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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선해
공연무득 / 우리출판사(서울출판) / 1988년 4월
평점 :
품절
대전 화상이라는 분이 쓰신 반야심경 해설이다. 그분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책을 구해 읽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그냥 두지 못해 책으로 엮어 내었다.
제목에서 보듯 이 책은 "선해"(禪解)이다. 선의 관점에서 반야심경을 풀이한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그러나 반야심경, 그 자체가 선이 아닌가?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래에 있는 원문은 쳐다도 안 보고 한글로만 술술 읽어갔다. 그리고는 책을 덮었다. 또 책을 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사실 "선"이라는 말에서 보듯 이 강해는 이미 이해의 차원이 아닐지도 모른다.
"반야"라는 말 아래 그것이 범어이며, 지혜라는 어구의 해석을 단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책은 너무 쉽게, 기분좋게 읽혀진다. 그러다 어느 구절 가슴을 턱 막히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읽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라즈니쉬는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을 기억하지 말고, 그냥 그 순간 느끼라고 했다. 순간에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깨달음은 기억이 아니다.
나는 숲속 나무 아래에 앉아 대전화상의 말씀을 듣고 있다. 그러면 바람이 분다. 시원하고, 신기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온 숲을 흔든다. 나는 그 말씀을 곧 잊는다. 언제나 기억하고 연구해야 다 알고, 이해했다고 믿는 습성 때문에 언젠가 뒤의 영인본으로 이 글을 보리라 결심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런 생각도 없어진다. 이 책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설명하고 있지만 내게는 이미 시가 되었다. 책을 읽고나면 산림욕을 한 느낌이다. 머리가 서늘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여전히 책을 펴야 부는 바람이라야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산소호흡기도 아니고, 책을 펴고 바람을 맞는다면. 내 속에도, 내 밖에도 온통 시원한 바람일 터인데 오늘도 화상의 손가락을 따라 바람을 찾고 있다.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구절들...이 구절들이 영인본을 본다고 이해가 되겠는가. 내가 그것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을 터!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고 기죽지 말아라, 선희야. 고개를 들어라. 네가 이미 바람이다, 숲이다, 반야다.
이 책은 시원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나의 느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