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열대야

언제였던가? [뉴 노멀] 이라는 영화를 봤었다.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바탕으로 여러 상황들을 그려내는 옴니버스식 영화였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몇 있어서 나중에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실 최근의 나는 조금 무기력증에 빠진 것처럼 뭔가 의미있는 일들에 잘 집중을 못하고 있다.

북플 앱에서 작년 오늘 쓴 글을 열여봤다.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며, 에어컨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생활하는 이야기였다. 벌써 몇 해째 여름마다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아직 혼자 사는데, 무더위 때문에 에어컨을 설치한 친구와 혼자 신축 빌라로 이사한 친구 등 친한 친구이며, 에어컨이 있는 사람들 집을 옮겨다니며 열대야와 폭염이 심한 한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올해는 조금은 양상이 달랐다. 애들 엄마와 아이들이 태국으로 며칠 여행을 간다고 애들 엄마 집으로 와서 고양이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고양이들이 더위에 힘들어하면 안 되니까 사람이 집에 없어도 에어컨을 늘 켜두고, 조금 높은 온도와 제습 운전을 설정해 두라고 요청 받았다. 생각해보니, 친한 친구이자 가끔 이삼년째 가끔씩 한 여름에 신세를 지곤 했던 지인도 고양이 때문에 에어컨을 끄지 않고 조금 높은 온도로 계속 켜두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전기 요금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인버터 형 에어컨과 전기요금 누진 요금제 개편 등으로 가능한 상황이었다. 암튼 한 편으로 이 열대야에 집에서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고, 정상적인 생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데, 어느 집 고양이들 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고양이들이 나보다 훨씬 쾌적한 환경에 살고 있구나. 나는 그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집에 매달 양육비를 대주고 있는데도, 에어컨도 없이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며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매일 누군가 나를 재워줄 지인과 친구를 찾아다니고 있구나.

애들 엄마와 아이들이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는 시점에 나는 또 어느 집으로 혹서기 대피를 가야할까 고민이었다. 정말 다행히 친한 친구 하나가 며칠간 자신의 집을 쓰라고 출입 정보 등을 알려줬다. 가족 모두가 약 10일 가량 일본 여행을 다녀온다고, 그 동안 집이 비니까 자기 방에서 생활하라고 제안했다. 아주 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그 집으로 이사하는 날 이삿짐 옮기는 걸 도와주기도 했던 친구이다. 그 친구는 이사짐 옮기는 걸 도왔던 사람을 집이 비는 동안 묵게 해주는 걸 부모님도 모두 승낙했다고 알려줬다. 평소 여름마다 내가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살아가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본인은 가족들 때문에 나를 돕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라서 그런 제안을 한 것 같았다. 암튼 감사한 마음으로 그 집에 며칠 머물 예정이다.

정말 에어컨 없이 밤에 잠을 자는 것이 두려운 날씨다. 선풍기 정도로는 이 온도와 습도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매년 이런 폭염과 열대야가 반복되는 이 땅에서 언제까지 에어컨 없이 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장마? 열대지방 국지성 폭우, 스콜?

기후위기 수업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한 것도 벌써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나라는 이제 아열대 기후에 가깝게 변해서 장마의 양상도 달라졌다고. 이젠 비가 와도 중부 지역, 남부 지역 이렇게 넓은 지역에 긴 시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좁은 특정한 지역에 강력한 폭우를 내리고는 금방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고. 최근에 본 기상청 기후 예보관의 인터뷰에서는 비구름이 좁은 지역에서 생성되어 주위 기압의 영향으로 쉽게 움직이는 탓에 정확한 일기예보를 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점점 장마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내가 이런 장마의 양상을 설명한 단어 중 하나는 열대지방의 국지성 폭우인 스콜이었다. 정말 아주 짧은 시간 엄청난 폭우를 퍼붓고는 금방 떠나버리는 비를 몇 년째 경험하고 있다. 작년에도 한참 엄청난 폭우가 퍼붓길래 잠시, 거의 5분 가량 어느 건물 아래서 비를 피했는데, 미친듯이 퍼붓던 폭우가 약 5분이 지나자 그쳤던 기억이 있다.

최근 나는 낮에 배송 일을 하다가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낮이었고 햇살이 강한 뜨거운 날씨였다.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이슬비 수준이었다. 그날은 배송 건수도 많았고, 장거리 이동이 대부분이라 서둘러 이동 중이었다. 한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햇빛이 쨍한데 비가 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다는 생각을 하며 저 멀리까지 시야가 닿는 곳을 보고 있었는데 문득 깨달았다. 저 멀리에서는 비가 내리는 양상이 달랐다. 폭우였다. 아직 내가 머무는 곳엔 이슬비 수준의 잔잔한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왁 쏟아붓는 폭우가 저 멀리에서부터 실시간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냥 감으로 느낀 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평소 매일 운전하면서 느끼는 거라 막 틀린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는데, 폭우가 저기 약 700미터 거리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약 400미터 거리로 다가오자 소리가 먼저 들렸다. 익숙한 폭우의 소리가 들리는데, 아직 내 차가 있는 곳에는 조금씩만 비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폭우가 빠르게 다가와 내가 정차해 있는 교차로에 들이쳤다. 순식간에 엄청난 소음과 함께 비가 쏟아졌고, 와이퍼 속도를 최대로 설정해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폭우 때문에 약간 번져 보이는 시야 너머로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는 걸 확인했다.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엑셀러레이터를 밟아 차를 움직였다. 자동차라는 문명의 도구도 폭우라는 자연 현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50킬로미터 제한 속도 도로에서 약 20킬로도 안되는 속도로 거북이처럼 움직이며 그 동네를 벗어나고 있었는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비가 퍼붓는 소리가 달라졌다. 앞을 보니 점점 더 빠르게 비가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폭우가 저 멀리에서부터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또 비가 잦아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했다. 이런 것이 바로 열대지방에서 자주 일어나는 국지성 폭우인 스콜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 본 기상청 소속의 한 기후학자는 스콜이랑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폭우의 양상은 비슷하지만, 그것이 일어나는 원인과 성격이 달라 스콜이라 부를 수는 없다고 말하더라.

고층 아파트와 엘리베이터

몇 차례 배송을 갔던 조합원 집은 47층에 있었다. 47층이라! 젊은 시절에 한창 막노동을 하며 아파트 공사장을 다녔던 때에 제일 높은 현장은 20층 언저리였다. 어쩌다 10층 이상 고층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아직 뼈대 외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 때문에 고소공포증을 느끼곤 했었다. 그땐 그래도 20층 언저리가 가장 높은 아파트였는데, 이젠 50층 정도로 바뀌었구나. 궁금한 것은 엘리베이터 버튼이었다. 20층 정도까지는 지하4층 정도부터 꼭대기 층까지 모든 층의 버튼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당 층수를 찾아서 누르는 구조다. 하지만 이 건물 엘리베이터는 달랐다. 층수를 표기한 버튼이 아예 없었다. 디지털 키패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47이라는 숫자를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무사히 배송을 마치고 다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올 때는 화면에서 영문 B와 숫자 2를 눌렀더니 다시 빠르게 하강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조금은 겁이 날 정도였다. 처음엔 엄청 신기했는데, 몇 달 동안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지기는 했다.

며칠 전에는 14층으로 배송을 갈 일이 있었다. 지하주차장 3층에서 공동현관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찾아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는 표시가 보이며 운행하지 않는 상태였다. 내가 든 상자는 제법 무거웠고, 올라갈 곳은 14층, 여기는 지하3층. 요즘 아파트는 별도로 L층이 존재하는 곳도 많다. 적어도 17층, 아니면 18층을 계단으로 올라야 할 상황이었다. 불가능했다. 이후에 배송할 곳들도 많은데, 여기서 이 무거운 상자를 들고 17층 이상을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냥 맨몸으로 가도 10층 이상은 체력적으로 힘들다. 아직 20대였던 시절에는 40킬로그램 짜리 쌀 가마를 메고 16층 가량 계단을 올랐던 적이 있었다. 그날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었다. 그때는 젊어서 별 생각 없이 당연히 계단을 그냥 올랐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조합원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 분은 상황을 이해하고 계단실 입구에 상자를 두고 가시면 나중에 엘리베이터 점검이 끝나고 찾아가시겠다고 했다. 나는 계단실 입구에 상자를 놓아둔 사진을 찍어 보내고 다음 배송지로 출발했다. 만약 이 건을 계단을 올라야 했다면 아마 그날 전체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교통사고 결과

저번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던 상황을 썼었다. 그날따라 지하주차장에서 직접 올라갈 통로가 없는 배송 건 때문에 시간을 많이 허비했는데, 하필 다음 매장에서는 배송 건이 유난히 많으니 얼른 오라는 연락이 왔었다. 계속 전화를 받지 않던 조합원과 어렵게 통화 연결이 되었는데, 그는 지하주차장에서는 직접 연결되는 통로는 없으니 지상으로 올라와서 해당 건물을 찾아오라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했다. 내가 해당 아파트 단지를 여러차례 다녀봤는데, 지상으로는 차로 접근할 길이 없었다. 오직 지하주차장으로만 차량이 드나들도록 설계된 아파트였다. 그럼에도 그 조합원은 그런 건 경비실에 문의하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급한 마음에 일단 지하주차장을 나가려고 후진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서 고개를 뒤로 돌렸는데, 뒤에 갑자기 없던 자동차가 있었고 접촉사고가 생겼다. 황당한 건 그 운전자의 태도였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 듯 행동하며, 속도가 거의 없는 상태의 아주 가벼운 접촉 사고였음에도 자신과 동승자가 놀랐으니 병원을 가겠다고 했다. 참, 어이가 없었다. 보험회사 담당자는 예전과 달리 이런 경우 병원 가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사고가 난 책임이 내 쪽에 조금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경미한 접촉으로 병원을 간다는 것, 그것도 운전자와 동승자가 모두 가겠다는 것은 납득하기도 용납하기도 어려웠지만,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며칠 전에 보험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상대측 과실도 일부 인정이 되었고, 상대방이 병원을 갔으나 딱히 사고로 인한 부상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너무 당연한 결과였는데, 결국 이렇게 된 상황 자체는 여전히 납득도 용납도 되지 않았다. 그 여성들은 도대체 뭘 믿고 병원을 가겠다고 했을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그런 몰상식한 짓을 저지르는 걸까? 참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아침 일찍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일찍 자려고 했는데, 남의 집이라 그런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꿈에서도 이런 저런 악몽들이 반복되며 새벽에 깨버린 후에 다시 잠들지 못했다. 어차피 잠도 못 자는 상황이면 글이나 쓰자라고 생각해, 작고 불편한 폰 화면으로 이 글을 두드렸다. 오전 일정은 어떻게든 되겠지만, 오후에 운전할 때 졸릴까봐 걱정이다. 오늘은 커피를 좀 많이 마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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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7-28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여름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넘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