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 외 범우고전선 6
J.J.루소 지음 / 범우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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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범우사판 《사회계약론》에는 루소의 저작 사회계약론/인간불평등기원론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사회계약론은 루소 전공자가 번역한 것 같고, 아마도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중역된 듯하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읽던 책들을 덮었었는데, 《사회계약론》 총 4장중 3장까지 읽다 덮어두고 여러 해동안 읽지 않다가 누렇게 바랜 책을 이 책을 꺼내어 다시 처음부터 읽은 건 평택 사건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평생 운운하는 게 어쭙잖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평택 사건은 내게 평생 큰 부끄러움으로, 아픔으로, 앙금으로 남을 것 같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 권력이란 왜 생겨났는가? 아나키스트들이 이야기하듯이 본래 국가란 "최대의 합법적 폭력기관"에 불과하다고 평소에 시니컬하게 생각하던 나였지만, 평택 대추리 사태를 비롯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이 질문은 아프게 내 심장을 찔러왔다. 왜? 자유로운 개인이, 왜? 국가가 감히 무슨 권리로? 왜? 왜? 왜? 왜?

19세기 로맨티스트 자유주의자처럼 도취되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사회계약론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구제도의 모순이 축적되어 곪아터지기 일보직전이었던 18세기에, 그 암담한 시기에도 자연 상태의 인간이 본래 선량하고 자유로운 존재였다고 신뢰한 루소여, 나는 그 위대한 휴머니즘에 코끝이 찡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직도 인간의 본성이 선량하다고 믿을 수가 없어서, 당신의 휴머니즘이 정말이지 부럽다. 인간의 본성을 신뢰했기에, 자유로운 신민들 모두의 (다수결이나 수량의 합으로 회귀되는 정의가 결코 아니다) 공통된 의지의 합인 일반의지를 무조건 선하다고 보았다. 국가가 이렇게 일반의지를 행사한다면 신민은 자기 자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으로 귀결되므로 그럴 때만이 국가 권력에 복종할 수 있게 된다고 본 것이다. 루소는 국가가 특수의지와 엄격히 구분된 일반의지를 행사하게 된다면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학을 인간의 윤리를 완성시키는 학문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자, 오늘날의 정치 행태는 어떠한가? 감히, 이미 어린애들까지 거짓말이 판치는 개판으로 인식하는 우리 정치판에 이 논리를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루소를 모독하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다. 물론 루소의 논리는 이상적인 이론이므로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 아무튼, 그래도 아직까지 도취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련다. 개한민국 정부 및 국회에, 제발, 특수의지가 아닌, 조금이라도 일반의지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려는 사명감에 찬 인재가 들어설 날은 결국 없는 것인가? 아니, 인간이라는 종족이 국가라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종속하는 한, 일반의지를 행사하는 권력은 결코 들어설 수 없는 것인가? 그런 인재가 있다고 해도, 무지몽매한 대중은 불안정한 자유보다는 안정한 독재자를 원하므로 역시 힘든 문제다. 아니,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동물적 욕망에 지적 호기심까지 양 날에 곁들인 자연 최대의 적이므로, 영원히 불가능할 문제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휴머니스트인 루소마저도 자기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내다버린 모순적인 인간이었다지 않는가.

최소한의 정치 철학도 갖추치 못한 무뇌아인 정치인들에게 사회계약론을 읽혀야 한다. 반드시 이 책을 읽히고 논술 시험을 치른 뒤 통과하면 정치판에 서든지 말든지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라고 억지 주장을 세우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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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잎클로버 2006-12-28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재미있는 글이네요^^;;; 요즘 정치가 .... 쩝... 괜히 짜증나는군요. 아무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사야하나 모르겠네요..-_-;;ㅋ 99년 출판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