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린 캐스틸 하퍼 지음, 신동숙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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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TIME 표지는 알츠하이머라는 글자와 함께 절반은 희미하게 처리된 얼굴이 등장했습니다. 다른 질병에선 찾아볼 수 없는 '소멸'을 표현했습니다. 치매(dementia)의 뜻이 de(잃다) + mentia(정신)라는 것부터가 마치 정신이상이라는 정신 질병처럼 와닿습니다. 이런 편견은 우리가 치매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짐과 동시에 치매인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왜곡하게 됩니다.


10년 동안 다양한 관점에서 치매를 바라본 린 캐스틸 하퍼 저자는 치매인과 비치매인의 간극을 좁히는 여정을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에서 보여줍니다.


흔히 치매를 '긴 작별'이라고 부릅니다. 치매를 앓는 가족을 두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은 "너를 알아보셔?"일 정도로 치매는 잊힘에 관한 질병입니다. 하나 둘 잊어버리는 치매인 만큼이나 보호자 역시 치매인을 '낯선 사람'처럼 바라보게 됩니다.


65세 이후 노인 치매 유병률이 10퍼센트가 넘고, 85세 이상 노인 치매 유병률은 40퍼센트에 달합니다. 이런 높은 비율임에도 우리는 치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그저 정신을 잃고 아이가 되어버린, 통제가 안 되는 미치광이 취급을 하진 않는지요.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는 요양원에서 치매 노인 담당 목사로 근무한 경험과 외할아버지의 치매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치매에 대한 두려움의 근원을 파헤칩니다. 치매의 다양한 측면을 알면 알수록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치매인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내가 치매에 걸리지 않더라도 가족, 친구 등 삶에서 어떤 식으로든 치매에 영향을 받는 만큼 비치매인으로서 치매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치매인은 그저 자기 자신의 문제만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치매는 개인의 뇌 기능 부전의 문제만이 아니다. 치매는 우리 모두의 기능 부전, 즉 대중의 병든 사고와 관련이 있다." - 책 속에서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악성 사회심리에 대해 깊이 고민합니다. 개인의 가치를 재정적, 물리적, 지적 능력에 비추어 규정하는 관습이 문화, 경제, 의료 시스템 전반에서 횡행합니다. 치매인을 세상에서 배제합니다. 돌봄의 손길이 필요한 육체가 문화적 경멸의 대상이 되고, 노인 차별과 혐오가 암묵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요양원에 관한 저자의 생각도 함께 고민할 가치가 있습니다.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집에서 쫓겨나 주변부로 이동하는 노인 돌봄 실태를 꼬집습니다. 그럼에도 요양원 있는 세상보다 더 나쁜 것은 요양원 없는 세상이라는 이 지점이 불편하다고 고백합니다. 24시간 계속되는 돌봄을 할 수 없는 보호자 입장에서는 사회의 지원이 필요하지만, 요양원과 관련한 나쁜 뉴스를 접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내가 치매에 걸렸을 때 어떤 돌봄을 받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자는 '만일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대신 '내가 치매에 걸렸을 때'로 용기를 내보자고 합니다. 치매를 앓는 상태로 살고 죽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은 세상을 희망하게 됩니다. 비치매인과 치매인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표현입니다.


기억력 저하가 정신, 영혼, 마음의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질병에 비해 격리, 소외되어 '사회적 사망'이라는 수순을 밟는 치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양 취급합니다. 쉽게 비인격화됩니다. '이미 가버린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무의식적으로 치매인을 회피하는 현실입니다.


치매에 걸린 사람은 미치지 않았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태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몽유병을 앓았을 때 치매인의 감정과 곤경을 대리 경험했다고 합니다. 꿈꿀 때의 경험은 치매인의 삶을 공감하는 데 도움 준다고 합니다.


치매에 우호적인 공동체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 린 캐스틸 하퍼의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는 치매인이 '여전히 사람'임을 잊지 않도록 일깨웁니다. 우리가 흔히 내뱉는 치매를 은유하는 말속에 담긴 두려움의 근원을 살펴, 지나친 두려움에서 오는 악영향을 짚어줍니다. 새벽과 저녁에 어둠과 균형을 이룬 너그러운 빛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품는 골든아워처럼 노년 golden years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정립하게 도와주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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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말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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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밴 말투나 어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나오는 습관입니다. 별생각 없이 나오지만 한 사람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말버릇. 어른다움에 대한 고민의 시작은 내 말버릇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베스트셀러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저자의 신간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는 꼰대의 잔소리가 아닌 '어른'의 말에 대한 책입니다.


버릇처럼 앓는 소리만 하는 사람 곁엔 있고 싶지 않습니다. 에너지를 뺏기는 기분이잖아요. 남의 결점은 눈에 잘 띄지만 내 말버릇에 대해 정작 곰곰이 돌이켜보았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자극받습니다. 저도 고치고 싶은 말버릇이 있는데 고치기 참 힘들더라고요. 말투 때문에 오해받고 손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강원국 저자는 고치고 싶은 의욕을 가진 이들에게 확실한 조언을 합니다. 자신이 본받고 싶은 사람의 말을 반복해 들어보라는 거예요. 닮아가는 거죠.


"어제 뿌린 말의 씨앗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 뿌린 말의 씨앗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말투는 나의 인격이며, 내일의 운명이기도 하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 - 책 속에서


어른답게 말하려면 어른답게 잘 들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말이죠. 말하는 사람의 심정과 처지에서 듣고,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을 찾고, 해주고 나서 생색내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들어주기보다는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앞설 겁니다. 저자도 아들과의 대화에서 그게 참 어렵더라고 고백합니다. 그만큼 잘 듣는다는 건 계속 정진해야 할 일이라는 걸 짚어줍니다.


어휘력 문제도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할 말이 많은데도 표현하지 못하고 버벅대면 어휘력이 부족해서입니다. 유의어를 많이 알수록 정확도와 품격을 높일 수 있습니다. 역시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의 말을 많이 들어보고, 국어사전으로 빈틈을 메워나가며 좋은 표현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는 겁니다.


"어휘력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연륜을 드러낸다. 한 해 한 해 늘어가는 나이에 걸맞게 어휘도 꾸준히 늘려야 한다." - 책 속에서


강원국 저자가 어른답게 말하기 위한 규칙 여섯 가지에도 귀 기울여보세요. 내가 하는 말을 되돌아보면서 말하고, 남의 말을 유심히 들으면서 '나는 저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싶은 것을 찾고, 얼버무리지 않고, 같은 말이면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목적에 맞게 말하고, 후회할 말은 하지 않는 겁니다.


그 외 상대를 배려하는 눈높이 말하기 7가지 법칙, 말실수 줄이는 법 등 어른답게 말하기 위한 내공 쌓는 법, 상대의 마음을 바꾸고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법, 자신감을 불어넣는 법 등을 차곡차곡 알려줍니다. 직장 생활에 도움 되는 말하기 방법도 있습니다. 질책에도 격이 있음을 직장 생활 속 생생한 사례로 보여줍니다.


말하기의 내공을 쌓아 진정성 있는 어른다운 말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진짜 어른다움이 무엇인지에 초점 맞춰 들려줍니다. 말은 설명, 설득, 친교, 재미 등 다양한 상황에서 합니다. 모든 말을 다 잘할 필요는 없지만, 말의 내공만큼은 높이기를 조언합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따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이번 기회에 말공부를 해보세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대화, 협상이 잘 풀리길 바라지 말라는 따끔한 한 마디가 기억에 남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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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말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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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한다는 것의 의미를 일깨우며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조언하는 방식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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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싸울 때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힘
에우달드 에스플루가 지음, 미리암 페르산드 그림, 서승희 옮김 / 봄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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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를 이끈 20~21세기에 있었던 서른 가지 사회 운동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우리가 함께 싸울 때>. 더 나은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사회 깊은 곳에서 저항한 사람들은 위대한 한 명의 영웅이 아닌 평범한 우리 이웃들, 아무개들이었습니다.


1910년~2020년까지 함께 힘을 모으면 힘이 결국 역사가 된 사회 운동. 정치, 인권, 환경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회를 향한 외침을 보여줍니다. 함께 하는 힘이 어떻게 나타나 어떤 결과를 불렀는지 만나보세요.


한 세기에 걸친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에밀리 이야기는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노력한 서프러제트의 연대, 희생, 의지를 대변하는 사건입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를 몸소 보여준 서프러제트 단체는 부당한 탄압 속에서도 결국 놀라운 변화를 끌어내 여성 운동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작가의 책인 만큼 유럽 정치와 관련한 저항 운동도 많이 다룹니다. 유럽이 히틀러의 발아래에 놓였을 때 나치즘과 파시즘에 저항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2만 명의 주민이 일제히 방어벽을 쌓아 파시즘 반대를 외친 사건은 결국 영국 파시즘이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된 계기를 촉발했고, 독일의 축구팀과 경기를 벌인 오스트리아 팀은 보여주기식 무승부가 아닌 나치에 당당히 맞서 경기를 치르는 등 평범한 이들의 힘이 어떻게 영향을 넓혔는지 보여줍니다.


무솔리니 독재 정부에 반대하며 게릴라전을 벌인 이탈리아 파르티잔의 역사에서는 파르티잔의 군가로 쓰였던 '벨라 차오'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세계적으로 신드롬 현상을 낳은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에 이 노래가 자주 등장해 우리에게도 익숙하지요. 파르티잔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교양인문서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도 추천합니다.


여전히 바뀌어야 할 것들은 많지만, 지금 우리 환경이 있기까지 우리는 윗세대에게 빚을 졌습니다. 학생과 노동자들이 함께 힘을 모은 프랑스 68운동은 이후 수많은 사회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의미가 컸던 운동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백인 중산층 위주로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반대하며 사회적 약자인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 위해 움직인 스톤월 항쟁, 세계 시민의 여론으로 확장시킨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여성 운동에서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 가사 노동 운동, 유명 배우와 작가가 포함된 343명의 여성이 낙태 처벌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며 이후 베이유법으로 이어지는 쾌거를 남긴 343 선언, 에이즈 퇴치와 에이즈 환자를 위해 노력하는 국제 행동 단체 액트업 운동 등 사회의 편견과 무지, 무관심을 일깨우는 외침이 가득합니다.


모습이 없는 사회 운동 단체 어나니머스는 한 번쯤 들어봤을만한 단체입니다. 해커 테러 집단처럼 소개된 뉴스 때문에 일반인들의 편견이 많기도 하지요. 자유로운 사회에 해악인 존재들을 응징하는 방식으로 부당한 권력에 맞서면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음모론도 참 많습니다.


그 외 정당한 권리를 위해 새로운 활동 방법으로 싸우는 토론 방식을 보여준 스페인 15M 운동, 청소년이 실천한 환경 운동 미래를위한금요일 등 연대 정신이 빛을 발휘한 수많은 운동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함께 싸울 때>에서는 대부분 얼굴을 특징하지 않은 채 낯선 이웃들의 모습을 그려내 인상 깊습니다. 왜 그들은 사회를 바꾸고 싶어 했을까, 왜 그들은 모였을까. 촛불시위로 함께 하는 힘을 몸소 느낀 우리들은 연대의 힘이 역사를 만드는 현장을 경험했기에 이 책에서 들려주는 사회 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사회 운동이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패배했던 운동 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의미만큼은 이후 운동에 영향을 끼치며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영향력을 끼치는, 함께 하는 힘의 위력과 가치를 만날 수 있는 <우리가 함께 싸울 때>. 공동체 의식이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역사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처럼 우리 역사 속 사회 운동을 총망라한 청소년 책도 나오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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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실전 매뉴얼
오렌지나무 지음 / 혜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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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경력 20년, 은둔형 외톨이 경력 7년, 자실 시도 경력 10년. 이런 상황에서도 상담치료와 약물 도움 없이 우울증을 치유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하나씩 시도해 보면서 그 과정을 글로 남긴 필명 오렌지나무 저자가 오랜 세월 온몸으로 고통을 이겨낸 투쟁의 기록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우울감이 단지 기분이 가라앉고 의욕이 없어지는 상태라면, 우울증은 정신이 느끼는 통증이라고 합니다. 보통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는데 오랜 기간 우울증으로 고통받은 저자의 말로는 그 수준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울증은 심신을 고통 속에 머물게 합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부정적 감정이 머릿속을 맴돌아 다른 기능들은 전부 멈춰 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무기력한 자신을 게으른 사람으로 생각하며 자기혐오에 휩쓸려 악순환의 반복 속에 갇히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고백합니다. 그 정도의 의지가 있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뿐이라고 합니다.


숨 쉬는 것조차 죄스러울 정도라는 우울증은 자해, 자살 충동으로 이어집니다. 바깥 생활을 하면 나아질 수 있으려니 싶었지만, 학교생활 중에 더 심해졌다고 합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상대로 열등감, 불안감, 수치심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사실 우울증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생각 외로 안 한다고 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자가 어떻게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요.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고통이 담긴 책을 읽고서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얻었다고 고백합니다. 우울증을 앓는 이들에겐 살아야 할 이유를 인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치유 과정 내내 등장합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무척 오랜 세월 우울증을 겪었음에도 왜 치료를 받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그 이유도 고백합니다. 약물 치료는 안 받은 게 아니라 못 받은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가족의 적극적 지지가 없었던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가족의 조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등장시킵니다. 가족을 위한 매뉴얼을 다룬 장을 별도로 마련했을 정도로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단순한 게 아닌 우울증 치유 과정에서 필요한 보호자의 역할을 들려줍니다. 뼈 때리는 말로 정신을 차리게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면 그건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말이라고 합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자존감이 낮아서 그 말에 오히려 더 휘둘리게 됩니다.


약물 도움 없이 재건한다는 것은 정말 뿌듯한 일이지만 무척 힘든 일입니다. 약물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자신처럼 20년을 버릴 이유는 없다며, 더 건강하고 더 안전한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치료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서 막 벗어나려고 버둥거리는 단계에선 '나를 사랑하라' 같은 기본 수칙조차 지킬 수 없더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에너지조차 없으니까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를 사랑할 수 있는지, 그저 인정하는 걸로는 부족하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나 자신을 완벽히 알지 못해서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스로에게 가혹한 상사, 잔인한 심리 상담사, 나쁜 부모, 살인미수범으로만 살아왔습니다. 스스로에게만 잔인했습니다. 누군가가 내게 해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던 말, "오늘도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살아남았으니까 오늘 할 일은 다 했어!". 그런데 정작 내가 나 자신에게는 해주지 않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수치심,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말 중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어요." - 책 속에서


우울증 탈출을 위한 실전 매뉴얼에서는 치유 과정을 왜 기록하고 공유해야 하는지부터 다양하고 재밌는 시간을 늘려가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저자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험'했던 것들입니다. 우울증에 잠겨 있는 생각의 끝을 단 5분 만이라도 놓아버리는 법, 현재에 집중하게 만드는 챈팅 명상 등이 있습니다.


여러 방법 중 다이소에서 물건 3가지 사 오기 미션도 흥미로웠습니다. 운동처럼 꾸준히 하는 건 오히려 우울증 환자에겐 역효과가 나기 쉬우니, 자유로운 활동을 권장합니다. 목적지를 명확하게 정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미션을 시도해보는 겁니다. 가장 효과적이었던 건 춤 테라피였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을 해방시키는 느낌을 만끽하게 되었다고 해요.


우울증 덕분에 외면했던 현실의 문제들이 들이닥치는 시기도 찾아옵니다. 이미 망한 인생이라며 포기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저자가 들려주는 조언은 구명줄이 됩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복병이 많지만, 셀프 심리 상담을 하며 나와 주고받는 대화로 자기혐오를 깨트리는 데 효과를 보기도 합니다.


3년이 지난 현재는 삶을 재건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을 읽으며 우울증이 이토록 힘든 병이었구나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실 그동안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채 치유하는 과정을 엿보니 상상 그 이상의 고통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섣불리 우울증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내뱉을 수 없겠더라고요.


삶을 재건하는 사소한 실마리들이 모인 결과, 이제는 열에 아홉 번 정도는 이길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저자가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과 그 가족들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이 담긴 우울증 치유자 오렌지나무의 고백기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구명보트를 띄우기까지의 여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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