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수도원 - 오드 토머스 세 번째 이야기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R.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속에서 아주 많이 보아왔던 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딘 쿤츠의 소설은 재미있다. 마력같은 속도감에 불을 붙이며 끝까지 달려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드 토머스 세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딘 쿤츠의 소설을 처음 대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주저하지 않았다. 왜일까? 이런 억지스러운 설정 자체를 싫어하면서도 알 수 없는 끌림이 생겨나는 까닭은?  부쩍 많아지는 인간의 오만방자함의 대표격이랄 수 있는 생명에의 도전 또한 현실과 맞물리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걸 보니 왠지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황당스럽기까지한 내용의 책을 읽으면서 책 귀퉁이마다 도그지어가 생겨났던 까닭이다. 환상속을 달려가면서도 작가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현실의 징검다리를 밟을 수 밖에는 없다. 픽션조차도 이제는 오롯한 픽션으로서의 모습에서 탈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드 토머스의 세번째이야기지만 첫번째도 두번째도 나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앞선 두번의 만남이 부럽지 않다. 오드 토머스.. 죽음을 볼 수 있는 자.. 하지만 그 죽음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그 죽음의 목전에 이르러서야만 가능하다. 그 특별한 재능앞에서 수도없이 절망했을 주인공의 심리적 고뇌와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교묘하게 얽히며 이야기는 진행되어지고 있다.  '온'의 세계를 그렸던 일본소설이 생각났다. 죽은 이들이 저쪽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 채 저마다의 이유로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떠돈다는.. 그리하여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복수심에 불타오르기도 하지만 각양각색인 그들의 모습을 그려주었던 그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동화되어져가던 나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오드 토머스가 볼 수 있는 것 역시 망자들의 모습이다. 이제는 죽어줘야만 할 사람들 주변에 끝도없이 나타나 서성이는 기괴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일게다. 하지만 동정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고 누구나 자기 고민의 무게가 더 버거운 법이라고 말하는 그의 다부진 말 한마디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수도원이라는 장소가 배경으로 깔리는 소설을 보면 기가 막히게 어울어지는 善과 惡의 대립을 보게 된다. 이미 善이라는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善속에서 惡은 잉태되어진다. 아니 교묘하게 善으로 위장한 채 숨어들어와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채지 못한다. 그만큼 善이라는 건 어쩌면 허울뿐인 하나의 명제에 불과한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행과 불행처럼 善과 惡 또한 형제이니 그런 설정이 이제는 낯설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당연히 있어야 할 목차도 없이 소설이 시작되어지지만 한고개씩 넘어갈수록 드러나는 惡의 정체를 짐작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인간의 욕심.. 늘 그것이 발단이다. 잘 나가는, 혹은 잘 나가던 사람일수록 자신의 욕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채 가장 중요한 인간성, 혹은 사랑을 버린다. 책 속 惡의 화신으로 등장한 존 하이네만 박사 역시 친절하게도 그 절차를 그대로 잘 따라주고 있다. 약혼자의 몸에서 기형의 아이가 태어나고 그것을 부정한 채  죽게 내버려 두라고 무정하게 말하는 그 역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의 존재에게 '없었던 자'가 되어버렸다.  그가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과연 신의 영역이었을까? 아니면 완벽을 꿈꾸며 살아왔던 자신의 내면에 대한 도전이었을까?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면서도 생명체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생명이 없는 생명체와 진정한 생명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에 대하여.. 생명이 없는 생명체의 살아 숨쉬는 생명체에 대한 도전.. 이 순간에 나 역시도 생명이 없는 생명체에 의지하여 또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느낌이 드니 은근슬쩍 소름이 돋는다. 그러다가 또다시 이런 결론을 얻게 된다. 생명이 없는 생명체의 포로가 되어 아주 단단하게 손목을 묶인 채로 끌려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일종의 경각심이 필요한 때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명이 없는 생명체를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를 되묻고 있다.

어찌되었든 재미있다. 점점 오버랩되어져 오는 악의 구도가 폭설에 고립되어진 수도원내에서 죽어버린 수도사의 망령과 만나기도 하고 죽은 수도사의 사라진 시신을 찾아내는 오드 토머스의 숨찬 시간들.. 이 책속에는 어린 시절에 만났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또다른 변형이 숨어 있다. 그리고 영원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이 질퍽거린다. 그리고 현실은 늘 냉정하다.. /아이비생각


과거를 구원할 수는 없다. 과거에 있었던 일과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현재를 낳는 법이다.
슬픔을 알고 싶다면 시간의 강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슬픔은 현재를 먹고 살며 주야장천 우리와 험께 살아가겠다고 우긴다.
시간과 시간의 무게를 정복하는 건 오로지 시간뿐이다.
시간의 전에도 시간의 후에도 슬픔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위안은 그것뿐이다. (162쪽-163쪽)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빛만 보려하고 보이지 않는 본원의 빛은 무시해버리는 세계에서,
우리는 밤이라는 이름의 일상적인 어둠을 만나고,
이따금 죽음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어둠과도 맞닥뜨린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하지만 하루 24시간 언제나 함께하는 세 번째의 어둠은 바로 우리 마음의 어둠이다.
편견과 아집과 증오.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 어둠을 우리 안으로 불러들여 너그러이 대접하고 있다.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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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하지.. 첫사랑이길 바라고 마지막 사랑이길 바란다고..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다고? 첫사랑이면 어떻고 마지막 사랑이면 또 어떤데?  처음이고 마지막이라해서 그 사랑의 모습이 바뀔까? 사랑할 때는 모두가 같을 것이다. 사랑할 때의 마음만큼은 누구나 같다는 말도 되겠다.  오죽하면 유행가 가사에서도 말한다. 사랑해, 그 순간만은 진실이었어.. 사랑했던 그 순간만큼도 진실이 아니었다면 그것이 첫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는 거다. 두번째 사랑이라는 제목부터가 왠지 시니컬하다. 두번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테고, 그것도 아니라면 두번씩이나 이런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거라고 믿었다는 말도 될테고, 뭐 그렇다. 내 생각이야 후자에 있지만... 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두번다시는 이런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까봐 헤어져야 하는 그 사랑을 떠나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게 아닐까 싶다는 그런 말도 되겠다.

김지하.. 이 남자는 젊다. 그리고 그 잘난 미국의 불법체류자다.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육체적인 힘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는 일뿐이다. 빨리 돈을 벌어서 애인을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겠다는 희망만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쉽지 않다. 애인을 빨리 데려오기 위한 수단이었을까? 남아도는 정자를 팔아먹자고 마음먹었는데 불법체류자라는 이유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마음은 급한데 맘대로 되는 일은 없다.

소피.. 이 여자는 유부녀다. 한국계 미국인 남자와 산다. 물론 성공한 케이스의 남자다. 부러울 게 없는 삶이 이어진다면 꽤나 좋겠지만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다. 아이를 좋아하는 남자와 아이없이 산다는 건 가히 고통일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단순히 아이가 있고 없고의 문제점만 있는것 같지는 않다. 무언가 부족하다. 딱히 말해 이것! 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그들에게 늘 갈증을 호소한다.

돈을 주고 사는 게 내가 처음인가요? 그럼 당신은 돈을 받고 파는 게 처음인가요?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그들은 서로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게 된다. 사랑없이 나누는 그야말로 비지니스로 만나 나누는 육체적인 사랑... 가끔씩 나는 가능할까? 묻고 싶었었다. 서로의 아픔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한발자욱씩 서로의 가슴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이 말하는 두번째사랑과 마주하게 된다. 위험하다. 이미 현실은 위험하다고 경고를 하고 있었는데 누구나 가슴속에 사랑이란 놈이 찾아오면 외면하지를 못한다. 아주 조용히, 소리도 없이 찾아오기에 어쩌면 이미 와버린 사랑앞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는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드디어 임신에 성공한 그녀의 선택은 과연 어느쪽일까? 아이를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남편앞에서 그녀는 당당하게 외쳤다.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고 내 아이라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하는 자리에 그녀는 늘 있었다. 그녀의 눈과 입은 늘 공허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당신은요? 당신은 뭔가요? 지하가 물었었는데 나는 왠지 그녀의 대답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가슴속을 채워주지 못했던 그녀에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를 모르겠다던 그녀에게, 단순한 한국식 기도를 알려주던, 돌멩이 위에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으며 소원을 빈다고 말했었던 남자 지하.. 그 남자가 어느날 전화박스안에 서 있었다. 그리고 전화속의 애인에게 이렇게 말했었지.. 나, 너를 데려올 수 없을것 같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그렇게 그들이 두번째로 찾아온 사랑앞에서 하나가 되어가던 모습이, 조심스럽게 서로를 받아들이던 그 모습이 차라리 아름다웠다.

체포되는 두번째사랑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무너져내리던 그 장면은 정말 안타까웠다. 가끔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려야 할 때도 있는거라고 말해주던 그 남자, 그 두번째 사랑을 위하여 그녀가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엔딩은 철저하게 나의 몫이다. 첫아이와 함께 바닷가 모래밭에서 밝게 웃던 그녀의 배가 오롯이 불러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선택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는 걸 그제사 알게된다. 누구였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다시 돌아왔지만, 그가 머물며 그녀를 기다려주고 안아주었던 곳은 이미 어둠뿐이다. 아무도 없는 지하의 방에서 울려대던 전화를 그녀가 받았었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면 될 것 같다. 그녀의, 아니 나의 선택으로 인하여 그들은 보이지 않는 행복을 만끽하리라... /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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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도미노 경제학
가도쿠라 다카시 지음, 박선영 옮김, 정우열 그림 / 예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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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라는 말만 들어도 딱딱한 느낌을 주는 탓에, 아니 어쩌면 내가 경제를 모른다는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나의 생각들이 기우였음을 바로 알게 되었다. 어렵다는 경제용어들을 제쳐두고서도 이렇게 쉽고 간결하게 경제학을 설명할 수도 있는거였구나 싶었다. 매스컴을 통해 자주 듣고 자주 보아오던 어려운 용어들이 너무도 쉽게 다가왔다. 그동안 궁금했었던 것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주는 저자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1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진 중국인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세계의 커피시장에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말이나 홍차를 주로 수출했던 인도나 후추산업이 주를 이루었던 베트남에서조차 커피산업을 주력상품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말에 이미 커질데로 커져버린 공룡 중국의 모습이, 그것도 바로 우리의 머리위에 자리한 중국의 그림자를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스타벅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었던 경제의 한단면을 보면서 커피하나만으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파급효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커피 경제학)

스시... 일본의 초밥이다. 나 역시도 간결하고 깔끔한 맛에 초밥을 좋아한다. 그 스시가 미국과 유럽시장을 평정하고  브릭스에도 상륙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참치나 장어등의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다는 말은 정말 놀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얼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다.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한국만의 독특한 음식이 없었을까? 김치마져도 기무치로 탈바꿈되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 탓에 도대체 우리의 정부에서는 뭘 믿고 그렇게 손을 놓고 있는지 퍽이나 궁금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식품이 있다없다가 아니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시처럼 세계시장속에 파고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스시 경제학)

지금 현재도 기름값이 올라 주차장에 세워둔 차들이 많을 것이다. 원유를 자원으로 둔 나라들에 의하여 오일값이 들먹거린다는 말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건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중국과 인도가 치열하게 유전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는 말에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과연 우리는 얼만큼이나 원유를 비축해두고 있을까?  선진국 대열에 끼어들었다는 우리 나라가 세계경제가 콧물만 흘려도 우리는 몸살을 앓는 현실을 언제까지나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싶었다. (오일 경제학)

툭하면 들먹거리는 원유가에 대항할 만한 자원으로 천연가스를 들 수 있다고 한다. 바이오 연료라는 말은 내게는 좀 생소하게 들리지만 나름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각 나라의 경제가 자원으로 인한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지금 차세대의 자원을 가진 나라마다 미래에 대비하여 준비중이라는 말은 얼만큼이나 발빠르게 움직여주느냐에 따라  그 나라가 살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바이오 경제학)

중국인들과 터키인들이 금에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까닭에 각 나라의 발빠른 기업들은 벌써 그 자원을 가진 나라들과 손을 잡고 있단다. 문득 몇년전 금모으기 운동을 하던 때가 떠오른다. 장롱속에 깊숙히 감춰두었던 금이나 아이들의 돍잔치에 받았던 작은 금반지까지 모아지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금이라는 게 투자 목적보다는 소장하기 위한 것이 더 크다고는 하지만 유사시에는 그것처럼 도움이 되는 것도 없기에 귀금속의 수요는 꾸준하거나 더 많아지거나 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신흥경제국을 말하지 않더라도 당장 우리 역시 재테크의 수단으로 여기니 말이다. (귀금속 경제학)

그외에도 세계화의 중심이 되어가는 나라에들에 대한 이머징마켓 경제학이라거나 환경문제로 이어지는 에코 경제학 또한 나의 눈과 가슴속에 뜨거운 느낌을 전해주었다.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등 신흥경제4국을 일컫는 경제용어) 라거나 그 브릭스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비스타(베트남,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터키,아르헨티나 5개국의 머리글자를 연결한 조어.. '조망','전망'이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VISTE도 동시에 뜻함) 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속할까? 브릭스도 아니고 비스타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굳이 선진국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찜찜한 생각도 들고 그렇다고 후진국인것 같지도 않다. 그런 상황인데도 우리는 너무 안이하게 팔짱만 끼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에 대한 불안감만 더 커져버린 듯 하다. 

편리함과 신속함만을 추구하는 게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고 거리낌없이 버리는 나무젓가락으로 인하여 중국의 사막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봄마다 일어나는 황사현상에 대해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오래전에 물전쟁에 관한 영화도 있었지만 가속도가 붙은 물부족현상이 내일의 일만은 아닐것이다. 지금 현재도 우리는 물을 사먹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물쓰듯 한다는 말이 무색하다. 환경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전에 있었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역시도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은 파헤져지고 있을 것이다. 아마존이 사라지면 지구도 숨을 멈출거라는 말이 공연히 나온 말은 아닐것인데도 우리는 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또다시 그 경고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환경을 위하여 많은 조약을 맺기도 하고 제제를 가하기도 한다지만 파괴되어지는 환경의 속도에 비하면 정말 턱도 없다.  진화라는 것은 단순히 자신에게 맞게 변화하는 것일뿐이라던 말이 떠오른다.

주부인 내가 느끼는 것은 가장 가까운 시장바구니 경제가 아닐까 싶은데 이 책은 바로 우리가 체감으로 느낄 수 있는 거리에서부터 경제학을 펼쳐주고 있어 이해하기가 더 편했다. 나무젓가락 하나로 인하여, 기름값이 조금 더 올랐다고 하여 우리의 생활필수품들이 가격이 오른다. 없어서는 안될 생활필수품들의 가격이 인상되면 결국 그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다. 부유층과 신흥부유층이 늘어날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질 것이다. 힘겨운 사람은 늘 힘겹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귀에 자주 들었던 말, 그리고 우리가 늘 곁에 두고서 가볍게 생각했었던 것들을 예로 들어준 경제학을 듣다보니 책속의 말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며 끌려나오는 경제의 비밀이 하나씩 풀려가는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세계경제가 우리네의 일상까지 파고들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하, 그런거였구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군데군데 징검다리처럼 놓아둔 도표나 일러스트는 이 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쉬운 것은 왜 우리에게는 이런 책을 내는 사람이 없을까였다. 저자가 일본사람이었다는 건 정말 씁쓸했지만 바로 곁에 있는 나라였던 탓에 마치도 우리의 경제학처럼 느껴졌던 것은 다행이었다. 굳이 경제학 이론이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상식처럼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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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 Sunshine... 굳이 Secret Sunshine이라고 쓴 것은 정말로 나는 빛이 그리웠던 까닭입니다. 어느날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되어지던 날부터 나는 너무도 힘에 겨웠습니다. 쓰러질것처럼 아팠지만 쓰러져서는 안된다고 버텨냈습니다. 하지만 내가 버텨내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당신은 아실겝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아니 말할 수 없었던 그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가던 날중에서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지요. 내게로 오라고, 내게로 와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다면 내가 다 안아주리라고..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비록 당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당신이라면 나의 아픔을, 나의 힘겨움을 알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나의 잘못된 판단이 원인이 되어 하나남은 아이마져 잃어버렸을 때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었던 그 아픔을 당신이라면, 정말로 당신이라면 어루만져 줄 수 있을거라고 믿어보기로 했던 겁니다. 그렇게해서 내가 평안을 찾았느냐구요?  아니요. 내가 돌아보건데 나보다는 당신에게 입을 빌려주었던 사람들에게 더 많은 평안이 찾아온 듯 합니다. 그들속에, 그들의 평안속에 나도 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열심히 목이 터져라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가슴을 쥐어 짜내며 당신께 매달려 보았습니다. 그렇게해서라도 나는 내 속에 뭉쳐있던 그 무엇을 깨뜨려보고 싶었던 겁니다. 아이를 유괴하고 아이를 죽이고 그마져도 모자라 나까지도 이렇게 죽여버린 그 사람이 너무도 미웠지만 당신이 가르쳐준 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을 용서해주리라 마음먹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찾아갔는데... 그사람이 그러데요? 당신이 벌써 나를 용서했다고. 그래서 자신은 평안을 찾았노라고.. 그 순간 내 가슴이 무너져내리던 소리를 당신은 들으셨겠지요? 그 순간 내 자신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간신히 버텨내던 그 힘마져 당신에게 빼앗겨버린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최소한 썩은 동아줄만이라도 내게 내려주었다면 나는 이토록 다시없을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감히 내가 어떻게 당신께 도전장을 던지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끌어안아주신다는 당신께 말입니다. 당신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건 아닙니다. 단지 내가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작은 이유마져 당신이 빼앗아갔다고만 말하려는 것 뿐입니다. 당신을 향해 손가락질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 참담함을 비켜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내게는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지요. 어디한번 해 보자구요. 내게 필요했던 건 단지 한 줌의 빛이었을 뿐이라고....

 

사랑이야기라고? 아니 이것은 절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종교이야기일까? 아니 종교이야기도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무엇이 이토록 가슴 저미는 서글픔을 안고 내게 다가오는 것일까?  여자의, 그 작은 여자의 절망속에 살며시 스며들어 시린 가슴 호호 녹일 수 있는 그런 한 줌의 빛이 너무도 절실했다. 세상속으로 나오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만 말려들어가는 달팽이같은 그녀의 일상.. 그 일상속에 한줄기 빛이 스며들어와 흙을 비추고, 마침내는 무언가를 싹틔우리라고 예고하듯 보여지던 그 마지막 장면속에서조차 그녀는 허허로운 눈빛을 버리지 못했었다. 차마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다. 스크린을 바라보며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고,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껴보기도 했고, 철없는 안타까움에 주먹을 꼭 쥐기도 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를 외쳐대던 여가수의 목소리를 통해 내게로 전해져왔던 그 무엇을 거부하고 싶지가 않았었다. 설정들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집었다 엎었다하는 그 설정들속에서 묘하게 분위기를 잡아가는 여배우의 그 능청스러움이 정말 놀라웠다. 때로는 가볍게 혹은 무겁게, 때로는 간단하게 혹은 복잡하게, 때로는 행복하게 혹은 불행하게... 삶이라는 건 수시로 바꿔써야만 하는 가면같은 것인지도 모를일이다. 순간순간 상황에 맞춰 나를 속일 수 있는 그런 가면을 몇개쯤은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거라고.. 진실 혹은 거짓.. 하지만 그 진실도 거짓도 모두 내 안에 있는 것을 어찌할까? 내 안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여러개의 시선을 생각한다. 어느 시선과 마주보아야 하는지 그 선택권은 오로지 나에게만 있을 뿐.. 그녀에게 비밀스럽게 찾아들었던 그 빛을 그녀가 느낄 수만 있다면...

한가지 묻고 싶었다. 내가 나를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사람이 사람을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관계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모든 이념은 궁극적으로는 한통속이다. 그런데 그 이념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과정만이 사람마다 다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통속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싶어하는 우리네의 아집에 대하여 잠시 생각한다. 이 영화속에서 녹여냈던 개신교의 풍속도가 참 재미있다. 그 끊임없는 열정들이 참 대단하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이나 열광하게 하는지....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랑이야기도 있었다. 그처럼 아파하는 한 여자의 가슴속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하여 바람처럼 곁에 머물던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무시한다면 영화속의 그 남자가 너무 슬퍼하겠다. 알아달라고 부탁하지도 않고, 내가 있지 않느냐고 소리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곁에 머물러 자신의 존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그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튀지 않았기에 더 애절했던 것 같다. 알고는 있었지만 차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여자의 아픔과 어울려 묘한 대비를 이루던 그 사랑이야기를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이 영화, 조금은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않아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멋졌다! 비밀스럽게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들어왔던 그 한줄기 빛의 여운이 참 길다. Secret Sunshine.../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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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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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하고도 지루한, 그야말로 희망이라는 건 아예 찾아볼 수 없을것만 같은 마을 엔도라의 식품점 점원 길버트 그레이프.  답답하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는 길버트에게도 꿈은 있었다. 단지 그 꿈을 향해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뿐. 어느날 눈앞에 나타난 베키라는 소녀로 인하여 그가 다가가는 꿈의 세계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채 살아가는 길버트의 가족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슴이 먼저 답답해져왔다. 책장을 찢어서라도 그들을 그곳으로부터 탈출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겨우 탈출했다고 생각했었던 길버트의 작은누나 제니스와 형 래리조차도 완벽한 탈출을 꿈꾸며 살아간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 탈출만이 최선책이 아님을 알게 되어버렸다.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리고 이 책을 손에 잡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던 순간 나는 오래전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났다. 아이큐가 75라던 포레스트가 단 하나의 소질이었던 달리기로 인하여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선사해주었던 영화. 어쩌면 이 책을 쓴 사람 역시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청년을 통하여 우리에게 희망이란 메세지를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떠나고 싶다는 느낌만을 전해주는 가족들 곁에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지옥같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의 깊은 아픔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것들을 알아채기까지는 좀 오래 걸린듯 하다. 이런 류의 글을 읽다보면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을 어쩌지 못하는 까닭이다. 내 속을 훤히 드러내는 것만 같아서 알 수 없는 두려움마져 느끼게 된다.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게 현실일까?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게 나의 시간들일까? 떠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조건적인 일탈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은 아닐것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이제는 더이상 어쩌지 못할 정도로 살이 찐 길버트의 엄마. 엄마가 움직일때마다 마루가 휘어진다는 그 설정이 내게는 너무나도 잔인하게 다가왔다. 모두를 버리고 망연히 목을 메어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던 것일까? 오래 살지는 못할거라던 지적장애아인 막내 어니가 열여덟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싶을 뿐이라고 외쳐대던 그녀는 마음속에서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남편을 향해 쉴새없이 원망을 퍼붓고 있었지. 자신으로부터의 빚장을 내려버려 아무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린 그 엄마가 곁에 남은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안스럽게도 보였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엄청 화가 났을 것이다. 이 집구석이 너무 너무 싫다고 외쳐대던 동생 엘렌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너만 그런건 아니라고 말하던 길버트의 그 가슴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제는 떠나야겠다고 옷가지를 정리하던 동생에게 말없이 아버지의 사진을 건네주던 누나 에이미는 가슴속에 무엇을 품고 살아냈던 것일까?

베키.. 그녀는 정말 길버트의 말처럼 천사였을까? 아니 내게는 이 책을 쓰고 있는 저자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를 알아챈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의 관심과 배려가 함께하지 않고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다. 계속 웃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아무도 네가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언젠지 기억하지 못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222쪽)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길버트 뿐일까마는  베키의 말을 통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조금씩의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길버트처럼 한걸음씩 빛을 향해 다가가고 싶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 빛으로 인도해주고 싶어하는 그 순간에... 울지 못하는 사람만큼 힘겨운 사람이 있을까? 그런 의문점을 찍어본다. 그 울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무너져내릴까봐 차마 울지도 못한 채 바위같은 응어리를, 자신을 향한 원망을 안고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지독하고 잔인한 일임이 분명한데도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그 무거움이라니.

"너는 우울해 보였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너는 감정을 드러낼 때가 멋있거든."
"너는 스스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해. 너 자신을 좋아하질 않아. 심지어 너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아."
"너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도망치려고 애쓰는데, 나한테서는 얼마나 빨리 도망치겠니." (359쪽) 


이십대의 어느날을 기억해낸다. 누군가가 내게 이렇게 물었었지. 지금 원하는게 있느냐고. 지금 가장 갖고 싶은게 무엇이냐고. 그때 나는 아마도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사람이요! 내 대답에 그 사람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럼 나를 가지면 되겠네? 그렇게 해줄수 있나요? 다시 물었더니 그 사람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었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텐데요.. 나를 알아주는 사람,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의 눈을 통해서 알아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나요? 내가 되물었을 때 그 사람의 웃음이 사라지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베키같은 그런 사람을 우리는 누구나 꿈꾸고 원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늘 그게 그거같은, 그날이 그날같은 밋밋한 삶속에서 자극과 동시에 도움이 되어주는 그런 손길이 있다면...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우리는 아니 나는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내가 좋은 것만 느끼며 살아가려하는 까닭인지도 모를 일이다.

"너는 자신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감정. 길버트, 사람이라면 그게 있어야 해"
"넌 오래전에 감정을 느끼는 걸 그만뒀어.........."

"그래, 그건.... 왜냐하면 그건 음, 내가 살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야. 모르겠어?"
"나도 느껴!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322쪽)

 살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라던 길버트의 외침소리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귀에 들려오는 것 같다. 살려고 기를 쓰기에 우리가 잃어버린 아니 포기해버린 것들이 얼만큼이나 될까? 자신마져 속이며 살아가야하는 세상이 너무 처절할 뿐이다. 아무도 그렇게 살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이곳을 떠나 자유로워지는 꿈, 아니면 자기만 그대로 남아 있고 가족들은 전부 다른 사람들로 바뀐 그런 꿈.. 그런 꿈만이 길버트의 꿈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같이 자라고 같이 공부했던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친구의 성공을 보면서 일찍 떠나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버트는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그를 스쳐가던 모든 시간들이 그를 조롱하며 제멋대로 흘러가버렸지만 그에게는 마음속에서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토록 묵묵히 참아냈을 것이다. 베키는 단지 그 참아냄에 대하여 도를 넘으면 안되는거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 거대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 자신의 침대로 올라가 잠이 든 엄마는 끝내 세상속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길버트는 원망하지 않았다. 잘났든 못났든 그 사람의 삶을 향하여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엄마의 그 오랜 아픔을 타인들로부터 지켜주고 싶어했던 길버트의 그 속내를 짚어본다. 마지막에 타올랐던 그 불길은 엄마의 아픔을 보호해줌과 동시에 남겨져야 할 그들 여섯남매의 희망 또한 보호해주리라. 다시 시작될 그들의 삶에 대하여 화이팅을 외쳐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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