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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9

 

※ 이 글은 김경수 교수님의 '현대소설론' 중 '법과 문학'이라는 테마의 수강을 위해 오늘 읽은 이병주의 작품 <소설·알렉산드리아>에 대한, A4용지 4장 분량 되는 나의 갈무리이다. [한길사]에서 펴낸 3쇄 2010년판을 읽었다. 조촐하지만 이 공간에 옮겨본다.

 

 

 

 

 

  그렇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면 사회의 미덕으로부터 응당한 선처를 바라지도, 법에게 처지를 호소하지도 않는다. 전자의 경우는 이 글에서 차지한다. 열풍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와 그것에 대한 ‘국내산’ 비판적 텍스트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이 사회의 미덕에 대해 저마다의 정리를 해봤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후자의 경우인 법이 아쉽게도 미덕의 반영에 있어 허점을 보이는 탓이기도 하다. 법이 ‘우리’의 든든한 수호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하나의 픽션인 법에 대해 분명한 잣대를 손에 쥘 필요가 있다.


  ‘법과 문학’이라는 면에서 내가 본 이병주(李炳注)의 「소설·알렉산드리아」에는 두 개의 법이 지배하는 무대가 등장한다. 하나는 - 나는 여기서 ‘안타깝게도’라는 부사를 써야겠는데 - 서울의 서대문 형무소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도시 알렉산드리아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 중 저 이집트의 유서 깊은 영광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내가 독서를 하며 한 가지 확신에 가까운 전제를 한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 ‘나’의 입장에 서 있을 것이라는 현실이었다. ‘나’는 누구였나? 관악기에 대해서는 도가 터서 소위 “피리만 불 수 있다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별 상관 않는 부류이다. 그런 ‘나’에게,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나’의 형이라는 이의 삶은 도통 이해될 수가 없다. 형의 삶은 시대를 분석하는 한편, 저자세와 소시민적 태도에 부단히 항거하는 사상적 삶이다. 그는 스스로를 ‘황제’라 부른다. 그러나 당당한 황제는 아니다.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았으니, 태양을 향해 오르다 보면 - 이상(李箱)의 「권태」 속 불나방처럼 - 정열이 그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었다. 남은 것은 황제로 지니고 있었던 영광. “궁전에서 나가라고 해도 나는 안 나가고 버틸 작정”이라니, 이거야 말로 대쪽의 정신이 아니던가.


  반면 ‘나’는 사상을 미워한다. 정(正)이냐 불(不)이냐의 판단이란 인간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기에, 보다 솔직한 인간이라면 “내겐 의견이 없다.”고 토로하는 부류여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형의 삶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도 갖는다. “세상과 충돌했을 때 상하는 건 세상이 아니고 그 사상을 지닌 사람”이라는 한숨 섞인 고백에서는 형에게 보낸 안타까운 마음이 드러난다.


  죄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형의 죄에 대해 나는 빨리 속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소설의 배경(1965년 발표)을 고려하면 그 죄라는 것이 무엇일지 독자들은 대강 짐작할 것이다. 그 상세한 이유가 드러나 있는데, 한마디로 ‘종북(從北)’의 뉘앙스인 것이었다. ‘나’는 사상에 대해 일종의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형은 분명 잘못했고, 시인만 하면 될 것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반면 형은 그의 죄를 “세상에 나지 않아야 할 사람으로 태어난 죄”라고 이해한다. 그는 여전히 궁전 속에 있다. 나는 ‘나’와 형을 각각 즉자적/대자적 인물로 분석해보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나’에게 반성이 없을까.


  줄거리로 돌아가 본다. 프랑스 선원 - 이병주는 프랑스어에 능통했다 - 인 말셀 가브리엘을 만나 ‘프린스 김’이라 불리게 된 ‘나’는 알렉산드리아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소위 ‘대사건’이 터지는 곳이다. 무대와 사건을 말하기 전에 잠시 ‘나’의 성향에 대해 조금의 고찰이 필요할 듯하다. 말셀과 나눈 대화가 ‘나’의 사람됨을 또 한 번 드러내기 때문이다. 말셀의 말 중에는 선원생활이 여자와의 관계에 도움을 준다며 ‘생명의 앙양(昻揚 : 정신이나 사기 따위를 드높이고 북돋움)’과 ‘생명의 파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무슨 말일까? (지극히 남성이 중심이 된 저급한 대화이긴 하지만 ‘여자’를 욕망에의 상징으로 놓고 보는 배려가 다소간 요구된다고 하겠다.)


  말셀이 들려준 ‘생명의 앙양’이란 이런 것이다. 그는 여자를 가장 좋아한다. ‘나’가 그럼 선원 일을 하지 말고 여자만 파지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말셀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여자만 파는 것은 ‘생명의 파멸’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나’를 애송이라고 부른다. 바다에 나가 정기를 받으며 여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생기가 충족된 몸으로 육지에서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독서를 멈추고 ‘앙양’을 “원근의 능동적 조절과 그를 기초로 추구”로, ‘파멸’을 “일단의 부단한 일차원적 추구”로 이해하면서 나의 삶에도 명백히 대입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냐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말 그대로의 육욕이든, 아니면 성공에 대한 욕구이든, 무슨 욕구이든 간에. 얼마간 나는 책을 못 읽었다.


  여하튼 다시 돌아와 내가 본 ‘나’의 성격이란 스스로를 방어하는데 몰두하는 경향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병주가 ‘암묵의 의사’라 표현한 것은 다름 아닌 알렉산드리아의 퇴폐적인 육욕일 것인데, 다양한 형태의 육욕들로부터 번롱당하기 싫어한다는 ‘나’의 고백은 앙양이든 파멸이든 그러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소위 아마추어 수준의 금욕주의를 상상케 하는 것이다. 실제 이병주가 그린 알렉산드리아는 그로테스크한 성(性)의 도시, 관능의 바다 속 그 자체이다. 사상에 대해서도 의견이 없었으니, 욕(慾)에 대해서도 함구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로지 그는 ‘피리’만을 부는 사람이었고, 그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나’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마지막까지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 ‘나’는 카바레 안드로메다의 여왕 사라 엔젤을 만난다. 그녀는 흡사 레비나스가 <시간과 타자>에서 말한 미래로서의 여성성을 연상케 했다. 육욕으로부터 신성에 이르기까지, 동양철학적 표현대로라면 그야말로 ‘지극(至極)’할 수 없는 존재. 그런 그녀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고, ‘나’는 훌륭한 플롯 연주실력 덕분에 그녀와 가까워져 그것을 알게 된다. 사라는 게르니카가 고향이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아는 이라면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꿈꾸는 ‘복수’라는 것의 정체도.


  ‘나’는 사라에게 형이 보낸 일곱 통의 편지를 보여준다. 형의 세계관이 농축되어 있는 편지들이라 나는 집중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편지에서는 앞서 말한 이카로스의 날개가 등장한다. 그런데 두 번째 편지로 형은 그래도 황제의 고적한 품위는 지킬 수밖에 없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는 다음 편지에 나온다. “강력한 유혹력 없는 금지란 무의미하다.”라면서 그는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금지규정이 있어 지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요컨대 자유가 우리를 지치게 한다는 논조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랬으면 하는 뉘앙스를 내비치지만 그는 항거정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곳에 나가 짐을 지고 가는 이의 공간적 자유를 누릴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이다.


  다섯 번째 편지에는 “권력은 보잘것없는 책략”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지배계급의 먹이”라는 표현도 있다. 상부에 대한 경멸적 시선이 확인가능하다. 그러한 상부는 여섯 번째 편지에서 애도한 케네디의 “선명하고 진취성 있는 비전”과 대조된다. 그러다가 ‘나’가 사라에게 읽어준 마지막 편지에서 형의 목소리가 갑자기 수그러든다. ‘나’는 검열을 통과해야 편지가 발송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사라에게 형은 여전히 항거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들려준다. 하지만 형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그것은 소설 말미에서 확인된다.


  이제 그가 등장한다. 한스 셀러. 이 독일인의 등장에서부터 소설은 빠르게 진행된다. 그에게도 비밀이 있다. 동생 요한이 유태인 소년을 숨겨줬다는 죄목 때문에 게슈타포 앞잡이인 ‘엔드레드’라는 독일인에게 고문을 당하다가 두개골이 함몰되어 죽은 것이었다. 한스와 요한의 어머니는 한스에게 복수의 유언을 남겼고, 한스는 유럽에서부터 일본 등지를 떠돌면서 엔드레드를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곧 독자들은 이후의 스토리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병주는 한스와 사라를 이어준다. ‘나’가 그 중재자가 되었고, 그리하여 ‘나’는 한스와 사라가 계획한 대사건의 중심부로 휘말려 들어간다. 그것은 엔드레드를 카바레 안드로메다의 15층 퀸즈룸으로 오게 해서 어떻게든 복수하겠다는 것이었다.


  계획은 성공한다. 그러나 나는 ‘성공’이라 표현하기가 조금 머뭇거려진다. 한스는 총을 꺼내든 엔드레드에게 정당방위를 하고자 테이블을 엎었고, 그 바람에 엔드레드는 뒤로 나자빠졌다. 그 순간 후두부를 땅에 세게 박아 죽었고, 그런 엔드레드의 어깨를 사라의 총에서 발포된 총탄이 뚫고 지나갔다. 한스는 살의를 가졌다고 진술했고, 사라는 한스에게는 살의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건 복수였을까? 이건 살인이었을까? 알렉산드리아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 부분에 이어 이병주는 곧바로 형의 또 다른 편지 한 통을 보여준다. 그것은 13인이 들어가면 12인만 나온다는 문, 즉 사형장으로 통하는 문에 대한 형의 이야기이다. 편지의 내용은 분명하다.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배려’사형제 - 사형수에게 부모가 있다면 사형수는 그 부모가 자연사 한 후에 사형당해야 한다는 것 - 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면서 사형폐지론의 오래된 역사를 언급하며 근대형법학의 선구자인 체사레 베카리아 - 유럽의 법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킨 인물 - 의 이름을 적는다. 출옥하면 사형폐지운동을 하겠다는 의사도 분명하게 들어난다.


  그리고 ‘예수’, ‘부활’, ‘마리아’ 등 앞선 편지에서 드러난 생각의 상징이 다음 편지에 이어지며 니체를 등장시킨다. 니체로부터 그는 “항거하라!”라는 이 시대의 발칙한 슬로건을 도출한다. 형의 편지가 알렉산드리아 일심 판결에 앞서 이 소설에 삽입된 것은 이병주의 다분한 의도이기도 하겠거니와 그 의미가 특별하다.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들을 열광케 한 것은 사라와 한스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라는 자신의 발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행위였으며, 모든 계획은 자신이 세웠고, 한스에게는 살의도, 살인행위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한스는 사라의 총격으로는 엔드레드가 죽지 않았고, 자신에게 살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을 움직였다. ‘이 얼마나 위대한 희생정신이란 말인가!’ 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알렉산드리아 데일리 미러》의 사설과 《알렉산드리아 가제트》의 사설은 각각 의미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복수는 깨어 있는 의식”이지만 악순환이 우려되니 용납할 수는 없다면서 알렉산드리아 법정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참작될 만한 동기가 있으니 고려하라는 중립적인 어조로 마무리된다. 후자의 사설은 훨씬 급진적이고 열정적이다. 법률이 징치하지 못하는 개인의 원한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 그 글은 테러가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드리아 데일리 미러》에서 ‘딜레마’라 표현한 그것은 테러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검사의 논고, 변호인 A와 변호인 B의 변론이 이어진다. 이들의 논고와 변론은 우리가 예상하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이미 이병주의 의도 안에 들어와 있게 되었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검사는 참작해서 징역 1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구한다. 시 사직당국이 나치, 게슈타포, 게르니카 등 국제 사건에 관여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것이다. 반면, 변호인 A는 거의 《알렉산드리아 가제트》의 어조로 “불법이지만 정당한 일”의 동기를 고려해야 한다고 변호한다. 변호인 B는 A의 열정적 변호에 이어 구체적 분석을 내놓아 한스의 행위는 정당방위이며 사라는 시체에게 총을 쏜 것이라 둘은 무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언급한다.


  이후 판결은 내려졌다. 한 달 이내로 알렉산드리아에서 퇴거. 그러나 판결문의 마지막 문장은 독자들에게 큰 질문거리를 준다.
  “이 결정은 판결이 아니므로 판결로써 취급하지 않는다.”


  사라와 한스는 뉴질랜드 인근의 섬을 사서 그곳에서 살겠다며 ‘나’와 형을 초대한다. 그러나 형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읽어줄 때, 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형은 편지에서 지쳐가고 있었다. 형의 이 인용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알렉산드리아의 법과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 형을 가둔 법’은 얼마나 다른가 말이다.


  “희망은 무한하다. 그러나 나는 글러먹었다.” -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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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0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31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11-02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병주를 읽는 탕기님 멋져요! 국문학도의 국문학 리뷰의 정수 같은데요. 5년 전인가 이병주 전집읽기 시도했었는데 반갑기도 하고.. 물론 다 못읽었고 지금은 읽은 것마저도 기억에 없지만.. 저는 그때 엄청 장편들만 봤는데.. 이 분 소설 보면 자꾸 카잔차키스 생각이 나요. 너무 많고 너무 방대하고 너무 다양해서요.

재밌을 것 같아서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요^^ (근데 담으려는데 책이 없;;)

탕기 2012-11-02 21:12   좋아요 0 | URL
저는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셔서, 이번 방학 때에 조금씩 <관부연락선(1,2권)> 읽어보려구요. 사실 방학 이용해서 카뮈/위화 읽기 하려고 했는데, 교수님 왈 "일단 읽어보세요. 아마 손을 놓치 못할 거에요."라고 하셔서요.^^

나름 방학독서계획 세워놨는데, 벌써 기대되고 설레요.ㅠㅠ
모옌도 한 번 읽어보고 싶고, <호빗> 개봉 겸 톨킨 3부작(반지제왕,호빗,후린의 아이들) 리뷰도 쓰고 싶고,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도 다시 공부해보고 싶고, J.S.밀 <여성의 종속>, 에리히 프롬... 빨리 학기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ㅠ

아이리시스 2012-11-08 20:13   좋아요 0 | URL
탕기님 호빗 예전부터 좋아했잖아요, 그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좋아한 게 아니라 호빗이 종종 등장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기억하나봐요. 빨리 학기가 끝났으면 저도 좋겠습니다.ㅠ

지금 모옌 지르고 있어요!
 

2012.10.07

 

  김경수 교수님의 '현대소설론' 과제로 쓴 독후감을 옮겨놓는다. 본래 각주들이 있었으나 생략한다. 형식이 없는 독후감이라 흐름 없이 자유롭게 썼다. 문단의 문장들 속에 독립적으로 큰 따옴표 처리 되어 있는 표현들은 모두 이상(李箱)의 것이다.

 

 

 


  독서는 분명 자기체험이리라―

 

  나는 제대(除隊)하고 2년간 휴학하여 미술사를 공부하였다. 대학생활의 2년차까지 나에게는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일찍 이곳에 합격하여 주변의 부러움을 샀고, 나는 그 부러움을 자부심으로 삼았으나, 재능을 키워볼 생각보다는 날마다 커져가는 지루함과 불안을 못 견뎌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인데, 나에게도 군대는 각성의 장소였다. 나만이 앓고 있던 고통으로부터 나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을 정도로, 그곳은 잊고 싶을 만큼의 강한 고통들을 나에게 쏟아 부었다. 더 이상 내 안의 고통은 통각을 자극하지 못했다. 지난 날 동안 내가 겪어왔던 고통의 크기가 군대에서는 왜소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보겠다는 결심으로 나는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고, 그 땅에 난삽하게나마 여러 발자국들을 찍어놓았다. 그 무렵의 경험들은 복학한 뒤 얻게 된 모든 종류의 지식과 이해들을 미술과 연결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렬했고, 하나의 유기체가 되었다.


  부족하게나마 그것을 묘사해보자면, 그건 내게 ‘사유의 전초기지’이다.

 

  이상(李箱)의 「권태」를 읽으며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단어와 문장들의 틈새에서 자주 멈춰 섰다. 수시로 떠오르던 여러 잡된 생각들이 미술을 공부하던 때로 하나 둘 소급된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이 동인일까? 주관적인 고통과 희열들로 도배된 나의 옛 기억으로 이상의 사유가 모아졌다. 데칼코마니처럼. 그렇게 「권태」를 읽고, - 대부분의 시간을 눈살 찌푸린 채로 - 또 고쳐 읽으면서 나는 답을 찾고자 했다. 아니면 새벽의 촉촉한 감수성을 팬으로 삼아 답을 써내려가고자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며칠이고 나는 텅 빈 이면지 위에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


  선인(先人)들이 당부하는 것처럼 성급한 사람에게는 답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던가. 추석 내내 나는 「권태」를 생각하고자 했다. 성묘를 할 때, 친척들과 추석씨름장사대회를 볼 때, 작은아버지 댁의 마당에서 잘 익은 포도를 딸 때, ‘쌀나무’를 보여주시겠다는 어르신의 농에 속아 넘어갔다가 그 ‘나무’란 게 다름 아닌 벼라는 것을 알고 사촌동생과 자지러지게 웃었을 때…… 나의 마음이 이렇게 바쁠 때가 아니라면 나는 언제라도 이상을 생각할 마음준비가 되어 있었다. 도로에 체증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뻔 했으나, 예외라고 할 만큼 차는 막히지 않았다. 결국 추석의 「권태」는 없었다.


  다른 공부들에 대한 생각과 겹치거나 그것들로부터 밀릴 것을 대비하고자 나는 「권태」 출력물을 책상 위에 꺼내뒀다. 이상의 단편 네 작품을 읽으면서 나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저 태도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여러 충격들에 히스테리적으로 반응하는 저 유약함! 그것은 분명 「권태」를 쓴 이상 본인의 것이었다. 나는 대체 왜 그것이 나에게, 아니 나의 경험에게 들어맞는 것 같은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나의 방에는 여러 새벽 기차들이 보이지 않는 선로를 따라, 들리지도 않을 굉음을 내며 지나갔을 것이다. 도무지 감이 없는 날의 나는 그 육중한 움직임에 무참히 짓밟혔을 것이다. 나는 그 기차들을 매번 놓치다가 문득 바라본 책장에 어떤 역(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진기한 현상을 목도”했다.


  역의 이름은 『뒤러』였다. 두 권의 책이다. 도상해석학자인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끝에 내놓은 역작. 나는 미술사 공부를 할 적에 작품을 세밀하게 뜯어보는 재미에 빠져 파노프스키와 뒤러에게 많은 애정을 줬었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나는 그의 두 작품을 오래토록 들여다본 일이 있다. 하나는 유화(油畵)인데, 《자화상(Selbstporträt)》이라는 제목의, 미술사학자들이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이다. 스물아홉의 그가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와 유사하게 그린 유화. 이 자화상은 그의 여러 자화상들 중 단연 압도적인 위용을 갖췄다.

 

 

 

 

 

 


  다른 하나는 이상의 「권태」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도상해석학의 대표 사례로 자주 등장하는 《멜랑콜리아 Ⅰ(Melencolia I)》이다. 이 작품은 저 자화상을 그린 지 14년 후에 그린 판화이다. 여러 상징적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오래토록 학자들의 상상력을 통해 조명되어 온 작품이다. 세밀한 분석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이 제목의 뜻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울과 비애. 이 사전적 의미들로 인해 나는 지루한 나날들에 파묻혀, 거울에 갇혔던 나 스스로를 일종의 미이라 보듯 했던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뒤러의 이 작품을 서랍 속에서 꺼내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문자 그대로의 제목을 가진 이상의 「권태」에서도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고통이 연상되기 시작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뒤돌아 생각해본 ‘권태’란 지금은 미약한 메피스토펠레스 따위로 전락했다. 그의 속삭임은 더 이상 나를 도발하지 못한다. 도발된 내가 있었다면 그건 과거의 일이다.


  나는 “하류(下流)로 향하여 가고 있는” 송사리들, 그 군중들의 한 일원이 되어 과거보다는 권태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니 「권태」는 나를 뒤로 밀고 밀어서 나에게 한꺼번에 두 개의 시공간을 체험하게 했다.

 

 

*    *    *

 

 

  이상의 시선은 사위의 단조로운 녹색 벌판으로부터 서서히 그 자신에게로 집약된다. 그리고 “할 일이 없다.”는 그의 시선은 ‘최 서방’을 시작으로 세밀하게 분산되기 시작한다. 이욕(利慾)이 밉다며 최 서방에게서 떠난 이상의 눈길은 개울가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사위를 질리도록 녹색으로 만들어버린 조물주의 몰취미를 한탄하며 앞선 ‘큰 시선’을 저 개울가로 뭉쳐버린다. 권태는 그 뭉쳐진 시선을 터뜨려 “지구의 여백”이라는 장자(莊子)적 스케일로 커진다. 그 여백을 모르니 이상에게 농민은 천치이다.


  나의 우울과 비애를 감히 이상의 「권태」 속 권태에 비견하고자 노력하면서 내가 우선 흥미롭게 여긴 건 그의 시선이었다. 그것은 단 하나의 끊어짐도 없어 흡사 권태의 고저(高低) 없는 라인과 같은 의식이었다.


  돌발적인 사유는 고작 한 번에 그친다. 군중 송사리 떼의 역투. 하지만 그건 ‘소낙비’였다. 그가 느낀 권태로움의 총량은 한 차례의 각성을 무참히 내리누르고도 남을 만큼 무게가 나갔기 때문이다. 전신주가 무슨 소용이겠냐며 농민들의 본능적 삶을 불행하다 평가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닭보다도 못난 벙어리 개들, 관례대로 세수를 마친 이상을 따라하는 ‘원숭이’ 촌동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권태의 망을 통과한다. 애꿎게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눈은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니, 이상은 「권태」의 전편을 아우르는 권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송사리 군중의 위대한 탈출은 아주 잠시 나를 설레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상의 ‘실패’로부터 일말의 희망을 건져낼 수 있다면 강태공들은 저 호수에서 ‘반복’이라는 대어를 낚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 서방에 이어 이상의 시선은 개울가로 갔었다. 그곳에서 그는 ‘초록’을 경멸했다. 그리고 조물주의 몰취미도 경멸했다. 그렇게 이어지던 이상의 의식은 “촌동들을 원숭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선언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던지고, 그를 개울가로 향하게 한다. 그의 진득한 관찰은 A에서 ~A(not A)를 발견하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다.


  미천한 경험이지만 나는 동전의 양면을 강조하는 선인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이 들어갊에 따라 서서히 깨닫고 있다. 30대가 되면 그 깨달음은 더욱 간절해지지 않을까. 만물에는 앞과 뒤가 있다는 어느 교수의 역설을, 나는 이번 학기에 한 철학 과목을 수강하며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찡하게 울리던 코끝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그건 사소한 발견이다. 하지만 생(生)을 감지하는 시세포들의 상처가 많아질수록 나는 사소함의 탈을 쓴 위대한 사물의 형상들을 분명히 알아가는 듯하다. 개울가에 쪼그려 앉은 이상의 모습은 훗날 나에게 또 어떤 깨달음을 줄지, 이 작품은 나에게 사뭇 기대를 선물했다.

 

  사방을 관찰하던 이상의 시선이 순간 대상에게 이입된 때가 이 단편에 한 번 있었다. 그가 어떻게 심리했는지, 자리를 빌려 옮겨본다.


  “이 사람의 얼굴이 왜 이리 창백하냐 아마 병인인가 보다 내 생명에 위해를 가하려는 거나 아닌지 나는 조심해야 되지.”


  《멜랑콜리아 Ⅰ》의 건장한 여인보다 이상은 훨씬 왜소했을 것이다. 유정(裕貞)과 함께 정사(情死)를 논의할 정도였으니 나는 그의 앙상한 체격을 떠올리며 살짝 눈을 찌푸려본다. 소도, 아니 이상도 스스로를 ‘병인(病人)’이라 불렀다. 이상은 소에게 위해를 가할 의식도, 동기도, 도구도, 방법도 없다. 소의 반추와 함께 이상의 권태 역시 이어진다. 그러나 강화되어 오던 권태가 한 차례 꺾이는데, 그건 순전히 소가 큰 만큼 소의 권태도 클 것이라는 불확실한 위안 때문이었다. 관찰과 이입의 경계가 무너졌다.


  흥미로웠다. 우주적 시각으로까지 퍼져나갔던 이상의 권태가 왜 소를 보고 나서 잠시 주춤해진 것일까? 문맥으로만 보더라도 그는 일말의 평온을 느꼈을 것이다. “고독을 겸손”한다는 말은 이전의 태도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나는 까닭을 추정하다가 문득 강원도 횡성에서 보았던 두 마리의 소를 떠올렸다. 지금은 가지 않지만 외조부의 산소가 있는, 어머니에게는 큰집 되는 시골집에 그 소들이 있었다. 외양간의 고약한 냄새를 기억하는 만큼 나는 소들의 순하고 깊은 눈망울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시속(時速)으로는 측정이 될까 궁금해질 정도로 느렸던 그들의 반추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것 때문은 아닐까? 지루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별 이욕도 없고, 흉내도 안 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 이상의 생각대로라면 - 본능도 무의미로 만들어버리는 소의 행동을 목격한 것 때문은 아닐까? 권태 위의 권태를 이상은 목격한 것이리라. 하지만 바깥의 눈으로 보자면 소의 행동은 지극히 평온하다. 권태와 평온의 역설적인 상황은 이상의 눈에도 비춰졌을 것이다. 권태를 애무하는 또 다른 권태.


  이상의 마음은 조금이나마 움직였을 것이다. 적발동부(赤髮銅斧) 반라군(半裸群)들의 의미 없는 놀이, 정말 재미도 없는 놀이를 보며 그는 눈물을 흘린 것이다. 권태로부터 비집고 나온 연민의 정이 지구 상 태초의 인간처럼 자각을 시작한다. 가난! 그것은 놀이조차 권태롭게 만든다. 이 점에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틀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놀이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놀고 있는데(작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생활의 즉각적인 필요를 초월하는 것으로서 그 행동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권태」의 이상은 “최후의 창작 유희”에서마저 ‘나오지 않는 대변’ 탓에, 그 지독한 가난 탓에 낙오자가 되어버린 한 실패한 아이를 굽어보다가 조물주에게 기도한다. 기도는 오히려 항변에 가깝다. 풍경과 완구를 달라는 외침에서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구호물자를 기다리는 아프리카 빈민들과 “Give me chocolate!”을 외쳤다던 전후(戰後) 우리나라의 촌동들을 연상하며 가슴이 적적해짐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겪지 못한 가난이었다. 겪지 못한 것들을 대하는 죄송스러움도 겹쳐 나는 어떤 교시(敎示)의 회초리를 맞은 듯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아파트에는 ‘가난’이라는 글귀가 전혀 새겨져 있지 않다.

 

 

*    *    *

 

 

  하루가 저문다. 이 글을 주로 새벽에 읽었기에 해저(海底)와 같은 밤이 쏟아진 이 단편의 마지막 언저리에서 나는 더욱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새벽은 배고픔의 고비를 만끽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때가 아닌가. 이상은 “관성의 법칙처럼 놓여 있”는 반찬으로 저녁을 마쳤으나, 나는 주로 굶은 채로 그의 생각을 읽었다.


  쏟아지는 별이 있다기에 80년은 더 지났을 이 세상의 별은 그 때와 같을까 하는 생각으로 창문을 열어 보기도 했으나, 15도 안팎으로 뚝 떨어진 새벽의 찬 공기 위로 하늘은 조금 깎인 보름달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인공위성 몇 개가 금성인 양 위선적으로 반짝일 뿐이었다.


  갑작스레 방충망으로 큰 나방 한 마리가 달려들다 몇 번 몸을 부대끼더니 힘겹게 착지하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권태로부터 탈출하였다가 다시 「권태」속으로 들어갔다. 나방은 내가 얼마 전에 테이프로 막아놓은 방충망 구멍 근처를 살금살금 기어 나의 얼굴 부근까지 왔다.


  저 어두운 아파트 공원보다야 새벽을 밝히고 있는 나의 방이 훨씬 빛났으니, 나방의 정열은 초조히 이리로 날아오도록 그의 본능을 부추겼을 것이다. 내가 이 방충망 구멍의 테이프를 살짝 들어낸다면 운 좋게도 방 안에 들어와 저 강한 스탠드 불빛이나 형광등에 수 차례 뛰어들었다가 책상 위나 전등 받침대 어디서든 죽은 채 발견되리라. 이상은 그 무모한 정열이라도 탐하였다. 권태가 암흑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열은 내일을 죽게 하고, 권태는 내일을 살게 한다. 혹시 이런 의미는 아닐까. 죽도록 살아보자는 이 시대의 ‘EPIGRAM’이 청춘의 귀감으로 널리 설파된 때이기에 나는 저 역설을 수첩이든 스마트폰의 바탕화면이든, 어디든 적어놓고 수시로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생명을 보존해준다던 저 권태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꿈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권태는 욕망하는 이 시대의 삶보다 뒤쳐진 병증인 양 취급된다.


  호주의 신화학자 피터 투이(Peter Toohey)는 권태의 의미를 격상시키기 위해 그것을 예술적 창조와 연결시켰으나, 나는 많은 이들이 권태보다는 열정을 선택하리라고 짐작한다. 그것이 차라리 쉽다. 이 시대의 사고도 이상의 표현처럼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인 날들을 그리도 두려워하지 않던가.

 

  권태 앞에 성숙한 인간은 없다.


  프레스코(Fresco)화는 우선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그 위에 안료로 그리는 오래된 회화(繪畵)기법이다. 우리의 삶도 ‘권태’라는 회반죽 위에 그 모습을 가리기 위해 그려진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가 들어 말라비틀어진 작품들 사이로 그 반죽 본연의 추한 자태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쩍쩍 갈라진 《최후의 만찬(Ultima Cena)》에 남은 것은 생동하는 색으로부터 멀어진, 보이지 않는 아우라 밖에 없다. 나는 그 색을 ‘만성적 권태’라는 친숙하지 않은 전문용어로 불러본다.


  성숙하다는 자부심도 권태를 마주하는 순간 사라질 것이다. 그리하여 이상의 비관은 솔직하다. 그 솔직함이 ‘권태’라는 문자, 《멜랑콜리아 Ⅰ》이라는 작품 사이를 후비고 들어와 나의 고통을 게워 “그 시금털털한 반소화물의 미각을 역설적으로 향락”하게 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많은 체험들이 있었으나, 살아남은 것은 권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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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샘 2013-04-1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정말 잘쓰시네요..와..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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