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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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녀, 김치녀, 맘충. 처음 이 말들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같은 여성 입장에서도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태에 저런 소리 들을만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안일하게 바라봤습니다.

 

저 말들은 모두 혐오표현입니다. 남성을 대상으로 했을 때와 여성을 대상으로 했을 때 표현을 넘어 차별과 폭력으로 가는 파급력이 확연히 다르다는 걸 <말이 칼이 될 때>를 읽으며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남혐과 여혐이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는 기제가 다르다는 것을요.

 

2012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 제안 보고서>로 혐오표현과 인연 맺은 법학자 홍성수 교수의 책 <말이 칼이 될 때>는 단순히 비판, 의견으로 제시한 말이 차별의 현실과 만날 때 표현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정규직, 남성 노동자, 비장애인, 이성애자로 한국의 다수자에 속한 저자가 혐오표현이란 무엇인지, 왜 문제 되는지, 혐오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자고 합니다.

 

 

 

혐오표현이란 소수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다양한 수위의 차별, 적대, 배제, 폭력의 말들을 포괄적으로 담았습니다. 누군가는 그 정도 가지고 난리 법석이냐며 개인의 특수한 고통일 뿐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소수자 당사자와 제3자의 입장 차이는 크다고 합니다.

 

차별적 괴롭힘, 편견 조장, 모욕, 증오선동과 같은 혐오표현은 특정 집단의 부정적인 측면을 고정관념화합니다. 표현일 뿐이었겠지만 편견, 차별을 확산하고 조장하게 됩니다. 역사적, 사회적으로 차별받아왔기에 혐오표현의 파괴력과 파급력은 가벼이 여길 게 아니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실체 있는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는 거죠.

 

 

 

편견은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배경을 바탕으로 싹틉니다. 소수자들을 향한 편견을 밖으로 드러내면 혐오표현이 되는 겁니다. <말이 칼이 될 때>에서 소개한 혐오의 피라미드를 보면 편견이 혐오로, 혐오가 차별과 폭력으로 가는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총기난사 사건 대부분은 소수자들을 향한 증오범죄였고, 홀로코스트라는 집단학살 사례가 있습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으로 여성증오범죄에 대한 현재 우리의 사회적 인식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갑니다. 혐오표현으로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없게 된다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너도 나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존엄한 존재인데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인간 존엄, 평등을 파괴할 권리는 없습니다.

 

혐오표현을 규제하면 해결될까요. 한국 사회 내 혐오 논쟁 사례들을 소개하며 규제 카드가 능사는 아니라는 점도 짚어줍니다. 다만 혐오표현을 관용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비하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하기보다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효과에 무감했던 것을 반성해볼 필요가 있음을요.

 

 

 

다른 나라는 혐오표현과 관련해 어떤 처벌과 정책이 있을까요. 법에 의한 강제 규제와 사회에 의한 규제 모두 살펴봅니다. 법에 의한 강제 규제가 없다는 말이 곧 혐오할 자유가 보장되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표현 자체는 규율하지 않되, 선을 넘어가는 순간 강력 대처 전략은 필요합니다. 유럽의 법적 규제 한계와 부작용, 표현의 자유를 넓게 용인하는 미국에서의 다양한 사회적 기제들을 소개해 혐오표현 규제는 옳다 그르다 식의 이분법으로 볼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혐오표현에 대처하려면 개인, 사회, 국가적 차원의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혐오표현은 정치, 사회, 경제적 배경이 깔려 있기에 그동안 사회적 관행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것들을 없애야 합니다. 뿌리박힌 차별 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한순간에 되는 일이 아니기에 길게 바라보고 사회의 내성을 길러나가야 합니다.

 

 

 

정치인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공인의 발언 사례들을 통해 연대의 실천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도 볼 수 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시절 성소수자들을 일일이 호명한 반기문 연설문, 일본 혐한 시위대에 맞선 카운터 운동, 서울대 성소수자 현수막 사건, 메갈리아의 미러링 등은 혐오주의자들의 선동에 역선동을 펼쳐 대처한 사례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보면 표현의 자유 옹호와 동시에 혐오표현의 규제와 관련한 논쟁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말이 칼이 될 때>는 산으로 가고 있는 논의 방향에 키잡이 역할을 할만한 책입니다. 

 

편견, 차별, 혐오의 파급력이 폭발적인 SNS 시대에 평등과 공존의 가치를 묻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무감하게 생각했던 이들을 향한 일침이기도 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서의 교양을 함양할 수 있는 책입니다. 중학생 되는 우리 아들과 함께 읽는 책 <말이 칼이 될 때>. 차별과 혐오 관련해 읽어봐야겠다 싶은 책도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공존의 시대를 향한 첫 발걸음, 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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