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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공식
김왕래 지음 / 좋은땅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59년 작곡 거장 김왕래가 해체한 신체의 노래 공식을 만나보세요. 노래는 타고난 목소리나 천부적인 감각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60년 가까운 세월을 대중음악 최전선에서 보낸 김왕래 작곡가는 뜻밖의 조언을 선사합니다.
당신이 노래를 못하는 건 감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몸을 조립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노래 공식』은 추상적인 예술의 영역을 구체적인 물리학과 생리학의 영역으로 펼쳐보이는 지침서입니다.
대중음악 현장을 지켜온 김왕래 작곡가는 창작자를 넘어선 소리 탐구자입니다. 김왕래 노래연구실을 통해 수많은 음치들을 가창자로 환골탈태시켰습니다. 이 책은 수만 번의 임상시험을 거친 임상 보고서와도 같습니다.
초보 가창자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성대만을 혹사시킵니다. 저자는 성대는 악기가 아니라 최종 출력 단자일 뿐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성대는 스스로 소리를 만드는 독립적인 장치가 아니라, 하체와 복부에서 올라온 에너지의 압력이 구강이라는 공명실을 만나기 직전 거쳐 가는 밸브에 가깝습니다. 김왕래 저자는 성대를 과하게 의식하는 순간 오히려 소리의 길은 막힌다고 말합니다.
호흡은 소리의 원료이자 신체 각 기관을 연결하는 윤활유입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과정에서 횡격막과 단전이 어떻게 협응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성대를 가졌어도 소리는 파편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호흡은 힘이 아니라 정교한 조율의 미학인 셈입니다.
노래는 뇌가 내리는 명령에 신체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고도의 연산 과정입니다. 저자는 단전과 허리(배꼽 아래)를 소리의 뿌리로 설정합니다. 양다리가 지면을 지탱하는 접지력이 명치를 지나 성대까지 연결되는 그 매커니즘을 읽다 보면, 노래가 왜 전신 운동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초보자는 고음을 낼 때 턱에 힘이 들어가곤 하지요. 턱과 관절, 혀의 위치 하나하나가 소리의 통로를 결정짓는 변수가 된다고 합니다. 두성이나 비음 같은 용어들도 추상적인 느낌이 아니라, 구강 구조와 두개골 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대한 설명으로 풀어냅니다.
목소리와 음정보다 더 중요한 건 자세라고 합니다. 굽은 등과 거북목으로는 절대 올바른 호흡의 통로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부르는 노래는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로 베토벤을 연주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본질적인 구조가 갖춰졌을 때 비로소 목소리는 빛을 발합니다.

저자는 노래 연습의 함정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이해했다고 해서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뇌로 이해한 지식을 근육이 기억하는 절차적 기억으로 치환하는 과정, 그것이 연습의 본질이라는 것을 짚어줍니다. 특히 기교와 감정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기초적인 신체 사용법이 숙달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감정 표현은 그저 신파나 소음에 불과합니다.
노래는 고립된 소리가 아닙니다. 외부의 리듬과 화성(반주)에 자신의 신체 악기를 어떻게 동기화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다룹니다. 내가 내는 소리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울리는지를 인지하는 청각적 피드백의 중요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에너지가 단전을 거쳐 명치에서 증폭되고, 성대를 진동시켜 구강과 비강에서 공명되는 이 일련의 프로세스를 저자는 신체의 노래 공식이라 명명합니다. 결국 노래의 완성도는 몸통(에너지원), 성대(변환기), 구강(확성기) 이 세 부위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돌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3분 만에 고음 뚫기 같은 자극적인 마케팅 대신 시간과 훈련, 그리고 자신의 몸을 향한 정직한 관찰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말하는 『노래 공식』. 59년 경력의 거장이 줄 수 있는 묵직한 가르침입니다.
노래는 몸의 과학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노래를 감각에서 구조로 끌어내린 책입니다. 자기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사람, 노래방에서 항상 위축되는 사람, 노래는 타고나는 거라고 체념한 사람들에게 『노래 공식』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