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를 하다 -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해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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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뭘까요.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하는 이론적인 개념으로서의 정치는 멀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성, 정치를 하다>에 등장하는 21명의 여성들은 막연하거나 혹은 식상한 정치를 거부하고 현실과 밀접한 정치를 보여줍니다. 직접 관여하고 행동함으로써 말이죠. 무엇보다도 직업적 정치인 뿐만 아니라 각자 머무는 자신의 영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는데 힘쓰는 장영은 교수는 여성이 여성의 몫을 찾기 위해 수행하는 사회적 실천들을 정치적 행위로 규정합니다. 법률, 행정, 문학, 예술, 교육, 언론, 종교, 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성들이 바로 정치인인 겁니다. 저자는 이들의 도전으로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고 합니다.


<여성, 정치를 하다>에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성공과 실패를 규정하는 대신, 왜 한 여성이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정치에 뛰어드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차별, 멸시, 가난, 고독, 생명의 위협 등을 겪으면서도 왜 그들은 여성 인권 신장에 앞장섰을까요.


78651이라는 숫자가 팔에 새겨진 아우슈비츠 생존자 시몬 베유는 프랑스의 존경받는 위인들이 안장되는 판테온에 안장되었습니다. 시몬 베유는 여성해방 투쟁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인물입니다. 프랑스인들이 '베유 법'이라 부르는 '임신 중단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시몬 베유는 평생 자신의 기억을 부정하지 않으며, 역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위엄을 지켰습니다.


1945년에 출간된 『내 이름은 삐삐롱스타킹』의 동화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새로운 면모도 발견합니다. 어른들의 세계를 거침없이 흔들었던 말괄량이 삐삐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캐릭터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이면서도 당시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을 강력하게 비판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정치 행위 사례를 소개합니다. 명성 드높은 작가가 어떻게 정치적 글쓰기를 예리하게 펼치며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는지 만날 수 있습니다.


케테 콜비츠의 그림은 정말 강렬합니다. 「전쟁은 이제 그만」 (1924) 작품은 이 책의 표지에도 사용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몸소 겪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작품 활동을 펼친 케테 콜비츠. 아들과 손자를 전쟁으로 잃었고, 반파시즘 연대를 추진하다 히틀러 정권으로부터 핍박받은 독일 예술가입니다. "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한 나의 예술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지야말로 정치의 출발점임을, 기꺼이 예술과 정치를 결합했습니다.


포크 가수 존 바에즈의 이야기도 인상 깊습니다. 시민권 운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에 감화해 운동가들과 동고동락했던 인물입니다. 노래와 정치를 분리하지 않은 실천적 정치를 하다 보니 반항적이며 비주류파 여성으로 호도되기도 했지만, 굳건한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세상으로 바꾸기 위해 여전히 노력합니다.


시각 장애에 국한해 바라봤던 헬렌 켈러의 스토리도 놀랍습니다. 1937년 식민지 조선을 방문해 "교육을 주라!"고 조선 사회를 향해 호소했고, 이후 여성 참정권 획득, 인종 차별 철폐, 아동 노동 폐지 등 사회 현안에 관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했던 인물입니다. 특별한 장애인으로만 취급하고 싶어 했던 사회 분위기에서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정치에 뛰어든 용기 있는 행동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국가 폭력 생존자에서 칠레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된 미첼 바첼레트, 다큐멘터리 기획자가 된 미셸 오바마, 자신의 말과 글로 정치에 참여한 언론인 팔라치, 타이완 첫 여성 총통 차이잉원, 그리스의 민주주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애쓴 유명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 등 21명의 여성들이 펼치는 정치적 행위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여성, 정치를 하다>. 2021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맞춰 출간된 책으로, 이 세상 여성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가도록 응원합니다. 저마다의 삶에서 전해지는 진한 감동에 푹 빠져든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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