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퍼온글] 김현태씨의 '혼자는 외롭고 둘은 그립다'

고백은 늘 서툴기 마련입니다.

아무말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그저,도망치듯 뒤돌아 왔다고 해서

속상해 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모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완전하게

표현한 사람은 극히 드물 겁니다.

저 멀리서 언제나 뒷모습만 흠모하다가

정녕 그 사람의 앞에 서면,

왠지 그 사람이 낯설기에 순간,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고백은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서툴면 서툴수록 고백은 더욱 완벽해 집니다.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 채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다

끝내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뒤돌아 왔다면

그것만큼 완벽한 고백은 없을 겁니다.

그것만큼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건 없을 겁니다.

사랑한다고,

사랑해 미칠 것 같다고

굳이 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언제부턴가 당신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고백은 말을 전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간절한 그리움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곁에 살포시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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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쎈연필 > 든든한 책이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아까 전엔 학보사 동기들이 내 방 좀 구경시켜 달라기에 그렇게 했다. 내가 아주 지저분하고 우중충하게ㅡ나의 구레나룻처럼ㅡ살 것으로 예상했는데, 몹시 의외라고 입을 모았다. 열아홉 살짜리 여아해는 박상륭 소설이 읽고 싶댔다. 나는 제발 그 딴 거 읽지 말라고 했다. 오정희부터 읽으라고 했다. 읽었댄다. 어려운 책이 읽고 싶댔다. 하기사, 나도 그랬으니까(^-^;;). 나도 괜히 박상륭이나 이인성 같은 인간들 책 뒤적거릴 때가 있었지. 서정인의 『강』을 빌려줬다. 스물두 살짜리 여아해는 『핏기 없는 독백』과 쿤데라의 『느림』과 민경현의 첫소설집을 빌려갔다. 아해는, 민경현의 첫소설집 첫문장, "이 놈의 비가 지랄이다."를 읽더니 마음에 든다며 괴성을 질렀다.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는 『천 개의 고원』을 보더니 다 읽었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아니요, 라고. 실은 리좀과 늑대에 대한 고원만 읽었다. (지난 번 자질구레에서 언급한) 형이 그 책을 읽고 늑대인간에 대한 소설을 썼다기에 형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산 것일 뿐이다(뿐아니라, 천의 고원을 읽고 소설을 네 편 썼다고 했다). 나한테 천 개의 고원은 그저 그런 용도의 책일 뿐이다. 그다지 읽고 싶지도 않은. 『계몽의 변증법』과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 조금 얘기했다. 누나는 철학과 출신답게(?) 묵직한 책에만 관심을 보였다. 누나는 내공이 있는 거 같은데 영 티를 내지 않는다.  

며칠 전엔 동생이 왔다가 갔다. 동생을 위해 정성스레 요리를 했지만 동생은 잠온다면서 잤다. 일어났을 때 다시 찌개를 만들어줬지만 대단히 맛없어 했다. 대구에 있을 때, 내가 밥을 먹고 있으면 할머니는 항상 물끄러미 바라보시곤 했다. 나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내가 자꾸만 먹는 걸 바라보자 동생은 재수없어 했다. 날 닮은 녀석. 이틀을 잠만 자다가 서울에 갔다. 친구가 강남에서 특례병으로 일하고 있는데, 가서 함께 하겠단다. 군대보다 더 힘들거라고 말했지만 하겠단다. 지하철 역까지 같이 걸어가자고 했지만 택시타고 가 버렸다.   

지난 편집회의 때, 나는 앙토냉 아르토를 추천했다. 매달 예술가 한 사람을 소개하는 코너에. 의외로 다들 아르토를 몰랐다.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미친 놈이라고 답했더니, 우리 학교 애들은 그런 사람들 좋아해, 라기에 나는 장황하게 떠들었다. 잔혹극이란 것을 만들어서 연극판을 갱신했고, 정신병원에 갔다 왔고, 때문에 광인과 정상인을 구분짓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해서 그게 후에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쓰게 했고, 요새 우리 나라에 유행하는 철학자가 자주 쓰는 기관없는신체라는 용어도 아르토가 썼고, 언어에 속박되는 것을 비판해서 후에 데리다가 로고스 중심주의 비판을 하게 됐고 어쩌구…, 결정적으로 잘 생겼다, 라고 마무리했다. 그랬더니 만장일치로 아르토가 뽑혔다. 나보고 기사를 쓰랬다. 나야 환영하는 바. 헌데 정작 아르토의 책을 대구에 두고 온 것이다.

시실습 교수가 중간고사 대신 타르코프스키의 「향수」를 보고 시를 써서 제출하란다. 부랴부랴 봤다. 보다가 잠시 졸았다. 재미는 있는데 피로해서(^-^;). 나는 집에 비디오가 없어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한 편도 못 봤었다. 요즘 들어 도서관 시청각 자료실이란 곳을 애용한다(그제는 니진스키의 무용을 봤다). 그래도 그의 책은 다 샀었다. 향수를 다 보고 집에 오자 마자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를 새삼스레 읽다가, 『봉인된 시간』이 너무 읽고 싶어졌다. 헌데 그건 대구에 두고 왔다. 이런.    

그래서 이모한테 전화를 했다. 돈끼호떼, 일리아스, 모비 딕, 이데아총서 시리즈 등을 택배로 보내 달라고 했다. 아, 토마스 만의 책도 보내 달랠 걸. 으후-. 싸그리 다 옮겨 올 걸 그랬다.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전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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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그러니까 추석 전날 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간단한 과일(달랑 배)을 깎아 먹으며 오손도손 오랜만에 가족 상봉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
'어머니 노래교실'에서 2년 넘게 수학하고 계시는 어머니께서는 바로 그 노랫소리가 生(Live)임을 직감하셨다.


어머니 왈.
"근처에서 노래자랑을 하는 것 같은데?"
이미 오래전에 진화되어 사라진 귀 근육에 다시 힘이 들어가는 듯 어머님은 귀를 살짝 움직이신다.
"그래? 그럼 구경갈까? 여보?"
여전히 여자친구가 없다는 형과 나의 진술(이성 얘기가 나올 땐 아버지께서는 형사, 형과 나는 죄인이 되는 이상한 상황극이 펼쳐진다)에 더이상 얘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신 아버지께서는 주제와 장소의 변화를 꾀하려 하셨다.
방 안엔 넷이 있었는데 문 밖을 나온 건 셋이였다...
나보다 세살 많은 형은 나보다 세배 많은 고문(^^)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전 그냥 있을께요... 피곤해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방향으로 걷길 10여분...
내 눈에 들어온 건 "추석맞이 정산면민 노래자랑"이라고 크게 걸려 있는 현수막이였다.
그리고 네모난 현수막 테두리에 껌벅이는 전구들...
무대 앞엔 선선해진 가을길 위에 닿을 엉덩이를 배려한 돗자리가 깔려 있었고 눈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테이블 열댓개가 마치 뷔페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막걸리, 김치, 돼지고기 등이 미완의 보름달이 발하는 빛을 받으며 저물어가는 가을밤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켜 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구수한 시골 노래가락에 흠뻑 빠져있다고 판단한 난 막걸리는 홀짝이며 짙은 가을밤 속으로 푸욱 빠져 있었다.
(그때 들려온 노래가 "다함께 차차차"였다... 자! 상상해 봅시다... 다함께 차차차가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돼지고기가 흩뿌려진 테이블에 기대 막걸리를 마치 와인처럼 음미하며 마시는 나의 모습을...)
막걸리를 한잔 꺽고 한참 FEEL이 꽂히려는 순간 내 어깨를 두드린 건 아버지였다.
"뭐 할래?"
주어 달아나고, 목적이 빠지고, 상황으로도 전혀 갈피 못잡는 질문을 아버지께서는 가끔 하신다.
"김치 주세요."
"취했냐?"
'요'자와 '취'자가 함께 들릴 정도로 아버지께서는 바로 말씀하셨다.
"너 무슨 노래할꺼냐고?"
아버지께서는 친절하게 생략된 괄호를 메워 주신다.
"벌써 만원 냈으니까 빨리 골라라."

#장면 바뀌고 무대위

-사회자 : 오늘의 마지막 참가잡니다. 대박리에서 오신 김요석씨! 곡목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입니다.
(무대 위로 힘차게 올라가 무대 좌측에 앉아 있는 심사위원에게 인사한 후 관중들에게 인사한다. 그리고 부모님을 향해 손을 흔든다. 이광조의 떨리는 입술을 연출하려다 여유롭지 않자 고음 부분에 심혈을 기울이고 결국 삑사리난다.)
-사회자 : 예! 잘 들었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바로 행운상 추첨에 들어가겠습니다. 행운상 당첨자께는 애경에서 후원한 생활용품 선물셋트를 드립니다. (사회자 번호통에서 추첨을 시작한다.)
자... 참가번호 12번, 17번, 51번... 10개의 참가번호가 연속되어 불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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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이냐?"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아버지께서 접수하셨잖아요? 전 모르는데..."
"내게도 접수번호 같은 건 알려주지 않던데."
아버지께서 무대 쪽으로 달려가시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의 행동 우선의 원칙이 생각났다.
"우리 아들도 접수해서 노래 불렀는데 접수증을 안줬어."
"오랜만에 고향 와서 좋게 놀고 가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거야!"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접수 번호를 듣기 위해 조성된 차분한 분위기는 웬만한 마이크를 능가하는 목청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산산조각 난다.


#돌아오는 길

달빛 비추는 시골길을 걷는 세명의 뒷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아버지 : 뭐냐?
-요석 : 애경 선물 셋튼데요.
-아버지 : (뿌듯해 하시며) 본전 뽑았네. (세명이 동시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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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추석에 이런 재밌는 일이 있었습니다.
옷장 속 긴팔도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활동을 재개하는 계절입니다.
이젠 긴팔의 까실까실한 감촉을 느낄 수 있겠죠.
차분하게 생각하고 많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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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과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게시판의 안전한 존치가 의심스러워 이곳에 보관합니다.

작성일 2002. 8월경

오랜만입니다.
이게 얼마만인지......

전 수원에 있습니다. (아직까지 모르는 사람이 정말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밤중에 전화 걸어서 술마시러 (서울로) 나오라는 협박 가까운 고통을 제게 주지 않기를.....)
수원에 직장이 있기 때문이죠.

그럼 수원시민이냐고요?
정말 위험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수원시민은 아닙니다.

수원에 직장이 있고 수원에서 살고 있는데 수원시민이 아니라면......
장상 총리지명자의 발목을 잡은 그 무서운 "위장전입(여기서 위장전입이란 법적 검토가 수반되지 않은 상식선의 의미로서 법조계 종사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이냐고요?
부의 증식을 위해, 귀족 자동차 번호를 위해, 높은 학군 때문에 위장전입을 했냐고요?
고발하지 않을 테니 지금이라도 빨리 본 주소지인 서울로 오라고요? (허걱)

아~~~ 여러분......
이제부터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셔도 좋습니다.
그럼 꼬인 듯 얽혀있는 위장전입과 도덕성의 매듭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의 증식...?
富라고요?
생계를 위해 허리끈 바짝 조이고, 자존심 싹 버리고, 꼬박꼬박 정부와 은행에게 삥 뜯기는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부의 증식은 신문과 TV에서만 보는 저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아직까지 월급이 오르면 식료품 비 지출을 더 늘리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귀족번호...?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죠.
서울시 강남구 자동차번호(서울55)를 받기 위해 강남구로 위장전입을 한다던데......
저도 차는 있습니다. (제 차를 보고 이것도 차냐? 라는 사람이 있었죠. 한 명이었다면 말도 안 합니다.)
앞 유리의 중간에 유리창 폭의 2/3에 달하는 깊은 상처가 있고,
뒤 범퍼는 달려있다기 보다는 걸려 있고,
정지한 수만큼 시동이 꺼지는(물론 지금은 고친 상태지만)
그런 찹니다.
더 이상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높은 학군...?
이건 언급할 가치가 없군요.

그렇습니다. 전 먹고 살기 위해(너무 비참한가?) 수원에 왔습니다.

전~~~
6시에 일어나 그 시간 수원 인계동에서 용인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복장을 갖춘 후 터덜터덜 숙소를 나섭니다.

아파트 생활에 경험이 없는 제가 이 생활을 한지도 한 반년이 지났고......지금은 어엿한 인계동 주공 아파트 주민의 일원으로 꼬박꼬박 관리비, 물청소 비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덜 깬 잠을 몸에 달고 문 밖을 나가 4층에서 내려간다는 것은 아직도 제게 익숙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죠.

계단을 세 번 돌아 주차장에 내려오면 어딘가 어설프게, 엇박자로 세워져 있는 군청색 세피아가 반쯤 감긴 눈을 하고 절 맞이합니다.
(수원 생활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중교통 이용자에서 오너 드라이버로의 수평적 이동도 빼놓을 순 없겠죠.)
전 열쇠 고리를 검지에 낀 채로 빙그르르 두세 바퀴를 돌린 후 이 녀석에게 새로운 아침을 선물합니다.

운전석에 앉아 양쪽 사이드 밀러를 확인하고 안전벨트 고리를 연결한 후에야 비로소 열쇠를 꽂아 시계방향으로 비틀죠.

이미 오래 전에 정년 퇴직했을 제 승용차는 털털털 소리를 내며 곧 숨이 넘어갈 듯 몸을 부르르 떨다가 다시 우-웅 소리를 내며 새 삶을 시작합니다.

후진으로 주차장을 유유히(움직임이 한가하고 느리게) 빠져 나와 약 500m거리에 있는 백화점 꼭대기 수영장으로 향합니다.

출구와 입구가 분리돼 있는 백화점 주차장은 저처럼 노란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특혜라 할 수 있죠. 구불거리는 내리막길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차가, 내가 피해야만 하는 차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요즘 제가 정말 열심히, 온 정력을 다 바쳐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그건 바로 수영이랍니다.
수영을 시작한지 어언 5개월...
처음엔 몸이 자꾸 가라앉아 좌절도 많이 했었는데......
계속 수영장 물을 마시다 보니 맛도 나쁘지 않고 배도 부르고 해서 빠지지 않고 꾸준히 나갔더니 이젠 수면 위를 자연스레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이 제법 멋있다고들 합니다. (물론 전 제 모습을 본적이 없지만)
그래서 하루에 두 번씩 출근 전, 퇴근 후 수영장에 빠져서 살고 있죠.

수영을 하고 좋아진 게 있다면
첫째, 출근하기 전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고
둘째, 퇴근한 후 이 막막한 수원에서 뭘 할까? 하는 고민 따위는 할 필요가 없고
셋째, 점점 나오기 시작하던 배 살이 그 방향을 바꿔 점점 들어가고 있다는 거죠.

물론 이거 말고 더 좋은 점이 많지만 이 정도만 열거하죠.
이 글을 읽는 선후배님들도 시간 있으면 수영배우세요.
(교수님! 여기까지 읽고 읽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지 마시고 수영 배우세요^^ 아마 교수님은 잘 뜰겁니다.)

연락하지 않은 만큼 긴 글이었습니다.
이글은 그 동안의 무심함을 용서 받으려는 간사함에 기인하지 않음을 명백히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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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알라딘에 소개하진 않았지만 글쓰기의 소재 부족(이건 사실 노력부족에 기인한다), 일상에 대한 열정 고갈(? 좀 위험한 발언), 심리적 불안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프라인 속의 생활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활동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가입 자체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활동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시간 안배, 능력 부족의 문제일 거다. 내게도 직장이라는 생계 유지형 소속 단체 말고 여가 및 봉사 단체가 있다.

올해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야학에서 내가 맡아 가르치고 있는 과목은 수학이다. 사실 과목 이름은 '수학'이지만 내용은 '산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 수학을 담당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을 때 잔뜩 겁 먹었던 나이다. 인수분해는 볶아먹고, 함수는 끌어먹고, 미적분은 회쳐먹은지 오래다. 소화되어 배설된 후 거름되어 사라졌을 내 수학적 능력을 회생시켜야 된다니... 입이 딱 벌어지고 숨이 턱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수학 교재를 보고 나서야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일주일동안 수험생처럼 수학공부한 게 좀 아까웠지만... 다행이었다.

예전부터 야학엔 관심이(or 관심만) 있었지만 학부때는 놀기 바빴고 원생일 때는 프로젝트, 강의 준비에 항상 숨이 턱까지 차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야학을 하지 못 할 정도로 바쁘진 않았던 것 같다. 역시 그 땐 열정이 부족했다.

야학도 학교와 마찬가지로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로 구성된다(이 둘의 차이는 분명치 않다). 우리 야학에서 배우는 사람은 주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고 가르치는 사람은 대학생들이다.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한문, 시사, 역사, 과학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학급회의, 동아리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내가 맡고 있는 수학 기초반은 수에 대한 개념부터 시작해서 사칙연산, 그리고 분수, 소수 등을 가르친다. 배움의 부족으로 인한 불편함을 삶 속에서 경험하신 분들의 눈은 항상 생기 넘치고, 그런 열정은 교실을 달아오르게 한다. 틈틈히 강의 준비를 하고 그들 앞에 서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질문이 나올 때는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아느냐가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이다. 지식은 앎이 아니라 앎의 표현 가능 여부다. 난 아직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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