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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지비원 옮김 / 현암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으로 현암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시리즈 읽어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소설 11권을 접했네요. 처음엔 꼭 읽어야 하는 작품이지만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은 그런 근대소설이 아닐까? 선입견이 사실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면서 소세키 작가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도련님>을 읽으며 B급 블랙코미디를 보는 느낌도 들었고, <풀베개>를 읽으면서 그림 같은 문체에 홀딱 빠져들기도 했었네요. 전에는 미처 몰랐던 내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기에 뿌듯한 기분도 들었답니다.
그런데 소세키 책을 더 재밌게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나왔네요.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제목처럼 정말 가~뿐하게 그의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오쿠이즈미 히카루 저자의 입담이 제대로 터지더라고요. 다만 소세키 책 모두가 다 실린 건 아니어서 그 부분은 1% 아쉽습니다.
이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문체를 재현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살인사건>을 쓸 정도로 소세키에게 제대로 홀릭했더라고요. 그런 광팬이 바라본 소세키 소설과 내가 읽어 낸 소세키 소설의 느낌을 비교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소세키 책 가뿐하게 읽어내는 독서법은 소세키 책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핵심은 바로 능동적으로 읽기였어요.
"어떤 소설이 재미있다는 것은 독자가 능동적으로 작품을 읽고 자기 힘으로 재미를 발견해간다는 뜻입니다. 머릿속에 세계를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세계를 만들고 그것을 재미있게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소설의 재미라는 사실..." - 책 속에서
예전엔 재미없었는데 지금은 재미있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기는 것은 소설의 재미란 그때그때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감각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 한 번 읽고 소설, 소설가에게 책임을 돌리지는 말라고 하네요.
나쓰메 소세키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읽지 않아도 제목을 들어본 분이 많으실 텐데요. 그저 고양이가 주인공인 책이라 해서 쉽게 접근했다가 초반만 읽고 중단한 경우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정말 많은가 봐요. 저자가 그 부분을 콕 짚어주거든요. 저자는 '스토리 지상주의를 버려라'고 합니다. 이 책은 오히려 세부적인 것들에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네요. 하긴 원래 1장만으로 끝내려다가 인기를 얻어 계속 연재했던 소설이라 스토리가 소설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풀베개>는 호불호가 갈리는 소설인데요. 저는 한 편의 그림 같은 문체에 반해 이런 문체로도 소설이 완성되구나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백꽃 떨어지는 장면과 오필리아의 죽음을 그린 미술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은 정말 인상 깊었어요. 저자 역시 <풀베개>는 예술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라 회화 감상하듯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소세키 본인도 "아름답다는 느낌이 독자의 머리에 남으면 그만"이라고 말했다네요.
일본에서 영화, 드라마 등으로 많이 제작된 <도련님> 책은 어미를 ~다. 에서 ~습니다로 바꿔 읽어보라고 제안합니다. 그랬더니 와우... 혈기왕성 유쾌통쾌했던 이미지가 순식간에 우울증 환자처럼 바뀌길래 너무 신기했어요. <도련님>은 힘이 넘치는 문장의 역할이란 이런 거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소설이라는 걸 실감했네요.
<산시로>에서는 주인공 산시로에만 주목하지 말고 산시로가 좋아하는 미네코를 눈여겨보라고 합니다. 미네코도 호불호가 갈리지요.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독자의 수만큼 인물의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게 소설의 매력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연령, 성별, 가족 구성이나 사회적 입장이 전부 다른 사람들이 '이것은 내 이야기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소설의 힘" - 책 속에서
나쓰메 소세키 단편집은 아직 안 읽어봤는데, 이 책 보면서 급 호기심이 생겼어요. 특히 <하룻밤>을 이해한다면 그게 더 놀랍다고 말하는 저자. 소세키다운 장난기가 가득한 책이라네요. 이 <하룻밤>이 얼마나 이해 불가한 내용인지 소세키 본인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에 '누가 읽어도 몽롱하고 종잡을 수 없다'고 언급할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도대체 얼마나 몽롱한지 궁금해서... 읽어봐야겠더라고요.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는 미처 몰랐거나 놓쳤던 포인트를 짚어줘서 소세키 소설 가이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연재 중 사망하면서 미완으로 남은 <명암>이 왜 걸작인지 그리고 저자의 애정이 유난히 가득한 <그 후>를 호러식으로 해석한 부분 등 도움되는 글이 많네요.
소세키 소설을 이미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느낌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이제 소세키랜드에 입성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읽어야 재미를 느끼며 읽어낼 수 있을지 감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일반 소설을 읽을 때도 큰 도움되고요. 등장인물들을 틀에 가두어버리는 빈약한 해석으로 끝내지 말고 새로운 시점으로 읽는 방식이라든지, 스토리에만 주목하지 말아야 한다든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님을 짚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