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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ㅣ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평점 :
두 여성의 애증을 그린 나폴리 4부작.
사실 처음엔 여성소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잔잔한 성장소설 정도로만 생각하고 큰 기대는 안 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금세 푹 빠져들면서 중간에 손에서 놓기 힘들었어요. 강렬하고도 자극적인 문체도 아니고, 스펙터클한 스릴감도 없으면서 어쩜 이렇게 마음을 사로잡는지. 책장을 넘길수록 엘레나 페란테 작가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선 생소한 작가이지만, 타임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도 꼽힐 정도로 엘레나 페란테 작가의 인지도는 높더라고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어 미스터리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자의 명성을 통한 권위보다는 작품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는 엘레나 페란테의 말에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인정!
나폴리 4부작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편은 릴라와 레누 두 여성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을 다룹니다.
1권은 195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 이탈리아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이탈리아 마피아 집안의 시초를 보는듯한 느낌도 들었어요. 여성이 주인공이고 그녀들의 삶을 그린 이야기이면서도 한편으론 집안끼리의 앙숙 관계, 남자들의 허세와 살벌한 이권 다툼 등이 드러나면서 흥미를 더하네요.
소설 속 화자는 릴라의 60년 지기 친구 레누.
두 여자의 우정과 애증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각자의 자아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레누의 기억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듣게 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릴라.
예전부터 릴라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고 했다는군요.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건 바로 소설 속 '나'입니다. 신분을 바꾸는 것도, 자살을 생각한 것도 아닌 세포 하나하나가 뿔뿔이 흩어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란 말 그대로 증발을 원했던 릴라. 그런 그녀가 사라졌다는 그녀의 아들 전화를 받자 '나'는 누가 이기는지 해 보자며 그녀와의 추억을 최대한 상세히 써 내려가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못된 아이, 밉상스러운 아이였던 릴라.
하지만 언어에 천재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하고, 모든 것에서 너무나 뛰어나고 강한 아이였던 릴라. 그런 릴라를 기준으로 삼고 따라다닌 '나'는 릴라를 향한 질투와 증오도 있지만 한편으론 미묘한 매력에 끌리게 됩니다. '나'는 릴라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내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사고방식이 변하게 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그녀들의 성장을 속속들이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엔 미처 몰랐던 것도 지금에 와서야 옛일을 되살려보며 그때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기도 하고요.
코흘리개 아이들이 사춘기를 거치며 사랑과 연애를 하는 걸 보니 부모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어린 시절부터 잘 알아 온 친구처럼 어느새 그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어 공감하기도 하고요.
릴라의 '경계의 해체' 에피소드는 특히 기억에 남아요.
그녀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모습은 없어지고 본모습을 드러내는 상황들을 겪으며 뭔가가 분해되는 듯한 경험을 한 릴라. 내면의 변화를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릴라의 결혼으로 이제 그녀와 정신적으로 헤어지는 느낌을 받는 '나'.
지지대이자 자극제였던 둘의 관계는 릴라의 결혼으로 어떻게 될지, 나폴리 4부작의 2권이 기다려집니다. 이야기 처음에서 릴라가 왜 존재의 증발을 원했는지, 그녀의 결혼 이후의 삶이 무척 궁금하네요.
특히 1권 마지막 장면에서 반전이 나와서 너무 놀랐어요. 드라마 끝날 때 매번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인 부분에서 딱 끊는 신공을 책에서 만날 줄이야. 얼른 완결까지 한 번에 다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의아하게 생각한 게 있는데... 이런 주제가 내 취향저격이라고 말하지는 못할만한 주제였고 그저 시시껄렁할 수도 있는 유년기, 사춘기 이야기인데도 이상하게 매료되더라고요.
그 이유를 릴라의 편지를 받은 '나'의 마음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릴라의 편지는 본질적으로 깔끔하면서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 같다고 '나'는 고백하는데, 엘레나 페란테 작가의 이 소설이 바로 딱 그렇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자아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유년기와 사춘기를 다룬 <나의 눈부신 친구>.
당시 여성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경악할만한 장면도 있고, 두 여자의 기나긴 삶을 통해 온갖 군상을 다 접하기도 하네요.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 책 속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