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다면 새로 태어나고 싶다. 여러 번 태어났지만 이번 생에 또 기회를 얻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저 무의식의 밑바닥에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와 행복들이 오롯이 남아 있는, 그런 태어남이 아니라. 정말로 이전에 아무것도 없었던, 순백의 영혼으로, 새로 태어나고 싶다. 인식을 하든 못하든 지난날의 그 무엇들이 의식의 뒤편에 남아 있다는 것이, 그래서 그것이 때때로 수면 위로 올라와 나를 괴롭힌다는 사실이, 괴롭다.

우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 딱히 어떤 시절의 큰 상처나 아픔이 아니라하더라도 작은 실수 하나, 그 실수들이 모여 알게 된 두려움과 패배감, 외로움들이 의식 못하는 사이에 나를 가로막아 서고 있고, 같은 실수를 자꾸 반복하면서도 쉽사리 고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쩌면 여러 생을 거치면서도 똑같은 일들을 반복할 뿐이라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좀더 능숙하게 살고 싶은데, 어째 점점 내 몸짓은 서툴어지기만 하는 것 같아서. 남들이 쉽사리 넘겨버리는 것들을 껴안고 고민하는 사이 그들의 몸짓은 날듯 가벼워지고 있는 것 같아서, 요즘은 조금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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