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발명했지? - 똑똑한 사람들과 그들의 빛나는 생각들
앤 아메리-시멘스 지음, 베키 토른스 그림, 김아림 옮김 / 생각의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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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인간의 법적 권리를 얻은 재미있는 기사를 봤습니다. AI도 발명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는데요. 현재 대부분 국가에선 인간만이 발명자가 될 수 있지만, 호주에서는 인정을 해줬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앞으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발명품들. 평소엔 어떻게 이런 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익숙해진 상태의 것들이기에 무심했습니다. 이처럼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믿은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 <누가 발명했지?>. 사람들이 어떻게 머릿속 아이디어를 훌륭한 발명으로 바꾸었는지 역사를 거슬러 탐색해 봅니다.


지금까지는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생각해 내 만들어내는 발명. 누군가는 목적이 뚜렷한 상태로 도전했을 수도, 누군가는 우연히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호기심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사고의 집약체인 발명품 34가지 이야기를 <누가 발명했지?>에서 만나보세요.


타이어 없는 자전거는 상상도 하지 못하겠는데 1817년 카를 폰 드라이스가 만든 최초의 자전거는 타이어는 물론이고 페달도 없는 자전거였다고 합니다. 나무 바퀴 2개와 조종 레버로 킥보드 탈 때처럼 발로 땅을 구르며 올라타야 달릴 수 있었던 자전거입니다. 페달이 달린 건 1860년대 이르러서야 가능해집니다.


자전거의 발명은 여성의 의복 변천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여성의 연대성과 자유를 상징하는 자전거로 발돋움할 정도입니다.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 무거운 드레스와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자전거를 타기 위한 바지가 등장했거든요.


자전거가 일상에 자리 잡게 되자, 다양한 자전거 대회도 생겼고 헬멧도 만들어집니다. 재미있는 건 자전거에 타이어 바퀴가 달린 계기인데, 세발자전거 경주에서 꼴찌 한 아들을 도와주기 위해 아버지가 고무를 활용해 달아주면서 본격적으로 타이어 달린 바퀴가 생산됩니다.


이제 전기자동차 시대가 다가오고 있지만, 1860년 내연기관 발명은 수많은 자동차 세상을 마련했습니다. 연료를 덜 쓰면서 내연기관 성능을 더 좋게 한 디젤 엔진도 발명됩니다. 덕분에 빠른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자동차가 발명되었으니 뭐가 또 생길까요. 바로 신호등입니다. 1868년 런던에서 최초의 수동 신호등이 선보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신호등은 교통량에 따라 자동으로 통제되기도 하고 적외선 감지기로 신호등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녹색 신호등 색깔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신호등 속 사람 모양도 다릅니다. 신호등 변천사만 하더라도 많은 이야기가 탄생할 정도입니다.


사진을 찍고, 영화를 보고, 컴퓨터로 인터넷 세상을 탐색하고, 블루투스로 온갖 기기를 연결시키는 등 일상의 모든 것들이 기술을 활용하면서 만들어진 발명품들입니다. 누군가는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뒤늦게서야 인정받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발명자에 대한 비하인드스토리를 선보입니다.


인스턴트라면도 발명품입니다. 일본인 안도 모호후쿠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3분 안에 완성되는 인스턴트라면은 영양가 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우리의 음식 먹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국수를 빠르게 만들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로 여러 해 동안 실험을 거쳤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마법의 라면 제조법을 찾아낸 겁니다.


이런 것도 발명품이야?라는 소리가 나온 건 수족관이 등장할 즈음입니다. 1832년 프랑스 해양 생물학자 잔 빌프뢰가 해양 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만든 유리 탱크가 최초의 수족관입니다.


​​​​​​​연주회에서 '음악, 더 크게요!'라는 말에 일렉트릭 기타가 발명되었고, 군대에서 비밀 메시지를 보낼 때 사용하는 특별한 형태의 야간 문자에서 영감받은 루이 브라유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알파벳 등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 발명품의 이야기 <누가 발명했지?>. 아이들과 함께 내 주변에 있는 것들 중 불편하거나 이런 게 있으면 더 좋겠다 싶은 것들을 고민해 보고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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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5% 생존 트레이닝 - 체력이 바닥일 때 누워서 시작하는 홈트
이시모토 데쓰로 지음, 전지혜 옮김 / 좋은생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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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방전되어 운동할 힘이 없으니 피곤하고 귀찮다며 퍼지기 일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질 체력이 되어버립니다. 의지가 약한 사람, 운동할 시간이나 체력이 없는 사람을 위한 쉽고 간단히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홈트를 소개하는 <체력 5% 생존 트레이닝>. 여성 전문 헬스 트레이너 이시모토 데쓰로 저자는 준비물 없이, 지금 당장, 정말 쉽게 할 수 있는 홈트를 알려줍니다.


제목을 보자마자 이건 내 이야기야! 하며 눈이 번쩍 뜨였는데, 읽는 내내 역시 잘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상에 앉아 일하는 작업 시간이 많다 보니 책을 읽을 때만큼은 엎드려서 읽는 습관이 들었는데요. 그래서 엎드린 채 다리 까딱 까딱거리는 운동은 습관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누워서 스마트폰 볼 때도 다리 운동은 하는 편이고요.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운동법이 딱 제 스타일에 맞아떨어졌어요.


<체력 5% 생존 트레이닝>은 하루를 보내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 체력을 키울 수 있는 쉬운 운동 동작들을 소개합니다. 방전 직전인 체력 5% 상태에서는 누워서도 할 수 있는 트레이닝이 나와 있어요. 무슨 효과가 있겠냐 싶겠지만, 그 상태에서도 몸을 잠깐이라도 움직인다는 의지를 표현한다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두뇌 작업을 많이 해서 정신적으로 피곤할 때 보통 간당간당하게 체력이 20% 정도 남은 기분인데, 그땐 TV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을 시청하면서 할 수 있는 간단 트레이닝을 소개합니다. 몸이 좀 찌뿌둥한 느낌이 드는 체력 60%일 땐 건강하게 챙겨 먹은 후 2~3개 트레이닝 동작을 조합해 보라고 합니다. 에너지가 남은 체력 80%에서는 숨이 차게 운동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면 좋다고 합니다.


운동 하나 하는데 세세하게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도록 배려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헬스장 실패, 홈트 실패 다 겪어본 분들이 많을 테니까요.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실천하게끔 돕습니다.


<체력 5% 생존 트레이닝>에서는 근력 운동, 스트레칭, 유산소 운동으로 구분해 알려줍니다. 살이 쉽게 찌지 않는 체질로 바뀌려면 근력 운동이 중요합니다. 실내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 앞서 운동을 하며 정체된 피로 물질이나 일상생활에서 쌓인 노폐물을 혈액 순환을 통해 회복할 수 있게 돕는 스트레칭을 남은 체력 상황에 맞게 구분해 소개합니다.


방전 직전 상태에서는 손가락 까딱하는 것도 귀찮아집니다. 저자는 읽기만 하면 되는 트레이닝으로 이미지 트레이닝부터 하라고 권유합니다. 운동에 성공할 수 있는 마음가짐 10가지를 통해 양치질 하기처럼 매일 당연히 해야 하는 습관처럼 생각하도록 읽기 트레이닝을 해보세요.


나이가 들수록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살을 빼기가 힘들어지니 어설프더라도 지금 당장, 간단한 몸동작이라도 충분하다고 응원합니다. 운동해도 변화 없다고 변명한다면 운동지식이 부족하거나 정량 이상으로 너무 많이 먹기 때문이라고 따끔히 충고하기도 합니다.


영양가 계산을 일일이 하기 귀찮은 사람들도 조금 편하게 접근하게 도와줍니다. 달걀을 하루 1개만 먹어야 하느니 하는 걸 따지기보다는 안 먹는 것보다 많이 먹는 게 나은, 매일 섭취하면 좋은 음식들도 짚어줍니다.


편의점, 외식 생활이 잦은 경우엔 열량 검색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다고 조언합니다. 애초에 이런 것들은 다이어트를 위한 메뉴가 아니니까요. 다행인 건 편의점 음식도 조합을 잘 하면 괜찮다고 하니 부담감은 확실히 덜어지네요.


체력 5% 생존 트레이닝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홈트입니다. 누워서 하는 홈트가 소개됩니다. 손을 위로 뻗을 일이 지하철 손잡이 잡을 때밖에 없는 사람도 여기서 소개하는 운동법이 딱 맞을 겁니다.


체력 20%일 때는 의자에 앉아서, 엎드려서, 벽을 잡고 할 수 있는 운동법을 소개합니다. 피곤해서 딱 한 동작만 하고 싶을 때 근력, 스트레칭, 유산소 중 어떤 걸 해야 하는지도 짚어주고 있는데 체력 방전 상태인 사람 마음속을 들어갔다 나왔나 싶을 정도로 궁금한 점을 콕콕 다루고 있어요. 똑같은 체력 20%여도 어떤 날은 몸이 뻐근해서 과한 운동은 하기 싫다거나 어떤 날은 어제 복근 운동을 해서 오늘은 다른 걸 해보고 싶다거나 등 다양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지요. 이 책은 그런 상황에 맞는 운동을 골라서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체력 60%부터는 강도가 조금씩 높아지지만, 기존에 알던 홈트에 비하면 수월해 보입니다. 스텝박스가 마침 집에 있는데 집에서 할 수 있는 대표 유산소 운동이라고 이 책에서도 추천하네요. 유튜브에서도 스텝박스로 할 수 있는 온갖 안무가 나오니 꽤 재밌습니다. 플랭크, 런지 같은 기본 운동도 힘들어했던 분이라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변형된 방법도 알려줍니다.


체력 80%에서는 하드 트레이닝이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 과하거나 하진 않아요. 딱 보면 만만해서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운동법입니다.


내 몸 컨디션에 맞춰 하는 간단한 운동을 소개하는 <체력 5% 생존 트레이닝>. 포기하지 않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설렁설렁 읽고 시작해도 문제없게 일단 지금 당장 맨몸으로 뭐라도 하게끔 하는 효과를 내는 구성이 만족스러워요. 너무너무 간단한 운동도 있어서 의지 약하다는 변명은 쏙 들어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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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만에 끝내는 코딩 통계 - R언어 설치부터 코딩까지
박준석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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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코딩으로 열 배 쉬워지는 통계라니, 통계학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입문서로 제격인 책입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확률과 통계 개념을 R을 이용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확률과 통계 단원을 헤매는 고등학생부터 통계학을 처음부터 배우고 싶은 성인까지 두루 읽기 좋습니다.


오하이오의 낚시꾼을 운영하며 통계학의 최신 흐름을 소개하고, 시사 이슈에 숨은 통계 오류를 짚어내는 데이터과학자 박준석 저자는 일반인의 데이터 문해력 증진과 통계학 대중화를 위해 <3일 만에 끝내는 코딩 통계>를 내놓았습니다.


요즘은 데이터 분석을 하려면 컴퓨터를 사용합니다. 수학적 공식은 실제 현장에서 손으로 계산하지 않는 거죠. 통계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컴퓨터가 알아서 하고 사람은 명령어를 실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선, R 같은 것들을 한 번쯤 들어본 분도 계실 텐데요.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범용 언어인 파이선보다 이미 통계에 특화된 프로그래밍 언어인 R로 시작하면 좋다고 합니다. 무료이기도 하고요. 이 책은 R을 이용해서 고등학교 확률과 통계 개념을 알려주고, 코딩을 통한 통계학 학습을 돕습니다.


수열의 규칙을 손으로 일일이 푸는 근성을 보여준 사례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을 만큼 (무식하게 풀어본 경험, 한 번쯤 있지 않나요) 교과서로는 직관적인 개념 이해를 하기 힘든 파트이기도 합니다. 2022년 수능부터는 확률과 통계가 선택과목으로 빠지면서 오히려 AI와 데이터과학 붐과는 역행하는 길을 걷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는 학생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확률과 통계 단원이 낡은 방식이라는 것! 실제 현장의 데이터분석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3일 만에 끝내는 코딩 통계>에서는 코딩을 통해 확률과 통계를 배웠을 때 어떤 장점이 있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면서 확률과 통계에 대한 장벽을 낮춥니다.


수식이 있을 때 그것을 실제로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명료한 사고를 강제하는 효과를 가진 게 코딩입니다. 알고리즘적 사고라고 하죠. 아이 학교에서도 코딩을 배우긴 했지만, 시간 채우기식으로만 다루는 느낌이라 아쉬웠는데 확률과 통계를 R 언어로 접근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초 코딩 교육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아 보입니다.


<3일 만에 끝내는 코딩 통계>는 명령어 몇 가지로 간단한 조작만으로 확률과 통계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복잡한 수식이 한 줄의 코딩으로 정리되니 신기하더라고요.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등장하며 눈길을 끌었던 몬티홀 문제도 등장합니다. 세 개의 문 중 하나엔 자동차가, 나머지 두 문 뒤에는 염소가 있습니다. 참가자는 세 개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문 뒤에 자동차가 있으면 상으로 받고 염소가 있으면 꽝입니다. 그런데 참가자가 문을 하나 선택했을 때 진행자는 참가자가 고르지 않은 문 중 염소가 있는 문을 열어서 보여줍니다. 그러고는 참가자에게 선택한 문을 바꿀 기회를 줍니다. 당신이라면 바꾸겠습니까, 바꾸지 않겠습니까.


정답은 바꾸는 것이 낫다 쪽인데 머리 좋은 사람도 항의 서한을 보낼 정도로 풀이를 읽어봐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악명 높은 문제입니다. 저자는 이 문제를 몬테카를로 방법으로 R 프로그래밍을 활용해 시뮬레이션 합니다. 복잡한 수학적 계산 없이도 문제에 대해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코로나19 검사의 정확도, 위양성비율 등에서도 활용되는 베이즈 정리를 통한 조건부 확률, 2022 대선을 앞두고 매일 기사로 만나는 여론조사 결과 등 이처럼 확률을 현실에 본격적으로 응용하는 실용 학문인 통계학의 효용성에 대해 짚어주기도 합니다.


전체집단 통계가 필요한데 실제로는 그중 일부에 대해서만 자료를 얻을 수 있기에 통계학이 필요합니다. 수식으로는 루트가 등장하면서 복잡해지지만 R로 시뮬레이션하니 깔끔하게 정리된다는 걸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학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에겐 R 코드를 보면 무척 아름다워 보일듯합니다.


기초 확률과 통계부터 수학적 공식 없이 컴퓨터에게 일임 가능한 강력한 통계적 추론 기법인 부트스트랩까지 현대 통계학에서 필요한 개념을 모두 정리한 <3일 만에 끝내는 코딩 통계>. 교과서에서는 분량이 늘어나 다루지 못한 통계적 가설 검정도 수학공식 없이 수행해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통계학에 좀 더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공부 가이드까지, R을 이용해 개념부터 응용까지 실생활 통계학의 모습을 보여준 의미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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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
링 마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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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 나서 많이들 읽으면 좋겠다 싶은 소설입니다. 책탑이 가득하지만 책 소개 글을 읽고 찌르르한 느낌이 와서 책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려간 <단절 Severance>.


중국계 미국인 링 마 (Ling Ma) 작가는 기자와 편집자 생활을 끝내고 퇴직금에 의존해 생활하면서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2011년 시카고 눈사태로 교통과 직장이 마비되는 상황을 겪으며 '과연 재난이 닥쳤을 때 회사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이 소설의 영감으로 작용합니다.


“종말이 지나고 새로운 서막이 열렸다.”라는 첫 문장은 종말에 가까운 위기를 겪고 새 희망의 시대를 여는 건가 싶겠지만, 어째 애매합니다. 생존자 “아홉은 줄어들 일만 남은 숫자”라는 말이 으스스합니다.


소설 <단절>은 곰팡이 감염 질환인 선 열병(Shen Fever)이 세계 곳곳을 잠식하는 가운데 뉴욕이 붕괴되는 여정을 보여주는 과거 시점의 이야기와 뉴욕을 탈출한 생존자들이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현재 시점을 오가며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나'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원서가 2018년에 출간되었으니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범지구적 재난을 겪고 있는 이 시대를 예견한 이야기가 아닌 싶을 정도로 책 속 재난 사태와 현재가 닮았습니다. 인상 깊게 읽은 <트릭 미러>의 지아 톨렌티노 작가는 여태 읽은 밀레니얼 세대에 관한 소설 중 최고라고 말할 정도로 오늘날 밀레니얼 세대의 인생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인공 캔디스 첸은 출판 컨설팅 업무를 맡은 담당자로 대형 출판사들의 의뢰를 받아 아시아의 공장에 발주하는 상품 코디네이터입니다. 책 제작 과정에서 보다 저렴한 인건비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나라로 발주하는 일을 하면서 노동집약적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이내 경험하지만 5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즈음부터 뉴욕에 선 열병에 걸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다들 뉴욕을 벗어나는 분위기입니다. 회사에도 확진자가 생기자 결국 회사는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합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부모님도 이미 사망하고 홀로 살아온 캔디스는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습니다. 이미 뉴욕에 진저리 나 있었던 남자친구 조너선으로부터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받지만, 캔디스는 결국 관계를 끊는 것으로 대처합니다. 그저 회사를 오가며 일에만 몰두하면서, 모두 떠나고 남은 빈 사무실을 지킵니다.


"이 열병은 반복의 열병, 루틴의 열병이다." - 단절 


<단절>에 등장하는 선 열병은 기억력이 점차 감퇴하면서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병입니다. 열병에 걸린 매장 직원은 티셔츠를 한 치의 오차 없이 능숙히 개고 또 개고 있습니다. 기억의 병인 선 열병에 걸린 사람들은 각자가 지닌 기억에 무한히 갇히는 셈입니다. 좀비처럼 이지를 잃은 사람들. 똑같은 루틴만 내내 반복하다가 퇴화하는, 무한한 루프 속에서 흘러가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이토록 은유적으로 빗댈 수 있다니요.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들. 텅 빈 뉴욕에 끝까지 남아있던 캔디스조차 뉴욕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회사를 오간 겁니다. 열병이 미치지 않은 아직 추운 국가들은 기본적인 기능을 하고 있지만 봉쇄 조치로 문을 굳건히 잠갔습니다. 일거리도 없게 되자 캔디스는 몰락해 가는 도시의 곳곳을 사진으로 담아 블로그에 올리는 걸로 새로운 루틴을 삼습니다.


현재는 생존자 아홉 명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수치심을, 극소수의 생존자가 된 상황에 막대한 수치심을 느꼈다.”며 탈출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행동, 무엇으로든 위안 받으려 하는 행동,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서 무언가를 훔치는 행동 등 겁쟁이, 위선자, 사악한 거짓말쟁이인 것 같은 공포를 느낍니다.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이내 리더가 생깁니다. 생존자는 선택받은 자들이라며 미래를 만들어갈 책임감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리더입니다. 리더가 제시하는 규칙에 따라 그들은 함께 행동하고, 역할 분담을 하며 생존해나갑니다.


중국계 미국인 링 마 작가의 정체성도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캔디스의 가족사를 통해 이민자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미국인스러움을 연기하고 연마하며 자신을 받아들여 준 나라에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애쓴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캔디스.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열병 환자는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재택근무로 전환된 후에도 선 열병의 확산이 멈추지 않자, 뉴욕의 기본 인프라 유지 관리 인력도 서서히 줄어들고 결국 한 도시가 붕괴되는 과정을 무감한듯 섬세한 내면 묘사로 보여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 <단절>. 팬데믹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가 충분히 상상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페이지가 몇 장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결말이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시의 설계 목적에 맞는 삶을 산다는 것이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도시의 일정과 리듬에 적응한다는 것은 그런 시스템에서 기어코 즐거움을 얻겠다는 것과 같은 겁니다.


선 열병에 걸리지 않은 워커홀릭 캔디스의 행동을 곰곰이 지켜보면서 과연 정말로 선 열병에 걸리지 않은 것일까, 걸린 것일까의 경계가 애매하게 느껴질 정도로 도시가 붕괴되었을 때 습관의 쓸모는 어디에 있는 건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루틴을 반복한다는 것의 이면을 끄집어 낸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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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정치적 동물의 길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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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명제의 하나인 이 말보다 이후 세네카가 번역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에 더 익숙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이라고 했을 땐 나랏일 하는 정치에만 국한해서 생각하게 되어 의미가 완전히 다른 줄 알았는데, 정치의 의미를 되짚어보니 이보다 더 적확한 단어가 어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사람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타인과 더불어 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이고요. 그렇기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인 겁니다.


전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공부란 무엇인가> 등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데 도움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 김영민 교수는 신간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에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불가피한 운명을 사랑하려면 정치로 매일의 삶을 가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의 문제이며, 정치는 그에 대한 응답이다." - 책 속에서 


산다는 것은 고단함을 집요하게 견디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세상에 그냥 잘 되는 건 없습니다. 뭔가를 위해 고민하는 데 무엇이든 하려는 데 정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태어났으면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정치라고 성토합니다.


그런데 그저 집단생활만 한다고 정치적 동물이 될 순 없습니다. 보다 '잘' 살기 위해서는 눈을 떠야 합니다. 김영민 교수의 멸망 시나리오 중 한 가지가 재미있습니다. 귀찮아서 멸망한다는 거죠. 이 세계가 유지되려면 담담하게 욕심 없는 상태에선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욕망이 필요합니다. 개개인마다 이 욕망의 대상은 다를 테지만, 어쨌든 욕망은 귀찮음을 이깁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무임승차가 많습니다. 정치는 진저리 난다며 외면하고 익명으로 숨기 좋은 시대여서 조용히 숨어 지냅니다.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살고 싶어 합니다. 김영민 교수는 인생에 책임을 지려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 내야 하고, 그러려면 타인과 함께하지 않고는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고, 타인과 함께 하려면 결국 정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는 정치란 무엇인지, 정치는 어디에 있는지, 정치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동안 정치인의 일이라 생각하며 나 몰라라 했던 정치의 본질을 깨닫고, 반성된 삶과 숙고된 정치로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허구는 삶의 필요가 요청한 믿음의 대상이다." - 책 속에서


인간 사회는 허구의 신화로 작동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키워드인 허구. 허구를 꾸며내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 공통의 종교적 신화, 국가 신화, 법 신화 등이 인간 사회의 바탕이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는 국민주권이라는 허구로 정치적 소외감을 덜어줍니다. 선거로 소수의 대표를 뽑아 자신이 통치 받는 게 아니라 대리인을 통해 통치를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허구이지만, 허구를 사실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국민을 앞세운 정치 게임 때문입니다. 저자는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픽션은 무엇인지, 그 픽션은 어떤 정치적 픽션을 대체한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도래할 이 사회의 정치적 픽션은 무엇인지를요.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큰 변화를 겪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때, 그러나 포기할 수 없을 때, 변신은 발생한다고 합니다. 김영민 교수는 의미심장한 변화 한 가지를 짚어줍니다. 대통령 선거 투표일 당일 발생하는 '정치적 변신'입니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어도 공약마저도 온전히 지켜지지 않을 텐데, 지지자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말 텐데도 투표장으로 갑니다. 투표로 말미암아 국민이 재탄생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날에도 우리는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할 겁니다.


최승자의 시 세계에서 인간은 종종 개에 비유된다고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고 조용히 되물은 최승자의 시 정신을 이어받아 예술가 이불은 밖으로 뛰쳐나가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당혹스러운 반응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개입했습니다. 예술의 힘을 빌려 인간을 깨우려 든 겁니다. 


더러운 세속의 정치를 외면하고 싶겠지만 정치를 외면하는 것은 세속의 삶 자체를 부인하는 거라고 합니다. 쿠데타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도 세속의 정치는 하루아침에 개선되지 않기에 더더욱 정치란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하고, 정치의 쓸모를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에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을 향해 생각하고 질문하기를 종용합니다. “타인의 수단으로 동원되기를 거부하고,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일을 넘어, 타성에 젖지 않은 채, 생각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생각의 공화국”을 지향합니다.


<파리 대왕>으로 정치의 시작과 끝을 직시하게 하고,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상처와 치유를, <미나리>를 통해 통제할 수 없는 삶을 버텨내는 보통 사람들을, <D.P>를 통해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된다는 교훈을 들려주는 등 협잡과 음모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정치가 아닌, 내 삶에 가까이 자리 잡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다양한 정치적 논의를 다룹니다. 정치에 대한 접근법을 영화, 드라마, 책, 미술 작품을 곁들여 들려주는 방식이라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어 정치적 동물의 길을 향한 발걸음을 가볍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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