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
무라카미 류 지음, 김자경 옮김 / 제이북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책을 다 읽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다시 겉장의 제목을 확인해야만 할 정도로 이 책을 읽어도 '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야!'라고 손벽 치며 깨닫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좀더 자세히 들어가서 이 제목이 풍기는 뉘앙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 여기서 앞의 '그래'는 이런 분위기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이곳 저곳 탈출구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선택하게 되는, 비록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중간에 이런 말이 생략되었다고 봐도 무난하다.
'그래, (그래도) 연애가 마지막 희망이다' 결국 이 제목에서 독자는 이 책이 어떻게 전개될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으면 이런 생각을 한다. '도대체, 왜? 연애가 희망이지?' '연애'와 '희망'의 연결고리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연애는 희망과 무관하다.' 난 이렇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에서 이런 제목이 붙여졌을까? 비교적 책 구매가 왕성하다고 판단되는 20,30대 미혼들을 겨냥한 마케팅이었을까? 아님, 여느 단편집이 그러하듯 여러개의 내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일까? 아니 원제도 이럴까? (왠지 국산 파리약 냄새가 난다.)

아무튼 이 책의 제목을 '연애에 대한 잡다한 생각' 쯤으로 바꾸고 책의 분량도 2/3로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뭔가를 기대하게 되는 제목 그리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내용 중 하나를 바꾸라면 전자를 택하는 게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판단일 거다. 제목과 내용의 非일관성을 제외한다면 내용 그 자체는 신선한 것도,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간간이 눈에 띄였다.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문명의 동질성이라고 하긴 너무 범위가 넓고 아시아의 동질성이라고 하기엔 좀 답답한 느낌이다.

사람의 사고(思考)를 의식 속 사고와 의식 밖 사고로 나눈 것과 매슬로의 욕구 위계처럼 연애의 조건도 단계를 밟는다는 의견, 남성과 여성의 대표적 역할 모델의 붕괴는 비교적 신선했고 프리타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사람들의 증가, 자립에 대한 생각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별은 두개만 주기로 하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내게 잠시나마 '연애가 과연 희망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했다는 것에서 별 하나... 그리고 지천명의 나이로 이런 말랑말랑한 글을 쓴 류에게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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