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과 표지만으로 이미 심쿵한 독서가들 많을 테죠. 고서점, 고양이, 신비한 모험이 어우러진 판타지 소설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독서법에 관한 책만큼이나 소설에서 책의 의미를 건져올리는 방식 신선합니다. 라이트노블에 가깝고 머리 싸매며 묵직하게 끌고 나가는 방식은 아닙니다.

 

 

 

발밑에서 천장까지 묵직한 책장에 수많은 서적이 꽂혀 있고, 세월을 느끼게 하는 석유스토브, 머리 위에는 복고풍 램프가 부드러운 빛을 내는 고서점 분위기. 퀘퀘묵은 먼지 대신 앤티크한 분위기가 절로 떠올라 상상만으로도 편안해집니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고등학생 나쓰키 린타로.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홀로 남겨졌습니다. 생면부지였던 고모와 살게 되어 할아버지가 남긴 고서점은 폐점해야 할 상황입니다. 린타로에게 유일한 은식처이자 피난처인 고서점을 떠나야 한다니 먹먹한 마음뿐입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난 얼룩고양이. 나쓰키 서점의 2대인 린타로에게 인간의 말로 도움을 요청합니다. 어느 장소에 책이 많이 갇혀 있다며 갇혀 있는 책을 구해야 한다고 말이죠. 성격도 어둡고 서점에만 틀어박혀 있는 특별한 장점도 없는 린타로이지만, '책을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로 도와달라고 합니다. 책을 무사히 해방시키지 못한다면 빠져나갈 수 없는 미궁으로 말입니다.

 

얼룩고양이의 말에 홀려 고서점 뒤쪽 신비한 통로를 거쳐 간 미궁은 겉으론 풍요롭게 보이지만 알맹이는 없는 대저택입니다. 유리 책장에 모든 장르의 책을 분야에 상관없이 꽂아 혼돈스럽게만 보이는 데다가 책장에 자물쇠까지 채워뒀습니다. 게다가 모두 새 책으로 보일 만큼 깨끗한 서재입니다.

 

서재의 주인은 지식인입니다. 매우 매우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5만 권 이상의 장서를 소유한 그는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다시 읽지 않습니다. 세상에 읽을 책은 무척 많아서 한 번 읽기도 바쁜 거죠.

 

이 서재 주인의 마음을 돌려 갇힌 책을 해방시켜야 하는 린타로. 과연 어떤 말로 갇힌 책을 구할까요. 소설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에서는 책 속의 명글귀와 책과 관련한 명언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옵니다. 첫 번째 미궁에서 린타로는 니체의 말을 인용합니다. "책을 보기만 하는 학자는 결국 생각할 능력을 잃어버린다. 책을 보지 않을 때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책의 벽 안에 틀어박혀 무턱대고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줍니다.

 

 

 

두 번째 미궁은 전 세계의 책을 모아 싹둑싹둑 잘라버리는 남자를 만납니다. 효율적인 독서를 위해 빨리 읽기 위한 연구에 매달린 사람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워낙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으니 짧은 시간에 걸작을 만나게 해주려고 단 한 문장으로 된 줄거리만 뽑아내는 겁니다. 어차피 안 읽혀 사라지는 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으니 오히려 책을 구해주고 있는 거라는군요. 린타로는 가위질 당하는 책들을 어떻게 구해낼까요.

 

 

 

세 번째 미궁에서는 세계제일출판사 사장을 만납니다. 아주 골치 아픈 상대였습니다. 팔리는 책을 만든다는 원칙하에 매일 산더미처럼 책을 만들고 팔아치우며 책은 소모품으로만 취급합니다. 가벼운 것, 저렴한 것, 자극적인 것. 사람들은 삶에 지쳐 자극과 치유만을 원하는 책을 찾는 현실. 세상이 원하는 책과 가치 있는 책은 다르다는 출판사 사장의 말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린타로는 멋지게 반격에 나서 책을 구합니다.

 

이제 책 해방 임무는 끝난 줄 알았는데 며칠 뒤 또다시 미궁이 나타납니다. 두 번째 미궁부터 린타로와 함께 모험을 한 소중한 친구를 납치해 린타로를 끌어들이려는 네 번째 미궁의 주인공.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풀풀 나는군요. 미궁의 주인은 바로 책 그 자신입니다. 상처 입고 마음이 얼어붙은 책 그 자체의 존재를 만난 겁니다.

 

책은 린타로에게 묻습니다. 책의 힘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책으로 자신을 장식하고 가볍게 지식을 채운 뒤 쓰레기통에 버린다며 말이죠. 책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가진 책 대신 정보와 오락의 대상으로 전락한 책만 읽는 상황 때문에 말이죠.

 

걸작이라도 팔리지 않고, 읽히지 않으면 사라지는 법. 첫 번째 미궁부터 세 번째 미궁까지 기이한 설득력이 있는 궤변을 늘어놓은 그자들 역시 책의 위기를 깨닫고 나름의 방식으로 행동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는 '책에는 어떤 힘이 있길래 우리는 책을 읽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다양한 유형을 보여줌으로써 책을 진정 좋아한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린타로의 대답이 궁금하다면 읽어 보세요.

 

소설에서 인용, 언급한 책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로맹 롤랑 『매혹된 영혼』, 다자이 오사무 『달려라 메로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등 그야말로 책 이야기에 한껏 파묻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신비한 고양이와 함께 떠나는 책 모험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이 모험을 통해 쉽게 자포자기하던 린타로가 스스로 소박한 일상을 선택해 자신의 발로 걸어가는 모습까지 내면의 성장 여정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독서 토론하기에도 딱 좋은 소설인 것 같아요. 청소년 독서 권장 용도로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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