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일탈이었을까? 아니 단순히 일탈이라고하기엔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잠시 떠났을뿐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가슴속 우물이 너무 깊기만 하다. 무엇이 그녀를 저토록 무모한 도피행을 감행하게 했을까?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까지 깊은 서글픔에 빠지게 했을까? 아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살아가야 하는 여자에게는 살아가면서, 세월의 무게를 더해가면서 왜 나자신에 대한 감정이 삭혀져야만 할까?  이 책속에서 듣는 말들이 곧바로 내게 가시가 되어 박혀버린다.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엄마가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나 있어?", "엄마는 맨날 집에서 일만 하니까..."  그랬지,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고 맨날 집에서 일만 했지.. 하지만 누구를 위해서였을까? 커가는 아이들이 가슴속에서 하나둘씩 떠나려 발버둥칠때마다 상처를 감싸쥐고 우는 건 엄마였는데... 엄마에게 감히 따지지 마라,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느냐고.

늙은 개 포포가 그만 옆집아이의 목을 물어 죽게 만들고, 어찌되었든간에 그 죽음을 불러왔던 원인을 외면해버린 채 그것이 느닷없는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 모든 이들의 시선이 원망스럽게 다가설 때, 단순히 늙은 개 포포를 좀 더 살리기 위해서 그녀가 야밤에 도주를 결행했던 건 아니었으리라.. 그 늙은 개 포포에게는 9년이라는 기한을 다 채우고도 기약되어진 시간이 단 1,2년에 불과했었다. 모든 원망을 뒤로하고 안락사를 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편의 통장과 인감을 훔쳐 도피하던 그녀를 보면서 나는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이 세상이 그렇게 그녀를 내버려둘 것 같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운이 좋았던 것일까? 트럭기사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끝내는 예정되어지지 않았던 장소까지 도피하게 되고 어느새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되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그렇게라도 둥지를 틀게되는 그녀의 도피행을 보면서 내심 안심이 되었다. 안타깝지만 그녀의 말처럼 그녀와 포포에게는 앞으로의 일은 없을테니까...

남편을 위해 시간을 버렸고,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모두 써버렸던 그녀에게 남은거라곤 '주부'라는 이름의 껍데기뿐이다. "혼자 사는 게 살벌할 때도 있지만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고독한 건 더 살벌해요" 사정이 있어 다른 곳에 살 수 없는 인간만이 정착하는 곳, 영혼의 영역.. 하지만 모두가 그곳을 전원주택이라고 부르는 곳에 그녀가 떠밀리듯이 들어왔을 때 이웃집 남자 쓰쓰미는 그렇게 말했었다. 자신이 세를 내고 빌렸던 그곳에서 그야말로 아들집에는 있을 자리가 없었던, 그랬기에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할머니가 살았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굳이 그녀가 그곳을 떠나지 않고 눌러 살았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그녀에게도 자살한 할머니처럼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어느날 문득 그녀를 찾아왔던 것은 평온...이라는 거였다. 자신만의 영역에서 아무것에도 쫓기지 않고 자신과 맞닥뜨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다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하여 다시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에 대하여..

익숙해져 있던 것들을 모두 버렸다. 남편도 아이들도... 나에겐 가족이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던 그녀, 타에코의 가슴속에서 서서히 자라나던 평온함이 뿌리를 내릴 즈음, 급격하게 노화가 시작되는 포포.. 그녀의 마지막 거처가 너무도 안스러웠다. 마지막 거처에 와서 둥지를 틀기 전까지는 그녀와 포포는 별개의 의미였지만 그 둥지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하나가 되어갔다. 늙고 병든 포포처럼 죽어가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그래, 세상인심이 그렇지 뭐.. 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테니...  함께 있다는 그 느낌하나만으로도, 체온과 눈길만으로도 소리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그녀 타에코와 포포.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배신하지만 개는 배신하지 않아요... 쓰러진 그녀를 병원으로 이송해놓고 쓰쓰미가 불러모았던 그녀의 가족들은 과연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수술을 받고 이미 1,2년밖에는 살 수 없는 아내였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그렇게까지 되도록 내버려둔 남편에 대하여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쓰쓰미의 예감처럼 어쩌면 그남자는 그녀를 떠나보낸 후의 자신의 삶을 설계중이었을것이다. 참 씁쓸했다. 그녀를 향한 애잔함이 더 깊어지고 말았다.

묵은지처럼 시어빠진 후에야 꺼내어 보게되는 여자의 시간들, 아니 주부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의 시간들... 그 시간들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느냐고 되물어올 수도 있겠지만 누가 그렇게 살라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주부라는 울타리일테니 어찌하랴... 작금의 현실을 바라볼 때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울타리가 견고하게 보이는 것을...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남편과 주부는 뗄래야 뗄수 없다. 아이와 주부 역시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설혹 꿈을  키우기 위해서, 아니면 그저 주부로써 지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자신만의 삶을 살수 있는 맞벌이를 한다고해도 그 주부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고무줄처럼 늘여진 그 울타리안에서 모든 일이 진행되어지는 것일테니 말이다. 묵은지처럼 시어빠진 시간이라해도 맛있게 나눠 먹을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주부는 갖고 싶었을게다. 그녀, 타에코의 가슴속 깊디 깊은 우물에서 끌어올려진 그 시간들이 너무도 서글프다.

이 작품속에서 만나는 타에코의 도피행은 단순히 그녀 하나만의 문제는 아닌듯 보여진다. 주부라면 정말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니 어쩌면 타에코처럼 살아가고 있는 주부들도 많을 것이고, 타에코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주부들도 많을 것 같다. 소통의 부재가 오직 한곳뿐일까? 함께 있으되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함께 있으되 서로의 마음을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소통의 부재... 문득 일전에 읽었던 책의 한귀절이 떠오른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사랑이라던...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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