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 머니 리셋 - 비트코인에서 시작된 궁극의 통화, 미래를 삼키다
정구태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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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비트코인이 투자의 신화를 썼다면,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운명을 다시 쓰려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자산에 우호적인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 전문가들의 화두에는 연일 스테이블코인이 오르내립니다. 『스테이블코인: 머니 리셋』은 이 거대한 전환점을 빠르고 날카롭게 짚어낸 해설서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을 땐 그저 코인의 한 종류인 줄 알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하며 얼핏 들은 기억 정도뿐이었는데 저처럼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 덕분에 참 잘 읽은 책이다 싶더라고요.


블록체인·금융업·핀테크·디지털 자산 업계에서 오랫동안 현장을 누빈 전문가 정구태, 박혜진, 김가영, 이동기, 김호균 저자들은 기술 트렌드에 대한 해설을 넘어서 정치·경제·국제 관계 속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스테이블코인: 머니 리셋』은 스테이블코인의 기원에서부터 글로벌 경제 전쟁, 우리 일상 속 변화를 향한 전망까지 담아내고 있습니다. 머니 리셋의 현장을 만나보세요.


먼저 스테이블코인의 정의와 본질을 알려줍니다. 잊힌 국제통화 방코르(Bancor)를 불러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즈가 제안했지만 채택되지 못한 방코르의 개념이 디지털 시대에 스테이블코인으로 다시 부활한 셈이거든요. 화폐 안정성과 국제적 신뢰를 동시에 지향하는 구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암호화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에 그 가치를 고정시킴으로써, 블록체인의 탈중앙적이고 효율적인 특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격 변동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비트코인의 혁신성과 달러의 안정성을 결합한 새로운 상업용 디지털 화폐가 탄생한 겁니다.


주목할 점은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인프라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송금, 결제, 투자, 신용 창출 시스템을 디지털 환경에서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머니 리셋』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내놓은 스테이블코인 사례들이 펼쳐집니다. 메타의 리브라, 테더의 USDT, 서클의 USDC, 리플랩스의 RLUSD, 페이팔의 PYUSD 등은 저도 모르는 사이(?) 글로벌 금융 질서에 파문을 일으킨 주체들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기업들이 화폐 발행에 뛰어들고 있을까요?


미국 국채 시장의 새로운 게임체인저 역할에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준비금으로 보유한 미국 국채를 통해 막대한 이자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화폐 발행 그 자체가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미국 정치 지형과 기업의 결합도 흥미롭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스테이블코인 중심 정책 변화는 USDC와 서클에게 엄청난 수혜를 안겼다고 합니다. 규제 친화적 스탠스를 유지해온 서클은 법적 라이선스를 획득하며 미국의 공식 디지털 달러 대체재로 떠올랐습니다. 결국 화폐 발행은 국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제 민간 기업과 권력 정치가 함께 빚어내는 게임이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세계는 지금, 스테이블코인 전쟁 중이라고 합니다. 『스테이블코인: 머니 리셋』은 국가 간 경쟁 구도를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2025년 7월, 미국 연방 하원은 지니어스 법, 디지털 자산 명확화법, CBDC 금지법 등 이른바 '디지털 자산 3법'을 최종 통과시켰습니다. 미국이 얼마나 진지하게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유럽연합은 명확한 법적 질서를 통해 디지털 자산을 제도권에 편입하려 하고, 홍콩·일본·싱가포르는 라이선스 체계로 혁신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와 같은 제3세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접근성이 낮은 환경에서 생존 통화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이 실리콘밸리의 부자 놀이터라는 편견을 넘어, 실제로는 전 세계 빈곤층의 삶까지 파고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실이 놀라웠습니다.


중요한 갈등 축도 다룹니다. 민간 스테이블코인 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입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만 해도 경제도서에서 자주 등장한 용어가 CBDC였습니다. CBDC는 국가가 직접 발행하고 보증하여 안정성과 신뢰 측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지만, 정부의 통제 가능성과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안고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저자는 스테이블코인의 미래와 그에 따른 과제를 전망합니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기술의 혁신을 넘어 경제 질서와 신뢰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점에 서 있다"라고 말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은 현금을 대체하는 통화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중앙은행의 독점, 은행의 결제 시스템, 개인의 금융 습관까지 모두 재구성되는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상황도 흥미롭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한국은행조차 화폐의 대체재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를 넘어 이미 제도권 금융기관의 인식 속에 스테이블코인이 들어왔음을 보여줍니다.


스테이블코인 광풍, 이제 관망할 시간은 끝났습니다. 『스테이블코인: 머니 리셋』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히 가상화폐의 한 장르로 보는 시선을 넘어섭니다. 화폐사, 국제정치, 금융인프라, 개인의 소비 습관까지 뒤흔드는 전면적 혁신의 이름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경제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필수 역량입니다.


복잡한 기술적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경제적·정치적·사회적 함의까지 종합적으로 다뤄 현재 진행형인 금융 혁명을 이해하려면 읽어야 할 필수 가이드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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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자본 - 본질의 미학
김지수 지음 / 포르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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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각도 돈이 된다고요? 드라마 <궁>의 나비장 시리즈와 국민 아이템 마카롱 휴지케이스를 탄생시키고 북유럽 가구 트렌드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창의적 실험가이자 기업가 김지수 저자. 소비 행위에 대한 관점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트렌드를 좇는 자리가 아니라 본질을 선도하는 자리에 서왔던 그는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감각"이라고 말합니다. 트렌드 너머, 본질의 미학으로 빚는 경쟁력. 『감각 자본』이 말하는 취향의 힘을 만나보세요.


사소한 일상에 깃든 안목의 힘을 탐구합니다. 「디럭스와 럭셔리는 같은 말이다」 글에서는 소비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고안된 언어가 어떻게 문화적 정당성을 덧입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치풍조'란 계몽적 표어가 엄연히 존재했었던 시절.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거나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하는 '사치' 대신에 나온 단어가 바로 명품이었다며, 마케팅 언어의 탄생 배경을 파헤칩니다.





「오래된 물건 이야기」에서는 윤리적 설득 대신 개인의 체험적 이득이 변화를 만든다는 현실적 관점을 짚어줍니다. 환경 지키기에 대한 윤리적 호소나 강요를 따른다 해도 어지간해서는 습속화된 룰을 깨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제품 쓰기'의 이로움을 몸소 경험하여 큰 만족이 생겼다면 곧장 태도가 바뀐다는 겁니다. 도덕적 강요보다는 실제 경험을 통한 자연스러운 변화를 강조하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예술의 일상화와 영화를 폭넓게 즐기는 법을 통해서는 문화 소비가 어떻게 개인의 감각을 기르는지 소개합니다.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감각 자본의 축적 과정입니다.


문화 소비의 최전선에서 읽어내는 시대정신이 흥미진진합니다. 저자는 사람을 이해하는 통로로 문화적 취향을 주목합니다. 일본의 첨단 공학 사랑이 아톰과 건담 같은 문화 아이콘과 연결되어 있다는 해설이 흥미롭습니다.


하늘을 나는 아톰은 꿈의 에너지 원자력의 상징이었고 국가 경제 발전의 정신적 아이콘이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기술 혁신을 바탕으로 한 첨단 기술의 개발과 상업화를 통해 일본의 경제 성장을 견인합니다. 이처럼 감각은 곧 시대를 읽는 언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감각 자본』은 AI, 플랫폼, K-팝 등 현재와 내일의 경계를 읽어내는 법을 탐색합니다. 기술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미래는 데이터가 아니라 맥락을 읽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인간과 문화의 서사를 꿰뚫어보는 감각의 필요성을 짚어줍니다.


창작과 몰락 사이의 미묘한 균형, 그리고 문화적 허상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요즘 유행어와 밈의 소비 방식이 진정성보다 빠른 소모를 향한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허상의 시대이기에 현대 사회의 가짜 트렌드와 진짜 가치를 구분하는 안목의 필요성도 역설합니다.


동시에 저자가 서평을 남기는 이유에서는 기록의 힘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또 하나의 방식임을 들려줍니다.


이 외에도 공간과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 독특한 시선, 음주 문화를 통해 개인의 가치관과 사회적 배경을 읽어내는 법, 미각과 후각을 통한 문화적 체험의 깊이 등 일상적인 소재에서 깊이 있는 통찰을 끌어내는 것이 감각 자본의 힘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들이 쌓여 개인의 감각 자본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호사는 곧 본질적 자산으로 변모합니다. 저자는 로컬 문화, 집단지성, 성과주의를 넘나들며 결국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독창적이고 지속적인 취향의 기록임을 역설합니다.


한 사람의 취향이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지 보여줍니다. 반복되는 소비 습관, 사랑하는 공간, 즐겨 듣는 음악이 결국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됩니다. 저자는 이것을 애호를 살아내는 법이라 부릅니다. 사소해 보이는 애호가야말로 시대와 교감하는 감각 자본의 핵심임을 강조합니다.


저자의 이력처럼 시장을 흔드는 상품도 결국은 본질을 꿰뚫는 감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감각 자본』은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식상한 조언에서 벗어나 취향을 시대와 맥락 속에서 사유하도록 이끕니다. 


애정을 쏟고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모여 나만의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감각은 소비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쌓여 결국 한 사람의 브랜드, 곧 경쟁력이 됩니다. 자신만의 차별화 포인트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본질을 보는 힘을 기르는 훈련에 필요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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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문장들 - 단단하게 나를 지키며 품격 있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
조윤제 지음 / 오아시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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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0년을 넘어 오늘의 마음을 다잡는 지혜 『다산의 문장들』. 국내 최고의 고전 연구가 조윤제 저자가 오랜 탐독 끝에 다산 정약용의 언어를 오늘날의 언어로 풀어낸 책입니다. 배움, 고난, 인생, 성찰, 관계, 세상이라는 6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조선 최고의 지적 거인이자 동시에 정치적 풍파에 휩쓸려 18년간 유배지에서 생을 보낸 다산 정약용. 절망을 삶의 전환점으로 바꾸었고, 외진 방에서 묵묵히 500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겼습니다.


『다산의 문장들』은 그 치열한 사유의 흔적을 바탕으로 삶의 고비마다 붙들 수 있는 93가지의 문장으로 건네줍니다. '단단하게 나를 지키며 품격 있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부제처럼 품격 있는 어른의 길, 다산의 지혜에서 배워보세요.





다산의 삶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배움에 대한 끈기입니다. 정조 앞에서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엄격히 학문을 대했습니다. 조윤제 저자는 "스스로 타협하지 않고 바른길을 간다면 늦은 것 같으나 가장 빠른 길이 될 수 있다."라는 다산의 지혜를 전합니다.


학습법과 자기계발서가 넘쳐나지만 다산의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학문이든 삶이든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직함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다산은 200년 전에 이미 꾸준함보다 더 본질적인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기'를 강조했습니다. 이는 빠른 성과와 효율만을 좇는 시대에 묵묵히 한 걸음씩 걸어가는 태도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유배 생활과 중병, 가난은 누구라도 좌절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그 속에서도 자기 길을 지켰습니다. "곤욕은 근심거리가 아니다, 곤욕을 괴로워하는 것이 근심이다."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어려움 그 자체보다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니까요. 고난은 삶의 불가피한 과정일 뿐, 그것을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태도에서 진짜 문제가 시작됩니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통함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라고 묻습니다. 남 탓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이 비통을 만든다는 일침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산은 시련 속에서 더욱 글을 깊게 다듬었고, 고난을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리셋 버튼 대신 강화 모드를 선택한 셈입니다.





다산은 예순의 나이에 자신의 묘지명을 직접 씁니다. 그것을 새로운 출발의 선언으로 삼았습니다. "삶에서 가장 절실하고 갈급한 순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새롭게 한다면 이미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라는 구절은 나이와 상황을 불문하고 자기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다산도 오늘날의 성과 중독에 빠져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거 시험과 출세에 매달렸던 20여 년을 '나를 잃어버린 시간'이라 부르며 "천하에 '나'보다 더 잃기 쉬운 것이 없다"라는 묵직한 경종을 울립니다. 중년의 위기라 불리는 시기에 던져볼 만한 울림 있는 문장입니다.


다산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았습니다. 관계의 지속성을 결정짓는 것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덕으로 사귄 벗은 쉽게 멀어지지 않는다"라는 구절은 관계의 본질이 이해와 존중에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다산은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외부의 비난보다 무서운 것이 자기 비하라고 말합니다. 자기 존중을 잃지 않고 타인을 대하는 것, 이것이 품격 있는 관계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SNS의 피상적인 인연이 넘쳐나는 시대에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가르침입니다.


다산의 문장을 통해 품격 있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을 지키며 동시에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는 조윤제 저자의 『다산의 문장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좌표로 다가옵니다. 책 속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정신을 일깨우는, 삶을 지탱하는 기둥처럼 다가오는 문장들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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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전쟁 - 우리는 왜 이 전쟁에서 실패를 거듭하는가
요한 하리 지음, 이선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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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00년 전 미국이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 승리했을까요? 안타깝게도 답은 '아니오'입니다. 오히려 이 전쟁은 폭력을 키우고 중독자를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넣었다고 합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는 사실 그 이전에 훨씬 더 도발적인 주제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의 첫 책 『마약 전쟁(Chasing the Scream)』은 마약 정책의 근본적 패러다임을 뒤흔든 일종의 폭탄선언과도 같았습니다.


한국어판에는 특별히 우리 사회 상황을 겨냥한 서문이 실려 있습니다. 한국판 마약 전쟁의 위험성과 한계를 성찰하게 하는 거울처럼 읽힙니다.





요한 하리는 3년간 30여 개국을 돌며 마약 전쟁의 최전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중독으로 인생이 망가진 이들부터 멕시코 카르텔의 킬러, 포르투갈의 혁신적 정책입안자까지.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마약과 중독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마약 전쟁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1914년 해리슨마약법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놀랍게도 그 이전까지는 헤로인과 코카인이 일반 약국에서 자유롭게 판매되던 의약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마약이 악의 화신이 되었을까요?


답은 초대 연방마약국장 해리 앤슬링어에게 있습니다. 금주법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부하 직원들을 거느린 그는 마약국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충격적입니다. 바로 인종차별을 무기로 삼은 것입니다. 당시 전문가들 대다수는 대마초 금지는 옳은 방법이 아니며 언론이 대마초와 관련해 잘못 전하고 있다고 판단했지만, 해리 앤슬링거는 그 말을 무시합니다. 대마초는 엄청 위험하므로 근절되어야 한다고 믿는 한 전문가의 말만 인용한 겁니다.


해리 앤슬링거는 흑인들이 대마초를 피우면 백인 여성에 대한 욕망이 치솟는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퍼뜨렸습니다.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가 흑인 린치를 고발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 표적 수사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같은 헤로인 중독자였지만 백인이었던 주디 갈랜드는 치료 기회를 제공받았습니다. 마약 전쟁은 처음부터 공정한 정의가 아닌 인종차별의 도구였던 셈입니다.


더불어 권위주의, 위선, 국제 권력의 압력 속에서 마약 전쟁이 확산되고 정당화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한 역사적 사례로서 박정희 정권과 윤석열 정권이 소환되기도 합니다.


마약 단속의 역설적 효과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마약상을 많이 잡을수록 마약 범죄가 줄어들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던 겁니다. 뉴욕 경찰관의 경험담이 잘 보여줍니다. 2주 만에 악명 높은 마약 밀매업자 100명 중 80명을 검거하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새로운 거래자들이 공백을 메우며 마약 거래는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더 심각한 건 핵심 인물이 체포되면서 권력 공백을 두고 벌어진 조직 간 전쟁이었습니다. 결국 마약 단속이 강화될수록 폭력 범죄가 급증하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요한 하리가 만난 전 멕시코 카르텔 킬러 치노의 증언은 충격적입니다. 마약이 불법화되면서 가장 먼저 도덕적 제약을 버리는 사람이 경쟁우위를 차지하고, 마약시장을 더 많이 장악하게 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마약 전쟁은 결국 가장 잔인한 자들에게 시장을 넘겨준 꼴이 된 셈입니다.


우리는 마약의 강력한 화학적 중독성 때문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요한 하리가 소개하는 브루스 알렉산더의 '쥐 공원' 실험은 통념을 뒤엎습니다. 좁은 우리에 갇힌 쥐는 마약이 든 물을 계속 마시다 죽었지만, 넓은 공간에서 동료들과 어울리며 살 수 있는 환경의 쥐들은 마약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습니다. 중독이 화학물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관계의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마약 사용자 중 10퍼센트만이 마약으로 인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마약을 사용하는 사람들 중 90퍼센트 정도, 압도적인 다수는 마약으로 해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통계는 다름 아닌 유엔 마약통제국에서 나온 수치입니다. 마약과의 전쟁을 지휘하는 기관에서조차 인정하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일부만 중독에 빠질까요? 저자는 아동기 트라우마, 사회적 고립, 상실감 같은 인간적 조건이 핵심 요인이라고 짚어줍니다. 2001년 포르투갈은 모든 마약 사용을 비범죄화합니다. 다들 포르투갈이 마약 천국이 될 거라고 우려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마약 관련 사망자가 급감했고 마약 사용률도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마약 전쟁』에서 요한 하리가 주목하는 건 마약 전쟁의 진짜 피해자들입니다. 볼티모어 같은 마약 전쟁지역에서는 매일 밤 총소리가 울리고,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 자라납니다. 한 번이라도 마약 범죄로 적발되면 취업 기회를 잃고,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으며, 심지어 투표권까지 박탈당합니다. 중독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가장 취약한 계층만 더욱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중독의 반대말은 금단이 아니라 연결이라고 말하는 요한 하리. 사회와 가족, 공동체로부터 끊어진 개인을 다시 이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마약 전쟁을 끝낼 유일한 길이라고 합니다. 100년간 이어진 실패의 역사를 해부하며,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꾸라고 촉구하는 『마약 전쟁』. 중독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사회의 단절에서 비롯된다는 중요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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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삼국지 기행 : 위나라, 촉나라 편 - 기행장군 양양이의 다시 보는 삼국지 이야기
기행장군 양양이(박창훈)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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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방구석에서 떠나는 장대한 삼국지 현장 탐험, 위·촉의 땅에서 영웅들의 숨결을 만나는 시간 『방구석 삼국지 기행: 위나라, 촉나라 편』.


『삼국지』 덕후들이 많을 겁니다. 수차례 읽은 분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그 무대가 된 땅을 실제로 걸어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유튜브 채널 기행장군 양양이로 활동 중인 박창훈 저자는 삼국지에 평생의 열정을 쏟아온 인물입니다. 역사학 전공자로서의 학문적 토대, 중국에서 교육학 석사를 그리고 현장을 직접 누비며 기록한 80여 곳의 답사 경험이 이 책의 뼈대를 이룹니다.


『방구석 삼국지 기행: 위나라, 촉나라 편』은 책으로 떠나는 역사 여행입니다. 과거 100년 전쟁의 중심 무대로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삼국지 영웅들의 무용담을 더 이상 텍스트 속에 남겨두지 않고, 현재의 땅과 공기 속에서 재현합니다.





1부 위나라 이야기에서는 조조의 카리스마가 깃든 땅으로 안내합니다. 조조의 고향 초현(오늘날 안휘성 박주)은 거리 곳곳에 남아 있는 도로명과 기념물로 조조의 흔적을 드러냅니다.


그저 유적을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조조가 왜 초현 출신이라는 배경을 자주 강조했는지, 후대 조비가 이곳을 오도(五都) 중 하나로 지정한 까닭은 무엇인지 파고듭니다. 초현은 조조 개인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위나라 정통성의 근거지입니다.


이어서 조조가 선택한 땅들을 집중 조명합니다. 헌제의 장안 탈출기는 액션 영화 같은 스펙터클을 자랑하는데, 실제 지형과 함께 설명을 들으니 더욱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조조와 유비가 연합하여 여포를 무너뜨린 하비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저자는 2014년 진행된 고고학 발굴 현장까지 추적하며 삼국지 텍스트와 현대의 만남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위·한의 정통을 차지하기 위한 조조와 원소의 격돌, 관도대전은 『삼국지』 전개의 전환점이자 저자에게는 전장을 직접 밟으며 얻은 역사적 통찰의 무대였습니다. 조조가 관도를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지형적 우위를 활용한 필연이었음을 현장에서 입증합니다.


조조가 업성을 수도로 삼으면서 본격적인 위나라 제국의 기틀이 마련됩니다. 업성의 흔적은 허베이성 안양 일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동작대 같은 권력 상징물은 권력자의 상상력이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조조의 정치적 야망이 구체적으로 어떤 땅 위에서 실현되었는지 탐구합니다.





2부 촉나라 이야기에서는 유비와 제갈량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비의 고향 누상촌에는 여전히 뽕나무와 기념비가 남아 있습니다. 유비의 생가 앞에는 '유비가'라는 술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을 만든 양조장이 하필 '장비양조회사'였다는 점은 덕후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에피소드입니다.


탁현의 도원결의 무대, 평원에서의 유비, 서주에서의 새로운 기회까지 유비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인간적 매력과 정치적 역량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전율이 흐르기 마련인 적벽대전. 전설의 전투가 아니라 실제로 장강 일대의 전장을 반영합니다. 저자는 주유 동상과 적벽이라 새겨진 석각을 찾아가 그 상징성을 짚습니다. 안개 낀 장강 풍경은 수천 년이 지나도 전쟁 전의 긴장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익주는 촉나라 건국의 핵심입니다. 유비가 어떻게 유장과의 갈등을 관리하고, 결국 민심을 얻어 익주를 차지했는지 정치적 은덕 전략에 대해 짚어줍니다. 방통의 죽음과 면죽관전투는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으로 재조명됩니다.


한중전투는 촉과 위가 직접 맞부딪친 전쟁으로, 장비·황충·하후연 등 영웅들의 최후와 연결됩니다. 장비가 암살당한 뒤 무덤과 관련된 전설은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일 뿐만 아니라 패자의 흔적도 이렇게 공간 속에 남겨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방구석 삼국지 기행: 위나라, 촉나라 편』은 텍스트와 공간, 신화와 사료, 전설과 발굴 현장이 맞닿아 있습니다. 인물 중심의 분석이나 전투사 위주의 서술에서 벗어나 공간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삼국지를 재해석했습니다. 1800년 전 영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역사적 상상력과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충족합니다.


현지 주민들과 소통하며 생생한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입니다. 드론을 활용한 항공 촬영, 유적지 원문 등 풍부한 시각 자료도 매력적입니다. 위나라와 촉나라의 땅을 거닐며 영웅들의 숨결을 따라가는 이 책은, 삼국지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야 할 독서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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