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2007.


10년쯤 전에 대형 서점 신간 코너에 전시된 이 책을 보았던 것 같은데, 여전히 초특급 스테디셀러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진다. 세계 기아 문제와 그를 야기하는 구조적 모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구나 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항상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다. 무려 10년 전 부터 읽을지 말지 고민하며 서점에서 집어 들었다가 여러 번 내려놓은 책이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바자회 중고 장터에서 발견하고 냉큼 구입, 집에 와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사실 나는 이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감수성이 섬세한 편이라 아주 오래 전부터 쭉,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이미지를 기아와 굶주림의 이미지로 소비하는 방식이 상당히 불편했었다(게다가 이 책에 따르면 기아 인구는 숫자로만 따지면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에 훨씬 많다고 하는데, 국내 번역본에서 굳이 안일하게 관습적인 방식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분명히 문제이다). 특히 작년 초에 한 달 동안 서아프리카의 한 나라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로 더더욱 거부감이 든다. 흔히 소비되는 어떤 종류의 이미지들은 구조적 모순을 은밀히 은폐하고 유지하고픈 기득권의 이해관계와 부합하며 차별적 인식을 강화하는 시스템의 세련된 선전물로서 작용한다.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수많은 국가와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민족들이 있으며 그들이 막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삭제된다. 타인의 불행을 포르노처럼 소비하면서, 구조적 약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고, 그 이외의 가능성을 차단시켜버린다. 인식론적인 폭력이다. 강대국들은 아프리카의 자원을 헐값에 착취하는 대가로 독재자들의 장기집권과 만행을 눈감아주거나 은밀히 후원하는 한편, '못 사는 아프리카를 도와주는 발전한 서구권 국가들의 선량함'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하며 생색내듯 원조와 봉사활동을 한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오브 아프리카》와 같은 아프리카의 오랜 사회구조적 문제와 그를 야기한 역사를 다룬 책들에 의하면 서구권 선진국들이 아프리카의 자원을 착취해서 얻는 금전적 수탈이 원조하는 양의 2-3배를 훨씬 상회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많은 국제적 단체들의 노력과 활약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고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적인 존재이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은 경외스럽고 그들의 행동 앞에서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기아와 국제 원조에 대한 감상적 접근은 위험하며 (저자는 원조 물자가 테러 집단으로 흘러들어가 내전을 더욱 촉발시킨 예를 든다) 원조하고자 하는 나라의 사회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역학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책의 저자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서 기아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로서의 풍부한 현장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기아 문제에 대한 실상을 알리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제국주의 시대의 수탈로부터 시작하여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착화된 부의 불평등과 자본의 자기 증식 욕망, 투기 때문에 식량이 버려지는 극심한 분배의 불의가 기아 문제의 핵심이다. 세계적으로 생산되는 식량은 전 지구 인구를 먹여 살리는 데 결코 부족하지 않으나, 식량 자본으로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세력이 수요공급 곡선을 따라 줄타기를 하며 시카고 곡물거래소에서 투기 놀이를 하는 동안 죄없는 많은 어린이들은 제대로 된 영양분을 공급받지도 못한 채 죽어간다. 자국민의 안위보다는 장기집권이 더 중요한 독재자들과 끊임없는 내전과 같은 정치적 혼란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런 국가들은 도로, 항구와 같은 사회적 인프라도 부족하여 식량이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접근성도 떨어진다. 양심의 가책을 달래기 위한 생색내기 원조로만으로는 뿌리깊은 기아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아프리카 대륙의 문제들에 방점을 두긴 하였지만 기아 문제는 아프리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기아 인구가 가장 많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의 국가들, 동유럽과 구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 국가와 북한의 인권과 기아 문제도 심각하다고 한다. 특히 북한의 기아 문제는 오래된 이념 논쟁과 맞물려 현실적인 접근은 거의 미비한 실정이다. 한쪽 진영에서는 이념을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로만 소비하고 있으며 다른쪽에서는 또 다른 이념 때문에 북한의 기아 실상을 애써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단다.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거야. (중략) 이런 설명은 전형적인 유럽적·백인 우월주의적 '정당화'란다. 자신들은 절대로 굶어 죽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p.38.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날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구호시설에서 웅크린 채 죽어가는 아이들, 수단의 덤불 속을 비쩍 마른 몸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어.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을 말이야. pp.42-43.


금융자본은 결코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증시는 매일 24시간 돌아간다. (중략) 그러나 유능한 물리학자들이 조립한 모든 컴퓨터 모델에도 불구하고 - 컴퓨터는 리스크를 줄이는 데 봉사한다 - 증시는 완전히 비이성적으로 돌아간다. 증시를 돌아가게 하는 엔진은 이윤극대화, 손실에 대한 공포, 파산 리스크에 따르는 신경전, 그리고 정신착란과 황홀경을 뒤풀이하는 무제한의 이윤추구 등이다. p.160.


아들에게 설명해주는 포맷을 차용하고 있어서 용어의 명쾌한 정의들이 돋보이는데, 신자유주의의 비인간성에 대한 일침이 뜨겁다. 


저자는 원조보다는 개혁이 우선이라고 역설한다. 사회적 인프라의 확충과 오랜 모순을 개혁하는 것이 기아 문제의 핵심이다. 사회의 오랜 모순을 해결하고 개혁하며 민중을 위한 정치를 펼치려다 살해당한 부르키나파소의 개혁가 상카라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에서도 만났었기에 반가우면서도 착잡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표지였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이 출간된지 (원서 기준) 17-18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그 사이에 인류의 기아 문제가 개선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관련된 이야기들에 관심을 잃지 않고,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 다음은 아프리카의 사회구조적 모순의 깊은 뿌리에 대해 개괄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책들이다.

루츠 판 다이크,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웅진지식하우스, 2005.

월레 소잉카, 《오브 아프리카》, 삼천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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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자본주의공화국 - 맥주 덕후 기자와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지음, 전병근 옮김 / 비아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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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취약점 중 하나가 현실주의다. 정치에서 그렇고 국제 장치에서 그렇고 남북관계에서 특히 그렇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봐오던 대로만 봐오던 것을 이제 한 번쯤 탈피해보면 어떨까. 이 책은 상투적인 북핵 보도의 운무에 가려져 온 북한 사회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역자의 말 중에서.


원래 북한에 관심이 많았었던지라 북한에 관련된 책을 한 권쯤은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 못 읽다가 남북정상회담 성공적 개최를 기념하여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구 동독 지역의 몇 개 도시, 부다페스트, 부쿠레슈티, 사라예보, 모스크바와 같은 구 공산권 국가들의 주요 도시를 여행해 본 적이 있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이런 도시들은 공산권 특유의 체제를 과시하는 외관이 굉장히 매력적이어서 가볼만한 가치가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대도시라면 있는 땅뙈기를 악착같이 집약적으로 활용하여 고층빌딩이 즐비하기 마련인데, 이와 달리 대규모 열병식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은 드넓은 광장, 이를 에워싼 웅장한 너비에 펼쳐진 주요 부서 건물들과 같은 생경한 풍경들이 전혀 다른 체제를 품었던 과거를 암시하는 듯 보여 매력적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적을 지녀 국가보안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절대 불가능한 북한 여행을 언젠가는 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통일을 바라왔었다. 가끔 인스타에 북한 여행을 한 외국인들이 올리는 사진으로만 만족할 뿐이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고 세계 어느 곳이건 인간은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지니며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간과한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다.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 경직되어 있긴 하지만 희로애락을 즐기며, 식욕과 수면욕 같은 본능 외에도 최신 유행을 따르고 싶은 욕망, 여가를 누리고 문화적 컨텐츠를 소비하고 싶은 욕망 등 인간으로서 엄연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서술하기 민망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밝게 웃거나 자연스러운 북한 주민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주변 사람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거 다 체제 과시용으로 잘 사는 척 연기하는 거라고, 대부분 못살고 굶어 죽고 김씨 부자에게 세뇌된 기계같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니 정말 복장이 터지지 않을 수가. 65년 간의 분단과 세뇌된 대북관이 사람의 이성적 사고를 이렇게 마비시키는구나 싶어 한숨만 나온다)


영국인이지만 한국 특파원으로 오래 거주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해와서 유명한 마이클 튜더와 제임스 피어슨이 이번엔 북한 사회를 객관적으로 두루 분석했다. 북한의 경제, 정치 체제, 정치범 수용소, 패션, 대중 문화, IT 산업 및 디지털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 등 여러 분야를 한 권에서 다뤄서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얕지만, 핵심적인 내용들을 잘 짚어주어 개괄적으로 북한 사회에 대해 알기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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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며, 큰 의사는 나라를 구한다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 “작은 의사는 병을 고치고, 중간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며, 큰 의사는 나라를 구한다

중국의 사회 혁명가이자 의사인 쑨원(孫文)이 인용하여 유명한 격언입니다. 의대 교수님들이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의 주제로 수업 시간에 곧잘 언급하시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의료계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직관적으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외과의사이자 저술가, 공중보건의료정책가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는 글로벌한 보건의료 문제에 메스를 대며 사회를 개혁해 나가는 사상가라는 점에서 이미 대의(大醫)를 넘어선 의사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전국민의료보장제도를 도입했던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그의 철학에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오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자선사업에 분투하고 있는 세계적인 대부호 빌 게이츠와 손을 잡고 말라리아 퇴치 사업 및 여전히 모성 사망률이 높은 의료 사각지대의 의료 접근성 확충 등 글로벌한 헬스케어의 이슈들에 메스를 대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습니다.[1]






 

그는 《타임Time》지가 2010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중 한 사람이며,[2] 첫 저작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Complications(2002)』는 진솔함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면서도 현대 의학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빛을 발해 큰 화제를 모았던 바 있습니다. 이어 출간된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Better: A Surgeon’s Note on Performance(2007)』는 2007년 아마존 10대 도서를 비롯해 각종 도서상을 휩쓸었고, 『체크, 체크리스트The Checklist Manifesto(2009)』는 구글 학술검색 데이터에 의하면 20184월 현재까지 각종 논문에 1953회 인용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화두를 세계적으로 불러 일으킨 가장 최근작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 2014)』까지 그의 저서는 모두 국내에도 소개되었으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 바 있습니다. 그의 저서들과 강연들을 접할 때마다 놀라운 통찰력과 균형 잡힌 시각, 다방면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게 되곤 하는데요, 그의 독특한 성장 과정과 인품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의사인 아버지가 일평생 몸소 실천해 보여주신 교훈 - 노블레스 오블리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굴하지 않는 인내와 끈기였다. 삶의 여정에서 결코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힘 말이다.”[3]


아툴 가완디는 1965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인도계 미국인 1세 아트마람 가완디Atmaram Gawande와 수쉴라 가완디Sushila Gawande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작은 마을 우티의 평범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난 아트마람 가완디Atmaram Gawande 10세 때 젊은 어머니가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는 슬픔을 겪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4] 아버지 가완디는 비뇨기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소아과 의사로 두 사람은 뉴욕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다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툴과 미타Meeta 두 남매를 낳았습니다. 부부는 1973년 미국 오하이오 주 애선스Athens라는 대학 도시로 이주하여 자리잡고 두 자녀를 길렀습니다.[5]


교육과 의료 혜택이 부족하던 인도의 시골 마을 출신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아트마람 가완디는 소명 의식을 발휘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가 30년 넘게 비뇨기과 의사로서 근무했던 오하이오 헬스케어 오블레네스 종합병원Ohio Healthcare O’bleness Hospital은 애선스라는 작은 도시에 있었는데, 오하이오 주립대학과 관련된 관광 수입 외에 특출한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오하이오 주에서도 낙후된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지역주민들과의 두터운 신뢰 관계를 쌓은 존경 받는 의사였습니다. 그의 진찰실은 항상 환자들로 붐비고 정신 없을 정도로 바빴다고 하며, 항상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노력해왔다고 합니다.[6] 이에 그치지 않고 아트마람 가완디는 지역사회의 리더이자 독지가로서도 활약하였는데 애선스 카운티 메디컬 소사이어티의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7] 아툴 가완디는 그의 트위터 계정@atul_gawande에서 외국 출신의 두 의사(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지칭)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꺼렸을 오하이오의 교외로 가서 지역사회를 위해 (30년을) 헌신했다라고 자랑스러움을 내비치며 아버지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8]



 

집안에서 정해준 처자와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 결혼을 하여 할아버지를 노발대발하게 만들었으며 미국 문화의 거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고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다는 아버지 아트마람 가완디는 한편 그의 조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고등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인도의 교외 지역에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그의 어머니이자 아툴 가완디의 할머니의 이름을 딴 지에스지 컬리지GSG(Gopikabai Sitaram Gawande) College를 설립하여 2,000명 규모의 캠퍼스로 늘리는 사업을 벌이기도 했고, 지속적으로 학교에 기부를 해왔다고 합니다.[9]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몸소 실천해온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말년에는 척수종양으로 투병하는 와중에서도 오하이오 남부 로터리 클럽 회장이 되어 59개 지부를 손수 순회하며 지역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일화는 그의 저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2014)』에서 죽음을 앞둔 인간이 최후까지 삶의 자율성autonomy을 발휘하기 위해 분투해나가는 한 훌륭한 예로써 소개되어 있습니다.[10] 아툴 가완디의 저서를 보면 아버지의 정신적 유산을 자랑스럽게 여겨왔음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보건의료정책가의 싹이 트다 - 남다른 정치적 야망


I had majored in biology as well as in political science, and I didn't know how I was going to put these things together. I knew I wanted to become a doctor but I was also very interested in public affairs, and it wasn't necessarily specifically around healthcare alone."

아툴 가완디가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이리라 생각됩니다만, 사실 그는 의사가 되기 전까지 남들과 약간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1987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생물학과 정치학을 학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프리-메드(Pre-med, 한국의 의과대학의 예과 과정에 해당된다고 보면 됩니다) 과정으로 생물학을 전공한 것은 수긍이 가지만 정치학을 전공한 것은 다소 특이한 이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메드스케이프(Medscape)와의 2013년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예전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을 알았지만 공공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 후의 그의 행보는 이러한 진술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가완디는 하버드 의과대학원(미국의 의과대학 학제는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도 한때 시행했던 의학전문대학원 체제에 해당합니다)에 진학했으나 학교측의 양해를 얻어 잠시 의과대학원 과정은 접어 두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는 옥스포드 발리올 컬리지(Oxford Balliol College)에서 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 수혜자로서 일종의 다학제적 협동 분과 학위인 P.P.E.(철학, 정치학, 경제학 협동과정, 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P.P.E.)과정으로 1989년 석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참고로 영국 외의 영어권 국가에서 영국 옥스포드에 수학하러 방문하는 최고의 엘리트 대학생 1000여명이 매년 로즈 장학금에 지원하는데 이 중 32명만이 최종 선발되며 세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장학금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합니다. 단지 성적만을 판단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성과 잠재력 등 여러 요소를 평가하여 선발한다고 하는데, 이만하면 엄친아로 불리기 손색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기는 했지만요.[11]



옥스포드 P.P.E. 과정은 영국을 이끌어가는 각계의 엘리트들(영국의 내각 관료들, BBC 방송, 《가디언the Guardian》 지 등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들)이 거치는 코스로 유명합니다. 진지한 학문 분과라기보다는 정치계와 언론계 입성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를 닦기 위한 초석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있을 정도로 말이죠.[12] 다학제적 학위로 정치, 경제, 사회학적 현상을 연계하여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이 이 학문 분과의 취지라고 하며, 강제적이며 의무적인 강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학풍이 특징적이라고 합니다. 인도 출신의 이민자 미국인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하면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양쪽을 공부했고, 옥스포드 P.P.E. 과정을 수학했던 아툴 가완디의 남다른 배경을 생각해 볼 때 그의 저서에서 맛볼 수 있는 지적으로 유연한 사고 방식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중요한 기점이 아니었을까 싶으며, 이미 학생 시절부터 어느 정도 소셜 리더로서의 야심이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릴 줄 알며 그 결과에 온당히 책임지고, 결과로부터 교훈을 얻는 위대한 정치가들과 외과의들을 존경해왔으며 그들 이상이 되고 싶었다(I wanted to be more like surgeons and more like the politicians I admired who could make decisions, live with the consequences, and learn from the consequences)”

가완디는 1988년 상원의원이었던 앨 고어의 선거 캠프 인턴으로도 일했고 빌 클린턴 행정부 산하 테네시의 짐 쿠퍼 의원 사무실에서 보건의료관리 정책에 관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메드스케이프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의사를 인디언 보호구역과 같은 낙후된 농촌 지역으로 데려 오는 데 도움이 되는 대출 상환 프로그램으로 국민 건강 봉사단National Health Service Corps을 부활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특히 자랑스러웠다고 밝힙니다. 그의 나이가 겨우 26세 때였다고 하네요. “이때는 나의 다양한 경험들이 이후의 내 커리어 속에서 어떤 상호작용을 이루게 되리라고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많은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넌 도대체 언제 의대를 졸업하려고 하니?”라는 아버지의 잔소리는 덤이었고요.

본래 그의 꿈은 내과학을 전공하고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쌓은 임상 경험을 기반으로 공중 보건 개혁에 방점을 찍고 의료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만,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외과 실습을 거치며 수술방에 들어가자마자 수술실에 완전히 매혹되었다고 합니다. 의과대학 졸업 후 외과 레지던트 수련을 시작하는 한편, 오래 전부터의 꿈이었던 하버드 보건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습니다. 외과의사가 공중보건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많을 리가 없지 않을까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요(그런데 그런 생각이 틀렸음이 나중에 밝혀집니다).

가슴 속에 꿈을 꺼뜨리지 않고 간직하며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 오게 마련인가 봅니다. 외과 레지던트로 수련을 받던 그에게 친구 한 명이 인터넷 매거진 슬레이트닷컴Slate.com을 시작하면서 가완디에게 글을 써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1996년에 인터넷 매체에 글을 쓰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가완디가 회상하듯 모험적인 일이 분명했지만 그는 이 새로운 도전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그는 레지던트 수련을 받으면서 글쓰기를 병행하기란 힘든 일이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자신의 첫 번째 칼럼은 끔찍했지만 계속 원고를 퇴짜맞고 글을 수정해나가며 효과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의 눈높이로 전달하는 법을 배워나갔다고 하며, 머지 않아 그의 글이 《뉴요커New Yorker》 편집자의 눈에 띄어 1998년부터 뉴요커 고정 필진으로 글을 쓰게 됩니다.[13]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글쓰기의 힘


또한 글 쓰는 행위 자체의 힘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나도 의사가 되고 나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막상 의사가 되고 나니 글을 써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의학은 그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머리보다는 몸이 고된 일이다. 의학은 소매업과 같다. 의사들은 한 번에 한 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한 까닭에 의료는 고되고 단조롭다. 좀더 큰 목적의식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런 여러분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문제를 헤쳐가게 해준다.”[14]

글을 쓴다는 행위는 자신의 언어를 갖게 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나의 신체와 정신을 그저 스쳐 지나갈 뻔한 무수한 경험들을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공고히 재정의하면, 귀중한 경험들이 휘발되어 버리지 않고 켜켜이 쌓여 나의 정체성을 이루게 되며 앞으로 일어날 고난들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정신적인 힘을 갖게 도와줍니다. 가완디는 글을 쓴다는 행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버드 의대 교수로서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글을 쓰라고 당부한다고 합니다. 《가디언the Guardian》 지와의 인터뷰에서 글을 쓴다는 것과 외과 의사라는 정체성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내가 만약 지금 버스에 치여 쓰러진다 해도 다음주 월요일로 예정된 내 담당환자 수술 스케줄이 연기되는 일은 없겠지만(다른 외과의로 대체될 수 있다는 의미겠지요), 글쓰기의 경우 그렇지 않다고 답했는데,[15] 그만큼 가완디의 저술가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과 레지던트로서 치열한 의료현장에서의 경험을 진솔하게 엮어 화제가 된 그의 첫 저작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Complications(2002)』에서 이미 보건정책연구가로서의 사상이 서서히 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물학적 제약에 대처하기 위해 분투하는 의학의 잠재력에 매혹을 느끼고 의학도의 길을 걷게 된[16] 꿈 많던 청년 의사가 현실 의료 현장에서 느끼게 된 딜레마와 한계에 대해 고뇌하고 솔직히 털어놓는 인간적인 모습은 독자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외과에서 기술과 자신감은 경험을 통해서 더듬더듬, 자존심을 상해 가며 얻어진다. 테니스 선수나 오보에 연주자나 하드드라이브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일에 능숙해지려면 반복적으로 연습을 해야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의학에서 연습 대상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점뿐이다.”[17]

오래전부터 의학계는 환자들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와 신출내기 의사들에게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는 두 가지 상반되는 명제 사이에서 고민해 왔다.”[18]


우리가 가완디의 글을 사랑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글에서 보여주는 진실과 직면하는 용기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치부를 건드린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가완디는 결코 멈추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내 놓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맏아이 워커가 갑자기 심한 심장 결함로 인한 울혈성 심부전증을 일으켰다. (중략) 퇴원할 때가 다 되어서도 우리는 그 일을 맡아 줄 심장 전문의를 정하지 못했다. (중략) 그는 심장팀 중에서 워커를 돌보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의사였다. 원인 모르게 숨차하는 아이를 데리고 왔을 때 워커를 처음 본 사람도 그였으며, 진단을 내린 이도 그였고, 워커에게 약을 투여해 안정시키고 외과의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날마다 병실로 찾아와서 우리 질문에 답해 준 것도 그였다. (중략) “죄송하지만, 저흰 뉴버거 선생님께 부탁드리려고 생각하는데요.” (중략) 젊은 의사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사감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뉴버거 선생 쪽이 좀더 경험이 많다는 것, 이유는 그게 다였다. 공평치 못한 처사라는 건 나도 안다. 아들 아이는 보기 드문 케이스였고, 그 전임의는 경험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레지던트인 나는 그런 상황을 이해해 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내 결정에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건 내 아이의 문제였다.”[19]

나는 병실에 붙은 그 문구를 쳐다보고 있는 그 순간까지 내가 그 감염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분명히 나를 포함한 우리 가운데 하나일 텐데도 말이다.”[20]


그러나 이 책이 단지 글 좀 쓸 줄 안다는 한 외과의가 의료 현장 뒷얘기를 시시콜콜하게 풀어내는 후일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훨씬 값진 이유는 본질적인 문제와 핵심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그의 통찰력 때문입니다.


 “외과의학은 의학으로서 최첨단을 걷지만, 최고의 외과의들조차도 과학과 인간 기술의 한계를 깊이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 ‘Complications’(『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의 원제로,복잡성’, ‘뒤얽힌 관계라는 의미도 있지만, 의학 분야에서는 합병증을 의미합니다. 가완디는 이 제목이 위의 모든 의미를 동시에 암시하는 것을 기대한 것으로 보입니다)에는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곡절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의 밑바닥에 깔린 보다 큰 불확실성과 딜레마에 대한 나의 우려가 담겨 있다.”[21]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학의 불확실성과 딜레마 속에서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해야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성찰은 그의 철학의 일관되고도 중요한 핵심 화두입니다. 많은 의사들이 정확한 진단, 뛰어난 기술, 환자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마음만 가지면 좋은 의료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의료 현장에 뛰어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는 불완전한 인간인 의사 개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고도로 발달한 현대 의학의 복잡성에서 기인한다고 그는 지적합니다. Complications』에서부터 태동한 현실 의식을 바탕으로, 어떤 가치관의 혁신을 이뤄야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풀어나가는 것이 후속작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Better: A Surgeon’s Note on Performance』 입니다.


가완디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으로 성실한 자세, 올바른 실천, 새롭게 다시 생각하는 자세를 꼽습니다. 손쉽고 하찮은 덕목으로 여겨 흔히들 무시해버리기 십상이지만, 가완디는 거의 백 퍼센트 완벽하고 강박적인 수준으로 이 덕목들을 지켜야 함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의사란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선택을 시시각각으로 내려야 하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성실함을 예로 들어 봅시다. 하루에도 수백 번이 넘는 손길을 통해 케어를 받는 중환자실 입원 환자를 돌보는 수많은 의료진들 중 단 한 명이 손씻기를 단 한 순간 잊음으로 인해 환자는 슈퍼박테리아 감염과 같은 치명적인 감염에 노출될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이처럼 성실함과 같은 덕목은 의료행위의 중심일 뿐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만큼 힘든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첨단 의학 지식으로 무장한 지식인이기에 앞서 의사 역시 한 명의 불완전한 인간일 뿐인데, 위의 덕목들을 부주의로 인해 잠시라도 놓쳐버린다면 부도덕한 의사가 되어버리는 걸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의사들이 더 좋은 퍼포먼스를 수행하기 위해 지식을 체계화하여 의료진 모두가 공유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에서 가완디는 이제 의대생들에게는 국가고시 단골 출제 문항이자 고전이 되어버린 아프가 점수Apgar score의 예를 가져왔습니다. 아프가 점수는 갓 태어난 신생아의 다섯 가지 생체 징후를 점검하는데 신생아의 전신 피부색, 호흡, 사지의 운동성, 심장박동수,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에 대해 점수를 채점하며 각각의 항목이 2점이고 총합 10점이 만점입니다. 1953년 닥터 아프가가 공표하였으며 당시 갓 태어난 신생아가 청색증이 심하다든지 기형이라든지 하는 외관으로만 예후가 판단되어 사산아 명단에 올려지는 것을 마음 아파하며 연구한 끝에 제안한 접근법입니다. 출생 1분 후 아프가 점수가 현저히 낮았던 신생아라도 보온과 산소 공급 등의 조치를 취해 주면 출생 5분 아프가 점수가 극적으로 높아진다는 사실이 확인되기 시작했습니다.





“(전략) 수없이 많은 인체의 이상에 대해 지식 축적과 혁신적인 치료법 개발은 단연코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태껏 과학이 이미 이뤄놓은 능력마저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 씻기나 부상병 치료, 분만에서 보았듯이 의료행위를 둘러싼 구체적인 지식을 체계화했을 때 수천명의 목숨을 구한다.”[22]

 

이와 같은 지식의 체계화로 인해 사산아로 죽어가던 수많은 신생아들의 생명을 살리는 혁신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과학적 진보에 따른 최첨단 치료법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가완디가 보기에 선배 의사들이 전해준 발상의 혁신이라는 유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에도, 극도로 전문적이고 복잡한 의료 현장에서 쉬이 간과되고 있었습니다. 가완디는 이러한 불균형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이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보건의료체계의 허점을 계속해서 파고듭니다.

 



고도 전문화 사회에서 놓치기 쉬우나, 핵심적인 보건의료의 혁신이란? - 의료 자원 운용의 효율성


2003년 하버드에서 외과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외과 전문의로서 업무를 시작하기 앞서, 가완디는 부모님의 모국인 인도에 교환방문 의사로 체류하게 됩니다. 두 달의 기간 동안 아버지의 고향 지역을 비롯하여 인도 전역에 위치한 공공병원 여섯 곳에서 일했는데,[23] 공중보건의료정책의 문제 개선에 대한 획기적인 청사진을 내놓는 그의 선구자적 혜안을 기르는 데 일조한 중요한 경험으로 보입니다. 의료 자원이 풍부히 갖춰지고 고도로 전문화, 분업화된 미국 같은 선진국과 달리, 터무니없이 열악한 시스템에서도 의사들이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발휘하여 놀라운 의술을 펼치는 것을 목도하며 그는 큰 감명을 받습니다. 또한 인도 의사들에게서 교훈을 얻게 되는데, 바로 자원의 양이나 새로운 자원의 개발보다는 기존 자원 운용의 효율성이 중요하다는 시각입니다.


미국 정부와 민간 재단은 새로운 유방암 치료법을 개발하느라 매년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예산을 연구비로 지출하지만, 유방암 선별검사를 쉽고 편하게 만드는 방법을 강구할 생각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한 가지 기술만 좀더 규칙적으로 이용해도 유방암 사망률을 3분의 1은 줄일 수 있다고 말해주는 연구가 꾸준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치료 성과의 개선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의 한 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 가능성을 충분히 깨닫게 된 것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진료 관행을 살펴보고 나서였다. 다른 나라에서는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은 치료 성과를 높이는 데 있지, 유전 연구의 확대에 있지 않았다.”[24]


새로운 실험실 과학이 인명을 구하는 열쇠는 아니다. 기존의 노하우를 실천해 치료 성과를 개선하는 초보적인 과학이야말로 인명을 구하는 열쇠다. 그렇지만 이를 인식하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까닭에 온 세상의 외과의는 그저 연필 한 자루와 섬세한 손가락, 맑은 정신만으로 허점투성이의 제도와 갈수록 늘어나는 환자의 물결에 맞서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25]


의료 자원 운용의 효율성 문제는 비단 개발도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뉴요커New Yorker》에 게재된 2009년의 기사 「비용에 대한 수수께끼The Cost Conundrum」에서 가완디는 그가 미국 텍사스 주의 맥캘런McAllen이라는 한 소도시에서 우연히 목도한 몇 가지 의문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멕시코 인접 국경 변방 인구 25천의 비슷한 규모의 소도시이며 둘 다 빈곤 지역인데 엘 파소El Paso와 맥캘런McAllen의 의료비 지출은 왜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며, 맥캘런의 의사들이 특별히 더 비도덕적이라든지 한 것도 아닌데 왜 맥캘런 주민들은 과도한 의료비로 파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인지, 또한 이런 현상은 지난 10년 간 왜 심화되었을까? 결국 가완디는 의료 선진국이자 세계 최고 강대국인 미국의 의료 자원의 비효율적 운용이라는 문제점을 밝혀냅니다.[26] 이 기사를 읽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고 전해집니다.[27]





의학지식의 고도 전문화라는 양날의 검


시스템의 허점을 해부하는 가완디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체크, 체크리스트The Checklist Manifesto(2009)』에서 구체적으로 빛을 발합니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과학의 발전으로 날이 갈수록 더욱 방대한 양의 정보가 축적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생생한 의료 현장에서의 실패담을 예를 들며 논증합니다. 그는 실패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규정합니다. 첫 번째는 무지, 세계에 대한 지식과 그 작동 방식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실수를 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는 무능으로, 필요한 지식을 현실에 적절히 적용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로서,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 사회인 오늘날 경계해야 하는 경우는 특히 무능에 의한 실패임을 강조하며 지적 권위로 가득 찬 의료계에 경종을 울립니다. 가완디는 특유의 성실한 조사를 바탕으로 의료 시스템뿐만 아니라 타 분야의 테크놀로지가 적용되는 시스템의 실패들도 가져와서 예를 드는데, 잘못 지어서 무너진 마천루, 기상학자들이 징후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눈보라, 환자가 어떤 흉기로 부상당했는지 잊어버리고 묻지 않은 경우 등이 무능으로 인한 실패에 속한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삶은 주로 무지에 의해 좌우되어왔다. 이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질병이다. 과거에 우리는 각종 질병의 원인이나 치료법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만에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지식의 양도 방대해졌다. 무지보다 무능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28]


팀웍의 협력을 방해하는 가장 흔한 장애물은 노발대발하면서, 메스를 집어던지고,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외과의가 아니다. (중략) 그보다 더 광범위하게 확산된, 친숙하고 위험한 문제는 일종의 침묵의 이탈상태로 고도로 특수화된 전문가들이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만 전념해서 생기는 결과다. ‘저건 내 문제가 아니야라는 태도는 환자를 수술하건, 승객으로 꽉 찬 비행기를 활주로에서 이동시키건, 혹은 300미터 높이의 마천루를 짓건 사람들이 가지는 최악의 정신 자세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런 태도가 자주 목격된다.”[29]















그렇다면 무능에 의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해결책이 필요할까요? 외과의사로서 그는 수술의 실패로 생기는 합병증을 감소시키는 문제에 천착합니다. 세계적으로 한 해 23천만 건의 수술이 행해지고 있고, 최소 700만 명이 수술 후 장애를 겪으며 100만 명이 수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술을 받는 케이스들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그에 따른 치명적인 합병증의 피해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수술의 안전성과 질이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고민의 결과로 그는 체크리스트를 제안합니다. 수백 명의 승객의 안전이 달려 안전수칙을 중시해야 하는 비행기 조종사들의 위기 예방 관리 사례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단순하지만 깜박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행위들의 목록을 간단하게 문서화하여 팀원들이 모두 공유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가장 단순하지만 기본적인 사항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에 의한 실패를 예방하려는 시도로서, 어쩌면 이는 아프가 점수를 도입한 선배 의사들과 타 분야 전문가들의 선구적인 시각을 존경하며 교훈으로 삼았던 겸허한 자세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겸손, 규율, 팀워크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합니다. 이런 방식은 우리가 해왔던 것과는 반대입니다. 독립, 자급자족, 자립심 같은 것들 말이죠.”[30]


때로는 환자의 사망과 같은 치명적인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는 수술 합병증의 과반수는 지식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당초 예방이 가능했으나 놓쳤기 때문인 것으로 많은 연구에서 드러났다고 합니다.[31] 가완디가 이끄는 하버드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한 프로젝트 연구에서 8개 병원에서 시행한 체크리스트가 수술 후 합병증을 상당수준으로 감소시켰음을 밝히고[32] WHO는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WHO Surgical Safety Checklist) 사용을 권고합니다.




가완디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버드 보건대학원과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Brigham & Women’s Hospital의 협력으로 세계 개발도상국의 모성 사망률을 줄이자는 프로젝트로 설립된 아리아드네 랩Ariadne Lab의 전무 이사Executive Director로서[33] WHO와 또다시 손을 잡고 개발도상국의 분만 시설에 안전한 분만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보급합니다. 그렇지만 인도의 분만 현장에서 자격 있는 전문가들로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모성 사망률이나 신생아 사망률과 같은 지표가 그다지 개선되지 않음을 목격하고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 코칭 시스템을 제안합니다.[34] 전문가는 스스로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존 견해를 뒤집은 발상의 전환으로서, “끝은 없다, 모두들 코치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스포츠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왔습니다. 201712월 테드 강연TED talks에서 가완디는 자율성autonomy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전문가들도 코칭을 받음으로써 훨씬 향상된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아리아드네 랩이 인도 정부와 손잡고 16만 건의 분만에 코칭 시스템을 적용한 결과 안전한 분만을 위한 체크리스트 항목 준수율이 30퍼센트 이상 향상됨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코칭 시스템은 분명 혁신적이면서도 의료계 종사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만한 제안이기도 한데요(그 자신도 은사인 원로 교수님께 요청해서 코칭을 받으면서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인정합니다), 앞으로 그가 코칭 시스템을 어떤 방식으로 도입하게 만들지 크게 기대가 됩니다.





 

 

질병과 죽음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하여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불편한 진실과 직면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아툴 가완디의 용기과 의지는 가장 터부시되는 주제이자 인류가 가장 두려워해 온 죽음이라는 화두 앞에서도 멈출 줄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작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 2014)』에서 가완디는 처할머니인 앨리스 홉슨의 죽음을 계기로 현대 요양원 제도가 지닌 허점과, 죽어가는 환자에게 지나친 의료 행위를 제공하여 도리어 환자의 마지막 삶의 질을 망쳐 놓는 의료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의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 의료 시스템은 정작 질병과 노화로 고통 받는 인간을 주체에서 객체로 소외시킨다는 뼈아픈 문제인식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우리(의료계 종사자들)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데 능숙하다. 대장암, 고혈압, 무릎 관절염 등 특정 질환에 걸린 환자가 찾아오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고혈압과 무릎 관절염에 더해 각종 다른 문제들을 안고 있는, 이를테면 자신이 영위해 온 삶의 방식을 모두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할머니를 만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많은 경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어 버린다.”[35]
















노화로 가족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은 할아버지 시타람 가완디,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갖힌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을 느끼다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은 처할머니 앨리스 홉슨, 척수종양으로 투병하다 생을 마감한 아버지 아트마람 가완디의 죽음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는 자연스러운 죽음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중요한 가치들을 수면 위로 떠올립니다. 선의를 가장한 기만(죽음을 미룰 수 있다는 환상)과 냉정하지만 존엄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직면(인간은 결국 죽는다), 자율성과 안전이라는 가치의 충돌을 그는 날카롭게 짚어 냅니다.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바로 이 점이 노쇠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크고 역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 바라는 일들 중에는 정작 자신은 단호히 거부하는 것들이 많다는 거죠. 자아감을 침해하는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36]


현대 의학은 한 달에 12000달러가 드는 화학요법, 하루에 4000달러짜리 집중 치료, 한 시간에 7000달러짜리 수술 등으로 죽음을 미루려 애쓰는데 능하다. 그러나 결국 죽음은 오고야 마는데도 어느 시점에 치료를 멈춰야 할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37]


암울해 보이기만 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전작들에서 보였던 행보와 마찬가지로 대안적인 움직임들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기존의 시설들은 낙상 예방을 위해 노인들에게 반강제적으로 휠체어를 태우지만, 오히려 근력이 약화되고 자존감을 저해시킨다며 넘어져도 좋으니 걷기를 권장하는 요양원과 같은 곳 말입니다. 이 밖에도 노인들에게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개인 공간에 문을 잠그는 것을 허용하는 요양원, 앵무새 백 마리와 강아지 고양이를 요양원에 들여놓는 의사, 말기 암환자에게 장례식장은 생각해 두셨냐고 직설적으로 묻는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등에 가완디는 주목합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제각각의 방식을 띠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가치를 공유합니다. 바로 헬스케어 서비스로부터 인간을 객체로 소외시키지 않고 최후까지 주체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게 돕는다는 것이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한계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런 인간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나 기관 의사에서 요양원까지- 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그 한계에 직면하고 분투하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중략) 그러나 우리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의료진이 개입해 환자로 하여금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일은 더 큰 삶의 목적을 위한 것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이를 망각할 경우 우리는 환자들에게 거의 야만적인 고통을 주게 될 수도 있다. 반면 의사의 역할과 한계를 분명히 기억할 경우, 우리가 가져다 줄 혜택은 실로 놀라운 것이 될 수도 있다.”[38]


이 교훈을 받아들여 가완디는 아버지의 삶의 자율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마지막 투쟁을 묵묵히 도우며 끝까지 지켜냅니다. 가족들의 도움을 통해 아버지 아트마람 가완디는 기나긴 암투병 과정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가장 적확한 시점마다 의학기술의 도움을 받았고, 자신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싶은 정확한 시점에서 의학기술의 중재를 거부했습니다. 가완디는 이를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이라고 술회합니다. 아툴 가완디가 아버지와의 일화를 통해 인도하는 죽음으로의 여정은 독자의 입장에서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인간이 최후까지 존엄을 지키려 분투하는 과정에서 빛나는 위대한 의지와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여정을 따라가며 독자 또한 죽음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시대의 슈퍼 히어로


토니 스타크 (아이언맨): 넌 왜 그런 일을 하지? 이유를 알아야겠어. 뭐가 잠꾸러기를 이른 아침부터 밖으로 불러내는 거야?

피터 파크 (스파이더맨): 지금까지 살면서 저는 평균적인 사람이었어요. 전 그냥 책 읽고 컴퓨터 조립하고 축구도 좋아했었는데, 이런 힘이 생기고 지난 6개월 동안 더 이상 그냥 그럴 수만은 없었어요. 저 같은 힘이 생겼는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쁜 일이 벌어질 때 못 막으면 내 잘못인 것 같아요.

-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 중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가완디는 대의(大醫)라 불리기에 부족함 없는 훌륭한 자질을 모두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의 고리타분한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창의성이 넘치는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인류의 집단지성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지적 유산을 소중히 지켜나가며 문제의 본질을 다방면의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성실한 균형감각, 사안의 핵심을 간파하는 날카로운 통찰력, 가장 적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와 결단력,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까지 모두 지니고 있으니 말입니다.

가완디의 생애와 인생관을 추적하면서 자연스레 배트맨, 원더우먼, 아이언맨, 스파이더맨처럼 우리가 사랑해온 슈퍼 히어로들이 떠올랐습니다. 히어로를 히어로로 만들어주는 힘은 그들의 특출한 능력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힘은 그들이 지닌 소명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조리한 상황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고, 나에겐 이를 해결할 힘이 있으므로 모르는 척할 수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해내야 한다는 현실 인식으로부터 발휘되는 숭고한 의지 말입니다. 어쩌면 가완디는 날 때부터 의사의 자제로 태어난 엄친아로서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외과의로서 적당한 명예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부모님의 위대한 유산인 프론티어 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 엘리트로서의 지식과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 외과의사로서 겪은 다양한 경험, 이 모든 것을 녹여내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이라는 힘을 갖고 있기에, 기존의 의료 체계가 지닌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은 나의 위치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소명의식이 그를 위대한 보건의료정책가이자 사상가로 만든 것입니다. 소명의식보다는 돈과 명예가 지상 과제가 되어버린 오늘날 아툴 가완디와 같은 의사야말로 진정한 슈퍼 히어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명의식은 꼭 전문직이나 엘리트들만이 전유하는 덕목은 아닙니다. 소명의식을 다루는 글 중 인상 깊게 읽었던 글에서 나온 일화입니다. 새벽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청소를 하는데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환경 미화원께 뭐가 그렇게 즐거우시냐고 묻자, “지금 나로 인해 지구의 일부분이 깨끗해지고 있잖아요라며 미소 지으셨다고 합니다. 이분 역시 슈퍼 히어로의 자질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이처럼 우리 개개인이 소명의식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아름다워지고 더 나아지지better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1] Erin Barry, How Bill Gates and a top doctor are pushing health care solutions in developing nations, CNBC.com, Feb. 3, 2018. (https://www.cnbc.com/2018/02/03/microsofts-bill-gates-and-surgeon-dr-atul-gawande-team-up-on-health.html)

[2] Tom Daschle, THINKERS : Atul Gawande, Time, Apr. 29, 2010. (http://content.time.com/time/specials/packages/article/0,28804,1984685_1984745_1984936,00.html)

[3] 아툴 가완디(2015), 김희정 역,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키㈜, p.399.

[4] 위의 책, p.320.

[5] Eric J. Topol, MD, Atul Gawande on the Secrets of a Puzzle-Filled Career, Medscape.com Dec. 06, 2013. (https://www.medscape.com/viewarticle/815241)

[6] 아툴 가완디(2002), 김미화 역,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p.39.

[7] Obituaries: Dr. Atmaram Gawande, the Athens News Aug 15, 2011. (https://www.athensnews.com/obituaries/dr-atmaram-gawande/article_c086ddb9-b64e-5160-902d-ebb4b395ebb3.html)

[8] Atul Gawande on Twitter (https://twitter.com/atul_gawande/status/828001110178791424?s=12)

[9]  About GSG College: History, GSG College(http://www.gsgcollege.edu.in/pages.php?pg_no=114)

[10] 아툴 가완디(2015), 앞의 책, p.321.

[11] Eric J. Topol, MD, Atul Gawande on the Secrets of a Puzzle-Filled Career, Medscape.com Dec. 06 2013. (https://www.medscape.com/viewarticle/815241)

[12] John Crace, Is PPE a passport to power – or the ultimate blagger's degree?, the Guardian, Sep. 23, 2013. (https://www.theguardian.com/education/2013/sep/23/ppe-passport-power-degree-oxford#comments)

[13] Eric J. Topol, MD, Atul Gawande on the Secrets of a Puzzle-Filled Career, Medscape.com Dec. 06 2013. (https://www.medscape.com/viewarticle/815241)

[14] 아툴 가완디(2007), 곽미경 역,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 동녘사이언스, p.294.

[15] Tim Adams, Atul Gawande: ‘Why, as you become older and sicker, should you give up your autonomy?’, the Guardian Jul. 12, 2015.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5/jul/12/atul-gawande-being-mortal-older-sicker-autonomy-interview)

[16] 아툴 가완디(2015), 앞의 책, p.394.

[17] 아툴 가완디(2003), 앞의 책, p.30.

[18] 위의 책, p.38.

[19] 아툴 가완디(2003), 앞의 책, pp.48-49.

[20] 아툴 가완디(2007), 앞의 책, p.39.

[21] 아툴 가완디(2003), 앞의 책, p.17.

[22] 아툴 가완디(2007), p.268.

[23] 위의 책, p.270.

[24] 위의 책, p.270.

[25] 위의 책, pp.279-280.

[26] Atul Gawande, The Cost Conundrum, the New Yorker, Jun. 1, 2009.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09/06/01/the-cost-conundrum)

[27] Eric J. Topol, MD, Atul Gawande on the Secrets of a Puzzle-Filled Career, Medscape.com Dec. 06 2013. (https://www.medscape.com/viewarticle/815241)

[28] 아툴 가완디(2010), 박산호 역, 『체크, 체크리스트』, 21세기북스, p.15.

[29] 아툴 가완디(2010), 앞의 책, 139.

[30] Atul Gawande, TED talks : How Do We Heal Medicine?, Apr. 2012. (https://www.ted.com/talks/atul_gawande_how_do_we_heal_medicine)

[31] WHO, New checklist to help make surgery safer, 25 June, 2008. (http://www.who.int/mediacentre/news/releases/2008/pr20/en/)

[32] AB Haynes et al., A surgical safety checklist to reduce morbidity and mortality in a global population,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60 (5), pp. 491-499.

[33] About Us, Ariadnelabs.org(https://www.ariadnelabs.org/about-us/support-us/founders-affiliates/)

[34] Atul Gawande, TED talks : Want to get great at something? Get a coach Dec. 2017. (https://www.ted.com/talks/atul_gawande_want_to_get_great_at_something_get_a_coach)

[35] 아툴 가완디(2015), 앞의 책, p.75.

[36] 위의 책, p.168.

[37] 위의 책, p.238.

[38] 위의 책, pp.39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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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툴 가완디, 김희정 역,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키㈜, 2015.

Atul Gawande, Being Mortal, Wellcome Collection, 2014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Complications(2002)』에서 지적이면서도 진솔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이 인상적이었던 하버드 외과 레지던트가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사상가이자 위대한 보건의료정책가가 되어 돌아왔다.

전작 『Complications』에서는 인간의 생물학적 제약에 대처하기 위해 분투하는 의학의 잠재력에 매혹을 느끼고 의학도의 길을 걷게 된 꿈 많던 청년 의사가 현실 의료 현장에서 느끼게 된 딜레마와 한계에 대해 고뇌하고 솔직히 털어놓는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받았었는데, 아툴 가완디의 진솔하고 겸허한 태도와 날카로운 통찰력은 10년도 넘게 훌쩍 지났어도 여전했다.

이 책에서 가완디는 처할머니인 앨리스 홉슨의 죽음을 계기로 현대 요양원 제도가 지닌 허점과, 죽어가는 환자에게 지나친 의료 행위를 제공하여 도리어 환자의 마지막 삶의 질을 망쳐 놓는 의료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하겠다는 의학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 의료 시스템은 정작 질병과 노화로 고통 받는 인간을 주체에서 객체로 소외시킨다는 뼈아픈 문제인식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우리(의료계 종사자들)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데 능숙하다. 대장암, 고혈압, 무릎 관절염 등 특정 질환에 걸린 환자가 찾아오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고혈압과 무릎 관절염에 더해 각종 다른 문제들을 안고 있는, 이를테면 자신이 영위해 온 삶의 방식을 모두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 할머니를 만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많은 경우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75]


노화로 가족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은 할아버지 시타람 가완디,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갖힌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을 느끼다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은 처할머니 앨리스 홉슨, 척수종양으로 투병하다 생을 마감한 아버지 아트마람 가완디의 죽음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는 자연스러운 죽음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중요한 가치들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다. 선의를 가장한 기만(죽음을 미룰 수 있다는 환상)과 냉정하지만 존엄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직면(인간은 결국 죽는다), 자율성과 안전이라는 가치의 충돌이다.


“스스로는 자율권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길 바라는 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바로 이 점이 노쇠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크고 역설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 바라는 일들 중에는 정작 자신은 단호히 거부하는 것들이 많다는 거죠. 자아감을 침해하는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168]


“현대 의학은 한 달에 1 2000달러가 드는 화학요법, 하루에 4000달러짜리 집중 치료, 한 시간에 7000달러짜리 수술 등으로 죽음을 미루려 애쓰는데 능하다. 그러나 결국 죽음은 오고야 마는데도 어느 시점에 치료를 멈춰야 할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238]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한계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런 인간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나 기관의사에서 요양원까지- 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그 한계에 직면하고 분투하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중략) 그러나 우리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의료진이 개입해 환자로 하여금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일은 더 큰 삶의 목적을 위한 것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이를 망각할 경우 우리는 환자들에게 거의 야만적인 고통을 주게 될 수도 있다. 반면 의사의 역할과 한계를 분명히 기억할 경우, 우리가 가져다 줄 혜택은 실로 놀라운 것이 될 수도 있다.” [395-396]


잘 죽을 권리Well-dying를 보장하는 의료 체계를 만들기 위한 여러 대안적 움직임들과 자신이 접한 죽어가는 환자들의 케이스를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 풀어내며, 가완디는 한 인간이 죽음으로 가는 최후까지도 반드시 지켜나가야만 하는 존엄성과 자율성의 철학을 확인한다. 한편, 그는 아버지의 삶의 자율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마지막 투쟁을 묵묵히 도우며 끝까지 지켜낸다. 가족들의 도움을 통해 아버지 아트마람 가완디는 기나긴 암투병 과정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가장 적확한 시점마다 의학기술의 도움을 받았고, 자신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싶은 정확한 시점에서 의학기술의 중재를 거부했다. 가완디는 이를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이라고 술회한다. 아툴 가완디가 아버지와의 일화를 통해 인도하는 죽음으로의 여정을 따라가며 많이도 울었다. 3년 전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생각나서. 가완디가 덤덤히 풀어놓는 아버지의 죽음을 따라가며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인간이 최후까지 존엄을 지키려 분투하는 과정에서 빛나는 위대한 의지와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다. 인정하기 싫고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 역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나의 최후는 어떠한 모습이어야겠다는 그림이 조금씩 그려지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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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 육식주의를 해부한다
멜라니 조이 지음, 노순옥 옮김 / 모멘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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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정확히 10년 전이다.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 파장이 사회적으로 컸던 해였다. 합리적 회의주의를 신조로 삼았기에 무작정 반대하기 보다는 과연 반대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입장을 정리하고 싶었다. 몇 권의 책과 기사를 찾아 읽었다. 나의 인식과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과의 간극은 아득했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육류는 목장에서 풀을 뜯다 인도주의적으로 도살된 고기라는 생각은 현실 기만이자 자기위안이라는 걸 알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좋은 육질’을 위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뒤룩뒤룩 강제로 살찌움을 당하면서, 1년 남짓 허락된 수명인 평생동안 몸집을 겨우 욱여넣는게 고작인 좁디좁은 창살 속에서, 비위생적인 상태로 O-157 등 유해균에 감염되고 자기 피고름과 배설물에 뒹굴다, 비인간적 노동량에 지친 도살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해소감으로 구타당하며 하루 수억마리의 소들이 도륙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르포르타주 걸작이라 생각되는 게일 아이스니츠의 <도살장>을 읽은 이후 공장식 육류 생산 체제에 반대하고 채식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 후로 10년이다. 여전히 꺼림칙한 느낌이 들고 즐기지는 않지만 이따금 사람들을 만나면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다. 채식주의를 내 삶의 신념 체계로 삼기 너무나 힘든 사회에서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채식주의를 유별나다고 볼 수도 있는 시선이 주류 이데올로기의 폭력적 시선임을 사회심리학 틀을 통해 풀어나간다. 개고기는 반대하지만 돼지나 소의 고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모순을 정당화하는 심리학적 방어기제를 차근차근히 짚어주고, 앞서 언급한 아이스니츠의 르포 및 관련 종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도 폭력적인 육류 생산 시스템의 피해자임을 짚는다. 이 사회심리학적 틀은 아주 파워풀한 설득력을 발휘해서, 육식주의 외에도 “3N: Normal, Natural, Nessesary” 라며 폭력의 모순을 교묘히 은폐하는 어떠한 주류 이데올로기에도 대입해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축장에서 곧 도살될 예정이었던 700kg의 거구로 1미터 50센티가 넘는 도축장 벽을 뛰어넘어 자유를 향해 탈출한 젖소 에밀리와 그를 응원하고 도운 마을 사람들(심지어 도축장 주인까지도!)의 아름다운 실화를 소개하며, 저자는 우리가 사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을 사랑하는 가슴 따뜻한 본성을 지녔으나 폭력적 시스템에 눈에 가렸던 것이라고 위로한다. 채식주의, 여성주의 등 나의 신념을 갖고 살기에 너무 힘든 사회에서 ‘노답’이라며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내게, 이 책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동물성 식품을 일절 먹지 않는 게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먹는 양을 줄이기만 해도 동물과 자신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략) 그리고 변화를 향해 혼자서 애쓸 필요도 없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나는 소수자이나, 혼자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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