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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인간의 선량함, 그 지속가능성에 대한 뇌과학자의 질문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1월
평점 :

인간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남다른 도덕성으로 자기중심적인 본능을 억누르고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할 때 가능하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정반대라면?
fMRI를 사용해 인간의 경제적·사회적 의사결정과 관련된 뇌 메커니즘을 연구하며, 공정성 판단과 이타적 선택의 신경학적 기제를 밝히는 연구들을 진행해온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뇌과학자 김학진 저자는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에서 선량한 선택의 이면에 대해 알려줍니다. 5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일반인이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였고, 최신 뇌과학적 증거와 더 많은 사례를 추가한 책입니다.
모든 친사회적 행동과 이타적 동기의 근원에는 타인의 인정과 호감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보상 추구 동기 때문이라니! 속물처럼 여겨져 뭔가 배신당한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뇌가 선택한 가장 유리한 작동 원리라면 어떨까요. 사랑, 공감, 이타성 같은 고귀한 본성으로 여겨지는 인간 심리들이 사실은 뇌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귀함이 훼손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의 호감을 좇는 단순하고 순수한 동기가 성장해 이뤄내는 위대한 결과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비로소 나를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 책 속에서
좋아요에 집착하며 타인으로부터 주목받고 관심을 얻으려 하는 행위에는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자기과시욕이 숨어있습니다. 이것을 인정 욕구라고 합니다. 때로는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으로, 때로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태도 같은 모습으로 발현합니다.
뇌는 평판을 위협하는 행동을 피하고 평판에 득이 되는 행동을 취한다고 합니다. 우리 뇌가 반사적으로 보상의 가치를 계산한다는 연구 결과가 신기했습니다. 머릿속에 계산기가 들어있다니요! 뇌의 복내측 전전두피질 영역입니다. 미간에서 뇌 안쪽으로 5센티미터 정도 들어간 곳에 위치합니다. 뇌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보상을 얻기 위한 과정을 되풀이하는 인지적 구두쇠라고 합니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에서 과거의 선택 경험을 토대로 보상 예측 정보를 빠르게 탐지하고 선택의 가치를 계산하는 겁니다.
이 가치 계산은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말이지요. 내부 감각 신호에 의존했던 선택들이 점차 외부 감각 신호에 의존한 선택으로 변화합니다. 옆에서 누가 먹으니까, 점심시간이 되었으니까 먹는 것처럼요. 그리고 한국 사회처럼 경쟁 문화에 노출된 경험이 길수록 타인과의 상대적 차이에 근거해서 가치를 다시 계산하는 과정이 습관처럼 자동화된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금전적 보상을 받을 때와 칭찬 같은 사회적 보상을 받을 때 놀라울 만큼 유사한 뇌 활동 패턴이 관찰된다고 합니다. 신경학적 수준에서 차이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사회적 보상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타인의 지속적인 관심과 호감은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인간에게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과도한 인정 욕구는 인정 중독이 되기도 한다는 데 있습니다. 분노조절장애와도 관련 있습니다. 일상적인 감사, 사과 표시는 오히려 실망감을 느끼거나 무시당했다고 느끼며 지나칠 정도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게 됩니다. 다양한 형태의 집단 간 갈등의 이면에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뇌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기적 집단은 타인을 위한 선택에서 직관적인 것에 가까운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아닌 배내측 전전두피질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외부 신호를 통합해 분석적인 가치 계산을 하는 겁니다.
타인의 관찰에 의해 자동적으로 촉발되는 도덕적 행동의 기저에 숨겨진 뇌과학적 원리를 자동적 평판 인식이라 부릅니다. 의식적인 지각 없이도 실제로 남을 돕는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반사 행동처럼 보이는 이타적 행동의 기제를 이해하기 위해 이타적 동기가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을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에서 짚어줍니다. 자신도 모르게 친사회적 행동을 학습하고 내재화하는 인정 욕구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도덕성과 이타성으로 포장된 인정 욕구가 자신을 포함한 사회 전체를 파괴하는 형태로 무분별하게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줄 수 있기에 중요합니다.
심리학에서 유명한 연구인 죄수의 딜레마는 모두 합리적이고 논리적 선택을 했을 때 오히려 모두가 규범을 어기는 파국의 상태에 이르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죄수의 딜레마는 국가 간 경쟁적인 자원 남획, 환경 훼손, 분쟁 등 다양한 관계와 결정들을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가 됩니다.
짜증 유발 운전자 1위가 진입로나 출구에서 끼어드는 운전자인데 2위가 놀랍게도 누구든 끼워주는 앞차라고 합니다. 너그럽게 아량을 베푼 운전자 역시 공공의 적이 되는 겁니다. 무조건적인 이타적 행동은 오히려 질투심과 동일한 심리 반응을 유발한다고도 합니다. 이타적 처벌자의 등장입니다. 규범을 어기는 구성원에 대해 처벌하는 이타적 처벌자는 무너진 형평성의 회복을 위해 행동합니다. 복수와 무척 유사합니다.
이는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타성과 공정성을 인정 욕구가 발현되는 또 다른 양상으로 보는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금전적 이익이 생기는데도 공정하지 않으면 거절하는 결과를 낳은 최후통첩 게임처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의 결과로 믿어온 불공정성 판단 역시 감정 반응에 크게 영향받는다는 겁니다.
공감의 신경학적 기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공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정서적, 직관적인 공감은 익숙한 자기중심 관점인 겁니다. 반면 관점 이동은 인지적, 분석적인 낯선 타인 관점입니다. 자신의 것과는 다른 타인의 신호, 의도, 신념 등을 파악하는 능력이 관점 이동 능력입니다. 둘은 매우 다른 신경학적 기제로 작동하고, 공감과 관점 이동이 균형을 이룰 때 타인과 소통하는 데 최적의 기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선량한 사람의 본심에 인정 욕구가 있다는 이야기가 실망감을 들게 하나요? 선행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의도를 의심하게 될까요?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는 자신의 감정이 인정 욕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파악하고 자각하는 자기 인식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숨은 인정 욕구를 인식할 때 오히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스스로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발견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건강한 인정 욕구를 이용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이타적 행동을 유도하며 사회적 목표를 실천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선뜻 남을 돕고, 불공정에 분노하고, 선량하고 정의롭고자 하는 이유를 인정 욕구에서 찾아, 인정 욕구를 중심으로 인간 본성의 근원을 파헤치는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이타주의를 선택하는 뇌의 작동 원리를 통해 인정 욕구를 이해하고, 건강하게 발현해 도덕성과 이타성이라는 궁극적 지향점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