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둘을 만났다. 어느 지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대학시절 서로에게 상처받았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상처'라고 해봤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유치하고 웃음이 나올 뿐인 이야기였지만. 정말 신기했던 것은 상처를 준 사람은 그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상처를 받고 속으로 가슴앓이를 했던 사람은 그것을 아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재밌는 사실은 마음이 상해서 상대에게 그것에 대해 말.을.했.을.경우- 자제해달라든가 그 일로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아느냐 등. 그렇게 속을 털어놓은 경우에는 상처 받은 본인도 그 일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기억하거나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 말을 한다는 것. 나의 억울함과 슬픔과 분노를 표.현.한.다.는. 것. 그것에는 그 자체로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우리는 내내 "어, 정말? 내가 그랬어? 이상하다...... 기억 안 나는데?" "뭐가? 내가 얼마나 맘이 상했었는데 그걸 기억 못 한단 말이야?"와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면서 그 유치찬란한 기억과 상처를 떠올리며 정말, 유쾌하게 웃었다. 이제는 그런 일쯤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그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우리가 그만큼 여리고 약하고 유연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언제 나이가 이렇게 됐지, 라고 말하면서 그 시절이 어제 일 같다고 하지만. 그 세월의 간격만큼 우리는 성숙하고 유연해졌다. 말을 가려 들을 줄도 알게 되었고, 나의 약점을 농담으로 삼아도 나에 대한 비난이 아닌, 농담 자체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속으로 끙끙 앓으며 다른 식으로 퉁퉁 불만을 튕겨내는 대신 공손하고 자연스럽게 "내 마음이 이러이러해서 아팠어."라고 표.현.할.줄.알.게.되.었.다. 내가 가진 분노와 상처는 표현하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표출돼 나와 상대를 괴롭히게 된다는 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래서 좋은 건 이런 거다. 우리의 마음은 더 깊어지고 그러면서 타인의 마음도 더 많이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의, 지금 우리의 모습이, 부쩍 성장한 우리의 모습이 아주 흐뭇하고 좋고 감사하다. 나이 어린 사람의 성숙함은 슬프지만 나이에 걸맞은 성숙은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