닥에 숨어 자신의 실체는 드러내지 않은 채 하나의 기업이라는 이름만을 내세워 힘없고 돈없는 세계의 빈곤층들을 겨냥하여 끝도없이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저들의 악마적인 모습.. 그 악마가 내미는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는 그들의 서러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저들의 웃음뒤에 숨어 버린 나라의 이해타산적인 비굴함을 어이할까.. 개인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정말 괜찮은 일자리가 있는데 말이죠”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파견이라는 순수한 비즈니스입니다”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고 겨우겨우 풀칠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전 세계의 빈곤층을 향한 저들의 비열함앞에서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던 말이 떠올라 내심 한숨을 내쉬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하나의 거대한 눈길.. 1984라는 소설속의 빅브라더.. 참으로 무서운 현실앞에서 무엇을 탓하고 무엇을 원망하랴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또 왜일까?  어느 누구도 이런 세상을 만들라고 등떠밀지 않았을거라는 사실이다. 테러보다 무서운 민영화라는 말을 들으면서 앞으로 더 힘겨운 세상을 살아내야 할 우리의 아이들을 어이할까 싶었다.

저자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중요한 것은 그 적을 결코 잘못 알아서는 안 되는 것 이라던 말이 가슴을 찌른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번지르르함보다는 그 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성질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살 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가적 시스템에 손발이 묶인 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서도 저자는 아프게 꼬집고 있다.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인간이 '생명'이 아니라 '상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결코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책장을 덮기전 저자가 말하고 있는 뼈아픈 결론을 여기에 옮겨 적으며 다시한번 기억해 두고자 한다. 그 가슴아픔에 대하여... /아이비생각

무지나 무관심은 '바꾸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공포를 낳고, 언젠가는 무력감이 되어 우리의 힘을 뺏는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문다면 우리는 패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가 아이들에게 있어서 절망의 시작이 된다. 현상이 괴로울수록 우리는 시험당한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차세대에게 건네줄 수 있는 것은 한없이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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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 그리고나면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늘리기 위한 기나긴 협상이 시작되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할아버지가 작은나무에게 들려주었던 저 이야기속에는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런데 나는 가끔씩 의문점이 생기곤 한다. 종종 다큐멘터리라는 공간속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습때문이다. 그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함께 숨쉬고, 자연속에서 자연이 주는 것만을 받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의 사회도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규칙도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도 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그들에게도 모두 있다는 말이다. 굳이 없는 것을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감히 문명이라고 말하는 그런 것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토록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 책은 그다지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선택했던 책이었다.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류의 이야기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작은나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책속의 소년 작은나무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나무의 발소리와 눈길을 따라 자연속에서 생활하다보면 우리가 정말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한번 돌이켜 보게 된다.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관념으로 본다면 사생아라는 테두리에 갇혀 너무도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내야 했을 작은나무가 체로키족인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숲으로 간 건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할아버지를 따라 산에 올라 어두워지는 밤하늘에 하나둘씩 별들을 그리며 잠이 들 준비를 하는 산과 아침을 깨우며 벌겋게 솟아오르는 태양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작은나무는 그야말로 축복받은 아이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두개의 마음을 갖고 있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어서 몸을 위해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 써야하니 자기 몸이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하지..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것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단다. 영혼의 마음이지. 만약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다른 사람을 해칠 생각을 한다면 그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작아지게 되지. 영혼의 마음을 잃게 되면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말아..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면서 영혼의 마음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들라던 할머니의 교육.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으니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던 할머니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작은나무가 아닌 내 마음속을 아프도록 깊게 각인이 되었다. 영혼의 마음이 밤톨만큼 작아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도 귀한 가르침 앞에서 나는 숙연해졌었다. 우리가 살면서 우리 곁을 스쳐지나는 계절들을 온전히 느끼면서 살아가는 순간이 얼만큼이나 될까? 그 한순간마다 함께 호흡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또 얼만큼이나 갖고 살아가는 것일까?  단순히 계절만이 아니라 우리곁에서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해 얼만큼이나 제대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단순히 살기에 바빠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미안하고 죄스럽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작은나무에게로 전해지는 자연의 속삭임을 한번쯤은 온전하게 나도 느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수박을 두드려볼 때 알아두어야 할 점...'팅' 소리가 나면 아직 하나도 익지 않은 것이고, '탱' 소리가 나면 지금 익고 있는 중이며, '텅' 소리가 나는 수박이라야 완전히 익은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진리가 그러하듯이 이렇게까지 해도 수박을 잘랐을 때 원하던 결과를 얻을 가능성은 항상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작은나무는 과연 '팅','탱','텅' 소리에 얽힌 삶의 진리를 터득했을까? 그렇게까지 하고도 원하는만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며 살아왔을까? 세상의 모든 일중에서 내가 원하는만큼의 결과를 안아들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설령 원하는만큼의 결과였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백프로 만족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작은나무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는 욕심버리기였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만큼만 갖기.. 지금 필요한 것만 갖기..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고 아주 작은것들조차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이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을게다. 하지만 자연속에서 숨을 쉬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는 작은나무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렇게 아름답게 커가고 있던 작은나무에게도 시련이 찾아온다. 사회라는 커다란 악마가 의무라는 올무를 작은나무의 목에 걸었던 거다.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도 않고 아이를 혹사시키고 있다고  고아원에 수용시켜버린 것이다. 문득 할아버지와 함께 숲속에서 생활하던 하이디라는 어린 소녀를 떠올린다. 그 소녀가 숲을 떠나 문명의 그늘에 가려졌을 때처럼 그랬다면 괜찮았을까?  느닷없이 자신을 가둔 그 고아원에서조차 작은나무는 오래된 떡갈나무와 대화를 나누며 바람을 통해 자신이 있던 숲의 소식을 전해 듣지만 작은나무에게 가해지던 그 참혹한 매질의 흔적때문에 나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만약에 작은나무가 다시 숲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면 내 가슴속은 아마도 눈물바다가 되었을 것만 같다. 작은나무야 미안해!

행복했던 불행했던 계절은 바뀌고 세월은 간다. 죽음의 계절속에서 사랑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게 되는 작은나무가 나는 너무도 안스러웠다. 아직은 배워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데... 아직은 곁에 있어주며 안아주어야 할 사람이 필요한데... 하지만 작은나무는 많이 울지 않았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작은나무의 곁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거라고.. 모든 일이 다 잘될거라고..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남은 겨울을 그곳에서 보낸 작은나무는 봄이 오자 길을 떠났다. 아득히 먼 서쪽 산들 너머에 있다는 인디언 연방을 찾아서. 가면서 함께 동행했던 두마리의 개 블루보이와 리틀레드를 묻어주게 되지만 작은나무의 가슴속에는 그가 떠나왔던 숲의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줄기의 희망조차도 버려지지 않은 채...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는, 자연이 부여한 축복의 시간이다. 이렇게 정리해나갈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했어야 했던 온갖 일들과.... 하지 않고 내버려둔 온갖 일들이 떠오른다. 가을은 회상의 시간이며.... 또한 후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하지 못한 일들을 했기를 바라고... 하지 못한 말들을 말했기를 바란다.... 나의 조그만 버릇중에 하나가 책을 잡으면 조급증이 인다는 것이다. 빨리 읽고 싶다는 조급함에 어떤 때는 숨도 쉬지않고 읽어내려갈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떻게하면 좀 더 늦게 읽을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났다. 한장 한장 넘겨지는 책장마다 왜 그리도 아쉬움이 느껴지던지... 그 아름다운 말들을 한번 더 읽고 또 읽고... 그 아름다운 문장속에 숨겨져 있는 풍경과 의미들을 조금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은 또 왜 그렇게 컸었는지... 숲을 떠나 어쩔 수 없이 이 문명의 사회속으로 되돌아와야 할 작은나무에게 전해 줄 따스함 한자락을 우리가 품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작은나무가 들려주었던 그 따스함에 대해 우리가 먼훗날까지 잊지않고 간직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살 맛나는 세상이 다시 펼쳐지지 않을까?  이 가을에 작은나무를 만난 것이 나에겐 행복이었다. 작은나무와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간들 또한 나에겐 행복이었다.  그 따스함을 내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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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이 제대로 들어난 소재.. 그러나 그런 불륜조차도 포옹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
우리의 삶은 예정되어지지 않음의 연속이다. 그랬기에 다가오는 모든 순간들이 희열 또는 아픔일게다.
처음부터 내것이라고 넙죽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모여 종내는 모두 내것으로 산화되어져 버리고마는.. 그래서 아픔일 수도 있고 행복일 수도 있는.. 그래서 넙죽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더 망설여지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이 너무도 싫었던 때가 있었다. 사랑이 다시 찾아오면 오던 길로 가리라던 어느 여가수의 노래처럼 그렇게 저기 멀리쯤에서부터 그 사랑이 보여지는 것이라면 차라리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은데... 알 수 없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가슴속을 두드리는 물음표의 방문을 받게 된다. 사랑은 아픔일까?
화면혹에서 보여지는 사랑의 모습은 처음에는 기쁨이었다가 나중에는 슬픔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슬픔으로 짓눌렀던 사랑이 나중에는 기쁨으로 승화되어져 웃게 만드는 그런 모습도 있다.
하지만 낯설음이었다가 설레임으로 변화되는 그 사랑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향기롭다.
어떤 영화에서는 그렇게 외쳤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하지만 사랑도 변한다. 시간이 가는데 그 시간이 사랑을 그냥 놔둘리가 없다.
그 시간속에서 변해가는 그 모습 또한 내가 간직해야할 사랑이 분명할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미흔... 12월 24일 밤의 충격으로 마음을 닫아버린 여자. 빨래를 개고 있던 미흔 앞에서 빨리 끝내고 자면 안되느냐고 보채던 남편을 행복하게 바라보던 그 여자의 불행은 낯선 여자가 찾아왔던 그날밤부터였다. 그 낯선여자가 아주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이었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여자 미흔의 일상을 만들어주던 행복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지.. 6개월 후 그들이 다시 자리잡게 된 낯선 소도시의 그림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우리가 언제나 꿈꾸며 살아가는 그 평안을 거기서 찾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서는 그 풍경처럼 그렇게 낯설지 않은 행복.. 내가 어쩌면 그런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행복은 없는 것 같다. 슬픔에서부터 삶의 환희는 비롯되어지는 거라던 그 여자, 미흔의 마지막 말이 내 가슴을 울리는 걸 보면 말이다.  서글픈 가족사의 비애를 안은 채 버려진 텅 빈 그 집에서 그녀가 바라보았던 깨진 액자속의 젊은 부부처럼 우리의 모든 사랑이 어쩌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2월 24일 이후로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떼어내기 위하여 무던히도 애쓰던 그녀의 표정없는 시간들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그 여자속에서 숨쉬는 모든 시간들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스스로를 포기해버리던 순간들이 너무도 안스러웠다. 저 여자 어떻게 해! 어떻게 하면 좋아!

최 인규... 이런 게임 한번 해보실래요?  서로 원할 때 만나고 섹스도 즐기고... 하지만 이 게임에는 어떤 규칙이 있답니다. 사랑한다고 먼저 말하는 사람이 지는 거예요...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었고 그 여자 미흔은 이렇게 물었었다. 왜 그런 게임을 해야 하죠? 그런 게임을 하는 여자들도 있나요? 그랬던 그들이 결국 그 게임에 빠져들게 되는 상황이 왠지 껄끄럽지가 않다. 괜찮은 외모를 가졌고 직업이 의사인, 속된 말로 얘기해서 정말 선수(?)같은 그 남자 인규의 꼬임에 빠져버린 것도 아닌 것 같다. 타락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여자들만이 빠져들 것 같았던 그런 게임에 그녀 스스로가 뛰어들게 만드는 그 남자 인규의 속성은 무엇이었을까? 왠만한 사랑은 시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수순을 밟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면 그 다음은 뻔하다. 원점회귀.. 다시 자신을 버리기위해 아니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태로 되돌아가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남자 인규속에도 보여줄 수 없고 말할 수 없었던 깊은 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절망속에서 헤어나기 위해 어쩌면 그런 게임에 도전장을 던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표현할 수 없었던 그런 아픔을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 남자 인규에게 주문을 걸어주고 싶었었다. 다시 한번만 그 게임에서 고의적인 항복을 외쳐보라고...

密愛... 아이러니하게도 미흔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던 상황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다가와 그녀가 잃어버렸던 모든 것들을 되돌려주고자 한다. 어쩌면 미흔에게는 하나의 반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살갗을 뚫고 올라오던 두려움속의 희열을 그녀는 평생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반항적 일탈이 그녀 깊숙히 각인되어져 그녀에게는 삶을 살아내는 하나의 버팀목으로 자리할거라는 생각을 한다. 정말로 그랬다. 그 좁은 나비마을에서 딱 한사람 남편만 빼놓고 그들의 밀애를 모두 알아버렸을 때만해도 그들 두 사람에게는 별로 달라질 게 없었다. 떠나보지도 못한 채 끝내야 했던 그들만의 원행은 그녀에게서 그 남자를 빼앗아갔지만 그 남자와 함께 했었던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남아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벗아난 듯 하다. 여덟살 먹은 딸아이에게도 자신의 과거 때문에 속죄하듯이 그녀 곁에서 머물렀던 남편에게도 어떤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어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 그냥 그녀의 곁에 머무는 일상같은 존재로만 보여졌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물먹은 스펀지마냥 미흔역을 한껏 품어 안은 김윤진의 연기는 정말 끝내준다. 역시 멋진 배우다. 그녀가 발산해냈던 이미흔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별스러울 것도 없이 그저 평범한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안이 무언가로 꽉 채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던 영화였다.  오늘 무슨 날이신가봐요, 혼자서 사진을 찍으시는 걸 보면? 아니요... 그냥 사진이 없어서요... 사진관의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에 평안이 묻어있다. 그녀 미흔에게 더이상의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다.

넌 나하고 놀 수 없어.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그런데 길들여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건 많이 잊혀진 말인데,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지는 거야. 넌 내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따분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밝아질 거야. 네 발자국 소리가 다른 발자국 소리와 다르게 들릴 거야...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이렇게 말했었다. 길들여진다는 건 행복한 일일까? 여우의 말처럼 길들여졌을 때 찾아온 행복은 너무 익숙해 느끼지 못하는 행복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시간속에서 행복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또다시 길들여지기 위해 방황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규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그 사랑의 종착역인 결혼을 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처음과 똑같아질 뿐이라고... 하지만 미흔은 끝내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그 연인을 가슴속에 품었으니 행복하겠다... /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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