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조력자살 - 나는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미야시타 요이치 지음, 박제이 옮김 / 아토포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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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로 '좋은 죽음'에서 유래한 말, 안락사 Euthanasia. 그것은 정말 좋은 죽음, 안락한 죽음일까요. 1991년 일본에서 첫 안락사가 시행되었고, 1995년 안락사를 시행했던 의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일본에서는 사실상 현행 의료 제도에서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연명 치료 거부나 중지를 가리키는 안락사(존엄사)는 현행 의료 제도에서 가능하지만, 그보다 일찍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해외로 나갑니다.


저자 미야시타 요이치는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한 전작 <안락사를 이루기까지>에서 안락사가 인정되는 나라와 인정되지 않는 나라를 취재하며 안락사의 법제화 여정과 현재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11월 28일 조력자살>에서는 일본에 사는 안락사 희망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봅니다. 마침 스위스 조력자살 단체 라이프서클에서 안락사를 시행하기 위해 준비하던 한 사람의 여정을 함께하는 기회도 찾아왔습니다.


전작 출간 이후 '안락한 죽음을 희망'하는 이들의 메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안락사를 권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수많은 죽음의 방식 중 하나로 안락사에 대해 고찰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살지 생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눈길을 끈 한 통의 메일. 50세 독신 여성 고지마 미나 씨는 다계통 위축증 난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서서히 전신의 기능이 사라지는 병입니다. 그리고 미나는 "제가 저로 있을 수 있는 동안 안락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안락사는 크게 적극적 안락사와 조력자살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약물을 투여하여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서 용인한 안락사이며, 의사가 제공한 치사약으로 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인 조력자살은 스위스, 미국, 호주 일부 주에서 용인된 방식입니다.


조력자살이라는 어감은 많이 거북한 게 사실입니다. 자발적 조력죽음이라는 말로 대체하는 단체도 있다고 합니다. 일부 국가에서 안락사 법제화는 이뤄졌지만 시행 건수를 무작정 늘리지는 않습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들이 앓는 고통과 고뇌는 일반인들이 헤아릴 수 없을 겁니다. <11월 28일, 조력자살>에서는 고지마 미나 씨가 어떤 고민을 거듭하며 안락사를 바라게 되었는지 그 경위에 집중합니다.


스위스 조력자살 단체 중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디그니스타 외 이 책에서는 라이프서클이 등장합니다. 고지마 미나 씨는 라이프서클에서 안락사를 시행하고 싶어 합니다. 그녀는 한국인 할머니를 둔, 한국의 뿌리를 가진 사람입니다. 서울대 유학생으로도 지냈고, 이후 일본에서 한국어 통번역자로 살았기에 한국과의 인연이 닿아있는 그의 목소리를 더 귀기울여 듣게 되더라고요.


짐작할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앓는 다른 이들의 사례로 등장합니다. 말기 암환자인 요시다 준(가명)과 사진작가 하타노 히로시의 이야기를 통해 안락사의 다양한 문제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완화치료에 대한 이야기도 비중있게 다룹니다. 사실 신체적 고통만 섣불리 생각했었다면, 이 책을 읽으며 심리적 고통에 관한 문제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고통이 시작되기 전에 죽고 싶어 하는 안락사를 희망하는 환자들. 안락사에 대한 동서양의 차이도 엿볼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폐 끼치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게 작용하는 동양 문화와는 달리 서양은 자신의 의사로 죽음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인권이라는 사생관이 두드러집니다.


우리는 안락사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까요. 존엄사와 안락사의 차이는 알고 있는지, 완화 치료는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은 사실 드뭅니다. 죽음에 관해 공공연히 말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 동양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11월 28일, 조력자살>을 통해 환자에게 적절한 다양한 경로를 선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하게 됩니다.


"저는 '삶'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 11월 28일, 조력자살 


스위스로 건너가 시행일을 앞둔 고지마 미나 씨의 마지막을 담은 장은 '최고의 이별'이란 타이틀이 달려있습니다. 일시적인 변덕으로 선택한 것이 아닌, 고지마 미나 씨의 가치관과 사생관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되어 본인의 의지로 결정 내린 조력자살. 온갖 고통을 안고서도 삶과 마주했지만, 그 의미를 찾지 못한 자신의 결정이 난치병을 가진 환자들에게 좋은 예는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습니다.


두 언니의 지지를 받아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 자매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남겨진 두 언니들의 그 후 심정을 듣다 보면 서로에게 얼마나 든든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고지마 미나 씨의 마지막은 행복했으리라 믿습니다.


한국에서 존엄사의 법제화가 이루어진 과정도 2009년 첫 존엄사 판결을 시작으로 2018년에야 존엄사법이 시행될 정도로 지난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갈 길은 멀지만 죽음을 앞두고 인간은 왜 안락사를 원하는지, 자기결정권에 의한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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