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 시인이 보고 기록한 일상의 단편들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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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여행자 최갑수의 <사랑을 할 때까지 걸어가라> 리커버 에디션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14년간 120여 개 도시를 여행하며 만난 사랑의 순간들과 여행지의 단상을 시적인 글귀로 보여주는 포토에세이입니다. 이번 제목도 마음을 두드리는 책 속 한 꼭지의 제목입니다.


찰나의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에 인생의 단면을 느낄 수 있는 센티멘털한 사진은 최갑수 작가만의 스타일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14년간 32개국의 도시라면 어마어마할 텐데 그중 어떤 단상이 이 책에 모였을까요. 여행지 그 자체의 정보는 사실 없습니다. 사람과 감정에 집중합니다. 농밀한 감정 폭탄 대신 담백하게 표현한 글귀가 울림을 줍니다.


최갑수 작가는 즐기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리고 상상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끼지 말아야 할 것들입니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한다는 고백을 아끼지 않듯 젊음과 청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축한 것이 여행입니다. "여행은 새로운 공간과 장소를 만나는 일이지만 새로운 시간과 조우하는 일"이라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공간의 새로움만 만끽했던 그간의 여행 스타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말입니다. 길 위에서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가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는 걸까요.


이런 여행을 하려면 빈둥빈둥도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를 읽으면서 든 생각과 비슷한 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하더라도 조금은 여유롭게 움직이는 의식적인 노력과 사색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평소 실천하기 힘든 일이었기도 합니다. 바쁘게 정신없이 매달리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 속에 새로운 것이 채워진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건데도 말입니다.


필리핀 사람들도 가보고 싶어 하는 오지 마을인 바타네스라는 곳을 알려주는데요. 마을이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곳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 가운데 '바타네스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 손들어 봐.' 해서 1만 8,000명만 뽑아 모아놓은 것 같은 오직 선의로만 가득한 곳이라고 합니다. 세상 열심히 놀 수 있었다는 (열정적 체험의 의미와는 다른) 그의 자랑 섞인 이야기가 부러워집니다.


두근거림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떠나라며, 설렘은 모든 불편을 감내하게 한다는 조언도 와닿습니다. 여행 정보를 물어오는 독자의 쪽지를 앞에 두고 정보 대신 한 말입니다. 여행 기간 내내 먹고 자고 보는 그 모든 행위에 반영되는 저마다 다른 취향. 누군가에게 이 정도는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를 떨만 한 고행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설렘이 불편을 감내할 수 있다는 조언은 일단 행동으로 옮겼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 때문입니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이자 여행자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 곳곳에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혼자 서 있을 때의 외로움은 우울감이 가득한 외로움은 아닙니다.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고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정 속에서 오히려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일상이나 여행이나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아직은 일상이라는 곳에 정착하고 싶지 않다는 최갑수 작가. 항상 사건을 일으키고 우연에 기대고 무질서를 즐긴다는 점에서 여행길에서 마주하는 진심이 그의 사진과 글귀에 담겨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더 좋은 여행자란 어떤 의미인지 그만의 스타일이 진하게 묻어난 여행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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