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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소설을 한 권 독파했다. 브렘 스토커의 《드라큘라》.수없이 영화화되고 소재화되면서 아예 흡혈귀=드라큘라 라는 공식을 성립시킬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해졌고, 오히려 그 캐릭터에 의해 작가인 브렘 스토커는 묻혀버리고 만....그런 소설.

요즘 개인적인 소재들을 다루고 있는 현대소설들만 읽었더니 머리가 굳은 듯 하다. 고전을 읽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되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고전은 고전만의 매력이 있다. 사물, 인물, 배경, 풍습 등등의 상세한 묘사와 주인공들의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비현실적인) 긴 사상적인 대화들. 읽는 속도가 더디게 나가 고통스럽긴 하지만 그런 점들이 매력을 주기도 한다. 감각적으로 치우친 현대 소설들과는 달리 말이다.

그래서 드라큘라와의 긴박한 혈투를 기대하고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읽고 나서 정말 재미있었다. 흡혈귀와의 싸움과 관련된 서찰, 전보, 신문기사, 일기 등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긴박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듯 하여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의외로 드라큘라 백작은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아름다운 여인 루시 웬스트라가 드라큘라 백작에게 습격당해서 흡혈귀가 되는 과정이 특히 흥미진진했다. 반 헬싱 박사와 존 수어드 박사, 그의 약혼자 아서 홈우드 등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루시가 흡혈귀가 되는 과정에서는 안타까우면서 거역할 수 없는 악마적 힘이 느껴졌다. 그러므로 그녀의 친구인 윌헬미나 하커가 흡혈귀의 운명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과정이 더욱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고전....많이 읽어야겠다...현대소설에 빠진 지난 1년간 감각만 살고 뇌는 텅 비게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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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 2004-08-0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어떤 책을 봤거든요?
그런데 루시가 드라큘라 되는 모습이 가장 무섭던데,
그 부분이 흥미진진하다니...휴우~~
담력이 세시군요..;;

IshaGreen 2004-08-02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력이 그다지 센편은 아녜요^^; 브렘 스토커의 묘사력이 뛰어나서 흥미진진했던거죠^^ 겁이 많아서 공포영화도 제대로 못 본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까뮈가 『시지프의 신화』에서 밝히듯이 사람들은 생각하는 습관보다 육체가 추구하는 본능적인 살아가는 습관을 먼저 배워서 익힌다.
롤러코스터의 노래 〈Last  Scene〉의 가사처럼 우리는 '습관이란 건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습관이란 건 내가 왜, 무슨 이유로 그것을 하는지 깊은 성찰없이 마냥 그 행위만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
내가 왜 살아가는지, 나의 존재의 근원은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하는지 성찰하며 살아가기에는 현대 사회의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바쁘고 우리는 그 바쁨 가운데에서 생활의 습관에 젖어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누구나 가끔씩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이든 우연에 의해서이든 하던 일을 멈추고 익숙치 않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될 때가 있고, 그 때 자신의 존재와 그 가치에 한없는 만족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신의 존재의 가치에 대해 참을 수 없게 된다.

20대의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 나의 정신은 황야에 내맡겨진 야생 짐승처럼 포효하며 한없이 방황하거나, 혹은 도저히 심연의 끝이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구덩이 속에 던져넣은 돌멩이처럼 한없이ㅡ영원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ㅡ추락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절망적으로 느끼는 한편, 너무나도 방관적으로 쳐다보며 우습게 느끼기도 했다.

알고 지내던 30대인 언니가 했던 말에(나는 30대가 아니므로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젊어지는 게 물론 좋은 거긴 하지만 아무리 진짜로 젊어질 수 있다고 해도 나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그 무서운 방황은 또 한 번 겪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해."
그렇다. 너무나도 끔찍하다, 이 방황은.

 자연스레 이런 상황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뭔가 멋져 보이는 문구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은 마음에 와 닿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학과 과제를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만났고,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제목조차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진정한 의미에서 읽고 느낀다'기 보다는 '읽었다는 것에 의미를 둔' 독서였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다.  하지만 때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에세이 같은 인상적인 어구들은 '20대의 방황'을 하고 있는 나의 삶의 정곡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다가왔다.

작중인물인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에게 뿐만 아니라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테마는 인간들이 겪는 영원한 고민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ㅡ다만 쿤데라와의 차이점은 우리는 그냥 본능적으로 느끼는데 비해 그는 언어로 형상화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고로 풀어나간다는 점에 있겠지만.
인간은 이 테마에 있어서 누구나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존재의 가벼움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는 존재의 무거움에서 벗어나고픈 그런 욕망을 또한 갈망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두 여인의 대조적인 사랑과 삶이 제시된다.  물론 토마스와 프란츠라는 남성 주인공들도 있지만,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나에게는 그녀들의 상황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테레사의 무거운 사랑은 내 마음에 연민의 정으로서 아프게 다가왔다.  작품의 효용론적 감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테니깐(물론 나도).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는 토마스는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릇된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존재의 무거움이라는 부담감으로 다가오지만 거부할 수 없는, 테레사에게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자그마한 토끼가 되어 테레사의 품에 안긴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그의 세계 전부를 포기한 셈인 것이다.

 사랑을 하면 이기적이 된다ㅡ맞는 말이다.  상대방을 감싸고 포용하며 언제까지나 한없이 베푸는 그런 것이 사랑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상대방의 언행을 구속하고 자신의 것만으로 그를 잡아두려고 하는 이기적 속성도 분명 사랑의 한 일부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범주에서 정의되느냐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테레사가 카레닌(강아지)을 사랑하는 것은 조건없이 그냥 그 존재로서의 카레닌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토마스를 사랑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서 그에게 사랑받는 것을 또다시 더 원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은 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마음이 지치고 내 존재 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여 패배감에 휩싸여 괴로워 견딜 수 없을 때,  누군가가 내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고 사랑으로 감싸주면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 다름 아닌 그것이다.  한 존재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켰기 때문에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내게도 과거에 사랑이 있었다. 그와 나는 처음부터 존재의 무거움으로서 만났다. 사랑이라는 것으로 인해 행복하고 의지가 되며 삶이 힘들 때 위안이 되는 것도 있지만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노래 제목도 있듯이 때로는 존재의 무거움이 나를 쇠사슬로 매듯이 단단하게 옭아맬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의 영혼은 숨막힐 듯한 답답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비나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존재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물론 그녀는 때로는 정말로 그 존재의 가벼움에 '참을 수 없어 하기도' 하지만,  나의 삶은 대체로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쪽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다 시대착오적일 정도로 엄격했던 우리 집안은 너무나도 구속하는 것이 많았고,  나중에는 타의에 의한 자의의 포기로 인해 너무나도 무거운 삶을 살았다.

그 때문일까, 어렸을 때부터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유난히도 많이 꿨다.  꿈에서 깨어나면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나는 여전히 무거운 존재 그대로이다.  내게 이 존재의 무거움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다. 가벼움만으로 산다는 것 역시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의 나는 가벼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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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 Rosso>를 읽고 그의 청아한 문체에 매료되었었다. 그 문체에 목이 말라 그녀의 작품을 더 느끼고 싶어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8년동안 서로 함께 했던 연인, 겐고와 리카. 하지만 8년동안의 사랑과 인연을 끊기로 겐고가 3일만에 결단하게 한, 하나코의 흡인력과 매력, 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중요한 요소인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설득력이 없었다. 소설 속에서는 하나코는 모든 이를 빠져들게 할 만한 흡인력을 갖고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속하지 않는 (그녀의 동생을 제외하고)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 설정에 거의 공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질투를 느끼고 미운 감정이 들어야 할 리카마저도 그녀의 매력 속에 함몰되어 동거하게 되었다는 설정도 너무 억지스럽다. 처음 읽었을 때는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무능하고 게으르고, 내뱉는 대사도 단편적이고, 제멋대로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거의 알 수 없는 희미한 캐릭터. 빈둥거리며 하는 일도 없지만 8만엔이나 하는 집세를 매달 내 주는 사람이 있고, 어디를 가든지 그녀에게 휘둘린 사람에 의해 경제적으로 도움을 얻는 그런 캐릭터.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치열하게(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인간 관계에서든) 살아가면서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점에서 어떻게 보면 '배가 부른' 소설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게는 그런 인물들을 담은 소설이 훨씬 매력적이고 감동적이다. 작가는 그런 설정을 통해서 하나코의 흡인력을 더욱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내게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상황과 사건, 그녀와 인물들간의 갈등, 배경, 그녀의 심리 등이 더 잘 묘사되었더라면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을텐데, 주인공 리카의 시점에서 묘사된 하나코라는 인물은 너무나도 희미하고 작위적이다. 내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작가는 하나코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을 강조하려다가 '밋밋하고 희미한' 캐릭터로 만들어 버린 실패를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억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매력있는 소설이다. 짧지만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게끔 하는 문장들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서 실연당했으나 하나코에게 흡인되고, 겐고를 여전히 사랑하는 리카의 심리가 잘 반영되어 있다는 점 등이 매력적이다. 소설의 여러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에쿠니 가오리만의 청아하고 깔끔한 아름다운 문체는 읽어나가는 내내 여름의 계곡에서 흐르는 시냇물처럼 내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사족. 김난주 씨의 번역은 정평이 나 있고 잘 된 편이나, 남자 주인공 '겐고'를 자기 편의로 '다케오'라고 바꾼 점에 불만이다. 역자는 '다케오'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내게는 '겐고'가 더 어울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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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2004년 아쿠타가와 공동 수상작의 두 작가가 나란히 19세, 20세의 여성으로, 역대 최연소 기록을 깨서 화제라는 신문기사를 읽고 자연스레 생길 수 밖에 없는 호기심으로 서점에서 구입해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읽고 나서는 아쿠타가와상의 전통이 많이 허물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 이 정도의 작품이 아쿠타가와상을? 하는 의아심도 들었고. 물론 그 사실에 대한 불평은 아니다. 아쿠타가와 상이 일본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릴 만큼의 권위있는 상이었기에 든 약간의 불평이었을 뿐.

하지만 이 소설은 꽤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은 고등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자기 주변의 세계를 무리없이 힘이 들어가지 않게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 하츠의 눈을 통해 포착된, 학교라는 울타리안에서 펼쳐진 작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간 관계와 허식 등의 묘사가 압권이다. 인간 관계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미묘한 역학관계, 가식 등이 잘 관찰되어 있어 감탄스럽다.

재능이 있는 나이 어린 창작가들의 작품들은 자신이 아는 범위를 벗어나 더 스케일이 큰 무언가를 다루려고 하다가 오히려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와타야 리사는 자신이 겪었을 세계에서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개성있는 캐릭터와 섬세한 표현력을 통해 잘 형상화시켰다는 것에서 아쿠타가와 상 수상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납득이 갈 것 같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약간은 억울하기도 하고 인정하기 싫기도 한 일이지만, 타협이라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하츠는 자신을 굳게 걸어잠그고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둘러보고 있다. 그녀의 눈에 비춰진 주변의 인간들은(니나가와를 제외한) 어느정도는 모두 가식적이며 순수한 인간적인 유대라기보다 상호간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물질적인 이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을 위해ㅡ예를 들면 도시락을 함께 먹을 수 있다든지, 실험조에 함께 소속될 수 있다든지, 선생님을 꼬드겨 클럽활동 운동 연습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든지 하는ㅡ그에 맞춰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하츠는 그러한 것들을 혐오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런 한편 그녀도 그런 성향 때문에 외톨이가 되자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홀로 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자아를 확인하고픈 그녀의 마음이 보인다.

[인정받고 싶다...용서받고 싶다...빗살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한 올 한올 걷어내듯, 내 마음에 끼어있는 검은 실오라기들을 누군가 쓰레기통에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대목.

그렇기에 자신보다 더한 (아예 주변 세계에 관심이 없는) 히치코모리 성향을 지닌 니나가와의 '등짝을 발로 차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 그녀도 순간순간이지만 자기 주변에 대한 부정적이고 혐오스러운 눈길에서 벗어나 순간의 깨달음을 얻는 대목들이 은근슬쩍 작품 사이사이에서 지나가고 있다. 하츠가 자신의 세계에만 갖혀있는 동안에, 단짝이었지만 주류의 '그룹'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버린 키누요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를 이해하게 되는 대목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처음 들었다. 키누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활동적으로 변해간다.] 하는 대목.

한편 또다른 소설의 주인공, 아이돌 스타 '올리짱'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폐쇄적인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니나가와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다. 소설 내내 그는 올리짱 외의 세계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지만, 소설 후반부에서 실제로 그녀를 접하고 나서 환상과 현실이 다름을 느끼고 아픔을 맛본다. 성장제의라고나 할까.

학창시절을 겪으면서 다들 겪었을 법한, 사소한 사건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잘 포착되어 있는 것이 감탄스러웠고, 심리와 정경 묘사가 자연스러웠던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사족 한 마디. '귀여니'의 작품들이 출판되었던 황매출판사에서 이 소설이 출판되었다는 사실과 중고생용 인터넷소설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표지는 정말이지 맘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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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러 2004-03-0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의 표지는 일본 원작 소설의 표지와 똑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우연이죠. 무엇보다 이 작가가 미인이더군요.

IshaGreen 2004-03-1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완전히 출판사 이미지에 따른 편견이었네요^^;;
 
선택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7년 3월
평점 :
절판


고2때 읽었었다. 벌써 어언 4년이 지났나... 이 작품에서의 이문열 씨의 장중하며 옛스럽고 멋스러운 문체에는 반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진정한 선택이었는지, 그리고 과연 진정한 선택이었다고 한들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의문이 든다. 또한, 서장에서 대놓고 공지영씨의 작품을 비하한 것은 과연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중견 작가중의 한 사람이 지닐만한 태도인지 의심스러웠다. <사람의 아들> 이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때가 좋았다. 그는 이젠 나이들어 자기를 지키기 위한 천박한 도구적인 글쓰기밖에 못하는 기득권 수구작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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