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의 한 보살님이 선방에 못 나오시게 되었다. 아흔의 나이탓일까, 도둑질과 술장사를 빼고는 다 해보았다는 그 고생탓일까...귀도 잘 안 들리고, 걷기가 힘들어서 더는 나오실 수가 없다고 한다.

그분이 선방에서 입으시는 옷을 물려받았다. 모두가 그분의 옷을 받고 싶어했지만 젊은이를 밀어주라는 강력한 요청에 의해 나에게 돌아왔다. 정갈하고 좋은 옷이었다.

우리 집과 아주 가까운 곳이 그분의 집이라 같은 방향의 다른 분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왔다. 그분이 택시 안에서 우셨다. 함께 타고 있던 보살님이 20년이나 다니던 절을 다리가 아파 못 온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만도 할 거라고 하셨다. 그분의 집까지 따라가서 동방아와 옷 몇 가지를 더 얻어왔다. 그분의 연락처와 내 연락처를 서로 교환했다. 집이 가까우니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연락을 할 수 있게 그렇게 한 것이다. 불편하신데도 혼자 사신다. 그래도 그게 더 편하시다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런 게 늙는 거구나 싶었다.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늙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이름만 대면 한국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아들을 두셨지만 그것이 그분의 행복이 될 수 있을까? 위안이 될 수는 있겠다만은.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에 "부서진 수레는 갈 수가 없고, 노인은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그분의 집을 나설 때 그분이 "내 옷 입고 꼭 성불하이소" 하신다. 조금이라도 젊어서 공부하는 인연을 만난 것에 감사한다.

그분의 옷에 부끄럽지 않게 수행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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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 2004-06-1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인연, 부러운 인연이십니다. 감사하는 모습도 보기 좋구요~^^

행복한여행자 2004-06-1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따뜻한 마음 늘 수행으로 열심히신 모습이 마음 따뜻해집니다.

혜덕화 2004-06-16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에 못나오셔도 아마 집에서 열심히 수행하실 거라고 믿어요.
좋은 도반을 두신 님의 파장도 아마 그분만큼 좋은가봅니다.
꾸준히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2004-06-16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6-16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6-16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공부는 안 하고 먹기만 한

오전에 일이 있어 늦게 선방에 갔다. 딱 두 시간 앉았다 일어서는데 허탈하다. 한 시간은 조느라, 한 시간은 망상으로...

좀 기가 죽어 집에 오려는데 보살님들이 한사코 수박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공부도 안 했는데...말을 흐려보지만 이미 자리에 앉았다. 수박은 맛있다. 맜있는 수박이 슬프군.

며칠 좀 잘 된다 싶더니 기어이 이런 날이...

하긴 잘 되는 공부, 못 되는 공부가 어디 있나. 깨닫고 못 깨닫고만 있지.

오늘을 기점으로 선지식들의 법문 테잎을 다시 들어야겠다. 자극이 필요한 듯.

선희야, 기운내고 정신 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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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결제일. 아침에 절에서 마련해준 작은 버스를 타고 선방 보살님들과 동화사에 갔다. 진제 스님도 친견하고, 선원장 스님도 뵈었다. 결제법회에 참석해 법문도 듣고.

다시 절에 와서 자기 자리 확인하고...

아침부터 움직였더니 몹시 피곤하다. 노보살님들이 나보다 더 체력이 좋으신 것 같다. 

그래도 여러 스님들께 인사하고, 좌선할 자리도 마련하고 하니 내가 무슨 복이 이렇게 많은가 싶다.

남편이 오늘 저녁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있는 것 먹든지 아니면 시켜 먹자고. 나의 피로를 이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지지해 주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여러 가지로 감사하고, 기분 좋은 날이다.

좋구나, 선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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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6-02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왔다 갑니다.^^

비발~* 2004-06-02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일의 마이리뷰에 뽑히셨네요? 축하축하~~

이누아 2004-06-02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울타리님, 저도 자주 님의 서재를 찾아 갑니다. 요즘은 코멘트를 적는 난이 없더군요. 있어도 잘 적지 못하지만 없으니 좀 허전하기도 하고.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비발님, 감사합니다. 저는 아주 놀랐습니다. 뽑힌 데 대한 부상인 적립금이 5천원이 아니고 5만원! 하하, 기분좋은 날입니다. 근데 어디로 사라지셨나요? 요즘 뵙기가 무척 어렵군요. 서재도 너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잘 계시죠? 잘 뵙지 못하지만 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혜덕화 2004-06-0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엔 갓바위에 몇번 가본 기억이 있습니다.
어제인가? 중앙일보에 하안거 결제일에 대한 기사를 보고, 스님들 공부 열심히 하시길 기원했습니다. 함께 수행 할 수 있어 행복하시겠네요. 마음 들여다보는 행복한 시간 되기 바랍니다.

이누아 2004-06-04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수마와 망상이 화두와 함께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선사들 말씀이 망상이 일면 망상을 따라다니지 말고 화두만 챙기라고 하시더군요.
혜덕화님도 매달 하시는 3천배 수행으로 근원적 질문에 대해 더 맑게 나아가시기를 빕니다.
 

내일은 하안거 결제일이다.

오늘 선방에 가서 자리와 사물함을 정했다. 선방 노트를 봤더니 보살님들의 연세가 적혀 있다. 거의 70대다. 80에 가까운. 나이가 드신 줄은 알았지만 생각 이상이다. 그런데도 참 젊게 보이신다.

입승 보살님이 저번 달에 세상을 뜰 뻔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편찮으셨다고. 그러자 다른 보살님이 고비를 넘겼으니 올해는 살겠네 하신다. 입승 보살님 왈 "올게(올해)가 안 지났는데 어째 아노? 지나봐야 알제". 웃으며 나누시는 대화. 연세가 여든이 훨씬 넘은 두 보살님의 대화이고 보면 웃으면서 듣기가 뭐하다.  

절에 주지 스님이 바뀌었다. 새로 주지가 되신 스님은 선수행을 하신 분이라 선방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셨다. 선방 생활의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 배려해 주셨다. 그분의 수행의 흔적은 손가락이다. 손가락 두 개가 없다. 입승 보살님은 선수행 하시는 분이  새로 주지가 되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기뻐하신다. 아이처럼 즐거워하신다.

젊은 노보살님들. 죽음을 두려워하시지 않는 분들. 내가 무슨 복이 이렇게 많아 이런 분들의 도반이 되었나 생각하면 흐뭇하고 감사하다. 재가자라고 핑계대며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몸으로 보이신다.

내일은 결제일이다. 나날이 결제일이어야 겠지만 날을 따지고, 결심을 해야 하는 내게는 또 다른 시작이다. 내일은 결제일이다. 화두를 향해 마음을 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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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선해
공연무득 / 우리출판사(서울출판) / 1988년 4월
평점 :
품절


대전 화상이라는 분이 쓰신 반야심경 해설이다. 그분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책을 구해 읽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그냥 두지 못해 책으로 엮어 내었다.

제목에서 보듯 이 책은 "선해"(禪解)이다. 선의 관점에서 반야심경을 풀이한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그러나 반야심경, 그 자체가 선이 아닌가?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래에 있는 원문은 쳐다도 안 보고 한글로만 술술 읽어갔다. 그리고는 책을 덮었다. 또 책을 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사실 "선"이라는 말에서 보듯 이 강해는 이미 이해의 차원이 아닐지도 모른다.

"반야"라는 말 아래 그것이 범어이며, 지혜라는 어구의 해석을 단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책은 너무 쉽게, 기분좋게 읽혀진다. 그러다 어느 구절 가슴을 턱 막히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읽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라즈니쉬는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을 기억하지 말고, 그냥 그 순간 느끼라고 했다. 순간에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깨달음은 기억이 아니다.

나는 숲속 나무 아래에 앉아 대전화상의 말씀을 듣고 있다. 그러면 바람이 분다. 시원하고,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온 숲을 흔든다. 나는 그 말씀을 곧 잊는다. 언제나 기억하고 연구해야 다 알고, 이해했다고 믿는 습성 때문에 언젠가 뒤의 영인본으로 이 글을 보리라 결심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런 생각도 없어진다. 이 책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설명하고 있지만 내게는 이미 시가 되었다. 책을 읽고나면 산림욕을 한 느낌이다. 머리가 서늘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여전히 책을 펴야 부는 바람이라야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산소호흡기도 아니고, 책을 펴고 바람을 맞는다면. 내 속에도, 내 밖에도 온통 시원한 바람일 터인데 오늘도 화상의 손가락을 따라 바람을 찾고 있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구절들...이 구절들이 영인본을 본다고 이해가 되겠는가. 내가 그것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을 터!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고 기죽지 말아라, 선희야. 고개를 들어라. 네가 이미 바람이다, 숲이다, 반야다. 

이 책은 시원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나의 느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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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4-05-29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좋은 책이 절판되다니! 얼른 다른 서점엘 가본다. 개정되어 팔리고 있다. 내가 가진 책도 5판이다. 절판되었는데 다른 서점에서 재고분이 남은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개정되어 3,500원에 팔리고 있는 것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