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때, 음악을 켜놓고 책을 읽거나, 뮤직비디오나 영화 음악 등을 찾아서 볼 때가 많다. 한동안은 인도영화의 흔히 맛살라 장면이라 말하는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만 찾아서 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날 유튜브 자동재생 덕분에 영화 [피치 퍼펙트2]의 Riff off 장면을 우연히 함께 봤는데, 아이들이 엄청 좋아했다. 몇 번을 다시 보고, 나중엔 영화도 찾아서 봤다. 이 장면을 보기 전에 [피치 퍼펙트]를 먼저 보았던 나는 그 1편의 Riff off 장면도 보여줬다. 이 장면도 영화로 봤을 때는 제법 재밌었고, [like a virgin]을 포함해 유명한 노래들이 (짧게) 많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등장인물의 다양한 구성과 편집 등을 보면 2편이 훨씬 더 재밌게 느껴지긴 한다. 


그렇게 몇 번씩 이 장면을 보고 난 아이들은 나중에 혼자서 여기 나왔던 노래 중 일부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팝송이라곤 전혀 알지 못하는 (아니 내가 틀어놓은 노래들 중 다수가 팝송이니, 아예 모르는 건 아니고 조금 들어본 이라 표현하느게 맞겠지만) 작은 아이가 특히 그랬다. 큰 아이의 말에 따르면, 작은 아이가 집에서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그 장면에서 나왔던 몸짓까지도 따라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세번째 미션 첫 곡으로 '다스 사운드 머신'이 부른 곡이 바넷사 칼튼의 [A thousand miles] 인데, 이 곡의 도입부를 부르며 다스 사운드 머신 멤버들이 로보트 처럼 팔다리를 움직이는 춤을 추는데, 그 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며, 그 노래를 흥얼거린다는 것이다. 작은 아이가 그렇게 따라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놀라우면서도, 그럴만 하다 싶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 나이때쯤 가사를 알지도 못하는 팝송을 따라 부르고, 티비에 나오는 춤을 따라 추기도 했으니 말이다.
















암튼 이 밤에 잠이 안와서 별 짓 다 해보다가 결국 글이나 써야 겠다 생각한 건 바로 저 Riff off 장면의 세 번째 미션 때문이다. 주제는 'i dated John Mayer' 였다. 처음 이 영상을 봤을 때부터 영화를 본 후에도 이 주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존 메이어라는 가수와 관계있는 노래'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dated 라는 단어의 뜻을 알면서도 제대로 해석하지 않았던 것. 그래서 '톤 행어스'가 티나 터너의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을 부르고 탈락하는 장면을 보고 작은 아이가 왜 그런 거냐고 물었을 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돌아가고나서 찾아보니 그 주제는 말 그대로 존 메이어와 사귀었던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랑 사귄 사람이 얼마나 많길래, 그게 미션 주제로 나와? 보통 미션 주제는 '90년대 힙합(2편)' 이라거나 '80년대 여성 가수(1편)' 처럼 시대와 성별 혹은 시대와 장르로 넓게 정한다. 혹은 '엉덩이에 대한 노래(2편)' 나 '섹스에 대한 노래(1편)' 처럼 '엉덩이' 나 '섹스' 처럼 자극적인 소재의 특정 단어가 들어간 노래로 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넓은 범위를 정해줘야 참가자들이 즉흥적으로 노래를 떠올리고 부를 수 있을텐데, 존 메이어와 데이트 한 여성이 얼마나 많길래, 하나의 주제가 된 단 말인가? 


그래서 찾아봤더니 정말 많았다. 게다가 놀랍게도 대부분 내가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었다.(즉, 유명한 사람들이란 얘기) 검색을 통해 찾은 'Did John Mayer Really Date Tina Turner? 'Pitch Perfect 2' Raises An Important Question' 이란 제목의 한 미국 인터넷 언론(아마도) 기사는 친절하게도 연도별로 존 메이어가 사귀었던 연예인들의 명단과 사진을 알려줬다. 2001년 제니퍼 러브 휴잇 부터 언급한 대부분 사람들과 교재기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바넷사 칼튼은 2002년부터 몇 년간 사귄 것으로 추정했다. 제시카 심슨, 민카 켈리(이 분은 누군지 모르겠네), 제니퍼 애니스톤, 테일러 스위프트, 킴 카다시안, 케이티 페리가 그 명단이었다. 와! 많이도 사귀었구나. 게다가 이들 중 1명만 빼고 다 알만큼 유면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곡을 부른 가수가 5명이나 있다.


여기까지 확인하고 나니, 저 문장이 얼마나 흥미로운 미션이었는지 깨달았다. 영화에선 바넷사 칼튼의 [A thousand miles]과 테일러 스위프트의 [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가 나오고 앞서 말했듯 톤 행어스가 티나 터너의 노래를 불러서 탈락하면서 끝났다. 이왕이면 제니퍼 러브 휴잇의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 이나 [take my heart back] 도 나왔으면 좋겠다 싶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둘 다 느린 곡이라 분위기상 안 맞을 수 있겠다 싶다. 그럼 제시카 심슨의 [Irresistible] 은 템포와 분위기가 다 적당한 것 같은데, 또 [I Wanna Love You Forever] 는 살짝 느리긴 하지만 분위기는 충분히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안 나왔을까? 테일러 스위프트의 곡은 하나 나왔지만, 노래가 아쉽다. 그보다 더 좋은 곡도 많은데. 게다가 케이티 페리 역시 어울릴만한 곡이 많은데 하나도 안 나왔다.


물론 이야기의 흐름 때문에 한 주제에 많은 곡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많은 고려 끝에 바네사 칼튼과 테일러 스위프트를 한 곡씩 담았을 지 모른다. 하지만 또 궁금한 건 왜 하필 탈락곡을 티나 터너로 정했을까? 게다가 영화에서 존 메이어의 개인 비서였다는 톤 행어스의 멤버가 티나 터너를 부른 후, 탈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진짜'라고 답했다. 정말 대선배 티나 터너와 젊은 신예 존 메이어 사이에 뭔가 있다는 암시인가? 저 위에 언급한 기사에서는 존 메이어가 티나 터너를 만났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여러 연예인들과 만나온 시기를 살펴보면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을 거라고 썼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아마 전혀 있을 수 없을 경우의 수를 떠올리려 고심하지 않았을까?


암튼 이 영화 덕분에 2000년대 초반 내가 한창 좋아했던 바넷사 칼튼의 [A thousand miles]을 멋진 아카펠라 버전으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아주 짧아서 아쉬웠지만, 맨 처음 이 장면을 보면서 '어! 이 너무나도 익숙한 노래는 뭐지?' 하면서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가, 나중에 폰에 저장된 음악을 듣다가 바넷사 칼튼 본인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고 깨달았을 때 무척 신기했다.


또 하나 이 장면의 묘미는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다스 사운드 머신과 바든 벨라스의 경쟁 외에 '톤 행어스', '그린 베이 패커스'의 개성 넘치는 인물들과 그들이 들려주는 멋진 화음의 아카펠라다. 모두 짧아서 아쉽지만 정말 인물의 개성이 딱 드러나는 멋진 장면이다.


피치 퍼펙트 3편이 만들어질 거라는 소식은 벌써 들었는데 언제쯤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3편에도 Riff off 장면이 있겠지? 이번에는 어떤 주제들로 어떤 곡들을 담았을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3편이 나오면 좀 더 비중있는 역을 맡았으면 하는 배우가 있다. 1편의 Riff off 장면에서 리한나의 [S&M] 에 맞춰 섹시하게 춤추고, 보이즈 투 맨의 [I'll make love to you] 를 섹시하게 불렀고, 위에서 소개한 2편 Riff off 에선 첫 미션 '엉덩이에 대한 노래' 에서 플로 라이다의 [low] 를 멋지게 부른 알렉시스 냅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시리즈의 주인공 베카 역의 안나 켄드릭이나 2편의 주인공 격인 헤일리 스테인펠드 보다 이 사람이 훨씬 더 눈에 띈다.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 덕분에 춤을 추면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본인이 부른 [low]의 가사처럼 그가 춤을 추면 클럽 안의 모든 이가 그를 쳐다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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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쁘다 하고 살다보니 주위 사람들이 이제 내가 바쁜 건 아주 당연한 걸로 받아들인다. 잦은 회의와 이어지는 야근. 자꾸만 쏟아지는 일들. 그런 일들에 치이고 파묻혀 지내면서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건 술과 담배와 운동과 하소연을 들어주는 몇몇 지인들 덕분이다. 아, 강의도 있다.


강의를 하는 건 내게 무척 즐거운 일이다. 무척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고, 준비 단계에서부터 시간도 많이 투여해야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내가 확신하는 신념을 전달하는 것은 기쁨과 보람을 함께 느끼는 일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강의 요청이 더 많아졌다. 학교 강의도 더 많아졌고, 에너지자립마을을 비롯해서 성인 대상 강의도 많아졌다. 둘 다 나름대로 재미있다. 다만 사전에 잘 준비하지 않으면 대상에 맞는 강의를 하기 어렵다. 역시 준비가 핵심이다.


작년에도 강의했던 동네 학교 2곳의 강의 요청이 이번에도 들어왔다. 지역을 대표한다고 표현할 만한 여고 2곳이다. 작년보다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에 준비를 했는데, 한 학교는 작년에 내 강의를 들었던 아이들이 서너명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동아리 차원에서 강의를 들어서 그런가보다. 물론 확 업그레이드 시킨 강의를 준비했기에 그리 신경쓰이지 않았다. 또 한 학교는 한 반이 함께 왔는데, 이 친구들 강의를 듣는 태도도 좋았고, 강의 후 이어진 팀별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강사로서 무척 만족한 시간이었다.


이후 남고생 거의 40여명 강의가 있었는데, 진짜 힘들더라. 2시간 강의 후 목이 완전히 가버렸다. 계속 떠들고, 딴 짓하는 아이들 때문에 자꾸 목청을 높이다 보니 목이 쉴 수 밖에.


하루는 작은 아이가 다니고 있는 공동육아방과후협동조합에서 초등 저학년과 부모를 위한 에너지 강의를 했다. 하필 다른 일로 바쁜 시기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초등학생 대상 강의는 정말 오랜만이라 조금 어려우리라 예상했다. 확실히 오랜만에 초등 강의를 하다보니 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걸 스스로 느꼈다. 너무 욕심을 많이 부렸다. 하긴 어디 초등 강의 뿐이겠는가. 지금껏 내 강의를 돌아보면 난 늘 욕심을 과하게 부려왔다. 하나라도 더 설명하려고 빠른 말투로 급하게 말을 하다보니 강의 후반부로 갈수록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늘 있었다. 고치려고 마음 먹어도 쉽지 않더라.


암튼 이번 방과후협동조합 강의에서 좋았던 건 아이들의 반응이 아니라 부모들의 반응이었다. 처음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차근차근 쉽게 시작했던 강의가 점점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내용으로 바뀌어 갔다. 스스로 깨닫고 있었지만, 점점 집중력을 잃어가는 초등생들을 다시 끌고가기가 너무 어렵다고 판단하고, 차라리 부모들이라도 제대로 잡자고 생각했다. 부모들의 반응은 확실히 좋았다. 여러 명이 다시 한번 어른 대상으로 좀 더 자세한 내용으로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막연하고 어려운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내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되고, 작지만 실천을 해야 겠다는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이런 반응 덕분에 강의를 하면 나도 즐겁고 기쁘다.


어느 중학교 교사 직무연수 프로그램을 가서도 반응이 무척 좋았다. 이 강의는 교사 대상이어서 특히 더 준비도 많이 했고, 신경도 많이 썼다. 기대한 만큼 좋은 반응이 나와서 나도 무척 좋았다.


오늘은 대중교통으로 거의 3시간을 이동해서 강의를 하고 왔다. 강의가 오전 10시 였는데, 7시 이전에 출발해야 했다. 평소 출근 시간이 늦은 편이라 그 시간에 움직여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제 밤 늦게까지 강의 자료를 손보고, 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잠을 거의 못 잤다. 무척 피곤했지만, 초행 길이라 졸지도 못했다. 창 밖 풍경을 살피며 안내 방송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했다.


약 20명이 참여했는데, 확실히 그린리더 과정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듣는 분들이라 강의 집중도가 남달랐다. 나는 사람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더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게 되는 편인데, 오늘 그 상한치를 찍은 것 같다. 다만 시간에 쫓겨서 후반부로 갈수록 완급 조절을 하지 못하고, 빠른 말투와 급한 진행을 또 반복했다. 강의를 마치고 진행자가 "원래 그렇게 말투가 빠르시냐고?" 물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지는 않은데, 시간에 쫓겨서 그랬다." 답했다. 


다음에는 좀 더 시간을 충분히 갖고 부르겠다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편도 3시간, 왕복 6시간의 먼 거리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강의는 완전 만족스러웠다. 이런 날엔 목이 좀 아파도, 에너지를 확 쏟아서 좀 피곤해도 괜찮다. 기분이 좋으니까.


또 어디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게 될까? 벌써 또 다음 강의가 기대된다. 근데 다음 강의는 초등학교다. 당장 초등학생 눈높이의 강의자료를 보강해야 한다. 그래도 강의자료를 만드는 일은 다른 일보다 즐겁다. 아이들과 소통할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 반면 원고 작업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다. 아니 대다수의 문서작업이 그렇다. 오늘도 벌써 마감을 2주나 넘긴 원고 하나를 붙들고 씨름하느라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이미 보낸 원고가 어느 정도 완성도를 달성했다고 판단했는데, 분량을 확 줄여달라고 했다. 내가 제일 못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분량 줄이기다. 기본적으로 무슨 글을 쓰더라도 길게 쓰는 버릇이 있다. 편집 일을 해봐서 남의 글 줄이기는 익숙한데, 내 글은 도무지 못 줄이겠다. 아! 내 자신이 완전히 소진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빨리 가서 술이나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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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5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래 링크를 누르고 이름 적고, 동의 버튼만 눌러주시면 됩니다.



fax.nocablecar2015.org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다시 부결시켜야 합니다. 
문화재청에 청원팩스 보내기 함께 동참해주세요!

작년 12월에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으로 사실상 무산되었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다시 추진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은 부당하다’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행정심판결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이례적이고 비상식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행정심판의 후속조치로 문화재청에 재량껏 처리할 수 있도록 권고를 한 상황입니다. 이제 문화재청이 전문성과 권위가 있는 문화재위원회에서 다시 설악산 케이블카 사안을 심의하고, 재차 부결시키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모호한 태도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결정을 미루는 등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해 하고 있습니다. 공문을 보내며 ‘문화재위원회가 재심의를 할 수 있는지, 재심의 없이 사업을 통과시킬 수 있는지’등의 질문을 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정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는 문화재 관리 행정부처의 권위와 권한을 자기 스스로 내팽겨 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에 문화재청에 아래와 같이 요청해주기시 바랍니다.
-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문화재현상변경심의를 재개하고 즉각 부결처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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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 공산당 트로이카


꽤 오랫동안 일제시대 조선 공산당 남성 트로이카인 김단야, 박헌영, 임원근 그리고 여성 트로이카인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이 여섯 명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위 세 명이 개울물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진을 시작으로 그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날 이후로 줄곧 생각해왔다. 물론 나는 작가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긴 시간 자료를 조사하고, 그 자료들 사이의 비어있는 시간을 추적해나갈 재주도 여유도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 여유가 되면 그 지난하고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작업을 한 번 해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선수를 뺏겼다. 여성 트로이카 세 명의 삶을 담은 책이 나왔다. 당연히 그들과 얽힌 남성 트로이카 세 명의 삶도 일정부분 담았을 것이다. 선수는 뺏겼지만, 내가 과연 미래에 저 작업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리고 이들의 삶을 담은 책을 내줬으니 아주 고마운 마음으로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긴 시간동안 이 여섯명의 삶은 나에게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들이 처했을 그 엄혹한 시절의 운동과 현재 나태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나의 운동을 비교하며, 조금 더 힘내야지 격려하기도 했고, 신출귀몰했던 또 모진 고문을 이겨냈던 그들의 운동에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자 노력했다.


자, 이제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이들의 삶을 돌아보자.

(아직 세남자는 안 나왔으니, 김단야, 박헌영, 임원근 이야기는 언젠가 내가 써볼까?)















찢어진 옷 꿰매 입기


1. 검은색 면 바지

 2년 전 가을 비탈길에서 뛰다가 콘크리트 균열에 발이 걸려 넘어져 찢어짐. 멀쩡한 옷이었고, 입고 다니기 편한 옷인데, 버리기 아까워 손 바느질로 꿰매 입었음. 당시에 귀찮아서 아니 갈갈이 찢긴 부위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꿰매다 보니 구김이 생기고, 삐뚤빼뚤 엉망으로 실밥이 드러남.



2. 분홍색 셔츠 

역시 2년 전쯤(아마도) 여름, 저녁에 집에 돌아와 땀에 젖은 옷을 벗는데, 몸에 붙어 잘 벗겨지지 않아, 억지로 잡아당기다가 상표를 붙여놓은 실밥 있는 부분이 살짝 찢어짐. 처음에는 별로 표가 나지 않아 그 상태로 계속 입고 다녔는데, 올해 여름 입으려고 보니, 그동안 옷 벗고, 세탁할 때마다 점점 더 찢어지면서 이젠 안 되겠다 싶을 만큼 찢어짐. 속이 다 들여다보이고, 찢어진 부위도 보기 싫어서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좋아했던 옷이기도 하고, 아직 멀쩡하기도 하고, 꿰매 입기로 결심함. 이번에는 좀 더 신경써서 꿰매려고 노력했으나, 바느질도 역시 기술이라 경험과 노력이 필요한 듯. 초보 솜씨로는 아무래도 삐뚤빼뚤 실밥 자국을 벗어나지 못함. 




 얼마전 저 검은 바지를 입고 어딜 가는데, 동행한 여성이 직접 꿰맨 거냐고 물었음. 당연히 삐뚤빼뚤 못난 실밥 자국 때문에 내 솜씨라고 알고 물었을 것으로 추정함.

그 전까진 별로 신경쓰이지 않던 꿰맨 자국이 이후로 신경쓰이기 시작함. 바느질을 좀 더 신경써서 잘 할걸 하고 후회했음


과소비


며칠 전 몇 달째 고민하던 걸 저질렀다. 지난 겨울 뱃살을 쏙 빼서 이제 공복에는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복근이 드러나는데, 그동안 운동을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아 전반적인 몸의 느낌은 별로였다. 요즘은 운동도 안 하면서 가끔 운동 동영상을 찾아보는 버릇은 여전해서, 볼 때마다 스냇치와 풀업이 정말 하고 싶었다. 스냇치를 하기 위해 헬스클럽을 끊자니 돈이 아깝고, 풀업을 하려고 철봉을 찾으니, 동네에서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뭔가를 사려고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실내용 철봉(디핑 치닝 머신이라고 적혀있었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런 것도 있구나. 그래서 폭풍 검색을 시작. 몇 시간 동안 가격대와 규격과 기능을 살폈다. 대체로 10만원 초반대에 괜찮은 상품들이 있었다. 좀 저렴한 것은 8만원에서 9만원 사이도 있는데, 아무래도 조잡했다. 이왕 사려면 몇 만원 더 주더라도 괜찮은 걸 사야했다.


하지만 지금 생활비와 애들 양육비로 달마다 마이너스 재정인 상황이라, 섣불리 10만원 넘는 과소비를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집이 좁아 이걸 들여놓을 수 있을까 싶었다. 또 한 편으로는 이 집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 왠만하면 빨리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은데, 짐을 늘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만큼 싼 집을 찾기는 어렵고, 한동안 이사를 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결정적으로 내 맘이 움직인 건, 아침마다 거울을 볼 때, 점점 근육이 줄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과 "10만원짜리 빨랫대로 전락하면 어때? 가끔 매달려서 용쓰면 그걸로 된 거 아냐?"라는 친구의 말이었다.


그래. 당장 좀 쪼들리더라도, 평소보다 술 좀 덜 먹고, 그만큼 운동하자 하는 마음에 질렀다. 지르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런저런 제품들을 놓고 고민하다가 또 바벨에 눈이 갔다. 스내치를 하기 위해 비싼 돈 주고 헬쓰클럽을 끊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가 막심하다. 나는 사용하지도 않는 값비싼 머신 이용료를 내고서, 머신 때문에 저 한 구석에 아주 좁게 자리 잡은 프리웨이트 공간에서 몇 개 되지도 않는 바벨을 찾아 운동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몇 개 되지도 않는 바벨을 벤치프레스 혹은 각종 변형된 벤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먼저 쓰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바벨도 같이 사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바는 대봉으로 사고 싶었지만, 집이 좁으니 할 수 없이 중봉으로 고르고, 원판은 이왕이면 내 몸무게 이상 장만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한 번에 지출이 너무 컸다. 결국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35kg만 샀다. 봉 무게와 합치면 42kg. 이 정도면 스냇치 연습하기에 괜찮은 무게다. 아니 이 년 정도 스냇치를 하지 않아서, 아마 저 무게도 다시 들어올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른다.


실내 철봉을 고르다말고 한참 바벨을 놓고 고민하다가 다시 철봉을 골랐다. 레그레이즈를 위한 등 받침이 있는 모델이 대부분이었는데, 경험상 저렇게 등 받침에 등을 대고 레그레이즈를 하면 자꾸 등이 굽더라. 차라리 등 받침이 없는게 훨 나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런 모델이 없더라. 풀업과 그에 이은 여러 응용동작을 위해서도 봉과 봉 사이가 뚫려 있는 것이 좋았다.


꽤 오랜 검색 끝에 등 받침도 없고, 가운데가 완전 뚫려 있는 모델을 찾았다. 게다가 이건 바닥 4면에 흡착판이 달려 있어서 훨씬 안정감 있게 철봉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오래 검색한 보람이 있었다. 완전 마음에 드는 모델을 찾아 결제했다.


그리고 토요일 낮, 둘 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철봉을 받을 때는 그냥 그랬는데, 바벨(그러니까 바와 원판)을 배송한 기사님 표정은 그야말로 죽을 표정이었다. 이 더위에, 하필 이 무거운 걸 택배로 시켰냐? 뭐 이런 표정이었다. 생각해보니 진짜 기사님께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다.


암튼 토요일 저녁엔 완전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스냇치와 클린 앤 저크, 데드리프트, 오버헤드 스퀏 등을 했고, 실내 철봉을 조립해서 풀업, 디핑, 레그레이즈를 비롯해 여러가지 응용동작을 해봤다. 한 두어시간 땀 흘린 뒤 온 몸이 나른하면서 근육이 땡기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한 동안 빡세게 운동하지 않아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


실내 철봉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마침 토요일이라 우리 집으로 온 아이들과 함께 조립했는데, 이것저것 미션을 주니, 신나게 참여했고, 다 만든 후에도 이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막 묻기도 하고, 내 동작을 보고 따라해보려고 애쓰기도 했다. 특히 작은 아이는 집안에 새 놀이터가 생긴 것처럼 철봉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일요일인 어제도 저녁 나절 한 시간 정도 땀을 흘린 후, 빨래를 널었다. 비가 와서 습한 날씨라 제습기와 선풍기 두 대를 모두 빨래에 양보했다. 그리고 빨랫대 만으로 공간이 모자라서 실내 철봉에 빨래 몇 개를 걸었다. 크기가 커서 빨래를 걸 수 있는 공간도 많았다. 친구 말처럼 10만원 넘는 빨랫대 처지가 되었다.


월요일인 오늘은 운동을 하루 쉬고 술을 마셔야지. 이렇게 비가 오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술잔을 기울여줘야 한다. 암,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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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1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에 감은빛님이 선물하신 김성동 씨의 <현대사 아리랑>, 소중히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감은빛 2017-07-12 18:36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잘 간직해주셔서, 그리고 이렇게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무해한모리군 2017-07-1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여자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아이이름 단야로 짓고 싶었더랬는데 ㅋㅋㅋㅋㅋ
자자 실내철봉 URL도 공개하셔야죠

감은빛 2017-07-12 18:39   좋아요 1 | URL
아래 주소로 들어가면 4개 버전의 전신운동기구가 있어요.
저는 그 중 3번째 상품을 구매했어요.
1번과 2번은 바닥 흡착판이 없어요.
4번은 벤치까지 딸린 제품인데,
저는 이미 벤치가 있어서 필요가 없고,
여기 딸린 벤치는 좀 부실해보였어요.

며칠동안 사용해보니 흡착판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천지 차이인 것 같아요.

http://www.wemakeprice.com/deal/adeal/2214828
 

사람이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자존감일 것이다. 나는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높은 편에 속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공부도 안 했고, 폭력 사건 전과도 달았지만, 대학은 무난히 들어갔고, 학생운동하면서 간부가 되었다. 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뭔가 원하는 사람들은 계속 내게 뭔가를 바란다. 나는 늘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라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사이의 틈이다. 자존감 높은 잘난 어떤 가상의 상태의 나와 현실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 이런저런 일에서 내가 남들보다 더 통찰력을 발휘하거나, 남들이 생각 못 한 어떤 역할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분명 아니다!

엊그정 인연을 맺게 된 어느 분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무척 조용하고, 지적인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린 시절 이야기 듣고 나니, 완전 개구장이에 머리 굴리는 사람으로 보여요˝

그 여성에게 내가 뭐라고 옛날 얘길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폭력전과를 달았던 시절 이야기 였겠지. 난 상황에 따라 완전 설치기도 하고, 완전 조용하기도 하다. 암튼 머리를 굴리는 편인건 확실하다.

토요일이라 일찍 만난 후배가 벌써 2시간 30분 넘게 정신을 못 차리고 졸고 있다. 나는 2시간 30분 넘게 대화상대가 없이 심심하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다른 후배를 불렀다. 그 친구는 오고 있는 중이다.

할 말도 많고, 쓰고 싶은 말도 많은 날들이다. 오직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근데 내가 대체 왜 시간의 허락을 받아야 만 내 이야기를 쓸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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