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자들의 기념비 - 당대비평 특별호, 한국사회의 성과 속-주류라는 신화
강수돌, 박노자, 권명아, 김두식 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2> 젊은 여교사는 또다른 미망인(未亡人)이다.
서교장이 기간제 여교사에게 차 심부름을 시킨 일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떠올려 본다. 교장이 여교사에게 차 심부름을 시킨 것은 공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을 사적으로 대우한 것이다. 집에서 부인에게 하듯이. 이 말은 아주 중요하다. 문제의 발생은 여성차별이었는데, 결과는 전교조 탄압으로 가고 있다.

학부모, 신문, 어디 할 것 없이 전교조 탓이라며 공분한다. 그토록 공분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집단적 오인 메커니즘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28세의 기간제 여교사는 나이도 어린데다, 사회적 위치도 불안정하다. 그런 그녀는 살아있는데,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58세의 교장은 그만한 일로 명예를 훼손당하고 자살했다.

사람들이 흥분하는 대목이 이 부분은 아닐까? '한낱 차 심부름 때문에 58세의 교장 어른이 자살했다'. 공적 영역에서 만난 여성을 자기 아내처럼 대한 것이 무슨 문젠가란 생각.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은 또 있다. 교장과 여교사 사이에 전교조가 조정 역할을 했다는 것. 이로서 시나리오는 완성된다. 대놓고 성차별을 부인할 순 없으니까, 전교조를 잡고 늘어지자!

만약, 전교조가 없었다고 치자. 여교사와 서교장이 실랑이를 벌이다가 서교장이 죽었다. 그 때는 누구 책임일까? 말할 것도 없이 여교사 책임이다. '차 심부름 거부'는 결코 '존경받아야 할 남자 어른의 죽음'을 이길 수 없다. 집단적 오인 메커니즘은 이렇게 무섭다.

<3> 책 밖으로 나오며
1> 이름 붙여지지 않은 아웃사이더는 바로 나
28세 기간제 여교사는 국제이주 노동자, 매매춘 여성, 트랜스 젠더도 아니지만 철저한 아웃사이더다. 아웃사이더를 믿어준 전교조도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다. 이들의 만남은 아름답지도, 휘황하지도 않다. 다만 처절할 뿐이다. 처절하게 싸워도, 끝내는 비난만 받을 소수자.

29세의 기혼 여성인 C는 사회적 오인 메커니즘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도 이제 곧 왕따 당할 것이다. 국제이주 노동자라서? 비정규직 여성이라서? 매매춘 여성이라서? 아니다. 단지 사회적 오인 메커니즘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C는 아웃사이더다.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4> 제단되는 글쓰기, 그 아슬아슬한 교합
1> 지적 흥분과 희열
정희진 씨가 쓴 글을 읽는 동안 손에 땀이 났다. 흥분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거였는데, 왜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깨닫는 즐거움이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녀의 글은 솔직했고, 적나라했으며, 이성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와 아줌마의 차이, 오빠와 딸의 차이, 미혼과 기혼의 차이를 배운다. 성차별은 낡았지만 힘이 세다.

2> 이 글을 쓰는 까닭,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목적
이 글을 쓰는 까닭은, <탈영자들의 기념비>를 읽으며 어떤 사유를 했는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추천의 글'을 원할지 모르나 그렇게만 쓰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는 자에게는 그만의 욕망이 있고 읽는 자에게는 또 그만의 욕망이 있으나, 이번은 어떻든 이 둘을 합쳐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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