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렸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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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를 포함해 여덟 권의 소설이 모두 베스트셀러 열풍을 일으키며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은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아들을 둔 아빠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 첫 번째 에세이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렸다>.


아들에게 대뜸 사과부터 하는 배크만. 비협조적으로 나올 때마다,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질 때마다, 어처구니없고, 부당하게 구는 자신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날 때면 기억해달라고 말이지요. 이쯤 되면 뭔가 부모로서 감동스러운 멘트가 나올 타이밍 아니겠어요?


하지만 배크만 작가 특유의 골 때리는 유머 감각은 가족 에세이에서도 발휘합니다. "네가 내 차 열쇠를 숨겨놓고 어디에 숨겼는지 죽어도 불지 않았던 그날을. 그리고 이걸 먼저 시작한 쪽은 너였다는 걸 절대 잊지 마라." 아들 생후 18개월 때 쓴 글이라고 합니다.


부모 노릇이 보기보다 참 어렵다는 걸 깨달아가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입니다.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훌륭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하는 부모 마음. 부족한 부모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속내도 드러납니다. 그래서 검색 또 검색의 생활입니다. 겁에 질리다 보니 자꾸 뭘 사게 됩니다.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이다 보니 이런 말을 할 때조차도 "그냥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변명은 아니야. 그냥 그렇다는 거지." 하며 자랑 뿜뿜하거나 꽁무니를 슬그머니 빼기도 합니다. 아빠로서 아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도 쏟아집니다. 독립 조언까지도 말이죠. 첫 소파만큼은 반드시 원하는 걸 중고로 사라고 합니다. 그 이후엔 모든 소파가 기나긴 협상의 결과물이 될 거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면 현명한 깨달음으로 다가올 거라고 당부하면서 말이죠.


축구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라면서 블라블라~. 다른 걸 하면 안-된-다는 건 아니라면서도 그냥 단지... 뭐랄까... 소속감을 얻지 못한다느니 소외된다느니 블라블라~. 결국 아빠가 좋아하는 취미를 아들과 함께 하고픈 욕망이 슬쩍 담긴 조언도 빠질 수 없습니다.


한 맺힌 아빠의 절규도 등장합니다. 아내가 부탁한 기저귀 사 오는 미션에 실패한 아빠의 한 마디. "기저귀가 너무, 너무, 너무 많았어!" 향이 있거나 없는 거, 곰돌이 푸가 있거나 없는 거, 찍찍이가 달린 거, 고무 밴드가 달린 거, 바지 같은 거, 바지 같지 않은 거, 저자극인 것 등등의 기저귀 코너에서 멘붕을 겪은 배크만. 아이를 낳으면 모든 부모가 슈퍼히어로가 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음을 절절하게 깨닫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내에 대한 경외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네 엄마는 제일 강한 여자이고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말이죠. 근데… 음… 내 꼬임에 넘어와서 결혼했으니 아직은 자기가 한 수 위라고 뻐기기도 합니다. 아들 역시 이 집의 일인자가 누구인지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듯합니다. 난장판을 만들어놓아도 엄마를 웃게 하면 모면할 수 있다는 걸 터득한 아들에게 그 소중한 능력 잘 지키라며 칭찬을 퍼붓습니다.


아, 한 가지 고쳐줬으면 하는 소망도 있었습니다. 손뼉 치는 법을 배운 아들에게 조금만 더 열심히 쳤으면 좋겠다고 조언합니다. 너무 느리고 조용한 박수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상상해볼까요. 비웃는 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에 느리게, 조용히. 짝-- 짝-- (조용). 자존심에 금이 가는 배크만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밤잠 없는 아이 때문에 새벽까지 놀아줘야 했을 때를 되돌아보며 빨리 재우고 싶은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내가 너랑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야. 절대 아니지."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긴 하지만, 당시엔 어찌나 고통스러워했던지요. 하지만 이런 기억들이 고통의 기억으로만 남아있지 않고 결국 애틋하게 간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부모이지요.


인생을 살다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들려주며 배크만 식 조언을 들려주는 <나보다 소중한 사람이 생겨버렸다>. 남의 집 이야기이지만 공통의 육아 경험을 두고 뒷담화하듯 읽다 보니 더 재밌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시행착오가 많아도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아빠이자 남편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육아로 말미암은 부부간 다툼이 잦은 집이라면 배크만과 비교하며 오히려 더 싸움 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할 정도로 배크만의 가족 예찬이 요란할 정도로 사랑스럽습니다.


매 페이지마다 배꼽 빠지게 웃게 만들면서도 찡한 감동이 담겨있는 편지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실용적인 차로 바꿔야 했고, 죽도록 가기 싫은 이케아에도 때마다 가야 했듯 평범한 가정에서 흔하게 겪는 일들이 배크만의 문체로 다듬어지니 어쩜 이렇게 매력적인 육아기로 탄생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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