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도그마로 가로막힌 관점에서가 아니라 비평적인 관점으로 성경이라는 유대 민족의 경전을 분석하여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의 목록입니다. 성경이 기독교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 유산으로써 어떤 가치를 갖고 있고, 어디서 유래했으며, 어떤 오류들이 그 동안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는지 아는데 큰 도움을 준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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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성서 아포크리파 : 구약시대- 초대교회에서 읽었던 원초적 성서
이동진 엮어옮김 / 해누리 / 2001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4년 08월 11일에 저장
구판절판
구약 성서에 포함되지 못한 외경들을 엮은 책입니다. 실은 아직 저도 읽어보지 못했답니다^^;
제2의 성서 아포크리파 : 신약시대- 초대교회에서 읽었던 원초적 성서
이동진 엮어옮김 / 해누리 / 2001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4년 08월 11일에 저장
구판절판
기독교의 형성 과정에서 현재의 성서에 포함되지 못한 신약의 외경들이 엮어져 있는 책입니다. 현재의 기독교 문자주의와 극심한 대립을 보인 영지주의 문서라든지, 민담적 요소가 강한 복음서, 성모 마리아의 탄생과 관련된 복음서 등의 재미있는 외경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적, 정치적 이유때문에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는지 생각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습니다.
성경 :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이스라엘 핑컬스타인 & 닐 애셔 실버먼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02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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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그동안 학계의 연구 성과들을 제시하며, 구약 성경의 사건들이 후대에 부풀려지거나 꾸며지게 되었다는 사실과 과정을 보여주는, 상당히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성서가 된 신화
게리 그린버그 지음, 김한영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1년 12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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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구약 성서가 어떤 문헌들을 편집해서 만들어졌는지, 고대 근동의 역사 혹은 신화 관련 문헌과의 비교와 성서 자체에 남겨진 흔적을 분석하여 보여줍니다. 내용 자체는 재미있지만 구성이 조금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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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blog.naver.com/th3030/120003995291

- 역사상 최고소설, <돈키호테> -

중세 말 17세기 기사계급의 몰락을 풍자적으로 그린 <돈키호테>가 역사상 최고의 소설로 뽑혔다고 영국 BBC방송이 2002년 5월 7일 보도했다. 노르웨이의 노벨 연구소와 북 클럽스가 세계 50여개국 출신 100명의 유명작가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스페인 출신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50%가 넘는 득표율로 이 같은 영예를 안았다고 방송은 전했다. 세르반테스는 문학에 맞는 문체를 완성했으며 돈키호테는 세계문학의 첫번째 위대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이번 설문에 참가한 작가는 살만 루슈디(인도)와 노먼 메일러(미국), 밀란 쿤데라(체코),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등 거장들이다. 노벨 연구소 등은 이들 작가에게 세계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소설 10편씩을 꼽아달라고 부탁했으며 이를 토대로 최고작품 및 100대 작품을 선정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가운데 가장 많은 4편의 작품이 올랐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영국)와 프란츠 카프카(체코), 톨스토이(러시아)가 3편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구스타브 플로베르(프랑스)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호머(고대 그리스), 토마스 만(독일), 버지니아 울프(영국) 등도 2편씩 포함됐다.

아래는 노벨연구소가 세계적인 작가에게 의뢰하여 선정한 100대 작품목록이다.

- 그리스 -

호메로스, <일리아드>, <오디세이>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에우리피데스, <메데아>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이탈리아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베르길리우스, <아에네이드>
단테, <신곡>
보카치오, <데카메론>
지아코모 레오파르디의 '시집'
이탈로 스베보, <제노의 고백>
엘자 모란테, <이야기>


 

 

 

 

- 프랑스 -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몽테뉴, <수상록>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
스탕달, <적과 흑>
발자크, <고리오 영감>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감정교육>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밤의 끝으로 여행을>
알베르 카뮈, <이방인>
사무엘 베케트, <삼부작 : ­몰로이 · 말론 죽다 · 이름붙일 수 없는 것>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 영국 -

초서, <켄터베리 이야기>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리어왕> <오델로>
로렌스 스턴, <트리스트럼 샌디의 삶과 의견>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조지 엘리어트, <미들마치>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찰스 디킨즈, <위대한 유산>
로렌스, <아들과 연인>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 <등대로>
조셉 콘라드, <노스트로모>
조지 오웰, <1984>
도리스 레싱, <황금 노트>
살만 루시디, <한밤의 아이들>

 

 

 

 

 

 

 

- 아일랜드 -

<니알의 사가(saga)>
할도어 렉스네스, <해방된 민중>

- 독일 -

괴테, <파우스트>
토마스 만, <붓덴부르크 일가> <마의 산>
카프카, '단편', <심판> <성>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파울 첼란의 '시집'
귄터 그라스, <양철북>



 

 

 

 

- 러시아 -

고골리, <죽은 혼>
레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외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 형제들>
안톤 체호프, <단편선>

 

 

 

 

 

 

 

- 포르투갈 -

페르난도 페소아, <근심의 書>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 스페인 -

로르카, <집시의 노래>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 미국 -

허만 멜빌, <모비딕>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드가 앨런 포, <단편전집>
월트 휘트먼, <풀잎>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포크너, <압살롬 압살롬> <음향과 분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랄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토니 모리슨, <당신>

 

 

 

 

 

-북유럽 -

안데르센, <동화집>(덴마크)
입센, <인형의 집>(노르웨이)
크누트 함순, <굶주림>(노르웨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말괄량이 피피>(스웨덴)

 

 

 

 

- 아시아 -

루쉰, '소설집'(중국)
<마하브하라타>(인도)
발미키, <라마야나>(인도)
칼리다사, <사쿤탈라>(인도)
시키부 무라사키, <겐지 이야기>(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일본)


 

 

 

 

- 아프리카 -

타예브 살리흐, <북쪽으로 가는 계절>(수단)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은 무너진다>(나이지리아)

 

 



 

 

 

- 라틴아메리카 -

후안 룰포, <페드로 마라모>(멕시코)
보르헤스, <단편집>(아르헨티나)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콜롬비아)
호아오 귀마레스 로사, <오지에서의 곤경>(브라질)


 

 

 

 

- 아랍권 -

<길가메쉬 서사시>(메소포타미아)
<천야일야>(페르시아)
<욥기>(이스라엘)
자랄 앗-딘 루미, <마트흐나위>(이란)
세이크 무스하리프 웃-딘 사디, <과수원>(이란)
나지브 마흐푸즈, <우리 동네 아이들>(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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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퍼온글] 키보드를 마우스처럼 쓰는 법

알아두면 편리한 자판 사용법 입니다.

1. 인터넷을 검색하다 앞화면으로 가고 싶다면, 마우스 대신 ◀━를 사용(back키).
-마우스로 뒤로가기... 이제 그만...

2. F1 = 인터넷 도움말.

3. F3 = 파일찾기.
찾고 싶은 파일...이제 쉽게 찾을 수 있음.

4. F4 = 주소창.
주소를 고를 때도 자판의 화살표를 이용하면 무척 편함.
아래로 위로 잘 골라서 엔터키를 치고, 이동하고 싶은 주소로 이동.

5. F5 = 새로고침.
검색하다 빨리 새로 고치고 싶을 때 마우스 필요 없음.

6. F6 = 주소창 블럭 설정.
이 기능은 주소창에 저장되어 있지 않는 새로운 주소로 이동 할때 사용하는데, F6키를 누르면 블럭이 설정되고 이때 Delete키를 치면 주소창이 지워짐.

7. F11 = 화면을 넓게 보고 싶을때 사용.
위, 아래에 메뉴창이 사라지면서 화면이 아주 넓어짐.

8. Ctrl + N = 현재 페이지가 하나 더 생김.
로그인까지 되어서....

9. Ctrl + W = 화면 순간 삭제.
야한거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가 오더라도 보던 페이지가 사라지니까 뭐했는지 절대 알 수 없음.

**Alt 키와 Ctrl키의 사용**

1. Alt 키 + 왼쪽/오른쪽 화살표 키.
웹 페이지의 앞,뒤 전환.
-바로 앞에 보았던 페이지나 다음 페이지로 쉽게 전환이 가능.

2. Ctrl'키 + R키.
지금보고 있는 페이지의 내용을 다시 읽어 줌.

3. Ctrl + D.
여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홈페이지가 있으면 북마크 (Book-mark) 기능을 사용하지만, 'Ctrl + D'키를 누르면 더욱 쉽게 해결됨.

4. Ctrl 키 + B 키
북마크를(즐겨찾기 편집창) 편집하거나 정리할 때 사용.
바로 북마크 폴더로 이동.

5. Ctrl 키 + N 키.
현재의 창을 그대로 나두고 또 하나의 새로운 창을 만들 때 사용.
- 파일을 다운 받거나 서버로 부터 응답이 늦어질 때, 이 단축키를 열어 다른 링크 사이트로 접근이 가능.

6. Alt 키 + F4 키.
현재 열려있는 창을 닫을 때 사용.

7. Ctrl 키 + O 키.
웹 사이트의 주소창만 띄워 새로운 사이트를 열려고 할때 사용.

위에서 설명한 것 중 많이 사용하는 것.
Alt + <- (왼쪽 화살표) ▶ 이전 페이지로
Alt + -> (오른쪽 화살표) ▶ 다음 페이지로
Alt + F4 ▶ 열려있는 창 닫기(Ctrl + W 와 비슷)
Ctrl + R ▶ 문서 다시 읽어 들임
Ctrl + B ▶ 북마크(즐겨기 편집창) 폴더로 이동
Ctrl + D ▶ 북마크에 추가
Ctrl + N ▶ 새로운 창 생김
Ctrl + O ▶ 새로운 주소 입력창 열기

▷마우스 볼과 같은 기능◁
↑ ↓ 키는 볼을 굴리지 않아도 현재창을 위, 아래로 쉽게 움직일 수 있음.

 

 

마우스 고장시 키보드를 마우스처럼 사용하는 방법

 

키보드를 이용해서도 마우스 포인터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평상시 마우스와 동시에 쓸 수도 있지만, 마우스가 고장나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겠죠? 윈도우의 마우스키 기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 마우스키 설정 방법 ★

평상시 마우스를 이용해 설정해 두면 쉽게 되지만, 미리 설정해두지 않고 마우스가 작동 불능 상태가 된 경우 키보드를 이용해 설정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Tip]아래 각 항목의 이동요령은 방향키와 엔터로 창을 열고, 열려진 윈도우창 내에서 필요한 아이콘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Tab키를 몇 번 눌러 어느 아이콘 이름에 점선이 생기면 방향키로 해당아이콘으로 이동하고 엔터를 하면 열립니다.

1. 키보드의 윈도우키를 눌러 [시작] -> [설정] -> [제어판] -> '내게 필요한 옵션' 열기
2. '내게 필요한 옵션' 창에서 Tab키를 몇 번 눌러 위의 '키보드'탶에 점선이 생기도록 한 후 오른쪽 방향키로 마우스탶으로 이동 -> 다시 Tab키를 눌러 '마우스키 사용'이라는 아래 체크옵션 글씨항목에 점선이 생기도록함 ->여기서 '스페이스바키'를 한 번 눌러 '마우스키 사용'옆 □에 ∨표시가 되도록 함 ->다시 Tab키를 눌러 '확인'으로 이동 후 엔터하여 설정

이렇게 하면 화면 오른쪽 하단 작업표시줄[트레이]부분에 마우스 모양이 생기고 지금부터 키보드
오른쪽 숫자패드를 눌러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포인터의 상하좌우 대각선 이동은 1,2,3,4,6,7,8,9키
클릭하려면 숫자키 5
더블클릭은 +키
드래그는 0키를 한 번 누른 후 숫자패드 방향키로 이동
(드래그를 끝내려면 Del키를 누름)


만약, 마우스키가 작동하지 않으면 키보드 오른쪽 위에 있는 NumLock키를 눌러 램프에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작동해 보세요.

 

원문보기 : http://blog.daum.net/oldkp/9444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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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해마다 이맘때면 한국전쟁 관련서들이 출간된다. 올해는 아니어서 관련서들을 검색해보다가 눈에 띄는 사진집에 대한 소개 기사를 옮겨온다. 간략한 기사는 '민중의 소리'(06. 06. 22) 서재진 기자의 것이다.

  

-6.25 한국전쟁 발발 56주년을 앞두고 한국전쟁 당시의 상처들을 담은 사진집 2권이 사진전문 눈빛 출판사에서 20일 발간됐다. 소설가 박도씨가 2004년 2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의 사진자료실에서 찾아낸 한국전쟁 사진 230여점을 선별,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를 펴낸 것.

-이와 함께 지난 2004년 발간했던 <지울 수 없는 이미지1>에 담았던 사진과 그 후 찾아낸 사진 중 100장을 골라 전쟁을 직접 체험한 김원일 문순태 전상국 이호철 등 소설가 4명의 증언 에세이를 함께 실은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을 동시에 발간했다.

-소설가 박도씨는 두번째 사진집에서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 혹독한 전쟁기를 어 떻게 이겨내셨을까"에 중점을 두고 사진을 골랐다고 밝혔다. <지울 수 없는 이미지>는 그래서 전란 속에서 신음하는 민초들의 참혹한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집의 1부에는 전쟁 중의 남대문, 서울역, 국회의사당 등 당시 보기 드물었던 컬러 사진 40점이 수록돼 있고, 2부에는 전쟁으로 울부짖는 피란민과 고아, 전쟁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전쟁 포로 및 군의 활동상과 함께 실려있다.

△이미 숨진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집단학살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 중에서 가족을 확인한 유족들이 울부짖고 있는모습.(1950년.10월 함흥)

 

△미군의 네이팜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는 모습.(1951년.2월 수원)

△미 공군 전투기가 원산 시가지를 폭격하는 모습.(1951년)

△월미도에서 체포된 뒤 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검색을 당하고 있는 북한군 모습.(1950년 9월)

06. 06. 24.

 

 

 

 

P.S. 한국전쟁 관련 주요 저작들을 꼽아본다. 소련의 문서고가 공개되면서 한국전쟁에 관한 새로운 진실들이 더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 나온 정병준의 <한국전쟁>(돌베개, 2006)은 그러한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고. 이에 대한 동아일보의 소개기사.

 

 

 

 

"<한국전쟁>은 전쟁 발발 과정을 옛 소련과 미국의 문서 등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특히 6·25전쟁 직전 국군 17연대가 황해도 해주로 먼저 침공하자 북한이 반격해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남침 유도설’의 허구를 명백히 입증한다. ‘해주 공격설’은 개전 직후 북한군에게 형편없이 밀리던 국군이 선전용으로 퍼뜨린 것에 불과하며 당시 국군이 이미 궤멸상태여서 침공 능력도 없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설명했다."

남침유도설의 허구는 재작년 모스크바 체류시 러시아 TV에서 방영한 한국전쟁 관련 다큐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소련 정부도 공식적으로는 '북침'을 주장하면서 TV로는 조작된 필름을 내보냈었다("사실은 정반대였다"라면서 필름을 다시 거꾸로 돌리며 나레이터가 해설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래는 한국전쟁 관련 러시아 사이트에서 찾은 김일성(1912-1994)의 사진(1950년 11월에 찍은 모습이다. 그의 나이 38세때니까 내 나이로군!). 소련군 장교 출신이었던 김일성은 모스크바를 찾아서 스탈린의 지지를 확인받고 1950년 6월 '통일전쟁'을 감행했다(그의 항일투쟁 경력은 소련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러시아 방송은 보도했다. 러시아 역사에서는 빈번했던 일이지만, 김일성은 전설적인 항일투쟁 영웅 '김일성 장군'의 참칭자였다).

그리고 아래는 미군이 북한군의 회유를 목적으로 뿌린 삐라(삐라에도 진실은 있다! 말해지지 않은 진실, 수령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을 이른바 '대리전'으로 규정하는 전통적 시각이 이미 담지돼 있다(이와는 반대로 '내전'으로 규정하는 것이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 시각이다). 그것이 사실판단의 문제인지, 해석의 문제인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아무려나 전쟁을 기획하고 주도했던 당사자들의 역사적 책임이 감면되는 것은 아니다. 한홍구 교수의 김일성에 대한 평가를 들어본다. 한겨레21(04. 07. 08)의 역사이야기 칼럼 중 '20세기형 민족주의자, 김일성'의 일부이다.

-김일성은 우리 민족이 가장 암울한 상태에 놓여 있던 1937년 보천보전투를 통해 혜성같이 나타났지만,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남쪽에서는 민족의 태양에서 괴뢰집단의 괴수로 전락했다(*1937년이면 김일성의 나이 25살 때의 일이다). 괴뢰,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꼭두각시란 뜻이다. 제 민족을 가리키는 말 중에서 가장 고약한 괴뢰란 말을 남과 북은 서로에게 마구 써먹었다. 지금도 수구언론은 ‘국방백서’가 ‘북괴’를 ‘주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을 트집잡고 있다.

-김일성을 소련이 내세운 꼭두각시로 모는 것은 해방 직후에 남쪽에서 정권을 잡은 친일파들로서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그런데, 김일성에게 조언을 했던 소련 선전 담당자의 회고가 그렇다). 그런데 김일성 정권이 1950년대 중반부터 주체를 앞세우고, 자주노선을 추구했음에도 ‘괴뢰’란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이 ‘꼭두각시’는 소련의 해체로 자신을 조종할 배후가 없어졌는데도, 여전히 혼자서 춤을 추는 ‘괴뢰’치고는 참으로 희한한 괴뢰였다.

-김일성은 참으로 많은 것을 성취한 지도자이기도 하지만, 항일무장 투쟁 시절부터 꿈꿔온 자신의- 아니, 모든 조선 사람의- 소중한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항일무장 투쟁 시절 이래 김일성의 꿈은 조선민족 누구나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었다. 쌀밥에 고깃국은 김일성에게는 사회주의 건설의 완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김일성은 살아생전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심장이 고동을 멈춘 직후부터 그를 어버이로 섬기던 이북 주민들이 굶어죽기 시작했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한,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일치될 수 없다. 아니, 남쪽 사회 내부에서도 김일성을 놓고 평가가 일치할 수 없다. 그가 항일무장 투쟁의 영웅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해도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데, 그는 분단과 전쟁을 거쳐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첨예한 남북 대결의 주역이었다. 이북의 역사가들은 항일영웅 김일성의 업적을 너무나 과대포장했기에, 이북 밖의 학자들은 김일성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를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이북 학자들에 비하면 그를 깎아내린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또 그 주된 원인을 설사 미국 탓으로 돌린다 하더라도 김일성은 이북의 경제난과 인권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남쪽 사회 내에서 갈릴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해야 한다.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만큼은 용인돼서는 안 된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단 하룻밤이라도 한데서 새어본 적이 없는 자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단 한번도 발품을 팔아본 적이 없는 자들이, 영하 40도가 되는 추위 속의 밀림 속에서 밤을 지샌 투사들을 모욕하게 할 수는 없다. 항일투사 김일성에 대한 폄하는 곧 1930년대 후반 이래의 우리의 항일 민족해방 운동에 대한 폄하가 된다(*친일파에 대한 혐오가 김일성의 우상화를 정당화하는가? 김일성을 폄하하면 갈데없는 친일파인가?).

-김일성을 한국전쟁의 ‘전범’으로 규탄하는 일은 친일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탈출구였다. 그들에게 모든 역사는 1950년 6월25일에 시작하는 것이었다(*한국전쟁의 기원은 한국현대사의 기원이다!). 그 이전에 우리가 왜 분단됐는지, 분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일제의 압제하에서 누가 일제의 앞잡이였고, 누가 항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전쟁이 찾아왔는지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군대를 동원한 자가 모두 뒤집어쓰는 그런 게임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들, 특히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들이 누구 손에 죽었는가도 상관이 없었다.

-김일성은 이런 과정을 거치며 민족의 태양에서 소련의 괴뢰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져온 전범으로 추락해갔다. 분단된 조국에서 그가 계속 민족의 태양일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그가 북쪽에 있는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형제들의 수령,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평양은, 아니 전 이북이 흐느꼈다. 물론 박정희가 죽었을 때도 착한 백성들은 연도에 나가 슬피 울었다.

-그러나 그 강도가 똑같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이건 넌센스 같은 질문 아닌가?) 다 독재자들의 세뇌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거대한 가족국가의 가부장이었던 김일성이 가족국가의 구성원 개개인과 맺은 의사 진한 관계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북을 이해할 수 없다(*이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것은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종교학일 것이다)...

-(*한교수의 결론) <세기와 더불어>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김일성은 20세기의 인간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부국강병에 기초한 근대화를 추구한 20세기형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누구보다 철저한 실용주의자였다(*의외의 평가이다. 민족주의나 공산주의가 실용주의인가? 더구나 실용주의자로서라면 그는 실패한 것 아닌가?). 덩샤오핑은 쥐를 잘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떻냐는 흑묘백묘론을 설파하여 유명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이 그보다 25년 전에 밥만 잘 먹을 수 있으면 되었지 왼손으로 먹건 오른 손으로 먹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작은 나라 이북에서 그의 말은 법이 되고 그의 경험은 철학이 되고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그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와 권력을 누렸고, 유례가 없는 권력승계를 이루었다. 나도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벌어진 부자간의 권력승계가 탐탁지는 않다. 그러나 이를 비난만 하다 보면, 정치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공유할 수 없다는 상식을 깨고 20년가량 북을 다스린 사실을 잊게 된다.(*적절한 지적이다. 북한의 권력세습은 상식 밖이다 혹자는 미국 부시 정부도 일종의 '세습 정권'이라고 평하지만)...

 

 

 

 

-김일성, 그는 레닌이 되기에는 너무 오래 집권했고, 호치민이 되기에는 일가친척이 너무 많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역사를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나중에 비록 왜곡됐을지언정, 그가 세운 나라에는 분명 동학농민군의 꿈과, 의병과 독립군의 꿈과, 항일 빨치산의 꿈이 담겨 있었다. 어린 누이가 빚에 팔려 첩살이 가는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이 당 간부가 되고, 장군이 되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된 그런 나라였다. 소수의 빨치산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체 구성원이 건국 반세기 이후에 한국전쟁 때보다 더 힘들었다는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던 나라의 지도자 김일성. 10년이란 세월은 아직 형제들의 수령을 평가하기에는 이른 것일까?(*아마도 100년은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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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나남신서 29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은 이 리뷰엔 오역에 관한 문제만 제기하겠습니다. 저는 한국어 외의 언어는 일체 독해가 불가능한 인간이라 주제넘게 오역이 의심되는 부분을 문제시하는 것이 껄끄럽기도 하지만, 문맥상 매끄럽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 몇 개만 제시합니다. 잘 아시는 분이 검토해주시면 좋겠네요.

1. 주석의 오류-인용한 서적의 출판연도

푸코가 문맥상 17~18세기의 자료들을 인용한 것 같은데, 20세기로 되어 있는 부분이 많군요.

p. 139

각주 29)번을 보면 Jean Bagtise Colbert 의 생몰연도가 1919~1983으로 되어있는데 루이 14세 때 인물이라면 1619~1683이 맞을 것 같군요.

p. 192

역시 각주 45)번을 보면 P. Goubert와 M. Denis의 저서《프랑스인은 발언한다》연도가 1964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18세기의 감금 시설이 폐지되기를 청원하는 책이라고 하므로 역시 연도가 맞지 않는 것 같네요. 저는 그 책을 모르므로, 만약에 문제의 책이 브리에 거리의 '제 3신문'의 청원에서 인용된 문구를 1964년에 간행된 책에서 인용한 것을 재인용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문맥상 연도가 역시 틀린 것 같습니다.

p. 330.

각주 28)번을 보면 "18세기의 경찰 관계의 기록에 대해서는 M. Chassaignne의 《경찰 총대관직》(1906)을 참조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 푸코가 인용한 책들의 각주를 보면 재인용보다는 직접 인용이 거의 다이기 때문에 역시 연도가 의심스럽습니다.

그 외에도 몇 군데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깜박 잊고 표시를 못 해두었습니다.

 

2. 내용상 오류로 의심되는 부분 두 곳만 지적하겠습니다.

p.207

(「제 2부 - 처벌」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제권, 신체, 독방, 비밀을 중심으로 한 처벌 권력의 모형이 어떻게 하여 표상, 무대, 기호, 공개, 집단을 중심으로 한 모형으로 교체되었는가?"

권력 과시용인 신체형의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면에 문제를 느끼고 범법행위와 처벌의 관계를 기호, 표상화한 모델이 제시되었는데, 이것이 아닌, 권력의 물리적 행사 및 감옥이 어떻게 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지 3부로 넘어가기 앞서 던지는 질문이므로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 같네요.

"표상, 무대, 기호, 공개, 집단을 중심으로 한 모형이 어떻게 하여 강제권, 신체, 독방, 비밀을 중심으로 한 처벌 권력의 모형으로 교체되었는가?"

p.390

그리하여 이제 평온한 법원과 법의 위엄에 붙어다니게 되는 것은 사법 장치의 하층토양에서, 다시 말해서 사직당국으로부터 유죄 선고를 받는 이들에게 형벌을 부과하는데 부끄러움을 느낀 사직당국이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 그 '비천한 일'의 수준에서 형성되는 범죄,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판결을 내릴 때 인식하고 평가하고 측정하고 진단하고 취급해야 할 것도 바로 그것이며, 형법전을 개정할 때 고려해야 할 것 또한 다름 아닌 그것, 그 비정상, 그 일탈, 그 은밀한 위험, 그 질병, 그 생존 형태이다. 범죄는 재판에 대한 감옥의 복수이다. 재판관을 어안이 벙벙하게 할 정도로 대단히 무시무시한 복수이다. 그때 범죄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 부분이, 제가 이해를 못 한 건지, 오역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장황해서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문장입니다. 아무튼 의문점 제기해보겠습니다. 푸코는 감옥이 비행자들을 만들어낸다고 p. 389에서 말하면서 그 문장에 대해 일반적으로 아는 의미가 아닌 다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감옥이 비행자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감옥은 과거에 그곳에 위탁된 이들을 거의 숙명적으로 다시 법정에 서게 한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법-위반, 재판관-범법자, 수형자-형벌집행자 사이의 상호작용 안에서 그것들을 서로 결부시켜 비행성이라는 비신체적 내용을 그러한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 이끌어내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단락에서 행형기술과 비행자는 서로 인과관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다른 한쪽의 연장인 "쌍둥이 형제"와 같은 관계라고 밝히죠.

범죄가 재판에 대한 감옥의 복수라니요? 문맥상 무슨 말인지 몰라 이해하느라 몇 번이고 곱씹어보다가 포기했습니다. 물론 이 문장이 옳다고 가정한다손 치더라도,  4부의 제 2장 〈위법행위와 비행〉에서 감옥의 행형체계 및 기술과 규율이 적용된 사법과의 상호관계(?말이 딸려서 이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로 감옥이 기여한 바는 오히려 비행을 생산하고, 이로 인해 비행 생산 계급과 기득권층을 분리시키며, 사회적인 기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인간을 "비행자"로 만들며, 여기에 범죄에 대한 사회인의 양심을 부각시켜 비정상적인 일탈행위로 인식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부르주아지의 더 교묘한 비행을 은폐하는 역할도 했다고 밝히긴 합니다. 그런 맥락의 의의에서라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뜬금없이 너무 앞서서 등장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범죄는 재판을 통해 감옥이라는 복수에 처한다"로 되어야 매끄럽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저작을 무릎을 치고 감탄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읽긴 했습니다만, 푸코의 문체가 원래 그런 건지, 번역이 매끄럽게 되지 못한 건지, 몇 부분은 읽느라 진땀뺐습니다. 시기가 늦더라도 이 리뷰 보신 푸코에 대해 잘 아시는 누군가가, 제가 오역으로 의심된다고 제기한 부분들을 해명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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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6-2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다 읽으 신건가요... ..^^; 대단하시네요..@@// 저는 아직 기웃기웃거리고 있는데..^^;

IshaGreen 2006-07-05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려운 책 잘 읽을 수 있을 수준의 머리는 아닙니다.ㅎㅎ 다만 감시와 처벌은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고 주제를 끌어나가는 푸코의 힘에 가독력이 꽤 높은 책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