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다 2003-10-10
동네 이야기를 짓다가 잠든 밤 어제는 마천동 집에 가서 잤다. 동네 어귀에서부터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쳤던 길 위의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아파트 어귀에서 '군고구마 사려!' '사과 사려!' 행인이 보일 때마다 외치는 외꾸눈 아저씨와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받는 그의 아내가 보였다.
잠실역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는, "지금 저 버스가 몇 번이요? 812-1번이 오거든 알려주세요." 외치는 흰 지팡이를 든 만학의 신학생도 만났다. 이 아저씨, 버스에 타고 내릴 때면 고생하는 '남한산성 입구'에서 사는 그 아저씨, 나는 왠지 모르게 반갑고 또 마음이 쓰였다.
이런 것들이, 잠들려는 내 머리 속에 가득 차서 혼자서 주섬주섬 동네이야기를 짓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내 이웃이구나하는 생각에 괜히 감상에 젖었다. 그리고 진짜 동네에 돌아온 것 같아 포근한 기분에 잠도 잘왔다.
지금 내가 독립해 사는 곳은 상수동 극동방송극인데 거기엔 사람 지나간다고 해서 '~~사려!' 외치는 길거리 상인은 없어도 하룻밤 매출은 300만원은 된다는 조폭출신의 떡볶이 장수가 있고, 주말이면 길바닥에 빈대떡을 부쳐놓는 철없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아침 9시까지 택시가 끓는 그 골목, 외국인과 내국인이 엉크러져 함께 망가지는 그 골목을 보고 있자면, 원 나잇 스탠드라도 이건 해도 너무 하는군...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게 아니다.
뭐, 그래도 정 가는 장소는 있기 마련이어서 주말 '희망시장', 사람들 줄이 제일 긴 문어빵 노점과 사먹는 이 없어 이틀에 한 번은 장사를 공치는 불성실한 문어빵 노점도 떠오르고, 사는 건 일이 아니어도 세탁이나 관리에 손이 많이 갈 듯한 옷가게도 눈에 밟히고, 이렇게 꺾어서 들어가면 아무나 붙잡고 데리고 가고 싶은 까페, 어쩌구, 저쩌구가 머리속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렇게 상수동 극동방송국과 마천동 윤진빌딩 앞을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 동네 이야기가 자꾸만 머리에 밟히고 입에 걸려서 여기에도 적는다. 동네이야기로 책 한 권을 써도 다 쓰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책은 꽤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2년과 2003년의 마천동과 홍대앞.. 참 재밌는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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