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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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자유주의자이자 게으른 야심가라는 수식어가 딱 맞는 미술 전문 기자 문소영의 현실 읽기 <광대하고 게으르게>. 경제학 석사이자 현재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인 저자의 이력으로 에세이의 결을 슬쩍 짐작해봅니다.

 

누가 내가 뒹굴면서 단편적으로 지껄이는 말을 논리적이고 멋진 글로 탈바꿈시켜 주면 얼마나 좋을까. #책속한줄

 

백수 본능을 가졌지만 부모님에게 세뇌당한 백수 거부증으로 삶을 살아내는 것 같다는 저자의 속내는 갈팡질팡하면서도 홀로 우뚝 서고 싶은 마음을 대변합니다. 부지런 떨다가도 이게 내 길인가 싶고, 멈추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프로스트의 시처럼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항상 가지기 마련이니까요.

 

퓰리처상 수상 소설가 프랭크 매코트는 66세에 데뷔작을 썼고, 모지스 할머니는 78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페미니즘 미술 대모 윤석남 등 이처럼 늦게 꽃 핀 대가들이 찾아보면 꽤 많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싱싱하고 서늘하게 날이 서 있다'는 것. 그리고 한발 더 들여다보니 늦게 꽃 핀 이들이 그냥저냥 그 나이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닫습니다. 나는 대기만성형이라며 자기위안 삼는 이들이여, 그냥 늘어져 있다가는 망하는 길이니. 무기력하게 게으르지지는 말자는 게 포인트!

 

 

 

스스로 프로불편러라고 밝힌 문소영 기자는 내가 가진 것들이 있다고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해 얘기 못할 이유는 없다고 당당히 말합니다.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한 현실 세계에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과민 반응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이죠. 알고는 있는데 참 힘들어요. 우리는 부당한 희생자에게서 불안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뭔가 원인을 제공했을 거라 합리화하며 이 세상의 공정함과 믿음을 유지하려 듭니다.

 

마음을 꿉꿉하게 하는 불편한 이야기들은 가치 있는 불편함입니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와 비교해 한국에서 그동안 다뤄온 성의 모습을 짚어주는 장면도 의미 있습니다. 불편한 성의 진정한 파격과 전복을 보여준 셰이프 오브 워터를 처음 봤을 때 느낀 낯선 감정의 정체를 그의 글을 읽으니 이해되더라고요. 성에 관한 이야기는 요즘 읽고 있는 에이미 조 고다드의 <섹스하는 삶>에서 깨달은 감정과 연결되기도 해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획일화된 잣대 속에서 우리는 시선의 노예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은연중에 동화되어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조차 못 하거나 아직 변화의 출발점에서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 문소영 기자의 글은 자극제가 됩니다. 사르트르의 "우리는 지옥을 깨고 나올 자유가 있다."라는 말도 와닿습니다.

 

게으르게,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영화, 책, 미술 작품에서 영감받아 개인과 사회의 불편한 이슈를 단호히 짚어준 <광대하고 게으르게>.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 둘 다를 가진 능동적인 삶을 사는 법을 이야기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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