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퍼온글] 키보드를 마우스처럼 쓰는 법

알아두면 편리한 자판 사용법 입니다.

1. 인터넷을 검색하다 앞화면으로 가고 싶다면, 마우스 대신 ◀━를 사용(back키).
-마우스로 뒤로가기... 이제 그만...

2. F1 = 인터넷 도움말.

3. F3 = 파일찾기.
찾고 싶은 파일...이제 쉽게 찾을 수 있음.

4. F4 = 주소창.
주소를 고를 때도 자판의 화살표를 이용하면 무척 편함.
아래로 위로 잘 골라서 엔터키를 치고, 이동하고 싶은 주소로 이동.

5. F5 = 새로고침.
검색하다 빨리 새로 고치고 싶을 때 마우스 필요 없음.

6. F6 = 주소창 블럭 설정.
이 기능은 주소창에 저장되어 있지 않는 새로운 주소로 이동 할때 사용하는데, F6키를 누르면 블럭이 설정되고 이때 Delete키를 치면 주소창이 지워짐.

7. F11 = 화면을 넓게 보고 싶을때 사용.
위, 아래에 메뉴창이 사라지면서 화면이 아주 넓어짐.

8. Ctrl + N = 현재 페이지가 하나 더 생김.
로그인까지 되어서....

9. Ctrl + W = 화면 순간 삭제.
야한거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가 오더라도 보던 페이지가 사라지니까 뭐했는지 절대 알 수 없음.

**Alt 키와 Ctrl키의 사용**

1. Alt 키 + 왼쪽/오른쪽 화살표 키.
웹 페이지의 앞,뒤 전환.
-바로 앞에 보았던 페이지나 다음 페이지로 쉽게 전환이 가능.

2. Ctrl'키 + R키.
지금보고 있는 페이지의 내용을 다시 읽어 줌.

3. Ctrl + D.
여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홈페이지가 있으면 북마크 (Book-mark) 기능을 사용하지만, 'Ctrl + D'키를 누르면 더욱 쉽게 해결됨.

4. Ctrl 키 + B 키
북마크를(즐겨찾기 편집창) 편집하거나 정리할 때 사용.
바로 북마크 폴더로 이동.

5. Ctrl 키 + N 키.
현재의 창을 그대로 나두고 또 하나의 새로운 창을 만들 때 사용.
- 파일을 다운 받거나 서버로 부터 응답이 늦어질 때, 이 단축키를 열어 다른 링크 사이트로 접근이 가능.

6. Alt 키 + F4 키.
현재 열려있는 창을 닫을 때 사용.

7. Ctrl 키 + O 키.
웹 사이트의 주소창만 띄워 새로운 사이트를 열려고 할때 사용.

위에서 설명한 것 중 많이 사용하는 것.
Alt + <- (왼쪽 화살표) ▶ 이전 페이지로
Alt + -> (오른쪽 화살표) ▶ 다음 페이지로
Alt + F4 ▶ 열려있는 창 닫기(Ctrl + W 와 비슷)
Ctrl + R ▶ 문서 다시 읽어 들임
Ctrl + B ▶ 북마크(즐겨기 편집창) 폴더로 이동
Ctrl + D ▶ 북마크에 추가
Ctrl + N ▶ 새로운 창 생김
Ctrl + O ▶ 새로운 주소 입력창 열기

▷마우스 볼과 같은 기능◁
↑ ↓ 키는 볼을 굴리지 않아도 현재창을 위, 아래로 쉽게 움직일 수 있음.

 

 

마우스 고장시 키보드를 마우스처럼 사용하는 방법

 

키보드를 이용해서도 마우스 포인터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평상시 마우스와 동시에 쓸 수도 있지만, 마우스가 고장나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겠죠? 윈도우의 마우스키 기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 마우스키 설정 방법 ★

평상시 마우스를 이용해 설정해 두면 쉽게 되지만, 미리 설정해두지 않고 마우스가 작동 불능 상태가 된 경우 키보드를 이용해 설정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Tip]아래 각 항목의 이동요령은 방향키와 엔터로 창을 열고, 열려진 윈도우창 내에서 필요한 아이콘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Tab키를 몇 번 눌러 어느 아이콘 이름에 점선이 생기면 방향키로 해당아이콘으로 이동하고 엔터를 하면 열립니다.

1. 키보드의 윈도우키를 눌러 [시작] -> [설정] -> [제어판] -> '내게 필요한 옵션' 열기
2. '내게 필요한 옵션' 창에서 Tab키를 몇 번 눌러 위의 '키보드'탶에 점선이 생기도록 한 후 오른쪽 방향키로 마우스탶으로 이동 -> 다시 Tab키를 눌러 '마우스키 사용'이라는 아래 체크옵션 글씨항목에 점선이 생기도록함 ->여기서 '스페이스바키'를 한 번 눌러 '마우스키 사용'옆 □에 ∨표시가 되도록 함 ->다시 Tab키를 눌러 '확인'으로 이동 후 엔터하여 설정

이렇게 하면 화면 오른쪽 하단 작업표시줄[트레이]부분에 마우스 모양이 생기고 지금부터 키보드
오른쪽 숫자패드를 눌러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포인터의 상하좌우 대각선 이동은 1,2,3,4,6,7,8,9키
클릭하려면 숫자키 5
더블클릭은 +키
드래그는 0키를 한 번 누른 후 숫자패드 방향키로 이동
(드래그를 끝내려면 Del키를 누름)


만약, 마우스키가 작동하지 않으면 키보드 오른쪽 위에 있는 NumLock키를 눌러 램프에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작동해 보세요.

 

원문보기 : http://blog.daum.net/oldkp/9444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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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해마다 이맘때면 한국전쟁 관련서들이 출간된다. 올해는 아니어서 관련서들을 검색해보다가 눈에 띄는 사진집에 대한 소개 기사를 옮겨온다. 간략한 기사는 '민중의 소리'(06. 06. 22) 서재진 기자의 것이다.

  

-6.25 한국전쟁 발발 56주년을 앞두고 한국전쟁 당시의 상처들을 담은 사진집 2권이 사진전문 눈빛 출판사에서 20일 발간됐다. 소설가 박도씨가 2004년 2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의 사진자료실에서 찾아낸 한국전쟁 사진 230여점을 선별,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를 펴낸 것.

-이와 함께 지난 2004년 발간했던 <지울 수 없는 이미지1>에 담았던 사진과 그 후 찾아낸 사진 중 100장을 골라 전쟁을 직접 체험한 김원일 문순태 전상국 이호철 등 소설가 4명의 증언 에세이를 함께 실은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을 동시에 발간했다.

-소설가 박도씨는 두번째 사진집에서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 혹독한 전쟁기를 어 떻게 이겨내셨을까"에 중점을 두고 사진을 골랐다고 밝혔다. <지울 수 없는 이미지>는 그래서 전란 속에서 신음하는 민초들의 참혹한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집의 1부에는 전쟁 중의 남대문, 서울역, 국회의사당 등 당시 보기 드물었던 컬러 사진 40점이 수록돼 있고, 2부에는 전쟁으로 울부짖는 피란민과 고아, 전쟁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전쟁 포로 및 군의 활동상과 함께 실려있다.

△이미 숨진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집단학살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 중에서 가족을 확인한 유족들이 울부짖고 있는모습.(1950년.10월 함흥)

 

△미군의 네이팜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는 모습.(1951년.2월 수원)

△미 공군 전투기가 원산 시가지를 폭격하는 모습.(1951년)

△월미도에서 체포된 뒤 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검색을 당하고 있는 북한군 모습.(1950년 9월)

06. 06. 24.

 

 

 

 

P.S. 한국전쟁 관련 주요 저작들을 꼽아본다. 소련의 문서고가 공개되면서 한국전쟁에 관한 새로운 진실들이 더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 나온 정병준의 <한국전쟁>(돌베개, 2006)은 그러한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고. 이에 대한 동아일보의 소개기사.

 

 

 

 

"<한국전쟁>은 전쟁 발발 과정을 옛 소련과 미국의 문서 등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특히 6·25전쟁 직전 국군 17연대가 황해도 해주로 먼저 침공하자 북한이 반격해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남침 유도설’의 허구를 명백히 입증한다. ‘해주 공격설’은 개전 직후 북한군에게 형편없이 밀리던 국군이 선전용으로 퍼뜨린 것에 불과하며 당시 국군이 이미 궤멸상태여서 침공 능력도 없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설명했다."

남침유도설의 허구는 재작년 모스크바 체류시 러시아 TV에서 방영한 한국전쟁 관련 다큐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소련 정부도 공식적으로는 '북침'을 주장하면서 TV로는 조작된 필름을 내보냈었다("사실은 정반대였다"라면서 필름을 다시 거꾸로 돌리며 나레이터가 해설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래는 한국전쟁 관련 러시아 사이트에서 찾은 김일성(1912-1994)의 사진(1950년 11월에 찍은 모습이다. 그의 나이 38세때니까 내 나이로군!). 소련군 장교 출신이었던 김일성은 모스크바를 찾아서 스탈린의 지지를 확인받고 1950년 6월 '통일전쟁'을 감행했다(그의 항일투쟁 경력은 소련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러시아 방송은 보도했다. 러시아 역사에서는 빈번했던 일이지만, 김일성은 전설적인 항일투쟁 영웅 '김일성 장군'의 참칭자였다).

그리고 아래는 미군이 북한군의 회유를 목적으로 뿌린 삐라(삐라에도 진실은 있다! 말해지지 않은 진실, 수령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을 이른바 '대리전'으로 규정하는 전통적 시각이 이미 담지돼 있다(이와는 반대로 '내전'으로 규정하는 것이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 시각이다). 그것이 사실판단의 문제인지, 해석의 문제인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아무려나 전쟁을 기획하고 주도했던 당사자들의 역사적 책임이 감면되는 것은 아니다. 한홍구 교수의 김일성에 대한 평가를 들어본다. 한겨레21(04. 07. 08)의 역사이야기 칼럼 중 '20세기형 민족주의자, 김일성'의 일부이다.

-김일성은 우리 민족이 가장 암울한 상태에 놓여 있던 1937년 보천보전투를 통해 혜성같이 나타났지만,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남쪽에서는 민족의 태양에서 괴뢰집단의 괴수로 전락했다(*1937년이면 김일성의 나이 25살 때의 일이다). 괴뢰,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꼭두각시란 뜻이다. 제 민족을 가리키는 말 중에서 가장 고약한 괴뢰란 말을 남과 북은 서로에게 마구 써먹었다. 지금도 수구언론은 ‘국방백서’가 ‘북괴’를 ‘주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을 트집잡고 있다.

-김일성을 소련이 내세운 꼭두각시로 모는 것은 해방 직후에 남쪽에서 정권을 잡은 친일파들로서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그런데, 김일성에게 조언을 했던 소련 선전 담당자의 회고가 그렇다). 그런데 김일성 정권이 1950년대 중반부터 주체를 앞세우고, 자주노선을 추구했음에도 ‘괴뢰’란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이 ‘꼭두각시’는 소련의 해체로 자신을 조종할 배후가 없어졌는데도, 여전히 혼자서 춤을 추는 ‘괴뢰’치고는 참으로 희한한 괴뢰였다.

-김일성은 참으로 많은 것을 성취한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항일무장 투쟁 시절부터 꿈꿔온 자신의- 아니, 모든 조선 사람의- 소중한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항일무장 투쟁 시절 이래 김일성의 꿈은 조선민족 누구나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었다. 쌀밥에 고깃국은 김일성에게는 사회주의 건설의 완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김일성은 살아생전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심장이 고동을 멈춘 직후부터 그를 어버이로 섬기던 이북 주민들이 굶어죽기 시작했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한,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일치될 수 없다. 아니, 남쪽 사회 내부에서도 김일성을 놓고 평가가 일치할 수 없다. 그가 항일무장 투쟁의 영웅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해도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데, 그는 분단과 전쟁을 거쳐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첨예한 남북 대결의 주역이었다. 이북의 역사가들은 항일영웅 김일성의 업적을 너무나 과대포장했기에, 이북 밖의 학자들은 김일성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를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이북 학자들에 비하면 그를 깎아내린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또 그 주된 원인을 설사 미국 탓으로 돌린다 하더라도 김일성은 이북의 경제난과 인권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단 하룻밤이라도 한데서 새어본 적이 없는 자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단 한번도 발품을 팔아본 적이 없는 자들이, 영하 40도가 되는 추위 속의 밀림 속에서 밤을 지샌 투사들을 모욕하게 할 수는 없다. 항일투사 김일성에 대한 폄하는 곧 1930년대 후반 이래의 우리의 항일 민족해방 운동에 대한 폄하가 된다(*친일파에 대한 혐오가 김일성의 우상화를 정당화하는가? 김일성을 폄하하면 갈데없는 친일파인가?).

-김일성을 한국전쟁의 ‘전범’으로 규탄하는 일은 친일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탈출구였다. 그들에게 모든 역사는 1950년 6월25일에 시작하는 것이었다(*한국전쟁의 기원은 한국현대사의 기원이다!). 그 이전에 우리가 왜 분단됐는지, 분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일제의 압제하에서 누가 일제의 앞잡이였고, 누가 항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전쟁이 찾아왔는지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군대를 동원한 자가 모두 뒤집어쓰는 그런 게임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들, 특히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들이 누구 손에 죽었는가도 상관이 없었다.

-김일성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민족의 태양에서 소련의 괴뢰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져온 전범으로 추락해갔다. 분단된 조국에서 그가 계속 민족의 태양일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그가 북쪽에 있는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형제들의 수령,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평양은, 아니 전 이북이 흐느꼈다. 물론 박정희가 죽었을 때도 착한 백성들은 연도에 나가 슬피 울었다.

-그러나 그 강도가 똑같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이건 넌센스 같은 질문 아닌가?) 다 독재자들의 세뇌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거대한 가족국가의 가부장이었던 김일성이 가족국가의 구성원 개개인과 맺은 의사 진한 관계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북을 이해할 수 없다(*이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것은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종교학일 것이다)...

-(*한교수의 결론) <세기와 더불어>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김일성은 20세기의 인간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부국강병에 기초한 근대화를 추구한 20세기형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누구보다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의외의 평가이다. 민족주의나 공산주의가 실용주의인가? 더구나 실용주의자로서라면 그는 실패한 것 아닌가?). 덩샤오핑은 쥐를 잘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떻냐는 흑묘백묘론을 설파하여 유명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이 그보다 25년 전에 밥만 잘 먹을 수 있으면 되었지 왼손으로 먹건 오른 손으로 먹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작은 나라 이북에서 그의 말은 법이 되고 그의 경험은 철학이 되고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와 권력을 누렸고, 유례가 없는 권력승계를 이루었다. 나도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벌어진 부자간의 권력승계가 탐탁지는 않다. 그러나 이를 비난만 하다 보면, 정치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공유할 수 없다는 상식을 깨고 20년가량 북을 다스린 사실을 잊게 된다.(*적절한 지적이다. 북한의 권력세습은 상식 밖이다 혹자는 미국 부시 정부도 일종의 '세습 정권'이라고 평하지만)...

 

 

 

 

-김일성, 그는 레닌이 되기에는 너무 오래 집권했고, 호치민이 되기에는 일가친척이 너무 많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역사를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나중에 비록 왜곡됐을지언정, 그가 세운 나라에는 분명 동학농민군의 꿈과, 의병과 독립군의 꿈과, 항일 빨치산의 꿈이 담겨 있었다. 어린 누이가 빚에 팔려 첩살이 가는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이 당 간부가 되고, 장군이 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된 그런 나라였다. 소수의 빨치산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체 구성원이 건국 반세기 이후에 한국전쟁 때보다 더 힘들었다는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던 나라의 지도자 김일성. 10년이란 세월은 아직 형제들의 수령을 평가하기에는 이른 것일까?(*아마도 100년은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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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나남신서 29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은 이 리뷰엔 오역에 관한 문제만 제기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어 외의 언어는 일체 독해가 불가능한 인간이라 주제넘게 오역이 의심되는 부분을 문제시하는 것이 껄끄럽기도 하지만, 문맥상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 몇 개만 제시합니다. 잘 아시는 분이 검토해주시면 좋겠네요.

1. 주석의 오류-인용한 서적의 출판연도

푸코가 문맥상 17~18세기의 자료들을 인용한 것 같은데, 20세기로 되어 있는 부분이 많군요.

p. 139

각주 29)번을 보면 Jean Bagtise Colbert 의 생몰연도가 1919~1983으로 되어있는데 루이 14세 때 인물이라면 1619~1683이 맞을 것 같군요.

p. 192

역시 각주 45)번을 보면 P. Goubert와 M. Denis의 저서《프랑스인은 발언한다》연도가 1964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18세기의 감금 시설이 폐지되기를 청원하는 책이라고 하므로 역시 연도가 맞지 않는 것 같네요. 저는 그 책을 모르므로, 만약에 문제의 책이 브리에 거리의 '제 3신문'의 청원에서 인용된 문구를 1964년에 간행된 책에서 인용한 것을 재인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문맥상 연도가 역시 틀린 것 같습니다.

p. 330.

각주 28)번을 보면 "18세기의 경찰 관계의 기록에 대해서는 M. Chassaignne의 《경찰 총대관직》(1906)을 참조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 푸코가 인용한 책들의 각주를 보면 재인용보다는 직접 인용이 거의 다이기 때문에 역시 연도가 의심스럽습니다.

그 외에도 몇 군데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깜박 잊고 표시를 못 해두었습니다.

 

2. 내용상 오류로 의심되는 부분 두 곳만 지적하겠습니다.

p.207

(「제 2부 - 처벌」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제권, 신체, 독방, 비밀을 중심으로 한 처벌 권력의 모형이 어떻게 하여 표상, 무대, 기호, 공개, 집단을 중심으로 한 모형으로 교체되었는가?"

권력 과시용인 신체형의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면에 문제를 느끼고 범법행위와 처벌의 관계를 기호, 표상화한 모델이 제시되었는데, 이것이 아닌, 권력의 물리적 행사 및 감옥이 어떻게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3부로 넘어가기 앞서 던지는 질문이므로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 같네요.

"표상, 무대, 기호, 공개, 집단을 중심으로 한 모형이 어떻게 하여 강제권, 신체, 독방, 비밀을 중심으로 한 처벌 권력의 모형으로 교체되었는가?"

p.390

그리하여 이제 평온한 법원과 법의 위엄에 붙어다니게 되는 것은 사법 장치의 하층토양에서, 다시 말해서 사직당국으로부터 유죄 선고를 받는 이들에게 형벌을 부과하는데 부끄러움을 느낀 사직당국이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 그 '비천한 일'의 수준에서 형성되는 범죄,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판결을 내릴 때 인식하고 평가하고 측정하고 진단하고 취급해야 할 것도 바로 그것이며, 형법전을 개정할 때 고려해야 할 것 또한 다름 아닌 그것, 그 비정상, 그 일탈, 그 은밀한 위험, 그 질병, 그 생존 형태이다. 범죄는 재판에 대한 감옥의 복수이다. 재판관을 어안이 벙벙하게 할 정도로 대단히 무시무시한 복수이다. 그때 범죄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 부분이, 제가 이해를 못 한 건지, 오역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장황해서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문장입니다. 아무튼 의문점 제기해보겠습니다. 푸코는 감옥이 비행자들을 만들어낸다고 p. 389에서 말하면서 그 문장에 대해 일반적으로 아는 의미가 아닌 다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감옥이 비행자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감옥은 과거에 그곳에 위탁된 이들을 거의 숙명적으로 다시 법정에 서게 한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법-위반, 재판관-범법자, 수형자-형벌집행자 사이의 상호작용 안에서 그것들을 서로 결부시켜 비행성이라는 비신체적 내용을 그러한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 이끌어내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단락에서 행형기술과 비행자는 서로 인과관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한쪽의 연장인 "쌍둥이 형제"와 같은 관계라고 밝히죠.

범죄가 재판에 대한 감옥의 복수라니요? 문맥상 무슨 말인지 몰라 이해하느라 몇 번이고 곱씹어보다가 포기했습니다. 물론 이 문장이 옳다고 가정한다손 치더라도,  4부의 제 2장 〈위법행위와 비행〉에서 감옥의 행형체계 및 기술과 규율이 적용된 사법과의 상호관계(?말이 딸려서 이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로 감옥이 기여한 바는 오히려 비행을 생산하고, 이로 인해 비행 생산 계급과 기득권층을 분리시키며, 사회적인 기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인간을 "비행자"로 만들며, 여기에 범죄에 대한 사회인의 양심을 부각시켜 비정상적인 일탈행위로 인식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부르주아지의 더 교묘한 비행을 은폐하는 역할도 했다고 밝히긴 합니다. 그런 맥락의 의의에서라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뜬금없이 너무 앞서서 등장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범죄는 재판을 통해 감옥이라는 복수에 처한다"로 되어야 매끄럽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저작을 무릎을 치고 감탄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읽긴 했습니다만, 푸코의 문체가 원래 그런 건지, 번역이 매끄럽게 되지 못한 건지, 몇 부분은 읽느라 진땀뺐습니다. 시기가 늦더라도 이 리뷰 보신 푸코에 대해 잘 아시는 누군가가, 제가 오역으로 의심된다고 제기한 부분들을 해명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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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6-2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다 읽으 신건가요... ..^^; 대단하시네요..@@// 저는 아직 기웃기웃거리고 있는데..^^;

IshaGreen 2006-07-05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려운 책 잘 읽을 수 있을 수준의 머리는 아닙니다.ㅎㅎ 다만 감시와 처벌은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고 주제를 끌어나가는 푸코의 힘에 가독력이 꽤 높은 책이더군요^^
 



 

30년간 500여권 출간, 어린이 위한 철학만화도 펴내... 플라톤의 `국가`는 14년 걸려

서광사에 전화로 책을 주문하는 고객은 주민번호까지 일일이 불러줘야 한다. 2005년 초 세무조사에서 ‘개인에게 책을 팔 때도 세금계산서를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지받은 후 이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직원 5명이 일하는 작은 출판사지만 이렇듯 서광사는 원리원칙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 철학책을 전문으로 펴내는 ‘서광사’는 김신혁(金信爀·62) 사장이 1974년 당시 다니던 인쇄소를 그만두고 나와 자본금 100만원을 가지고 문을 열었다. “사장님이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한때 신부가 되려고까지 했어요. 처음부터 철학책을 전문적으로 내는 출판사를 세우기로 마음먹었던 거죠.” 1999년 12월 김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 회사의 경영을 맡고 있는 부인 이숙(李淑·58) 부사장의 말이다.

아직 국내에 저작권법이 발효되기 전이었던 당시엔 원서를 제본해서 판매하는 리프린트부터 시작했다. 리프린트하는 책 또한 철학 원서였다. 많은 수의 원서를 리프린트 하면서 훑어보고 번역출판 가능성을 검토해 본격적으로 출판에 뛰어들 채비를 했다. 마침내 1977년 서광사의 첫 번째 책인 롤스의 ‘사회정의론’이 출간되었다.

서광사의 책에는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다. 롤스의 사회정의론을 1번으로 해 가장 최근에 출간된 ‘공자와 유가’는 511번을 달고 있다. 약 30년 동안 500여권을 펴냈으니 한 해에 출간한 책은 20권이 채 안되는 셈이다. 한 권당 1년에 보통 100권 정도가 팔린다고 하니 ‘저렇게 팔아서 장사가 되려나’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500여권의 책이 대부분 절판되지 않고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팔리고 있다. 1년 동안 팔리는 책을 합산해 보면 8만~9만권 정도가 된다.

서광사는 시대를 앞선 경영 방식으로 출판가에 화제가 되곤 했었다. 우선 야근이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되어있는 출판계의 상황에서 정시 출퇴근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아침 9시 출근, 오후 5시 50분 퇴근’이 그것. 야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사장한테 허락을 맡도록 했다. 더욱 놀랄 일은 1987년에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한 것. “처음엔 직원들이 더 불만이 많았었다고 해요.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은 남들 일할 때 집에서 쉬고 있으면 불안해 하잖아요. 그런데 얼마 지나니까 역시 다들 만족해하더래요. 처음엔 사람들이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몰랐던 거죠.”

서광사가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김신혁 사장이 한 잡지에 기고한 글을 봤다. 거기에는 “(사원들이)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며 “새로 입사한 직원 중에는 ‘회사가 개인에게 지나치게 관여한다’거나 ‘숨이 콱콱 막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토요일에 일하고 싶은 사람을 회사에 못 나오게 하는 것도 당시엔 심각한 사생활 침해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1993년에 외국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았지만 국내에는 생소했던 인세후불제를 시행했다. “저자들은 안전하게 선불로 계약금 받는 걸 선호했죠.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저자들도 연말마다 세금공제 서류까지 첨부해서 책의 매출현황을 정확하게 기록한 내역서를 받아보시고는 이렇게 투명하게 하는 쪽이 더 낫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자에게 보내는 매출내역서를 정리하듯이 회사의 재무관리도 책 한 권, 비품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며 투명하게 해나갔다. “10년쯤 전이었을 거예요. 세무사들이 세무조사를 하러 왔는데 막상 아무런 잘못도 발견하지 못한 거예요.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짜증을 냈다고 하더라고요.”

회사가 투명하다는 것은 사장이 없더라도 회사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투명하게 경영한 덕을 보게 되었다. 김신혁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동이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언어장애가 왔기 때문에 경영을 계속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족들은 출판사의 거취를 놓고 고민했다. 이 부사장은 “출판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엄두가 안 났죠. 그렇다고 사장님이 그토록 애정을 가진 사업을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유학 가기 전에 잠시 회사 일을 돕고 있던 큰 아들과 함께 이 부사장이 회사를 맡기로 했다.

“예전에 사장님이 집에 오면 회사 얘기를 참 많이 했어요. 그냥 무슨 일이 있었다는 정도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 이러이러한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식으로 저한테 자문도 많이 구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집에 있으면서도 회사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죠. 또 회사에 와보니 매출, 수금현황 등 회사 경영에 대한 자료가 워낙 투명하게 잘 정리돼 있어서 그런 것들을 하나둘 보면서 업무를 익힐 수 있었어요.”

취재를 하면서 매출실적, 출간현황 등을 물어보면 이 부사장의 큰 아들인 김찬우 부장이 표와 자료를 뒤져가면서 정확한 수치를 대답해줬다. 김 사장이 쓰러진 후 항간에는 ‘서광사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경영을 맡은 후에도 서광사의 책이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는 등 전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금 출판사엔 역·저자의 원고가 밀려들고 있다.

30년 이상 철학책만 펴내다보니 주위에서 “돈 안되는 철학만 전문으로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책을 내보라”고 권유도 많이 받았다. 서광사는 ‘철학 외길’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의 책을 내는 대신에 다른 연령대를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1990년부터 출간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철학 동화 ‘사랑과 지혜가 담긴 동화’와 ‘세상의 빛깔들’ 시리즈, 1997년부터 펴낸 청소년을 위해 만든 ‘만화로 읽는 철학’ 시리즈가 그것이다. 현재는 청소년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철학책이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서광사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아동용 철학책을 찾는 분 중에 논술과 관련된 책인지를 묻는 분이 적지 않게 있어요. 철학책마저도 입시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보고 찾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무어냐고 물었다. “플라톤의 ‘국가’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계약을 한 건 1983년이었을 거예요. 1997년에 출간됐으니까 책이 나오기까지 14년이 걸린 거죠. 원고가 도착하던 날 사장님이 ‘14년 만에 원고 받아오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찼다’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나요. 플라톤의 ‘국가’는 원체 유명한 고전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그리스어를 원서로 해서 완역을 한 건 처음이었을 거예요.”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덕인지 판매실적도 지금껏 나온 책 중에 가장 좋다. 지금까지 1만2000부 정도가 팔려나갔다.

어느덧 3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서광사는 국내 철학 출판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앞으로의 목표는 소박하다. “집에 계신 사장님 꿈이 생전에 철학책 1000권을 출간하는 거예요. 30년 동안 절반 정도 냈으니까 앞으로도 부지런히 내야죠. 시장환경이 안 좋아도 좋은 책은 꾸준히 팔리더라고요. 특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같은 고전은 세대가 바뀌어도 계속 찾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이런 고전분야를 비롯한 좋은 철학책을 꾸준히 내서 서광사 일련번호를 1000번까지 늘리고 싶습니다.”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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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외 범우고전선 6
J.J.루소 지음 / 범우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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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우사판 《사회계약론》에는 루소의 저작 사회계약론/인간불평등기원론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회계약론은 루소 전공자가 번역한 것 같고, 아마도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중역된 듯하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읽던 책들을 덮었었는데, 《사회계약론》 총 4장중 3장까지 읽다 덮어두고 여러 해동안 읽지 않다가 누렇게 바랜 책을 이 책을 꺼내어 다시 처음부터 읽은 건 평택 사건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평생 운운하는 게 어쭙잖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평택 사건은 내게 평생 큰 부끄러움으로, 아픔으로, 앙금으로 남을 것 같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 권력이란 왜 생겨났는가? 아나키스트들이 이야기하듯이 본래 국가란 "최대의 합법적 폭력기관"에 불과하다고 평소에 시니컬하게 생각하던 나였지만, 평택 대추리 사태를 비롯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이 질문은 아프게 내 심장을 찔러왔다. 왜? 자유로운 개인이, 왜? 국가가 감히 무슨 권리로? 왜? 왜? 왜? 왜?

19세기 로맨티스트 자유주의자처럼 도취되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회계약론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구제도의 모순이 축적되어 곪아터지기 일보직전이었던 18세기에, 그 암담한 시기에도 자연 상태의 인간이 본래 선량하고 자유로운 존재였다고 신뢰한 루소여, 나는 그 위대한 휴머니즘에 코끝이 찡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도 인간의 본성이 선량하다고 믿을 수가 없어서, 당신의 휴머니즘이 정말이지 부럽다. 인간의 본성을 신뢰했기에, 자유로운 신민들 모두의 (다수결이나 수량의 합으로 회귀되는 정의가 결코 아니다) 공통된 의지의 합인 일반의지를 무조건 선하다고 보았다. 국가가 이렇게 일반의지를 행사한다면 신민은 자기 자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으로 귀결되므로 그럴 때만이 국가 권력에 복종할 수 있게 된다고 본 것이다. 루소는 국가가 특수의지와 엄격히 구분된 일반의지를 행사하게 된다면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학을 인간의 윤리를 완성시키는 학문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자, 오늘날의 정치 행태는 어떠한가? 감히, 이미 어린애들까지 거짓말이 판치는 개판으로 인식하는 우리 정치판에 이 논리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루소를 모독하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다. 물론 루소의 논리는 이상적인 이론이므로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아무튼, 그래도 아직까지 도취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련다. 개한민국 정부 및 국회에, 제발, 특수의지가 아닌, 조금이라도 일반의지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려는 사명감에 찬 인재가 들어설 날은 결국 없는 것인가? 아니, 인간이라는 종족이 국가라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종속하는 한, 일반의지를 행사하는 권력은 결코 들어설 수 없는 것인가? 그런 인재가 있다고 해도, 무지몽매한 대중은 불안정한 자유보다는 안정한 독재자를 원하므로 역시 힘든 문제다. 아니,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동물적 욕망에 지적 호기심까지 양 날에 곁들인 자연 최대의 적이므로, 영원히 불가능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휴머니스트인 루소마저도 자기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내다버린 모순적인 인간이었다지 않는가.

최소한의 정치 철학도 갖추치 못한 무뇌아인 정치인들에게 사회계약론을 읽혀야 한다. 반드시 이 책을 읽히고 논술 시험을 치른 뒤 통과하면 정치판에 서든지 말든지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라고 억지 주장을 세우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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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 2006-12-28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재미있는 글이네요^^;;; 요즘 정치가 .... 쩝... 괜히 짜증나는군요. 아무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사야하나 모르겠네요..-_-;;ㅋ 99년 출판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