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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 위 죄책감
도리스 볼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2년 2월
평점 :
독일 대표 심리학자 도리스 볼프가 알려주는 죄책감의 모든 것 <내 어깨 위 죄책감>. 규칙을 어기거나 남에게 상처를 줬을 때 죄책감이 생긴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명칭에서부터 죄라는 단어가 들어갑니다. 잘못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도리스 볼프 저자는 누구나 느껴봤을 이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사실은 쓸데없이 해롭다고 하는데!
양심의 가책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죄책감은 스스로를 꾸짖고 야단치는 겁니다. 그런데 죄책감이 진짜 감정이 아니라고 합니다.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의 과정일 뿐이라고 합니다. 죄책감은 행동의 개선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죄책감의 해악이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무력해지고, 예민해지고, 우울증을 앓기도 하고, 중독으로 나아가기도 하는 등 신체적·정신적 영향력이 크다는 걸 짚어줍니다.
<내 어깨 위 죄책감>에서 죄책감의 진짜 의미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 죄책감을 털어내는 방법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알려줍니다. 잘못했다고 믿는 우리가 자신과 나누는 부정적 대화의 결과인 죄책감. 이 죄책감은 광고에서도 전략적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 제품을 구매해야만 사랑받고 행복할 거라며 인간 본성의 인정 욕구를 은근슬쩍 부추깁니다. 교육의 수단으로도 이용됩니다. 말이 아니더라도 비언어적 신호에 민감한 아이는 부모의 언행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의 굴레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동화된 무의식적 규칙 준수에 길들여진 경우 죄책감에 취약한 사람이 됩니다.
자신과의 대화가 낳은 결과로서의 죄책감은 상황에 따라 죄책감을 느낀다는 게 '정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고방식이 건강하고 유익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 실수를 용서할 때 느끼는 '후회'가 오히려 맞는 겁니다. 개선과 회복의 방향을 찾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상대에게 받은 상처를 그대로 상대에게 되돌려주고 싶을 때나 죄책감을 느끼고 달라졌으면 하는 기대가 있을 때도 사용합니다. <내 어깨 위 죄책감>에 소개된 죄책감 유발 상황이 무척 다양합니다. '~하기로 나와 약속했잖아', '그때 어땠는지 기억나? 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같은 말도 모두 죄책감을 이용하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죄책감 유발 기술을 쓰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죄책감을 털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책감을 더는 느끼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옳다고 믿으며 죄책감의 덫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사건 자체는 바꿀 수 없는데도 스스로가 내린 부정적 평가에 매달립니다. 기존 평가를 유지한다면 절대 죄책감을 털어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ABC를 손봐야 합니다.
<내 어깨 위 죄책감>에서 말하는 감정의 ABC는 A 상황, B 자신과의 대화/평가, C 감정과 행동 단계로 구분한 죄책감의 모델입니다. A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느낀 상황 자체입니다. B는 그 행동, 생각, 말, 감정을 잘못이라고 평가하며 자신을 나쁜 인간이라고 비난하는 단계입니다. C는 죄책감과 그에 따른 신체 반응을 느끼는 단계입니다.
B에서 부정적 판단을 내릴 때 생각의 오류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초능력을 요구하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행동뿐 아니라 인간 전체를 비난하거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며 지금의 기준과 관념으로 과거의 행동을 평가하는 등 쓸데없는 사고에 사로잡힙니다. 완벽주의, 열등감과 불안, 과도한 책임감과 감수성, 남의 감정을 자기 행동으로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 성차별적인 문화 환경에서 자라거나 교육받은 여성 등은 유독 죄책감에 취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죄책감을 극복하는 단계에서 중요한 지점은 B와 C입니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평가라는 걸 깨닫는 이론적 깨달음 단계를 거치고 해묵은 감정을 무시해야 합니다. <내 어깨 위 죄책감>에서는 죄책감을 후회로 바꾸는 전략을 알려줍니다. 습관 바꾸기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습관처럼 따르는 규칙 리스트를 노트에 적어보자고 합니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을 감정의 ABC로 적어봅니다. 여기서 A 상황은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애를 때려 피가 났다."고 적었다면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A가 아니라 B에 적어야 할 내용입니다. 이처럼 실제 사건과 개인적인 평가를 구분하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조언하고 있습니다. 도리스 볼프는 사고과정의 변화가 자기변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합니다. 평가와 결론을 올바르게 점검함으로써 평가를 수정하고, 실수 많은 인간임을 받아들이도록 돕고 있습니다.
<내 어깨 위 죄책감>에서는 도리스 볼프가 심리치료를 진행한 환자 사례를 통해 다양한 상황에서 감정의 ABC로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짚어보며, 죄책감을 털어내는데 유익한 자세를 소개합니다. 타인의 경험을 통해 문제 뒤편에 숨은 자신과의 대화를 찾아내고 점검해 수정한 평가를 정신적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반복 훈련을 하도록 돕습니다.
아들 교육을 잘못시켰다며 심각한 죄책감의 결과로 중증 우울증을 앓는 사례,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가서 아이들 엉덩이를 때린 죄책감에 시달리며 수면장애와 집중력 장애가 온 사례, 아이들을 너무 방치하는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며 탈진과 공황으로 괴로운 싱글맘 사례처럼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경험했을 죄책감뿐만 아니라 직장, 친구 등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이 소개됩니다.
죄책감이 얼마나 무용한지 <내 어깨 위 죄책감>을 읽으며 배우게 됩니다. 행동 교정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죄책감은 자신과의 대화가 낳은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면 죄책감을 통제하고 극복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죄책감으로 몸과 마음을 옥죄는 대신 더 나은 변화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용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