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수도원 - 오드 토머스 세 번째 이야기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R.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속에서 아주 많이 보아왔던 설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딘 쿤츠의 소설은 재미있다. 마력같은 속도감에 불을 붙이며 끝까지 달려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드 토머스 세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면서 잠시 망설였지만 딘 쿤츠의 소설을 처음 대하는 것이 아닌 까닭에 주저하지 않았다. 왜일까? 이런 억지스러운 설정 자체를 싫어하면서도 알 수 없는 끌림이 생겨나는 까닭은?  부쩍 많아지는 인간의 오만방자함의 대표격이랄 수 있는 생명에의 도전 또한 현실과 맞물리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걸 보니 왠지 살풋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황당스럽기까지한 내용의 책을 읽으면서 책 귀퉁이마다 도그지어가 생겨났던 까닭이다. 환상속을 달려가면서도 작가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현실의 징검다리를 밟을 수 밖에는 없다. 픽션조차도 이제는 오롯한 픽션으로서의 모습에서 탈피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드 토머스의 세번째이야기지만 첫번째도 두번째도 나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앞선 두번의 만남이 부럽지 않다. 오드 토머스.. 죽음을 볼 수 있는 자.. 하지만 그 죽음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그 죽음의 목전에 이르러서야만 가능하다. 그 특별한 재능앞에서 수도없이 절망했을 주인공의 심리적 고뇌와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교묘하게 얽히며 이야기는 진행되어지고 있다.  '온'의 세계를 그렸던 일본소설이 생각났다. 죽은 이들이 저쪽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 채 저마다의 이유로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떠돈다는.. 그리하여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복수심에 불타오르기도 하지만 각양각색인 그들의 모습을 그려주었던 그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동화되어져가던 나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오드 토머스가 볼 수 있는 것 역시 망자들의 모습이다. 이제는 죽어줘야만 할 사람들 주변에 끝도없이 나타나 서성이는 기괴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일게다. 하지만 동정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고 누구나 자기 고민의 무게가 더 버거운 법이라고 말하는 그의 다부진 말 한마디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수도원이라는 장소가 배경으로 깔리는 소설을 보면 기가 막히게 어울어지는 善과 惡의 대립을 보게 된다. 이미 善이라는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善속에서 惡은 잉태되어진다. 아니 교묘하게 善으로 위장한 채 숨어들어와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채지 못한다. 그만큼 善이라는 건 어쩌면 허울뿐인 하나의 명제에 불과한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행과 불행처럼 善과 惡 또한 형제이니 그런 설정이 이제는 낯설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당연히 있어야 할 목차도 없이 소설이 시작되어지지만 한고개씩 넘어갈수록 드러나는 惡의 정체를 짐작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인간의 욕심.. 늘 그것이 발단이다. 잘 나가는, 혹은 잘 나가던 사람일수록 자신의 욕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채 가장 중요한 인간성, 혹은 사랑을 버린다. 책 속 惡의 화신으로 등장한 존 하이네만 박사 역시 친절하게도 그 절차를 그대로 잘 따라주고 있다. 약혼자의 몸에서 기형의 아이가 태어나고 그것을 부정한 채  죽게 내버려 두라고 무정하게 말하는 그 역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의 존재에게 '없었던 자'가 되어버렸다.  그가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과연 신의 영역이었을까? 아니면 완벽을 꿈꾸며 살아왔던 자신의 내면에 대한 도전이었을까?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면서도 생명체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생명이 없는 생명체와 진정한 생명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에 대하여.. 생명이 없는 생명체의 살아 숨쉬는 생명체에 대한 도전.. 이 순간에 나 역시도 생명이 없는 생명체에 의지하여 또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느낌이 드니 은근슬쩍 소름이 돋는다. 그러다가 또다시 이런 결론을 얻게 된다. 생명이 없는 생명체의 포로가 되어 아주 단단하게 손목을 묶인 채로 끌려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일종의 경각심이 필요한 때라고 경고하는 것만 같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명이 없는 생명체를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를 되묻고 있다.

어찌되었든 재미있다. 점점 오버랩되어져 오는 악의 구도가 폭설에 고립되어진 수도원내에서 죽어버린 수도사의 망령과 만나기도 하고 죽은 수도사의 사라진 시신을 찾아내는 오드 토머스의 숨찬 시간들.. 이 책속에는 어린 시절에 만났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또다른 변형이 숨어 있다. 그리고 영원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이 질퍽거린다. 그리고 현실은 늘 냉정하다.. /아이비생각


과거를 구원할 수는 없다. 과거에 있었던 일과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현재를 낳는 법이다.
슬픔을 알고 싶다면 시간의 강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슬픔은 현재를 먹고 살며 주야장천 우리와 험께 살아가겠다고 우긴다.
시간과 시간의 무게를 정복하는 건 오로지 시간뿐이다.
시간의 전에도 시간의 후에도 슬픔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위안은 그것뿐이다. (162쪽-163쪽)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빛만 보려하고 보이지 않는 본원의 빛은 무시해버리는 세계에서,
우리는 밤이라는 이름의 일상적인 어둠을 만나고,
이따금 죽음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어둠과도 맞닥뜨린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하지만 하루 24시간 언제나 함께하는 세 번째의 어둠은 바로 우리 마음의 어둠이다.
편견과 아집과 증오.
우리는 안타깝게도 그 어둠을 우리 안으로 불러들여 너그러이 대접하고 있다.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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